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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역학자 작성시간16.01.28 ㅅ세트장 옮겨 왔다고 하면 분명 저것도 복원해야 하지 않냐요
제가 추측 하기로는 사라진 궁월터 그거 1963년 때려 쳐 죽었도 시원치 않을 역적 정부에서
조선 궁월터전 팔아 먹은 것으로 아는데요
이것은 3공화국 보면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당시에 김대중의원 김영삼 의원 등 관련된 자료가 있을겁니다
이놈들이 그것 팔아서 당시에 사용했으니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상가의 약 3% 정도 값 받았다는 것
땅 산 이년놈들도 당시에 일제에 나라와 민족 판 역적년놈들이 돈이 있어서 이 땅 산것
이것도 되찾아야 사라진 궁월 제대로 복원 합니다 -
작성자 물비늘 작성시간16.01.28 명나라 사대모화, 소중화 거수국 규모의 궁궐인줄 알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군요...
그런데 저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들을 벗어나기만 하면,
생민들 사는 종로통이라든가 하는 곳은,
길도 제대로 안나고 혼통 초가집 개딱지 더덕 더덕 붙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세종때 한번 화제가 나니까 지푸라기로 되고 붙어 있는 지붕들 이어 타고,
불이 삽시간에 타 태워 버렸다는 기사도 나오죠,
결국 이조왕조와 양반지배세력들만 배뚜드리고,
일반 생민은 이들의 노예생활 했다는것,
...저 궁궐전각에는 생민들의 죽음과 피와 땀이 아로 새겨진 거라는것...
슬픈역사의 현장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물비늘 작성시간16.01.28 '철저한 신분제'...
'천한 신분은 당연한 것 처럼 픽박을 견뎌내고'...핵심입니다.
이조말, 서양인들이 남긴 책을 보면,
정말로 생민들 그 신분에 순응하는 정도 '당연하다'임을 알수 있더군요.
철저한 신분제의 독소를 동학농민봉기를 보면 알 수 있죠,
봉기세력은 여전히 자기들은 왕의 충실한 백성이라는 전제하에 시작합니다.
이게 혁명이라기 보다는 봉기에 가까운 것이,
이조왕 고종은 잘못이 없고, 그 밑의 신하들이 잘못하기 때문이라는거죠,
그래서 토호들, 탐관오리만 처단하는 수준에 머물죠, -
답댓글 작성자 물비늘 작성시간16.01.28 물비늘 진정한 신분해방의 혁명이었다면 프랑스 혁명같아야죠,
즉, 바로 도성으로 쳐들어가 이조왕과 그 비 그리고 민씨척족들 신하들 모조리 쳐 죽여야 옳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고 당시 청나라 상국에게 보고하였으면, 청나라도 응했을거에요
왜냐하면, 그 이전의 수양의 난동이나, 중종난동, 인조난동등에서 왕을 지멋대로 갈아 치워도,
명나라에게는 더 충성맹세를 하고 더 갖다 바칠것이기 때문에 강상의도리, 성리학적 기준에 패륜적이어도,
왕 책봉허락합니다. 청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리고 명과는 달리 청나라는 책봉질서 외에
모든 것을 이조선자율로 하도록 놔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