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말살 정책과 운디드니 학살 원주민 전멸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눈물의 행진”(The Trail of Tears)이다. 미국정부는 원주민 말살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1830년 원주민강제이주령(The Indian Removal Act)을 통과시켰다. 이 악법에 따라 1838년 5월 미 육군은 이미 강제이주 요새에 잡혀있던 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앨라배마·테네시 주 등 더운 지역에 살아온 체로키 인디언 약 15,000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북부의 오클라호마 주까지 맨발로 미국 대륙을 종단하면서 끌려갔다. 5월부터 9월까지 약 5개월간, 1천 600킬로미터에 이른 죽음의 행진을 하는 동안 굶주림·질병·학대·고문·피로 등으로 인해 전체 체로키 인디언 15,000명의 4분의 1이 넘는 최소 4,000여명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당했다. 이를 “눈물의 행진” 또는 “눈물의 길”이라 부른다. 이 전멸 정책은 백인(White Anglo-Saxon Protestant, WASP)을 제외한 모든 인종에 해당됐다. 화가 로버트 린드노(1871-1970)가 그린 '눈물의 길'(1942년 작) 1880년대 말, 보호구역 축소로 반 아사 상태에 빠진 테톤 수족은 백인의 멸망과 풍요로웠던 과거의 재현을 꿈꾸며 예언자 워보카의 말에 따라, 고스트 댄스라 불리는 의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의 새로운 종교적 열광이 백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자 결국 연방정부군이 개입했다. 즉 정부군이 수족의 고스트 댄스를 저지하자 1890년 12월 28일 인디언들은 제7기병대 추적대에 조용히 투항했다. 그러나 그날 밤, 무장해제당한 인디언들이 사우스다코타의 운디드니 강가에서 야영을 하던 중 백인 병사가 소총에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정부군은 인디언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날 미국 군대는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북아메리카 인디언 수족(族) 200여 명을 학살했다. 마침내 이 학살사건은 북아메리카에서 백인들이 인디언을 정복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운디드니 학살사건은 약 3세기에 걸친 인디언 전쟁을 종식시켰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1900년대에 들어서기 전, 운디드니 학살사건을 축으로 인디언은 인디언이주법과 수많은 조약들 그리고 학살과 전쟁의 과정을 거쳐 고스란히 미국의 한 부분이 되어있었다. 인디언들의 제도와 문화는 여러 가지로 변모를 거듭하고 이들은 변화하는 상황에 순응해나갔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그들의 독자성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흔적 없이 사라지거나 또는 미국의 정치 체계 안으로 완벽하게 용해되어가는 식의 방법만큼은 분명하게 거부하였다. 그런데 1928년의 메리엄 보고서를 통해 보호구역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미국 정부는 인디언들이 동화되고 있지 않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인디언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동화 정책을 강화하고, 인디언들을 하루빨리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시키려는 생각에 매달렸다. 하지만 보호구역 내의 열악한 주거조건, 형편없는 건강 상태, 가난과 궁핍, 실업문제를 뒤로한 채였다. 이렇게 동화라는 정책에 매달리던 중 1934년, 콜리어는 '인디언 재조직 법안' 이라는 새로운 인디언 정책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 ‘인디언 재조직 법안’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 제도들을 부흥시켜 스스로 자기 운명을 선택·장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즉, 만일 인디언들이 동화를 원할 경우 그 속도를 주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했으며, 동시에 그들이 원한다면 동화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법안의 밑바탕에는 '인디언은 인디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는 이념이 깔려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콜리어의 진보적 신념은 '동화'에 사로잡혀있던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에는 인디언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체들조차도 그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휠러-하우어 법령' 이라고 불린 이 재조직법에 많은 인디언 부족들이 자결권을 가지고 자치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1953년, 또다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바로 공법 280조의 제정이다. 즉 기존의 연방과 인디언 부족 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인디언 문제의 연방 정부 개입을 청산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청산 정책은 인디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적으로 강요되었다. 그것의 요체는 연방 정부가 인디언과 맺고 있던 관계를 모조리 단절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연방정부와의 관계를 청산당한 인디언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주에 병합되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원은 민간 기업으로 넘어가게 됐다. 부족민들은 혼란과 경제적 곤궁에 빠졌다. 공법 280조는 사실상 인디안 멸종정책(Indian Termination Policy)의 일환이었다. 1954년부터 1960년 사이에 61개 부족의 보호구역이 철폐되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데모와 항의 집회가 잇따르면서 다른 부족으로까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했다. 1968년 여름, 인디언을 멸종시키려는 일련의 법 제정에 저항하여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약 200명의 원주민 대표들이 모여 독립을 선포하고 이미 맺은 조약의 이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조약이행을 거부하고 잔인하게 진압했다. 원주민을 왜 이렇게 철저하게 탄압·말살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원주민의 주권회복·영토반환·보상 등의 요인을 근본적으로 없애려는 음모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학살된 원주민의 숫자는 모두 얼마나 될까? 미국정부가 주관한 조사에서는 1백만 명에서 4백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민간인 단체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1천만 명에서 1억 1천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한다. 스탠나드(D. Stannard)의 저서 “미국의 대학살(American Holocaust,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 1992년)”에서도 1억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현재 원주민의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0.9%인 2백 9십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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