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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열

손빨래 철학

작성자원시인|작성시간26.06.08|조회수53 목록 댓글 1

                                                           손빨래 철학

                                                                                                                  염 장열

 

  벌써 여름이다. 뜰에도 마당 주위에도 녹찻잎이 무성하다. 덥다. 과수원에서 풀을 베고 돌아와 뜰에 있는 수돗가에 앉는다. 꼭지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이 맑은 물이 나온다. 첫물은 따뜻하더니 이내 시원한 물이 쏟아진다. 손발을 적시고, 얼굴과 목에 덧칠해진 땀과 열기를 훑어 낸다.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리도 좋을까? 더위 속에서 일을 하다가 맛보는 수돗가 휴식은 꿀맛이다. 땀에 젖은 양말과 면장갑을 빨아 햇빛에 널고 실내로 향한다. 아무리 여름 한낮이라 해도 찬물 목욕까지는 무리여서다. 언제부턴가 나는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수돗가에 앉아 자잘한 빨랫감을 손으로 주물러대면서 피로도 회복하고 바깥일에서 지치고 굳은 몸을 풀어주기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거친 일을 하다 부드러운 집안일을 하려면 잠시 쉬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그럴 때면 다른 빨랫감과 섞어 돌리기엔 좀 거시기한 것들을 손으로 빨게 된다. 작업을 하다가 흙이나 오물이 심하게 묻은 장갑이나 양말, 냄새가 고약한 거름이 묻은 겉옷가지들이다. 예전에는 옷가지와 양말을 아예 따로 세탁하였다. 언젠가 친구가 찾아 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유난 떤다고 지적하기에 그 뒤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대충 섞어 빨아왔던 터였다. 대강 철저히 살자는 최근 변화된 내 생활철학도 작용했으리라. 그래도 버리지 못한 습벽이 아직은 남아 있어서 너무 심하게 거시기한 것들은 따로 빨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도 따뜻하고 햇볕 좋은 봄, 여름, 가을에나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가끔 나이 들어 맑고 고운 모습으로 여유 있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대할 때가 있다. 나 또한 노인 축에 들어섰으되 그런 분들을 대할 때면 부럽기도 하고, 무슨 복을 타고 났으면 저리도 곱게 늙어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심도 걱정도 없이, 나처럼 생각에 시달리지도 않고, 당신을 둘러싼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아왔겠거니 짐작을 해대며 나와는 딴 세상에서 살아왔으리라 여기고 만다. 그러다가도 주위를 빙 둘러보노라면 내게도 그런 분이 가까이에 계셨다. 나의 할머니. 그리운 할머니다. 굳이 따져본다면 어머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살아냈던 할머니다.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혼인을 하고 나서도 꽤 긴 시간을 할머니 사랑 안에서 살아왔다. 단아한 체구에 늘 종일 꼼지락거리면서 몸을 움직이고, 소식으로 생활하며 변함없는 다정한 모습으로 나와 함께 하셨던 할머니, 아흔 아홉으로 소천하기 사흘 전까지 당신의 속옷을 손빨래 하셨던 할머니, 나는 기어이 내가 손빨래를 좋아하게 된 근원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머니처럼 한 세기를 살아보고 싶다는 의도로 손빨래를 즐겨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고된 일을 마치고 나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정리체조를 하듯이 나는 수돗가에 앉아 힘들었던 일과로 굳은 몸을 풀면서 쉬고 싶어 시원한 물을 맘껏 틀어놓고 빨랫감을 조물딱거리며 여유를 부려보는 것이다. 말은 쉬면서, 라고 했어도 어디 그것이 그리 쉬이 되는가! 손빨래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갖 상념이 끝없이 맴돈다. 다행히도 그들은 헹굼 물길을 따라 하수구로 쏙쏙 잘도 빨려 들어가 버린다. 빙글빙글 쏘옥 사라져 버리고 나서도 온갖 생각은 끝없이 이어진다. 나는 지금 할머니처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쉼 없이 몸을 움직이며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소식을 하면서 내 욕망을 잘 다스리고 있는가?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나는 지금 내 생명의 신비와 유일성에 걸맞도록 지혜롭고도 여유로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가?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이런 생각들을 해댄다면 머리가 아플 일이다. 빨랫감에 비누를 척척 문지른다. 빨래판에 조물락조물락 문질러댄다. 맑고 깨끗한, 시원한 물에 흙 때, 거름 때를 헹궈낸다. 혼탁해진 비눗물을 쏟아 붓는다. 맴돌던 생각들도 체증 없이 하수구로 쏙옥쏘옥 잘도 빠져 나간다. 시원하고 개운하다. 다정한 친구가 무거워서 쓰지 않는다며 선물로 준 돌 빨래판에 또 한번 비누칠한 겉옷 소맷자락을 손으로 쥐고, 먹을 것조차 없이 가난했던 흥부네 가족이 기쁘고도 흥겹게 슬금슬금 행운의 박을 켰듯이 나도 홀로 간단없이 앞뒤로 옷감을 주물러댄다. 나 역시 흥부 네처럼 산골 마을에서 홀로인 이 삶이 기쁘고도 흥겨운가? 삶은 꼭 기쁘고 흥겨워야 하는가?

 

  손빨래를 즐겨하는 연원이 꼭 할머니로부터만은 아닐 수도 있다. 굳이 더 보태자면 내 성격 탓일 수도 있으리라. 그것까지도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구태여 내가 자라면서 습득한 성격으로 구분지어 내 손빨래의 즐거움에 대한 연원을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새 옷을 사와도 옷걸이에 걸어놓고 눈에 익을 때까지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지나야 비로소 몸에 가만히 걸쳐보고 다시 벗어 걸어놓고, 또 눈에 익히고, 그러다가 좀더 친숙해지면 슬며시 몸에 걸치고 살며시 밖으로 나가보고는 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사다 놓은, 로봇 청소기나 세탁기며 건조기, 거기다 식기 세척기까지가 얼마나 낯설고도 데면스러웠겠는가? 혼자 살림에 설거지할 것이 얼마나 있다고, 어차피 헹궈서 기계에 다시 넣어야 할 그릇을 어디 쉽게 기계 속으로 집어넣을 엄두가 났었겠는가? 꼭지만 틀면 나오는 따뜻한 물에 세제도 필요 없이 두어 번 헹궈 엎어놓으면 끝나는 설거지는 얼마나 간단하고, 또 마음까지 깨끗이 씻어주는가? 조그만 손걸레로 엎드려 구석구석 한번 닦아내고, 두 번 세 번 빨아 깨끗이 닦고 나면 그 성취감이 얼마이고, 마음은 또 얼마나 개운해지는가? 굳어가는 몸은 또 윤활유를 친 기계처럼 여기저기 관절까지도 얼마나 부드러워지는가? 덕분에 지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때 내 마음은 얼마나 떳떳할 것인가. 저 호수에 가득 찬 물은 우리 아이들이 지금 도회지에서 마시고 있는 물이 아닌가! 그러니 내가 살림을 하면서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쯤에서 나는 무겁고 딱딱한, 의미로 가득 찬 내 하루 일과를 지난 생활과 연결하여 뭔가 그럴듯한 의미로 정리해 보고 싶어진다. 오천 년, 일만 년 전, 저 호수 건너 시냇가에서 해 뜨면 사냥을 하고, 어두워지면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신묘한 목숨을 즐기다가 함께 잠들었을 원시인들에게야 삶의 의미니 뭐니가 있었겠는가마는!

 

  아무리 내가 원시인을 자처하며 손빨래를 하면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즐긴다고는 해도 한계는 있다. 자칭 생태환경을 돌보며 살아간다고는 해도 나이 들어가면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체력의 한계에서 오는 무력감, 대충 그럭저럭 살아보자는 가치관과 충돌이 그것이다. 그래 어쩔 수 없이 세탁기와 건조기, 청소기랑은 조금씩 친해져가고 있다. 그래도 내가 손빨래를 즐기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노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즐거운 이 몸짓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 큰 힘도 들이지 않고 노인에게는 딱 좋을 성 싶은 운동도 하면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손빨래는 나에게 당신을 향한 기도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기도를 통해 당신께서 무척 신산하기만 했을 법한 한 세기를 버텨낸 담담한 평화와 사랑을 조금씩 더 깊이 체득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당신 곁에 머무를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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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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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향남 | 작성시간 26.06.09 자~알 읽었습니다.
    옛날, 수돗가에 앉아 빨래하던 엄마 생각도 나고, 동네 우물가도 생각나고, 냇가 빨래터도 생각나고, 그 냇가 물속의 피래미들도 생각납니다. 콕콕콕 다리를 간지럽히며 왔다갔다하던 그 작은 입들과 물의 감촉까지...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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