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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종 단멸론의 한계

작성자초심|작성시간12.08.13|조회수197 목록 댓글 18

 

오온은 육근의 다른 표현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식의 발생 근원[육체를 전제로 했을 때]을 알기 위해서는 육근을 전제로 살펴야 하고, 인식의 발생 원인[정신을 전제로 했을 때]을 알기 위해서는 오온을 전제로 해서 살펴야 한다. ※제2장 7. 육근 · 육경 · 육식 참조

오취온은 삼사화합된 촉육근이 육경과 접촉하여 육식이 발생함으로 인해 오온에 취착하게 된 것으로 갈애와 취착의 다른 표현이다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중에서

 

 

색이라는 것(물자체)은.. 그렇게 보이는 것(色)이고, 그렇게 보이는 것에 대해 [색]이라고 이름(名)을 붙여 놓은 것이지..

그 본래 모습(물자체)이 어떤지 우리는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사과라는 명색은 인간에게 보이는 명색일 뿐, 나비가 보는 사과는 우리에게 보이는 사과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럼 사과 참 모습은 우리가 보는 모습인가 아니면 나비가 보는 모습인가?

 

사과의 본 모습이 무엇이든 우리가 보고 있는 사과는 사과가 아닌 것은 아니니.. 그것을 名色이라 한다.

 

이렇듯 명색이란 물체 자체를 지적하는 게 아닌.. 물체에 의해 촉이 되어 지각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수상행식도 그와 같다.

 

그런데 신종단멸론자들은.. 그들 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지만..

명색을.. 지각되도록 한 물자체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6근경이나 5온, 육체와 정신을 그것의 본모습인 물자체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세간에서 저지르고 있는 [물자체 = 명색]에 대해..

물자체는 우리가 촉한 명색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시키기 위한 법문이 바로..

[3사화합촉] 법문이 된다.

 

그러니까 6근경이 아닌 6내외입처라는 말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우리가 아는 일체는 외부에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 것임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6내외입처]라는 용어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언어라는 것이다.

 

그런 3사화합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정말 까다로운 것 같다.

 

그러기에 다시 반복하지만.. 불행하게도

신종단멸론을 주장토록한 [깨.공(=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란 책에는 애석하게도 6내외입처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 책에서는.. 위에서 보듯.. 6입처가 있어야만 하는 자리에 6근경이 그냥 들어가 있다.

그것은 [깨.공] 작가만의 잘못이 아니다.

 

거의 이천 년전에.. 상좌부 불교 안에서 6내외입처를 6근경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구사론>이나 <청정도론>도 6입처와 6근경을 거의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6근경 역시 무상한 존재이지만 그것을 체로 삼아, 6내외입처는 용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거 아니! 다.

 

석가 부처님은 오히려 무언가가 있다(물자체)는 것을 아는 것은 6내외입 작용때문이며,

촉이 일어난 후 일려진 것에 집착하고 끝내 집기하면 6근경이 되는 것으로 가르치신다.  (<잡. 214경> 참고) 

 

그와 같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놓치면..

데카르트가 그러했듯이..

 

모든 인식이 생기는 근본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몸을 일체를 아는 출발로 삼게 되는 것인데..

바로 [깨.공]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종단멸론자들은 일체의 출발을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육체와 정신]으로 삼고 있다.  

그것을 그들은 그저 앵무새처럼

[육체와 정신의 상호의존작용]이라 하여 대단한 것처럼 반복 사용하지데..

 

그것을 데카르트는 존재의 메카니즘으로 본 것이고.. 그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부처님 당신 바라문이나 외도라 불리는 집합체들은 [육체와 정신의 상호의존작용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육체와 정신이라 불리는 5온이 전부로 그 외 무엇도 없다고 하면 단멸론으로 들어가고..

육체와 정신 외에 다른 게 있으며, 그것은 영원하다고 하면 상론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깨,공]은 처음에는 단멸론을 저들의 핵심처럼 주장하지 아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물이 흐르듯 육체와 정신이 전부라고 주장하면.. 그 종점은 단멸론이 되고 만다.

 

그러니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불교 교설은.. 무아, 공, 5취온, 12연기법, 4성제..  이제 부모로부터 태어나 그 몸이 죽을 때 까지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재해석된다.

 

부처님 시대에 있었던 6사외도 가운데 나오는 단멸론자들은 처음에는 기세 좋게 유행을 탓을 지언정..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렇게 언제 어니서나 단멸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반짝이면 나타나지만. .

그들은 곧 사라지는 유성일 뿐이었다.  

 

만일 불교가 단멸론이었다면..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기 전에 인도에서 빛을 잃었을 것이다.

단멸론은 글자 그대로 단멸할 수 밖에 없는 사상이기에..

 

그런데 20세기부터 나오기 시작한 [과학 세기]라는 말은 단멸론자에게 강력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본래 과학이란

진리 탐구라는 순수 학문 영역으로 그것은 단멸론은 물론 상론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단멸론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패러다임 시대다 된다.

 

하여 신종 단멸론자들은 과학에 손을 내밀고, 과학을 단멸론 주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디지탈 시대로 대변되는 과학 시대는 분명 단멸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과학에 의지하며 모든 종교를 재해석햐려는 단멸론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상론은 물론이거니와 단멸론이 아니다. 

 

그러니 신종단멸론이 단멸론의 역사에서 보여주듯이 하루살이처럼 머물다 사라질 것이다.

 

그런 것으로 보며

내가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토론방에서 보듯 그런 단멸론에 자기 정기(正氣)를 쏟아 붓고 있는 열정자들이다.

 

일 분이라도 빨리..

사실을 바르게 보는 법안이 열리기를 기다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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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글 아함경전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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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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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인욕 | 작성시간 12.08.17 현생과 내생을 말하지 않더라도 윤회를 상정한다면 이미 내생은 말해지는것 아닙니까?

    말하지 않는다 하여 내생을 숨겨놓고 말하지 않는것은 우스운일입니다.

    정직하지도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파초 | 작성시간 12.08.20 윤회는 그래서 유전문적 이야기라 분명 말하지 않습니까?
    환멸문을 이루면 사라지는 것이라구요.
    깨친 사람에게는 윤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내용에서 현생에서 못 깨우치면 내생에서 깨우친다는 말이냐 하고 묻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댁들의 이야기 안에서 지적하는 것이지
    저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정직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 댁들입니다.
    현생만을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내생과 전생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잇습니다.
  • 작성자투덜이77 | 작성시간 12.08.17 이젠 척보면 알아요 단멸론자들의 말투 사고방식 너무 많이 들어서 인욕님 단멸론자 당첨.
  • 답댓글 작성자인욕 | 작성시간 12.09.01 ㅎㅎㅎ 저 인욕입니다. ^^

    이세상이 단멸론자로 차고넘친다고 느끼시는건 피해망상입니다.

    이세상엔 윤회론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ㅎㅎㅎ
  • 답댓글 작성자노랑 | 작성시간 12.09.02 무명님 또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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