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2.600年 前의
싯다르타가 傳하고자 했던 疑問의 修行正法인
以心傳心 不立文字 正法眼藏으로 傳할 수밖에 없었던 解脫nirvana 修行法인 [無有正法]의 實體이다.
第8分에서 言及한 바와같이
싯다르타의 修行흔적을 發見한 것은
*2.023. 09月 우연히 [佛敎放送 다큐 유튜브 ]上에서 2.600 年 前의 싯다르타의 修行 흔적을 發見하게 되었다.
그런데,
筆者는 2.023. 09月 싯다르타의 修行흔적을 유튜브 上에서 發見하기 4년 前, [*2019. 08월 09日字]에
[미주 현대불교] 게시판 [ 수행 한줄기]란에 [불교 수행의 실제 12회] 分<수행시 참고사항>이란 제목에서
이미 筆者가 體驗했던 修行姿勢와 修行現象을 言及한 바가있다.
그 대목을 꼼꼼이 살펴 보게되면
筆者의 修行現象이 2.600 년 前의 싯다르타의 修行 흔적과 一致함을 確認할 수 있을 것이다.< 필히 참조 할 것>
*本 修行法의 修行姿勢는
現 佛敎界의 기존 修行姿勢와는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本 修行法의 修行姿勢는
修行시 눈을 감거나 반개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本 修行法은
* 눈을 부릅뜨고 修行하지 아니하면
本 修行법은 修行法으로써의 修行成立이 절대 不可能하기 때문이다.
ㅡ 言及한지 4年이 지난,
지난 해 *2.023. 09월.
지금의[부다가야 大塔] 옆 자그마한 [記念塔]에서
2.600 年 前의 싯다르타의 그 修行흔적을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發見하게 된것이다.
發見 動機는
*[2.023. 09월] 우연히[ 佛敎放送 다큐 유튜브[부다가야]를 보다가 한 장면에서 해설자의 해설을 듣고,
그 解說者의 解說을 통해 그 時節에 싯다르타가 修行했던 修行 흔적과 그 修行 흔적을 통해
2.600 년 前의 싯다르타의 修行法의 實體와 修行 根據를 우연히 發見하게 된것이다.
나는 [부다가야]에 가 본적은 없다.
그러나,
얼마전 [佛敎放送 다큐 유튜브 上]에서
現地 해설자들의 [定眼 修行塔]에 관한 共通된 解說을 듣고, 귀를 疑心하며 몇번이고 反復的으로 들은 後,
그 修行法에 대해 確信하게 되었는데, 그 修行 흔적은 筆者에겐 낯선 修行 現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설자 曰,
그 記念塔의 이름을
2.600 년 전 싯다르타가 수행한 [定眼 修行]을 記念하는 [定眼 修行塔]이라는이름에 對한
說明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나의 修行을 實行하기 爲해 그 修行現象을 象徵하는 記念塔까지 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그 修行過程에 있어서 重要한 수행 姿勢임을 豫測할 수 있으며,
또,
修行에서 活用해야 할 所重한 修行過程 現象이기에
後代의 修行者에게도 끊김이 없이 그 修行過程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爲한
象徵을 目的으로 記念塔을 세운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 많은 修行者들이 佛敎의 聖地인 인도의 [부다가야]를 수없이 순례하면서도 그곳에 우둑 자리한 싯다르타의 修行흔적을 2.000년이 지나도록 관심있게 살펴 헤이리지 못함이 아쉽다.
現 佛敎界에서는 지금 어떠한가?
그 싯다르타의 修行 흔적을 지나친 채,
싯다르타가 說한바가 없는 修行法을, 解脫nirvana 수행과는 전혀 無關한, 엉뚱한 修行法들을 만들어서 亂舞하게 行지고 있슴이 現 佛敎界의 現實임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眞情한 修行者라면 現 修行法을 되돌아보고 깊히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싯다르타가 傳한 解脫nirvana 修行法은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며 傳한
唯一無二한 修行法, 不入文字/ 以心傳心으로 傳할 수밖에 없는 無得無說의 無有正法 하나 뿐이다.
물론, 그 修行 흔적을 看過힐 수밖에 없었던 것은
훗날의 일반 修行者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존 修行法과는 전혀 다른 修行方式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ㅡ다시 다음 修行 이야기를 이어간다.
또, 解說者 曰,
ㅡ 定眼 修行塔에서 由來한 [定眼 修行]은,
" 싯다르타께서 修行하실 때,
修行 1 주차에는,
[菩提樹] 아래에서는 [緣起法]을 깨달으시고,
修行 2 주차에는,
자신을 깨닫게 도와준 [菩提樹]에게 感謝하는 마음으로 근처 작은 언덕에 正坐하고 앉아
一週日 동안 [눈을 깜박이지 않고]=[定眼 修行] 修行에 도움을 준 [菩提樹]에 感謝하는마음으로 一週日 동안
눈을 깜박이지 않고 [菩提樹]를 응시했다는 싯다르타의 수행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하는 塔" 이라고 하는
해설자의 解說을 듣고, 또 한번 놀랐던 것이다.
그 解說者의 그 記念塔에 관한 解說은 고마우나,
筆者는 그 解說者의 塔名에 對한 解說 內容이 歪曲되어 傳해진것임을 곧, 바로, 일 수 있었다.
싯다르타가 눈을 뜬채 깜박임없이 정좌하고 있는 修行모습의 現象은
이미 解脫nirvana 境地의 三昧samadhi 境地에든 모습임을 筆者는 안다.
그 싯다르타의 눈깜박임 없이 눈을 뜬채ㅣ 正坐하고있는 그 모습 現象은,
그 모습은,
筆者가 體驗했던 解脫nirvana 境地에 든 三昧 修行現象과 똑 같았기 때문이다.
그 修行 現象은
本 修行法을 實行하기 爲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修行을 始作할 수밖에 없고,
解脫nirvana 境地에 入靜된 상태라면
意識 消滅이 完成된 無意識의 상태로써,
應當
눈 깜박임 없이 부릅뜬채, 눈뜬 그대로 정좌상태로
해탈nirvana 三昧에 들 수밖에 없는 修行法에 의한 修行現象이기 때문이다.
허나,
解說者의 說明에서
눈을 깜박이지 않고 부릅뜬채 일주일 동안을 坐定하고 앉아있었다는 해설은 傳來가 歪曲된 해설이라 사료되며, 生物學的 기준으로 보아도 不可能한 대목이다.
筆者의 그 修行現象에 대한 앎은,
2.023. 09 月, 다큐 유튜브 [부다가야]를 보기 4年 前,
筆者는 이미[2019. 08 월] 즈음 본 사이트 [수행 한줄기] 게시판에 올려 놓은 筆者의 體驗談 中,
[26回分 2.019. 09. 15]일자의 願文과 / 답글2.019. 09. 25] 은정님의 질문에 의한 답글 참조] 글 들을 살펴보면
이미 筆者의 體驗에 의한 修行現象을 짧게나마 言及해 있슴을 確認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0분에서
다음 수행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부족한 부분을 체워 수정할 수 있으니 몇번씩 살펴 주시길 당부 한다.
합장.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금바위 작성시간 24.09.25 성지순례 유튜브에 의하여 정안의 모습=부처님께서 눈을 뜨고 수행하셨다
강조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처님과 똑 같은 nirvana 삼매현상을 경험 하셨다
말씀은 외적 모습이 같다는 말씀인지? 부처님의 내적인 삼매에 드신 경지를
같다고 함은 엄청난 발언입니다
같은 삼매인지? 다른 삼매인지?
후인을 위하여 같고 다름을 어떻게 결정할수 있는 문헌이라던가 경험 말씀을
밝혀 주신다면 역사적인 경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건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26 修行法의 修行方式은
본 연재에서 言及했던 수행환경 속에 있다면,
본 수행법의 실행은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실행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해탈 수행실행이 완성되어 意識이 超脫되면
無意識(해탈nirvana)의 境地에 들게됩니다.
그 이어지는 수행의 과정을 수행시 눈뜬 자세 그대로 解脫경지 體得의 과정인 삼매samadhi에 들게 되지요.
[三昧samadhi] 상태란,
意識이 超脫된 無意識의 상태이기 때문에
눈을 부릅뜬체 坐定하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삼매samadhi]상태는,
意識이 없는 無意識의 [解脫nirvana]된
상태이기 때문에
눈깜박임없이 눈을 부릅뜬채 긴時間 있다해도
생리학적으로 문제가 없었던것
같았습니다.
三昧를 통해 경지체득이 완성되었다하면,
삼매에서 깨어난 후, 解脫智見이 후유증으로 들어나는데, 그 見解가 凡所有相 皆是虛妄의
無爲的 有爲의 中道의 見解로 바뀌게 됩니다.
만약
三昧로 인해 경지체득이 完成되지 못하였다면
應當, 中道의 見解는 成立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修行은 解脫을 爲한 수행이지 中道를 얻기 위한 修行은 아닙니다.
中道見解는
解脫完成 後의 후유증세이기 때문입니다.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