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의 궁궐은 원래 중국의 자금성을 넘어서는 규모였습니다..
일제에 의해 토막토막 잘려지고 철거되어 지금 이 모양인 것입니다..
대륙이조론자들이 말하는 세트장을 한번 들여다 볼까요?

1901년 한성부 지도에 표시된 5대 궁궐과 종묘..

1902년 경희궁과 경운궁(덕수궁)을 잇는 홍교..다리 아래로 전차가 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경운궁(덕수궁) 평면도..붉은색 건물이 현존하는 건물이고 노란색은 일제에 의해 철거된 건물입니다..

원래 경운궁(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의 모습..
경복궁의 근정전과 같이 2층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것이 잘 보입니다..
1904년 화재이후 중화전은 현재 남아 있는 단층으로 지어졌습니다..
뒷편에 황태자의 공간인 서양식 건물의 구성헌이 특색있어 보입니다..

1904년 경운궁(덕수궁) 대화재..
당시 고종이 머물던 황궁으로 고종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에 의해 방화되었다고 합니다..
경운궁(덕수궁)은 잇달은 의문의 화재와 일제가 뚫은 돌담길로 1/3로 줄어 들고 건물도 대여섯채만 살아 남았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일제가 궁을 토막내기 위해 일부러 뚫은 것입니다..

환구단..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제를 지낸곳..
일제는 1913년에 이를 철거하고 부지는 팔아 버렸습니다..

경희궁 모습을 그린 서궐도..정문인 흥화문이 동쪽에 있습니다..

헐리는 경희궁..정문인 흥화문 주변에 이미 담장과 전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 일대를 그린 동궐도..고려대학 소장본입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의 옛모습
창경궁은 제일 수모를 많이 당한 궁으로 고종을 여읜 순종을 위로한답시고
궁을 허물어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바로 우리가 아는 창경원이였죠..

1890년경의 경복궁..훼손되기전의 모습으로 웅장한 위용이 드러납니다..
해방된후 7200칸의 광활한 궁궐 전각은 10%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서십자각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1916년 일본 오쿠라 호텔로 옮겨진 자선당..


광복된지 70년이 지났건만 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는 동십자각..서십자각은 아예 사라졌구요..
동서십자각은 궁궐을 칭할때 '궐'에 해당되는 건물로 궁과는 떨어져서는 안되는 건물입니다..
자..여기까지 일제에 의해 토막나버린 이조의 궁궐들을 일부만 대충 보았습니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극히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자금성보다 광활한 이게 세트장으로 보인다면 그 눈은 갖다 버리세요..
우길걸 가지고 우기세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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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물비늘 작성시간 16.01.28 이런 희귀 사진들 어디서 구하셨데요,
너무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
작성자물비늘 작성시간 16.01.28 훼손되기 전 경복궁 하나만 보더라도,
어마 어마 하더군요,
표현하기를 하나의 독립된 '소도시'라고 하더군요,
실제 그래요...엄청나죠... -
작성자金子 작성시간 16.01.28 이조500년을 버텨온 근원은 철저한 신분제 때문입니다.
천한 신분은 당연한 것처럼 핍박을 견뎌냈고... 양반이라는 신분은 능력에 관계없이 앞날이 보장된 사회... 작금 유행하는 헬조선도 그런 의미에서 틀린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물비늘 작성시간 16.01.28 '철저한 신분제'...
'천한 신분은 당연한 것 처럼 픽박을 견뎌내고'...핵심입니다.
이조말, 서양인들이 남긴 책을 보면,
정말로 생민들 그 신분에 순응하는 정도 '당연하다'임을 알수 있더군요.
철저한 신분제의 독소를 동학농민봉기를 보면 알 수 있죠,
봉기세력은 여전히 자기들은 왕의 충실한 백성이라는 전제하에 시작합니다.
이게 혁명이라기 보다는 봉기에 가까운 것이,
이조왕 고종은 잘못이 없고, 그 밑의 신하들이 잘못하기 때문이라는거죠,
그래서 토호들, 탐관오리만 처단하는 수준에 머물죠, -
답댓글 작성자물비늘 작성시간 16.01.28 물비늘 진정한 신분해방의 혁명이었다면 프랑스 혁명같아야죠,
즉, 바로 도성으로 쳐들어가 이조왕과 그 비 그리고 민씨척족들 신하들 모조리 쳐 죽여야 옳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고 당시 청나라 상국에게 보고하였으면, 청나라도 응했을거에요
왜냐하면, 그 이전의 수양의 난동이나, 중종난동, 인조난동등에서 왕을 지멋대로 갈아 치워도,
명나라에게는 더 충성맹세를 하고 더 갖다 바칠것이기 때문에 강상의도리, 성리학적 기준에 패륜적이어도,
왕 책봉허락합니다. 청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리고 명과는 달리 청나라는 책봉질서 외에
모든 것을 이조선자율로 하도록 놔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