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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성과 유무중도

작성자雨庵|작성시간14.09.21|조회수138 목록 댓글 15

빛의 상보성(complementarity)이란

빛이 물질 같이 작용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즉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입자성이란 마치 색처럼 작용한다는 뜻이고

파동성이란 마치 공처럼 작용한다는 뜻이 아니냐고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바가 있다.

 

이 말은 다시 부연을 한다면

우리가 입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파동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파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입자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자의 이중슬릿 실험에서도 확인된다.

우리가 '관찰'을 하지 않은 채 전자를 이중 슬릿을 통과시키면

전자는 마치 파동과 같이 작용한다.

그러나 '관찰'을 한다면

이러한 파동성(확률)은 붕괴되고

마치 입자와 같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전자를 어떻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 지식을 이용해서

이것을 입자라고 한다면 파동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고

이것을 파동이라 한다면 입자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특성을 갖는다고 하면

왠지 모순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보성 이것이 양자역학적인 사실이다.

 

존재란 있는가 없는가?

내겐 마치 입자성과 파동성처럼 보인다.

입자성이란 존재가 있는 것이고

파동성이란 존재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입자적이면서 동시에 파동적이다.

그래서 일단의 사람들이

입자라고 한다면 (유라고 한다면)

이는 무를 무시한 단견이며

파동이라 한다면 (무라고 한다면)

이는 유를 무시한 단견이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자도 진리이고 파동도 진리이다.

단 그 모두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단견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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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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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보리수1 | 작성시간 14.09.22 그렇게 해서 바로 깨우치고 나면,

    20년 동안, 30년 동안 한 번도 자전거를 타지 않더라도, 필요하다면 즉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됩니다.

    수영하는 법도 그렇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 몸의 기능 때문에 그전처럼 빠르게 자전거를 탈 수는 없을지라도,

    자전거 타는 법이나 수영하는 법에서 에서 자유롭습니다.

    자전거를 보더라도 넘어질까(번뇌) 두렵지 않고, 물에 빠져도 익사할 공포(번뇌)에서 해방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리수1 | 작성시간 14.09.22 king콩 운동신경이 아주 둔하거나, 어떤 이유 때문에 보통 사람이 자전거를 3일 안에 배우는데 1달이

    걸릴 수도 있으며, 마음이 나약하여 공포심을 가진 사람은 평생 자전거를 못 배울 수도 있습니다.



    이때의 해탈을 심해탈이라고 부릅니다.

    흔히들 심해탈이라고 하니까 마음으로 해탈한다고 생각하는데

    보리수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마음의 해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心은 흔히 생각하는 관념적인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여기에서의 '마음'은 육체와 정신이 나누어 지지않는 그 자리를 가르킵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리수1 | 작성시간 14.09.22 마음이라고 해서 육신과 상관 없는 정신작용만을 이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깨달음은 몸(몸과 마음을 포함한 개념)으로 體得하여야만 합니다.

    깨달음도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금방 깨닫고 內面世界의 큰 변화와 함께 대자유를 성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根機라고 합니다.


    누가 칼로 찌른다고 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누가 명예를 훼손해도, 심하게 두들겨 패도, 목숨을 끊겠다고 해도

    분노나 잡념이 일어나지 않고 여여부동한 경지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집착과 번뇌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야만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리수1 | 작성시간 14.09.22
    세속적인 어떤 잡스러운 일은 미리 몸으로 연습하지 않고서도 잘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
    다.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을 수행한다고 돌아다니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바른 수행법을 만나느냐?
    수행을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눈 밝은 스승을 만나느냐?
    불퇴전의 보리심을 내느냐?
    얼마나 굳은 의지로 수행에 임하느냐 ?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여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리수1 | 작성시간 14.09.22
    수행을 오래 했는데도 깨닫지 못했다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단 순간에 깨달았어도 전혀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위와 같은 그런 것들이 아니고, 지금 당장 자유롭지 못하고,
    지금 당장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늘 불만족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걸음이 조금 빠르지 않더라도, 며칠 후에 달성할 것이라는 가까운 기약이 없더라도,
    지금 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며,
    생활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간다면,

    평생을 걸려서 못 깨닫다가 죽는 순간에 깨달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_(합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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