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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김성일 정철이 왕조실록을 없애려 한 내용

작성자夏谷류재균| 작성시간19.06.22| 조회수30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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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채하 작성시간19.06.23 정철의 정체는 정치가로서와 문학가로서가 아주 다름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당쟁에 얽힌 이야기는 많은데, 크게 보면 세력 싸움이기도 했지만, 사람인지라 그 안에는 개인간의 사감(私感)도 분명 일정 부분 담당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이야기가 후대에 꾸며진 경우도 많아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있는 말을 다 믿기는 어렵습니다.
  • 작성자 채하 작성시간19.06.23 링크된 글은 읽어보았는데 한국어가 너무 미숙해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발하는 내용인데 이러면 보는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줄지 의문이고, 읽은 다음에는 내용을 수긍해 주어야 할 텐데, 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면 수긍하고 말고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 작성자 채하 작성시간19.06.23 하나만 지적하면, 김성일이 ‘김성일 거짓말이 왕조실록에 있어 ..... 정철과 김성일이 .... 왜병의 방화로 위장하여 .... 실록을 없애려 함’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주장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록 가운데 선조실록은 선조가 죽은 다음에 작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선조실록도 작성되지 않은 시기에 그것을 없애려고 했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은 말일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 작성자 채하 작성시간19.06.23 ‘유자광’은 ‘류자광’으로 쓰면 좋겠습니다.
    류자광은 靈光(령광, 영광) 출신으로 무령군으로 불렸습니다. 무령군이라는 호칭에 령광이 쓰인 것임은 확실해 보이는데, 이때 령광이 본으로 쓰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출신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쓰인 것인지는 불확실합니다. 하여간 지금 령광류씨는 정조 2년에 문과에 급제한 류자택(資澤)이 시조로 나오기도 하고, 류자광의 증조인 류언(漹)이 시조로 나오기도 합니다. 류언이라면 고려말의 인물이었을 것이니, 문화류씨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뚜렷한 문헌이 있기 전에는 단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령광류씨 가운데는 그런 연결에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 작성자 夏谷류재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6.23 채하님 댓글에 먼저 감사 말씀드립니다. 이 자료 글들(블로그)이 과장되고 허황된 부분이 있지만 한명회 류자광(블로그 본문을 반영하려고 유자광으로함) 중에 누가 남이 장군을 죽였는가?와 정철이 4대사화보다 더 많은 사람을 희생한 기축옥사가 선조가 주동자냐?는 등을 엮어 흥미롭게 쓴 “야사”라 보고 제가 글을 쓴 이유는 이지방에서 송강로 명칭으로 한바탕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존문학생을 ‘송강문학상“으로 개칭하려는 의도가 있고 남원에 류자광 신도비를 현장에 가보니 실록을 지켜냈다는 ”류공자광事蹟碑“로 되어 있는데 2008년 세운비문에 원파록기록이고 하정공후손이라 했기에 무리한 부분이 있으나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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