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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대한민국사랑해 작성시간14.03.09 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되, 秦나라에서 亡命한 사람들로 苦役을 피하여 韓國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 한다. 그들은 나라(國)를 邦이라 부르며, 弓은 孤라 하고, 賊은 寇라 하며, 行酒를 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徒라 하여, 秦나라 말과 흡사하기 때문에 혹 秦韓이라고도 부른다. 城栅과 家屋이 있다. 모든 작은 邑에는 각각 渠帥가 있으니, 강대한 자를 臣智라 하고, 그 다음은 儉側, 그 다음은 樊秖, 그 다음은 殺奚, 그 다음은 邑借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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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대한민국사랑해 작성시간14.03.09 고대 남3한 중 영남지역의 진한을 기록한 [후한서/한전]기록내용이다. 내용을 보면 진시황의 장성축조에 참여한 흉노인들이 도망하여 만주에서 남하한 진조선유민들의 6촌으로 합류한 집단이 신라세력임을 알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 머리가 납작하게 되도록 하려고 모두 돌로 눌러 놓는다.>는 기록내용으로 보아서 흉노족이다.이들이 부여왕족인 박혁거세와 왜왕족인 석탈해의 권력하에서 살다가 4세기 모용선비의 고구려 정벌에 동원된 흉노족이 동해안을 타고 남하할 때 박혁거세 왕조를 무너뜨리고 흉노신라왕조를 세운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흉노신라왕족인 성골은 4세기 흉노족이고, 귀족집단인 진골은 김알지 집단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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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대한민국사랑해 작성시간14.03.09 지증왕 시기에 국호를 신라로 바꾸고 순장풍습을 금지하고 농경을 장려하였다. 지증왕은 법흥왕의 아버지다. 법흥왕은 성씨를 모씨에서 김씨로 바꾼 인물이다. 이는 모용선비족에 흡수된 흉노족이 자신들이 김일제 후손인 김알지집단과 혈통이 같다는 것을 인지하고 김일제 성씨를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흉노 휴도왕의 아들인 김일제를 시조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무왕비문에 새긴 성한왕(성스러운 한나라 왕=제후)이나 투후(한나라 제후-김일제)라는 용어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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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대한민국사랑해 작성시간14.03.09 한민족의 정통성은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는 홍익인간이지 우리가남이가 흉노족이 다 해먹자주의가 아닌 거요..한민족 정통성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요.한민족 정통성이 상실할 때 우리가남이가로 다 해먹자주의는 결국 정치권력의 부패와 민란을 부추겨 망국으로 귀결되었고, 식민지 분단으로 귀결된 역사인거요.흉노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사라졌오.정착하지 못하고 이동하는 민족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요.그나마 이 한반도로 유입된 소수 흉노족이 농사짓고 후손을 남기면서 유지되어 온 것이요. 한민족은 뿌리땅 한반도를 중심으로 만주에 뿌리내리고 고유한 풍습과 전통을 유지해 온 민족인 것이요.나머지는 줄기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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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대한민국사랑해 작성시간14.03.09 박혁거세는 선비족이 아니라, 부여공주인 파소의 아들로 파소가 혼인전에 임신을 한 관계로 만주의 눈강을 따라 옥저에서 배를 타고 동해로 내려와 경주지역으로 들어 온 부여황족입니다.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경주 나정 주변에서 부여무덤들과 부여기마유물들이 출토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고고학적 사료는 부여에서 남3한 중 진한지역으로 남하하여 6촌장들의 추대를 받아 왕에 즉위했다는 [환단고기]기록내용이 사실임이 입증됩니다. 신라형성집단은 진조선 유민+부여유민(박혁거세 집단:사로국 왕족)왜유민(석탈해집단/석탈해왕조)+김알지 흉노유민(한나라 흉노집단/신라귀족-진골)+4세기 모용선비의 용병인 흉노족(신라왕족/성골)=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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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리내은하2 작성시간14.03.13 우리역사가 아니 땅이 점점 작아지는 것은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 하기 때문이라 보입니다. 정치에서는 이북을 확실한 적으로 굳혀야 상대(상대당)를 몰아세우기 편하기에 좌빨이니 종북이니 를 수시로 바꿔가며 자기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고 또한 전라디언이니 영남디언이니 하면서 목에 핏줄 세우니 두동강난 한반도를 또다시 세동강으로 나누려 애쓰고 있음을 보는것은 정말 작아지려고 정치가가 아닌 사람들도 파당에 동참하니 .....! 작아지지 않고는 아니 되는가 싶네요! 그중 뽀켜니 같이 개독홍보자가 못되어 발광하니 안쓰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