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 김성일 정철이 왕조실록을 없애려 한 내용
2019년 6월 22일(토) 조선왕조실록과 이태조어진을 전주사고에서 정읍의 선조들께서 내장산 용굴로 옮겨 보존한 날인 6.22일을 문화재지킴이날로 정하고 오늘 1회기념식을 현장에서 갖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문화재의병들께서 많이 참석하셨고 문화재청 김현모차장도 참석하셨습니다.
국가기념일로 하자, 내장산 용굴을 사적으로 지정하자 등등 건의가 있었고 김현모차장은 메모를 했습니다.
-------------기축옥사에 청계공류몽정 선조와 관련된 정철이 등장하여 소개합니다---------------
1. 전주사고를 옮긴 공로가 유자광(영광류씨) 가족과 친척인데 안의와 손홍록선생과 희묵대사님만 이름이 거론 되었다기에 아래 유자광자료를 보냈습니다.
2. 정철이 나쁜 일을 이때도 하였기에 기축옥사를 조작한 자료가 되며 충주 성주 실록 사고를 방화의혹이 있다.
① 충주 통치 한명회---왕조실록에 김종직의 조의제문으로 무오사화가 연산군 측근인 유자광 이극돈을 몰락하기 위한 의도된 한명회 음모가 기록되어 있어 충주 사고를 없애려 함, 인수대비와 한명회가 폐비 윤씨 일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고 한명회가 남이를 죽인 것을 유자광이 했다고 조작했는데 왕조실록이 기록이 있어 충주사고를 없애려 함,
② 성주 통치 김성일---곽재우가 의병으로 성주사고를 지키려 하지 김천일이 친구 김수를 시켜 곽재우를 죽이려 함. 일본은 조선침략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임진란을 초래한 김성일 거짓말이 왕조실록 있어 정철이 심복 홍서봉을 성주목사 발령내 정철과 김성일이 경상도 전투에서 왜병의 방화로 위장하여 성주실록을 없애려 함
③ 전주사고는 유자광 인척(안우와 권극평 등)이 "악인으로 만든 유자광 행적이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어 목숨 걸고 지켰음. 전주는 권율, 의병장 권극평이 있었고 권극평의 외조부 안의와 안의친구 손홍록, 권극평, 권율이 전주사고 왕조실록을 구함
④ 권극평의 고조부 권이가 유자광을 가르킴(정읍 옹동면)
⑤ 이황이 김천일, 안의, 손홍록, 송상현 권극평을 가르킴
⑥ 유자광이 정읍 옹동에서 권이(고모 아들)를 가르첬고 권이 고손자 권극평이 태인의병장으로 진주성 전투 지원 순직
⑦ 권극평 외가집 안의는 조광조를 등용
⑧ 유자광이 길러낸 선비 : 조광조, 이장곤, 안당, 이정숙, 이황---중종이 유자광을 평창으로 유배 보내고 조광조 일당을 죽임. 조광조를 살리려다 멸문화를 입은 안당의 친족 안의이며 안의 고조 안지가 전주사고를 건립함
⑨ 이황은 중종의 계획을 미리 태인으로 내려가 김천일, 안의, 손홍록 이영남을 가르킴
⑩ 6.25때 전주사고를 북한에서 가져다가 한글 번역하여 남한에 줌
⑪ 유자광을 버린 문화류씨는 300년만에 차씨와 연합하여 유자광신도비를 만든다.
※ 주1 : 남원에 있는 류자광 신도비는 왕조실록을 보존하게한 공로라며 부산 류종현님이 추진했으나 문화류씨대종회는 인정하지 않음(이유는 차문과 해어진후 선립된 신도비이며 유자광이 문화류씨가 아니라는 것인데 문화류씨에서 진주류씨로 다시 영광류씨로 되었다고 함).
⑫ 전주사고를 보현사로 옮겼는데 송익필(정철친구) 권태일 권진 등이 보현사에 가서 실록을 관리하면서 “수정선조실록”을 만들어 변종 실록이 나왔다.
※ 주2 : 송익필은 정철이 시켜 정여립을 역적으로 고발한 사람이며 정철이 왕조실록을 없애려다 전주 사고가 유자광 인척이 보존하게 되니 변종 신록을 만듬
3. 귀양지에서 유자광은 국방. 부패상소를 하는데
정철은 자기 살려고 사미인곡 지은 자료(일부 전남지방 문인들이 고등학교때 사미인곡 외운 것을 추억으로 송강터널, 송강주차장을 만들었고, 송강로, 송강문학상을 만들려고 함) 정철의 인간미를 모르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부탁하며 소쇄원 양산보 조카인 면암정가처럼 훌륭한 "송암문학생"을 송강문학샹을 개정하려는 음모가 있어 면암의 작품성과 정철의 인간성을 보고 판단하기를 바랍니다. 또 고양시에서 송강축제를 하여 상을 주고 있는데 전남일부지역에서 송강출생지와 겹친 행사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① http://m.blog.daum.net/nongaak/7090588 (정철이 정여립사건 조작내용이 나옴)
② 2의 내용 추가된 자료
※ 주3 : 정읍에서 문화재지킴이날 행사를 했는데 류자광이 없다고해서 자료를 보니 전라도 정읍에서 정여립이 역모를 한다는 것을 황해도 송익필이
고변 했다는 것은 지금처럼 전화나 SNS가 있던 시절이 아니기에 정철이 송익필을 시켜 전라도 정읍일을 황해도에서 고변했다는데 정철이 왕조실록까지 없애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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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선조(宣祖)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혐오는 한양 민초들에 의해 경복궁이 불탄 것과 함께 함경도의 백성들의 회령변고 등이 있었는데 전라도민은 宣祖에게 기축옥사에 그렇게 당하고도 전국적으로 가정 많은 의병 활동을 합니다.
조작설에서는 정여립의 옥사를 조작한 인물로 정철과 송익필을 지목한다. 서인 출신 예학자 김장생(金長生)이 엮은 〈송강행록〉(松江行錄)에서, '기축옥사 당시 정철이 정여립의 유인과 암살을 지령한 음모의 최고지휘자라는 주장이다.
또한, 정철의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기축옥사를 조작한 이는 송익필(宋翼弼)이 서인의 참모 격으로 활약했는데, 자신과 그의 가족 70여 인을 환천(還賤)시키고자 한 동인의 이발 백유양 등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http://cafe.daum.net/moonwharyu/Ggpo/179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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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채하 작성시간 19.06.23 정철의 정체는 정치가로서와 문학가로서가 아주 다름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당쟁에 얽힌 이야기는 많은데, 크게 보면 세력 싸움이기도 했지만, 사람인지라 그 안에는 개인간의 사감(私感)도 분명 일정 부분 담당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이야기가 후대에 꾸며진 경우도 많아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있는 말을 다 믿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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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채하 작성시간 19.06.23 링크된 글은 읽어보았는데 한국어가 너무 미숙해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발하는 내용인데 이러면 보는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줄지 의문이고, 읽은 다음에는 내용을 수긍해 주어야 할 텐데, 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면 수긍하고 말고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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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채하 작성시간 19.06.23 하나만 지적하면, 김성일이 ‘김성일 거짓말이 왕조실록에 있어 ..... 정철과 김성일이 .... 왜병의 방화로 위장하여 .... 실록을 없애려 함’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주장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록 가운데 선조실록은 선조가 죽은 다음에 작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선조실록도 작성되지 않은 시기에 그것을 없애려고 했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은 말일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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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채하 작성시간 19.06.23 ‘유자광’은 ‘류자광’으로 쓰면 좋겠습니다.
류자광은 靈光(령광, 영광) 출신으로 무령군으로 불렸습니다. 무령군이라는 호칭에 령광이 쓰인 것임은 확실해 보이는데, 이때 령광이 본으로 쓰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출신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쓰인 것인지는 불확실합니다. 하여간 지금 령광류씨는 정조 2년에 문과에 급제한 류자택(資澤)이 시조로 나오기도 하고, 류자광의 증조인 류언(漹)이 시조로 나오기도 합니다. 류언이라면 고려말의 인물이었을 것이니, 문화류씨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뚜렷한 문헌이 있기 전에는 단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령광류씨 가운데는 그런 연결에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
작성자夏谷류재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6.23 채하님 댓글에 먼저 감사 말씀드립니다. 이 자료 글들(블로그)이 과장되고 허황된 부분이 있지만 한명회 류자광(블로그 본문을 반영하려고 유자광으로함) 중에 누가 남이 장군을 죽였는가?와 정철이 4대사화보다 더 많은 사람을 희생한 기축옥사가 선조가 주동자냐?는 등을 엮어 흥미롭게 쓴 “야사”라 보고 제가 글을 쓴 이유는 이지방에서 송강로 명칭으로 한바탕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존문학생을 ‘송강문학상“으로 개칭하려는 의도가 있고 남원에 류자광 신도비를 현장에 가보니 실록을 지켜냈다는 ”류공자광事蹟碑“로 되어 있는데 2008년 세운비문에 원파록기록이고 하정공후손이라 했기에 무리한 부분이 있으나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