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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18년 6월호] 그 새벽의 금강경 / 유지현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18.06.29|조회수92 목록 댓글 2


    < 시방세계 >




    그 새벽의 금강경



    글 | 유지현



    그 새벽을 잊을 수 없다. 밤새 공부한 금강경 책을 덮고, 3층 빌라 창가에 서서 무심히 바라본 그 새벽하늘을... 그때가 몇 시였던가. 시계를 보지 않아 정확한 시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공부를 마치고 새벽녘 홀로 밝아오는 너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창가에 서 있었을 때 무한창공이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열린 듯 충만함으로 서늘했던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내 나이 서른 둘이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너무 일찍 금강경을 만났다면 무슨 말인지 몰라 헤맸을 것이고, 오십 넘어 알았다면 지난 세월이 억울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금강경이 내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은 “참 재미있고 명랑하다” 말하지만 사실 나는 대단히 예민하고 까다롭고 자존심이 너무 강해 사람들하고 대강대강 어울리지 못한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밤을 새워서라도 집요하게 그걸 풀고야마는 성격도 있고, 관심 있는 대상에 대해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게다가 철저한 여성주의자임을 자처해 사사건건 부딪쳐 한마디로 사는 게 피곤했는데, 저 어마어마한 궁극의 진리 금강경이라는 용광로에 녹아져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이 돼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상황이 변한 건 없다. 모든 게 그대로이다. 단지 내 마음 쓰는 것이 여유로와 졌을 뿐이다.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거나 억울해서 씩씩거리거나 활활 타오르는 증오로 치를 떨지 않고, 이제는 손해 봐도 웃을 수 있고, 오해를 받아도 그러려니 넘겨버릴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모든 희로애락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 마음을 내가 응시하게 됐다는 뜻이다. 그렇게되니 사는 게 편안하다. 그 무엇도 나를 본질적으로 상처 입히지 못한다. 타인에게 억압받아도 금방 원래대로 회복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삶에서 꼭 해야 할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확연히 구분된다.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이 보인다. 인생이 짧은데 이 귀한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저절로 터득된다. 집에서 혼자 찬밥에 물 말아 김치쪼가리에 밥을 먹어도 한없이 감사하고, 눈물이 날만큼 살아있다는 생명 그 자체가 감격스럽고 고맙다.
    금강경의 원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를 의미하고 ‘반야(般若)’는 지혜를 뜻한다. 즉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날카롭고 빛나는 지혜를 의미한다. 이 경전은 부처가 1250명의 비구(남자스님)들과 함께 한 대중집회에서 제자 수보리 존자와의 대화 속에서 설한 말씀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 조계종의 소의경전으로 번역서 30-40여 종, 해설서 50-60여 종이 시중에 나와 있고 ‘금강경 독송회’를 비롯 이 경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모임과 법회가 전국 사찰에서 꾸준히 열리고 있다. 최근 서울대 교수모임에서도 스님을 초청해 금강경 강의를 들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기도 했다.
    사람은 대개 자기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일까?
    나는 금강경을 통해 분명히 눈에 보이는 현상을 꿰뚫는 그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적극 권유하곤 했다. 민우회 신입회원 이연수 씨는 어느 날 “유기성 씨가 하도 공부하라고 해서 내가 목요일마다 능인 선원에서 금강경 강의 듣잖아요!” 했고, 87년 가을 민우회 창립 당시 함께 연극작업을 했던, 화가이자 소설가 안일순 선생님은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무슨 일 있어도 꼭 공부할게요” 했다. 또 방송작가 이정란 선생님께 금강경 책을 선물했는데 “첫 장을 읽다가 아, 이건 술술 봐선 안 되는 책이구나, 싶어 도로 덮었어요. 바른 자세로 천천히 공부하려고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 경전의 가르침을 보석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민우회 김상희 대표의 핸드폰 화면에 이 글귀가 써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 : ‘나’라는 형상도, ‘너’라는 실체도, ‘중생’이라는 생각도, ‘나이’라는 고정관념도 없다
    - 여래소득법(如來所得法)은 무실무허(無實無虛) : 여래가 얻은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 무주상 보시(無住相 布施) : ‘주었다’는 생각 없이 보시하라
    - 일체법 개시불법(一切法 皆是佛法) : 모든 것이 다 부처님 법이다
    -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니라 :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기가 막힌 말들이다. 으악, 뒤로 나자빠질 혜안이다. 온갖 번뇌에 시달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청산의 도인 부럽지 않은 경지가 바로 이 말씀들이다. 내가 보기에 불교는 한문 몇 개 외워서 아는 척하는 것에 있지 않다. 반야심경, 천수경, 법화경... 별별 거 다 배울 필요 없다. 금강경 하나만 제대로 알면 끝이다. 아니, 전체가 아니더라도 단 한 구절만 진짜 내 것으로 만들면 복잡한 인생사 졸업이다. 한줄기 서광 같은 그 의미들이 둥근 보름달처럼 내 가슴에서 빛나는 한 나는 어떤 빈궁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미소지을 자신이 있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무엇을 악착같이 잡으려고 할수록 더 깊은 상실감과 허탈감에 괴로웠고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으나 그 모든 것을 놓자, 결심하니 마음이 이토록 자유롭고 편할 수가 없다. 우리 주변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많지만 그 중 ‘진정한 인간의 향기’를 지닌 사람은 찾기 어렵다. 소위 출세했다는 자들일수록 자신감이 넘쳐 오만하고, 거침없이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사람 귀한 줄 모르고 득의양양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그런 사람들, 참 매력없다.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 왜 좀더 겸손하고 소박하고, 절약하고, 먼저 베풀지 못하는가. 왜 부드럽고 유순한 눈빛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지 못하는가. 투철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도 왜, ‘한 걸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걸까...
    내가 보기엔 다들 현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내 것’이라는 아상에 머무는 까닭이다. 그러나 좀 비정하지만, 본질적으로 ‘내 것’은 없다.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나’라는 사람도 1965년에 세상에 나왔을 뿐이다. 앞으로 얼마쯤 살다 내 몸속 우주의 기운이 다 소멸하면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릴 ‘한줌 재’에 불과하다. 고정된 실체는 없다. 결국은 무상하고 텅 빈 적멸의 자리가 있을 뿐이다. 고요하고 환한 大 긍정의 빛이 우주생명이다. 내 몸의 실상을 공한 것으로 보면 아무 것도 걸릴 게 없다. 물같이 바람같이 살 수 있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혼으로 살 수 있다. 공허한 줄 미리 알고 언제나 너그러울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나를 상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무아(無我)라는 두 글자만 정확히 깨쳐도 인생문제 통달이다. 오직 무아만 알면 도통해 남의 집 파출부를 해도 늘 명랑할 수 있고, 고관대작이 되도 소탈하고 겸손할 수 있다.
    인간은 저마다 고귀하고 신령한 존재다.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을 제대로 알면 열반과 해탈의 경지가 궁금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끝도 시작도 없이 영원한, 본질적인 자유생명을 느끼면 그만이다. 시시비비에 물들지 않는 ‘참 나’를 발견하면 석가, 달마 부러워 할 이유가 없다. 절에 있는 불상은 다 죽은 부처다. 내가 바로 ‘활불(살아있는 부처)’이다. 죽은 시체는 차갑다. 딱딱하게 굳어서 0.5mm도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건 무엇인가? 웃음과 온기가 있고 열정이 있다는 뜻 아닌가! 냉정하고 삭막한 시대지만 마른 뼈다귀처럼 살지 말고, 뜨거운 심장을 안고 친절하고 촉촉하게, 생기발랄하게 살다 죽자! 앞으로 얼마나 산다고 매사 부정적이고 의심하고, 칙칙하고 우울할 것인가... 이 몸은 100년 이내에 한줌 흙으로 돌아간다. 심즉시불, 마음이 곧 부처다. 일체유심조,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아집과 집착을 버리는 방편으로 금강경 착실히 공부해 순일한 몸과 마음으로 뚜벅뚜벅 힘차고 신나게 살아보자. 순간을 영원처럼, 매순간 투신하며 아름답게 살자!
    ... 나는 금강경을 가슴에 품음으로 필부(匹婦)의 꿈을 이루었다.


    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 ‘함께 가는 여성’ 2004년 9,
    10월호에 실린 글인데 필자의 동의를 얻어 본지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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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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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락자 | 작성시간 18.11.06 매우 공감이 갑니다. 금강경 수지 독송...
  • 작성자한자선생 | 작성시간 18.12.01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니라 :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숭산스님의 해석 :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그 사람이 여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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