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경(無常經)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原文] (一) 如是我聞: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世尊告諸比丘: “當觀色無常, 如是觀者, 則?正觀. 正觀者, 則生厭離; 厭離者, 喜貪盡; 喜貪盡者, 說心解脫. 如是觀受·想·行·識無常, 如是觀者, 則?正觀. 正觀者, 則生厭離; 厭離者, 喜貪盡; 喜貪盡者, 說心解脫. 如是, 比丘! 心解脫者, 若欲自證, 則能自證: 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 如觀無常, 苦·空·非我亦復如是.” 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雜阿含經』제1권 제1경 「無常經」(T2, p.1a)]
[譯文]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으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解釋] 이 경의 핵심 내용은 오온(五蘊), 즉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무상하다고 관찰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관찰해야 바른 관찰이며, 이렇게 바르게 관찰해야 모든 집착으로부터 떠나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오온에 대한 집착이 없어져야 비로소 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역 아가마(?gama, 阿?摩, 阿含)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빨리어(P?li, 巴利)로 전승되어 온 니까야(Nik?ya, 尼柯耶)와 대조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에 대응하는 니까야는 Sa?yutta-nik?ya(相應部), 제22 Khandha-sa?yutta(蘊相應), 제2 Aniccavagga(無常品), 12. Anicca(無常), 13. Dukkha(苦), 14. Anatt?(無我)이다. 그러나 한역 『잡아함경』에서는 이 세 개의 경전이 「무상경」이라는 하나의 경전으로 압축되어 있다. 세 개의 경전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니까야의 세 개의 경전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色(r?pa)은 무상하다. 受(vedan?)·想(sa???)·行(sa?kh?ra)·識(vi????a)도 또한 그와 같다. (색은 괴로움[苦]이다. 수·상·행·식도 또한 그와 같다. 색은 자아가 없다[無我]. 수·상·행·식도 또한 그와 같다.) 이와 같이 보아서 색·수·상·행·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면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겨나서 ‘다시 태어남은 파괴되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다시는 윤회하는 일이 없다’고 그는 분명히 안다.”
니까야에서는 여기서 경전이 끝난다. 그러나 한역 『잡아함경』에서는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如觀無常, 苦·空·非我亦復如是. 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라는 부분이 추가되어 있다. 즉 니까야의 세 경전을 단 몇 줄로 압축하여 하나의 경전으로 만든 것이다.
이 경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니까야에 없는 추가된 부분, 즉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如觀無常, 苦·空·非我亦復如是.)”라는 대목이다. 니까야에서는 분명히 무상(anicca)·고(dukkha)·무아(anatt?)를 바르게 관찰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아가마에서는 무상(無常)·고(苦)·공(空)·비아(非我)를 관찰하라고 되어 있다. 즉 니까야의 ‘무아(anatt?)’라는 단어 대신에 아가마에서는 ‘공(空)·비아(非我)’라는 단어가 삽입되었다.
이 때문에 불교의 ‘무아설’을 해석함에 있어서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니까야에 없는 ‘공(空)·비아(非我)’라는 단어는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한역 『잡아함경』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전승해 온 범본(梵本), 즉 산스끄리뜨(Sanskrit, Sk.로 약칭함)로 씌어진 패엽경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까야에 ‘공(空, su??at?, Sk. ??nyat?)’이라는 개념이 나타나지만, 이 경전에 나타나는 ‘공(空)·비아(非我)’라는 단어는 설일체유부의 관점이나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불교의 중요한 교설인 무아설(無我說)을 어떤 이유로 다르게 해석할 필요성을 느끼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은 아닐까?
끝으로 이 경에 나오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라는 대목은 아라한(阿羅漢)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정형구(定型句)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정형구는 초기경전 도처에 산재(散在)되어 있다.
→ 제가 마성스님 블러그의 위 글을 읽고 스님께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냈습니다.
마성스님 안녕하세요.
스님의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 늘 감사와 경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스님께 메일을 드리는 이유는 스님께서 블러그에 쓰신
무상경의 글속에서 나오는 내용에 대한 저의 소견과 문의입니다.
스님께서 니까야는 <무상.고.무아>인데
아함경은 <무상.고.공.비아>, < 무상.고.공.열반>으로 설명된다는 구절을 읽고 저도 공감이 갔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함경의 <무상,고,공. 비아>가 니까야<무상,고,무아>와 다른점에 대해
후대 참삭, '공'이란 개념은 니까야에 나오긴 하지만 공,비아는 유부,대승불교 영향이지 않을까?
하신 부분에 대해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죄송하게도 초기경 니까야에 '비아' 가 나타나는지 살펴 보았는데
'비아'가 (쌍윳타과 맛지마만 서취함)무척 많이 나타났습니다.(아래 참조)
▶비아(非我)가 나오는 니까야
13. 비아(非我)가 나오는 MN144. 찬나에 대한 가르침의 경 (Channovada sutta)
12. 비아(非我)가 나오는 MN109. 마하뿐나마경(Mahāpuṇṇama suttaṃ)
11. 비아(非我)가 나오는 MN62. 마하라훌라와다경(Mahārāhulovāda suttaṃ)
10. 비아(非我)가 나오는 MN35. 삿짜까 짧은 경(Cūḷasaccakasuttaṃ)
09. 비아(非我)가 나오는 MN28 마하핫티빠도마경(Mahāhatthipadopamasuttaṃ)
08. 비아(非我)가 나오는 MN22. 뱀에 대한 비유의 경(Alagaddupama sutta)
07. 비아(非我)가 나오는 SN 35.1~6 무상의 품(anicca vagga)
06. 비아(非我)가 나오는 SN22.79 희생물경(khajjani)
05. 비아(非我)가 나오는 SN22.71 라다경(Rādhasutta)
04. 비아(非我)가 나오는 SN22.59 빤짜왁기야경((Pañcavaggiya suttaṃ)
03. 비아(非我)가 나오는 SN22.59 아낫따락카나경(Anatta-lakkhana Sutta)
02. 비아(非我)가 나오는 SN22.49 소냐경 (Soṇasuttaṃ)
01. 비아(非我)가 나오는 SN22.16 양둑카경(Yaṃdukkha suttaṃ)
이 경들속에 나오는 '비아'는 <무상.고.비아> 같은 형식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에 나오는 <내가 아니다(비아)>였는데
비록 <무아 고 무아> 형식은 아니었지만 '비아'가 나온다는 것이 중요하게 보였는데
이미 니까야에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대승불교에서 공,비아 교설이 있다 하더라도
아함경의 <공,비아>를 대승불교 영향이라고 하면 자칫
니까야에 '비아' 가 나오지 않는다는 오해를 가질 우려가 있고
그래서 '비아'는 대승불교의 전유물처럼 비취질수도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비아는 초기경에 안나타나는것으로 아시는분도 있구요.)
그러나 '비아'는 대승권이 아니라 초기 니까야에서 많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니까야에는 <무상,고,무아>이고, 아함경은 <무상,고,공,비아>라 하여 서로 다르지만
아함경에서 '비아' 가 나타난다해서 대승불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아함경은 부처님의 직설과 다르다는 뉘앙스를 주게되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봅니다.
제 생각에는 '비아' 가 이미 니까야에서 수 없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아함경에 <무상.고.공.비아>라고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니까야의 <무상,고,무아> 보다 엎그레이드 한 표현이라 보입니다.
즉 니까야의 '무상하고 괴로운 것은 무아이다' 라는 표현보다
아함경의 '무상하고 괴로운것은 공(무아)하고 그것은 나가 아니다' 가 휠씬 이해하기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덧붙이면 아함경의 <무상,고,공,비아>는
니까야의 <무상,고,무아>와 수없이 나오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이것은 나가 아니다,나의 자아가 아니다>
두 명제를 합한 명제라고나 할까요?
설사 아함경의 <무상,고,공,비아>가 설사 유부, 대승불교 영향이라 하더라도
부처님 원음을 훼손하는것은 아니고 앞서 말씀 드렸듯 먼저나온
니까야의 <무상,고,무아>의 심플함을 보완한 것 같으며
'비아'의 삽입은 오하려 니까야의 <무상,고,무아>를 풍부하게한 표현한 것으로
비난의 대상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스님 바쁘실텐데 제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생각이 바른지 의견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그럼 건강하시고 행복한 계절 되시길 불보살님께 기도합니다.
→ 제가 2013년 10윌 14일 이 메일을 보냈는데 제가 이 메일을 올리는 이유는 어느 네티즌이 스님의 영향을 받고 쓴 왜곡된 대승펌하 글 '어느 네티즌의 글을 읽고' 과 저의 편지 속에 나타난 내용을 읽어 보셧으면 해서 입니다.
.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20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은 ‘오온에는 아(我)가 없다’(無我)가 아니라 ‘오온은 아(我)가 아니다’(非我)라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다시 말해서 오온이라는 요소는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자유로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취지에서 보면 오히려 ‘비아(非我)’라고 표현한 쪽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다만 여기서 오온이 비아임을 논증하기 위한 논리적 전제로서, 무아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무아를 언급할 때의 전형적인 문장이며, 이러한 관찰을 통해 ‘나’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
답댓글 작성자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21 해탈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형적인 언급이 의도하는 바는 자기중심적인 아집을 버리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아집의 주체로서의 아(我)를 부정하는 취지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다른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SN22.15에 대해 스님 스스로 설명 한 내용 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상응경은 아니지만
제가 <SN22.15>와 <무상경>을 올려볼테니 비교해보시죠 -
답댓글 작성자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21 [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며, 괴로움인 것은 무아(無我)이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SN 22.15]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무상경]
이 경들은 <무상고무아비아> 가 모두 들어가는데
SN 22.15이 <무상고공비아> 라는 무상경과 exctaly 똑같은 병렬식 정형구로 나열하지않고 공 대신 무아를 써서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늘려 놓았을 뿐 내용은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22 스님은 비아앞에 무아가 들어가야 한다는데
무상경도 '공(무아)'가 들어가 있고요.
해서 니까야 SN22.15 에서 <무상고공)비아> 를 설명하지 않습니까?
니까야에도 <무상고공비아>가 나오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면
아함 무상경<무상고공비아>와
상응하는 니까야 상응부S22 <무상고무아>는 아함 무상경에 비이가 더 나타나지만
살펴본바 SN22.15는 비아가 들어 있는<무상고무아(공)비아>이다.
무상경 비판은 <무상경은 상응부s2와 동일하지 않다>
이 정도에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된다. -
답댓글 작성자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27 이러한 시도는
대승의 대아,참나사상이 아트만 힌두불교라는 근거를 아함에서 찾아
아함과 대승을 함께 비난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