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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노합하,대릉하에 관한 글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상징적 약도를 올립니다.

작성자신석재|작성시간16.02.03|조회수1,855 목록 댓글 5

중국 25 번째 정사인 <청사고> 지리지에는  노합하.영금하.황하의 하류는 대릉하로 흘러들어갔고 대릉하는 요하로 흘러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청 시기의 대릉하와 요하가 지금의 대릉하와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청사고>에 설명된 요하는 지금의 란하인데 왜종아이들이 청국에서 제도된 <황조일통여지전도> 등을 가져다가 노합하와 대릉하 하류를 아래 지도와 같이 황색 점선 지역을 증발시키고 지금의 서요하와 지금의 대릉하 하류에 연결시키는 지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위와 같은 지도변조로 <한서> 지리지 이후 2100 여년 동안 지금의 란하 위치에 있던 요하가 지금의 요하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지금의 란하 동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단군조선과 그 후예국들인 부여.예맥.옥저.고구려.진과 한.백제와 신라.고려의 중심지와 조선의 북쪽 강역이 몽땅 지금의 압록강 남.북쪽 지역으로 쫓겨오게 된 것입니다. 


왜종이 창안.발상한 지명이동, 지도조작.변조가 참으로 교묘하지요?

신채호가 아무리 `고대의 요수는 란하`라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저런 조작된 지도를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대한제국 시기(1897~1910) 청국과의 국경선 지역 추정 지명들 약도입니다.



주) 적색 지명은 1911 년 신해혁명으로 청국이 멸망하기 전까지의 원래 위치임.

     흑색 지명은 현대지도에 표기된 지명임.



위 추정도에 보이는 직예성의 승덕부에 속하는 적봉.조양현이 승급하여 적봉직예구.조양부로 되었다고 하여도 직예성 경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지도에 표시된 조양과 적봉은 대체 어디입니까?


중국의 동북공정이 허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대한의 젊은 역사학도들은 제발 분발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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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영희 | 작성시간 16.02.03 단군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을 패수라볼 때 패수의 위치는 중요합니다.

    우리역사에서 요수의 위치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아, 수당전쟁과 관계있군요.
  • 작성자신석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04 항상 국경 지역이였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쪽의 국세가 융성하면 고구려 태조왕 시기처럼 요수를 넘어 요서군까지 진출했었고 고려 시기에는 거란족 요에 밀려 요수에서 동남쪽으로 480 리 떨어졌다는 압록수로 국경을 삼았으니까요.
    뭐가 더 있을까요?

    패수?
    중요하지요.
    어쨋든 패수는 요수로 흘러들었습니다.
  • 작성자신석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04 수.당과의 전투에서 평양과 패강을 연결시키는 기록이나 해설이 있어 패강을 곧바로 대동강으로만 인식하여 패수.패강이란 이름으로 2 개 있다고 이해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구나 백제의 초도지로 내려오면서 패.대수를 건넜다는 기록으로 또 다른 패수가 있다고도 하고 또한 조선과 한 사이의 국경인 패수가 작은 하천일 수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압록강이라 비정하기도 합니다. 즉 <동국여지승람>에서나 <동사찬요>를 저술한 오운이 주장한 압록강,평양의 대동강, 백제 건국지 추정에 필요한 평산의 저탄강 등 3 패수설입니다.

    하지만 패수는 하나였으며 조.한 국경선의 패수는 후조시기 <동국제강>을 저술한 홍여하가
  • 작성자신석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04 주장하였듯이 요수였으며 정확히는 요수로 흘러드는 작은 지류였습니다. 또한 이 패수는 신채호.정인보가 비정한 바와 같이 청나라 봉천성 봉천부 해성현을 흘러 바다 곧 요하로 들어가는 어니하.헌우락이였고 <요사> 지리지 동경요양부 서문에 기록된 그 패수이며 어니하입니다.

    그런데 정약용은 <강역고>에서 요하와 압록강 사이에 경계할 만한 물길이 없다면 패수는 압록강이라고도 했고 평양의 대동강이라고 하여 후학들이 혼란스러워 하였고 또한 김부식은 평양의 대동강이라고 명토박듯이 비정하였지만 정약용은 만이 패수를 이미 건넜는데 어떻게 왕검성을 다시 차지할 수가 있겠느냐며 논리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 작성자신석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04 (밖이라 원문을 찾기 어려운데) 정약용의 뜻은 만이 국경선인 패수를 건너 진고공지에 거처하다가 한 군사가 공격한다며 왕검성에 들어가 숙위하겠다며 준왕을 속이고 빼앗았으니 왕검성은 패수에서 당연히 멀리 있었을 것이고 패수는 국경선인 후조선 당시의 압록강일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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