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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12.21 스님은 니까야 상응부S22<무상고무아>와
이에 상응하는 아함 무상경<무상고공비아>는 서로 달리 표현하고 있다 했어야 했는데
니까야에 없는 것이 아함에 있다고 하는 바람에
아함은 대승영향, 후대참삭 훼손되었다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상경이 아닌 다른경을 통해서라도
<무상고공비아>는 아함에만 나오고
니까야에는 안나올까요?
아니올시다 입니다.
스님이 9번글에서 http://cafe.daum.net/mobuddhism/RsjG/13
직접 인용한 경 소개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12.20 SN 22:15 Yadanicca-sutta(무상한 것 경)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색(色)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며, 괴로움인 것은 무아(無我)이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위 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무아인 것(yad anatt? ta?)’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즉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neta? mama, neso ham asmi, na meso att?)는 것이다. 이 구절은 오온의 무상(anicca)·고(dukkha)·무아(anatt?)임을 재차 확인하는 대목이다. 이 구절을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중략) -
답댓글 작성자 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12.20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은 ‘오온에는 아(我)가 없다’(無我)가 아니라 ‘오온은 아(我)가 아니다’(非我)라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다시 말해서 오온이라는 요소는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자유로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취지에서 보면 오히려 ‘비아(非我)’라고 표현한 쪽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다만 여기서 오온이 비아임을 논증하기 위한 논리적 전제로서, 무아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무아를 언급할 때의 전형적인 문장이며, 이러한 관찰을 통해 ‘나’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
답댓글 작성자 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12.21 [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며, 괴로움인 것은 무아(無我)이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SN 22.15]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무상경]
이 경들은 <무상고무아비아> 가 모두 들어가는데
SN 22.15이 <무상고공비아> 라는 무상경과 exctaly 똑같은 병렬식 정형구로 나열하지않고 공 대신 무아를 써서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늘려 놓았을 뿐 내용은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 노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12.22 스님은 비아앞에 무아가 들어가야 한다는데
무상경도 '공(무아)'가 들어가 있고요.
해서 니까야 SN22.15 에서 <무상고공)비아> 를 설명하지 않습니까?
니까야에도 <무상고공비아>가 나오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면
아함 무상경<무상고공비아>와
상응하는 니까야 상응부S22 <무상고무아>는 아함 무상경에 비이가 더 나타나지만
살펴본바 SN22.15는 비아가 들어 있는<무상고무아(공)비아>이다.
무상경 비판은 <무상경은 상응부s2와 동일하지 않다>
이 정도에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