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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고무아와 상락아정

작성자효진|작성시간14.09.06|조회수564 목록 댓글 10

이 글은 저 앞에 올라온 글에 답글이 되는데. 저 앞에 달면 잘 아니 보이니.. 시침떼고 떡. 하니 요기에 올립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대들이 실제(실유)라고 여기고 있는 그 현실은 무상(無常. 항상 함이 없이 변한다)하다. 무상하기에 여의치 않은 고(苦. 생노병사우비고뇌)가 있게 된다. 무상하기에 무아(無我. 非我)다. 라고 일러주시고,

다시 당신의 이룬 경지(涅槃)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일러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생들로 하여금 당신과 같은 경지(열반)를 얻어서, 당신과 같은 상락(常樂)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봅니다.


그 상락(常樂)을 이루고 보니, 6근 6경은 본래 있지 아니한 것이요, 이 열반을 모르는 무명(無明)의 마음으로 본래 있지도 않는 것에,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이지요.// 나찾님 글 [Re:심연생과 실유]에서


...............................................................................


나찾님 글에는 6입처는 곧 6근경이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렇게 말하면 부처님은 씰데없는 말장난하는 분이거나 부처님을 욕하는 짓이죠. 

단 나찾님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쯤으로 이해하고 지나가렵니다..^^


인용한 글을 보노라면..

나찾님은 상락아정을 세우기 위해 언어 플래이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인다'는 것은 나찾님은 절대로 말장난하는 분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왜 말장난으로 보이냐면.. 그 전에 문장을 분석해 봅니다.


1. 중생은 5온을 항상하는 것으로, 그것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알고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 속제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전에는 인간은 ‘우리 눈에 비치는 사물의 모습’이 ‘사물의 변치 않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칸트는 ‘물자체 ding-an-sich’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물체를 이루는 아원자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는데 거기 어디 물자체가 있을 것인가? 게다가 사물의 이름은 사람이 부여한 것인데, 그 이름에 걸맞는 것이 존재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낭만주의일 뿐이다. 이름은 우리의 소망과 선입관과 사물·현상에 대한 허술한 인식과 이해를 간직한, 우리 마음의 투영이다. 거기 무엇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나 지각하는 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이 ‘존재한다’라는 말까지도 정의하기가 녹녹치 않다.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인간이 보는 대로, 동물도 사물(삼라만상)을 같은 모습으로 보리라 생각했다. 즉 사물에는 보는 생물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고정불변한 모습이 있고, 보는 기능은 모든 생물에게 동일하고, 동물들은 모두 ‘동일한 고정불변의 모습’을 본다고 생각했다.


빨간 꽃은 나에게나 바둑이에게나 동일하게 빨간 꽃이고, 박쥐가 듣는 자연의 소리는 우리가 듣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듣는 성품’이라 표현했다.) //


저 글에 나오듯 부처님 시대 사람들은 항상하는 아트만이 있다고 알고 있었던 것이죠.


2. 그런 5온을 선정에 들어 바르게 관찰해 보면.. 누구나 5온은 무상하고 무아임을  알 수 있는데.. 그러면서 사람들이 고를 겪는 것은 무상한 것을 상으로 알면서 욕탐을 부리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 그러기에 무상, 고, 무상은 속제가 아닌 진제가 됩니다.

이와 같은 진제를 불교 수행의 출발로 삼는 것은 얼척이 없는 짓아 아닐 수 없지요.



그러면서 열반의 오리지날 뜻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부처님 당시 사용하던 열반의 뜻은 불이 완전히 꺼지 상태라 하여 몸과 정신이 완전히 사라진 무화(無化)라는 뜻이라 합니다.


우리가 볼 때 살았다는 흔적이 완전이 없어진 상태가 어떻게 수행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데.. 마성 스님은 그러더군요. 인도인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며 수행한다고..


이런 열반의 뜻을 부처님은 변형시킨 분이 됩니다. 곧 살아서 고를 완전히 멸한 상태릉 열반이라고 가르치는 게 그것이죠.


다시 말해 힌두교나 자이나교에서는 몸과 정신인 5온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열반이라 하는 데 반해

석가 세존께서는 몸이 있건 없건 정신적인 고를 완전히 멸한 상태를 열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런 열반 상태는 무상하고 무아를 깨친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힌두교를 보면 범아일여를 가르치고, 자이나교는 몸이 죽으면 완전한 열반인 지바에 이르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열반인 범아일여나 완전한 지바 상태를 상락아정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느 것에 혹할까?.. 아무 것도 없다는 것과 상락아정 가운데..

하여 무상하고 무아인 열반인 부처님 상태를 상락아정으로 설명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그 후에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무상과 무아 상태를 상락아정으로 이해시키고 있었는데..

무상, 고, 무아와 상락아정에 나오는 상, 락, 아는 바로 상대적인 언어가 아닙니까?..^^


하여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만드는 가운데..

무상과 고, 무아는 중생의 5온을 설명하는 것으로 상락아정은 열반을 설명하는 것이 나오게 된 것으로 저는 봅니다..^^()



제가 이와같은 소설을 쓰는 이유는..

니까야나 아함경을 근본경전이라고 하는데..

니까야는 불멸후 약 400 여년이 지난 후 그것도 스리랑카라는 변방지역에서 문자로 정리되었으며,

아함경은 구전되어 오다 더 늦게 불멸 후 6,700 년이 지난 후 문자로 정리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그때 시대 정신이 경에 스며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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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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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효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9.06 무슨 말인가 하면 무상, 무아를 열반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자이나교에서 열반인 지바를 상락아정으로 설명합니다.

    그러자 불제자들 역시 열반을 상락아정.. 부처님의 상태를 말로 설명하는 것.. 으로 설명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열반=상락아정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것을 빤히 보면서도 나찾님이 정중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열반을 단멸로 아시면 안 됩니다. -> 무아는 오직 단멸로만 알기에 저런 말이 가능합니다.
    열반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되는 것이지요. -> 상락아정이라는 것인데. .그게 부처님 경지인 무아임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열반진아(涅槃眞我)는 아트만도 아닙니다.
  • 답댓글 작성자효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9.06 효진 이렇게 잘못된 글이 나오면 저는 그 다음부터는 생략해 버립니다.
    잘못 끼기 시작한 단추는 그 자리부터 다시 껴야 하기에..
  • 작성자노랑 | 작성시간 14.09.07 석가 세존께서는 몸이 있건 없건 정신적인 고를 완전히 멸한 상태를 열반이라고 하는 겁니다.//효진.
    ---------
    이 말은 괴로움이란 정신영역 이므로
    열반이란 몸이 아닌 정신적인 고를 소멸했다는 말인데
    정신을 깡그리 소멸했다고 이해 하셨는지

    [ 즉 무아가 되었다면 아무생각 없는 그야 말로 골빈이가 되는 것이겠습니까.
    열반을 단멸로 아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씀 하신 것 같군요.
  • 작성자나를 찾아서 | 작성시간 14.09.06 그럼 열반을 이루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뭐가 있다는 것입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없는 것이 아니라면 있다는 것일 것이고, 있다면 외도들이 말하는 진아(아트만)가 있다는 말과 어떻게 다르다는 것입니까.

    저가 한 말은 무아란 삼계의 이치이기에 열반을 이루면 진아라는 말입니다.
    이 진아는 외도가 말하는 아트만과는 다르다는 말이고요.
    왜 다른가 하니 외도의 진아는 의근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고,
    저가 말하는 진아는 아뢰야식과 그것보다 더 깊은 진여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것이 아니라면 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것입니까...
  • 작성자효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9.07 나찾님도 시원한 추석 연휴를 보내기 바라면서..^^()..

    노랑님과 제 견해가 같지는 않겠으나 효진이 말합니다..^^

    자이나교의 열반은.. 아지바라는 몸은 죽으면 지바(=영혼)만이 남아 홀로 영원한다고 주장하지요.
    홀로 영원한 지바를 다른 말로 상락아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불교는 살아서 무아를 깨쳐 열반을 증득한다고 했는데.. 살아서 증득한 열반을 다른 말로 하면 상락아정이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무아와 열반과 상락아정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설명을 앞에서 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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