<불편함의 실체 _ "지금 여기" 경계와 경계에 대한 취착>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
타인에 대한 원망,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기대
이것이 곧 "지금 여기"에서의 나의 불편함의 모습이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 타인과 나에 묶여서는 불편함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과거와 미래, 타인과 (과거/미래의) 나는 "지금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불편함만이 지금의 나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어찌할 수 없다
타인의 행위를 내가 구속할 수 없고
과거의 나의 어리석은 행위 역시 돌이킬 수 없고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나를 미리 만들어놓을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슨 경계에 묶여 있는지를 살피게 되면
그 경계에 대한 착심까지 살필 수 있으니
대상경계와 그것에 대한 착심은 따로 실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펴들어가면 경계에 묶인 나의 취착이
"후회"와 "기대", "원망"과 "자책/기대" 등 온갖 "불편함" 의 벌거벗은 모습임을 알게 된다
경계를 통해, 경계에 묶인 취착을 살피는 것이 "불편함"의 근원을 보는 법이다
"지금 여기"의 경계 없이 과거, 미래의 원인을 논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희론이 되어버리니
지금이 없으면 과거도 미래도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 말씀은 "지금 여기"에서 과거와 미래의 허망한 경계를 살펴들어간다
반면 외도의 인과법은 지나간 과거를 되돌이키기를 원하고 오지 않은 미래가 미리 정해지기를 원하니
마치 눈뜬 봉사처럼 "지금 여기"에서 경계 없기만을 바래서 허망함만 가득하다
불편함이 법으로 해체되기 전의 인식의 증장된 모습이라면, 착심은 해체된 후의 모습이다
나의 불편함은 법다운 살핌에 의해 경계에 대한 착심으로 드러나면서 점차 빛바래어 버린다
이처럼 부처님 말씀은 경계의 유무가 아닌 경계에 대한 착심을 드러내는 법이다
몸이 있고, 경계가 있고, 과거의 경험지은 식이 있는 한 불편함은 항상 일어난다
그러나 불편함을 법다운 살핌에 의해 경계에 대한 착심으로 늘 해체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경계를 피하고, 때로는 착심을 놓으면서 불편함을 빛바래게 한다
불편함의 실체는 경계에 대한 착심이지만
착심을 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은 자만과 위선 때문이며
경계와 경계에 대한 착심을 나누어서 살피는 것이
바른 법의 토대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오온과 오취온편 참조 : http://cafe.daum.net/realbuddhism/4y78/24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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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논두렁밭두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5.10 투덜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용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자기 현실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부터
똑바로 보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을 끌어내리지 않고 높이 올리신다는데
님이 주장하는 부처님법은 왜 현실에서 확인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걸까요?
그래서 높이 계신 부처님께서 님께 어떤 깨달음을 주신다는 건가요?
투덜님께서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의 내용을 진짜 이해하셨는지 안하셨는지는 참으로 의문스럽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니 서양과학이 더 우러러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합니다. -
작성자논두렁밭두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5.10 말돌리지 마시고 제가 질문한 --투덜님의 깊이있는 실참 결과가 궁금합니다---
서양과학 공부하셔서 얻으신 높은 부처님뜻을 말씀해 주세요.
상대성 이론과 양자물리학에서는 현실에서 확인되는 괴로움의 소멸을 어떻게 논하고 있습니까?
투덜님의 깊은 실참의 결실을 들려주세요. -
답댓글 작성자투덜이77 작성시간 11.05.11 논두렁님 실참 결과가 단멸론인가요. 저의 실참결과는 단멸론은 정견은 아니라는 겁니다. 단멸론이야말로 실참의 결과가 아닌 어설픈 논리일 뿐입니다. 아직도 생각이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것을 증명할 뿐이지요 논두렁님의 주장은 단멸론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것이다. 이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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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랑 작성시간 11.05.10 이분은 깨달아서 '깨달음에 공식이 있다' 이 책을 쓴것같은데 이책에서는
12처가 육근경, 색온이 몸둥이라고 나옵니다.그런데
경전에는 12처가 육근경,색온이 몸둥이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왜 경전과 이분 실참 내용이 다릅니까? -
작성자초심 작성시간 11.05.11 1001. 논두렁님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제자가 멸해야 하는 것은..
고인데, 그 때 고는 무명에서 생긴 갈애의 집기를 멸하는 거지요.
그럼 고, 무명, 집기한 갈애는 무엇입니까?
(인)식(識)입니다.
님이 좋아하는 실참이란 바로 인식을 바로 보아 무명인 식을 멸하려는 겁니다.
그런데 님이 말하는 몸뚱이는 인식에서 생긴 몸뚱이가 아닌 인식을 생기게 하는 몸뚱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보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