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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업보와 연기설의 관계

작성자노랑|작성시간11.12.30|조회수449 목록 댓글 4

업보와 연기


지금까지 살펴본 중도는 그 내용이 당시의 업설에 대한 비판이며, 불교의 업설을 천명한 것이다. 자작타작중도와 단상중도는 업을 지어 그 과보를 받는 것이 동일한 존재인가 다른 존재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일이중도와 유무중도는 업을 지어 그 과보를 받는 상주불멸하는 육신과는 별개의 영혼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세존은 이러한 당시의 모든 업설을 사견으로 규정하고 정견으로 연기설을 주장했다. 따라서 연기설은 불교의 업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십이연기의 유전문은 무명으로 살아가면 괴로움이 나타난다는 업보를 설명한 것이고,

팔정도는 정견으로 살아가면 열반을 성취한다는 업보를 설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설에 대하여 혹자는 불교가 연기설에 근거하여 무아를 주장하기 때문에 업설은 세존이 민중교화를 위해 편의상 당시의 통속적인 종교관념을 채택한 것으로서 불교의 근본사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업설과 무아설을 양립할 수 없는 모순관계에 있다고 본다.

 

업설은 윤회사상의 기초가 되는 사상이며, 윤회설은 윤회하는 주체로서 상주불멸하는 자아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연기설에 기초한 무아설은 그러한 자아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으므로 업설과 무아설은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중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연기설은 유무중도의 입장에서 이야기된 것이므로 연기설에 근거한 무아설은 중도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만약 무아설을 업보에 의한 윤회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세존이 사견으로 단정한 단견斷見이므로 결코 정견이 아닌 것이다.

 

<별역잡아함 202경>은 연기설이 곧 불교의 업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때 외도가 수달다에게 말했다. "나의 견해로는 중생들은 상주불멸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견해는 모두 거짓이다."

다른 외도가 수달다에게 말하였다. "나의 견해로는 일체는 무상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견해는 모두 거짓이다."

...중략...

그때 외도들이 각각 자신들의 소견을 이야기하고 수달다에게 말했다. "이제 그대가 이야기해 보시오."

수달다가 대답했다.

 

"나의 견해로는 일체 중생은 모두가 유위有爲로서 여러 인연의 화합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요. 인연이란 곧 업業을 말하는 것이오. 만약 인연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무상無常한 것이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운 것이며, 괴로운 것은 곧 무아無我이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모든 견해에 마음이 집착함이 없소.

 

그대들이 주장하는 '일체의 모든 것은 상존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견해는 거짓이다'는 말은 (자아의 존재를) 상상으로 꾸며 놓았기(計)때문에 하는 말로서 (꾸며 놓은 자아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이오. 이 모든 사견을 탐착하면 이는 괴로움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큰 괴로움을 받나니, 생사 가운데서 무궁한 괴로움을 받는 것은 모두가 자기 존재를 꾸며 놓기(計有) 때문이오....

 

이와 같은 모든 견해는 사실은 유위이며, 업이 모인 것이며, 인연이 화합한 것이오.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무상하므로 괴로움이고, 괴로움이므로 무아임을 알아야 하오."

 

이 경은 당시의 외도들과 수달다라고 하는 재가불자 사이의 대화이다. 수달다는 급고독원(기원정사)을 지어 세존에세 시주한 사위국의 거부로서 급고독장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세존에게 공양하러 가던 도중에 때가 일러서 세존이 선정 중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먼저 외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외도들은 세존께서 사견으로 규정하고 묵살했던 문제들에 대한 수달다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한 수달다의 대답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세존은 십이연기를 이야기하여 외도들이 문제삼고 있는 세간, 영혼, 육신 등의 존재가 무명에서 연기한 망념이므로 이들 논의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무의미한 것임을 밝혔다. 그런데 이 경에서 수달다는 이들 존재(망념)가 인연이 화합하여 존재하는 유위라고 이야기하면서 인연은 업을 의미한다고 하고 있다.

 

연기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의미이므로 '인연이 화합하여 존재한다'는 말은 '연기한 존재이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유위란 '무명에서 연기한 망상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중생이나 세간, 영혼 등이 '인연의 화합에 의해 존재하는 유위'라는 말은 이들이 '무명에서 연기한 망념'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인연이 업을 의미한다면, 이 말은 다시 '모든 존재(망념)는 진리에 무지한 무명의 상태에서 지은 업의 결과 나타난 것'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연기는 업보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으므로 연기설은 불교의 업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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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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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글의왕 | 작성시간 11.12.30 모든 존재가 무명에서 지은 업의 결과 나타난 것이라면 업과 존재는 연기 관계지요?
    그럼 다시 존재는 무명에서 연기한 망념이라면 망념을 낳는 업도 망념이 아닌가요?
  • 작성자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30 다른분께서 혼돈하실까봐 적습니다.
    여기서 모든 <존재>는 외부의 물적존재가 아니라 ' 무명을 연하여 생긴 망상(인간이라는 생각, 세간이란 생각, 영혼이란 생각) <인식된 존재>로 보이고 이러한 인식된 존재(망상)는 무명을 연한다 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업은 원인에 대한 결과를 설명하는 개념인 하나의 그릇일뿐 업 자체가 망념은 아니라 보입니다.
    뭐랄까 투명용기라 할까요? 악을 담으면 악이고 선을 담으면 선이 되는 용기라 할수 있겠네요.
  • 작성자은정 | 작성시간 11.12.31 흐렸던 부분이었는데 명료하게 잘 정리되었습니다. 노랑님 감사합니다. ^^
  • 작성자은정 | 작성시간 11.12.31 1.업과 무아는 하나이면서 두 모양을 하고있음 2. 무명을 연하여 생긴 모든<인식된 존재>를 바로볼 수있음(사유)으로 나는 윤회를 끊을 수 있음 3. 지금 현재 나의 발끝이 중요한 건 쉼없이 움직이는 나라는 물건의에너지가 업의 형태로 있기 때문임->수행의이유 / 이해된 것 정리해봤습니다. 잘못 이해한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부처님공부를 수학공부하듯 하는게 조금 모하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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