遼東(요동)·遼西(요서)·右北平(우북평)등은 西北邊 地名
2021년 03월 02일
○ 「요동요서(遼東遼西)」에 관한 역사해설(歷史解說)을 빼고 나면, 조선사(朝鮮史)와 중국사에 대한 역사(歷史) 얘기를 꺼낼 수 없을 정도의 요충지(要衝地)였다는 것에 누구도 이의(異意)를 달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즉(卽)
➊ 조선사(朝鮮史)의 근간지지(根幹之地)였고,
➋ 조선(朝鮮)과 이민족(異民族)간의 치열(熾烈)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전쟁(戰爭)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重要)한 땅, 요동요서(遼東遼西)는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問題)는, “지금까지 대부분(大部分) 반도(半島) 북방(北方)으로부터 요녕성(遼寧省)과 하북성(河北省) 땅을 말한다.”고 하면서 설명(說明)하기를,
➌ 「심양(瀋陽)주변을 흐르는 ‘요하(遼河)=요수(遼水)’를 기점(基點)으로, 그 동(東)쪽을 요동(遼東), 그 서(西)쪽을 요서(遼西)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일부(一部) 혹자(或者)들은, “압록강(鴨綠江)이니, 난하(灤河)니, 영정하(永定河)니 하면서 이곳저곳의 여러 하천(河川)을 말하기도 한다.”
또 이렇게 중요(重要)하고 대단했고, 역사적(歷史的)으로 유명(有名)했다는 ‘요수(遼水)=요하(遼河)’를 주류하(周流河)니 혼하(渾河)니 지들 멋대로 한다거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고 하면서 ‘요수(遼水)=요하(遼河)’는 옛 이름으로 부를 정도(程度)로 별 볼일 없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요하(遼河)=요수(遼水)’가 정말로 요녕성(遼寧省) 심양(瀋陽) 주위를 흐르는 강(江)의 이름일까? 또 이곳 ‘요하(遼河)=요수(遼水)’의 동(東)쪽 땅이 조선(朝鮮)의 요충지(要衝地)가 될 수 있었을까?
결코 이런 사실(事實)은 없었다고 필자(筆者)는 누누이 설명(說明)하여 왔다. 『요동(遼東)요서(遼西)』 는,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서변(西邊) 즉(卽) 서북변(西北邊) 지명(地名)이다.』 라고 말이다. 옛 고전(古典)의 기록(記錄)을 논거(論據)로 누누이 반복(反復)해 설명하여 왔다.
오늘은 ‘사기(史記)’와 관련(關聯)된 ‘사기지명고(史記地名考)’속의 기록(記錄)을 논거(論據)로 ‘요동(遼東)요서(遼西)’에 대한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를 찾아보기로 하자.
오늘날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저질(低質) 코메디 극(劇)보다 더 극적(劇的)이 장면(場面)이 많다.
○ ‘사기지명고(史記地名考)’는,
► 상하(上下) 2권으로 1,480쪽이다.【상 : 818, 하 1480) : 목차(目次) 4 쪽, 자서(自序) 18 쪽, 총목(總目) 93쪽】저자(著者)는, ‘전목(錢穆)’이다.
《사기지명고(史記地名考) 총목(總目) 卷28 서북변(西北邊) 지명(地名)》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張掖·渾邪·金城·令居·酒泉·玉門·燉煌·渥洼·祁連·天山·會涂·焉支山·居延·都野·休圖·合黎·弱水·長城·天水·隴蜀·臨洮·北地·蕭關·朝那·秋淵·回中·彭陽·須如·凉如·鳴澤·郁郅·上郡·挺關·固陽·楡中·高奴·九原·五原·塞·直道·陽周·紫淵·梓領·原都·朔方·陰山·楊山·高闕·北假·余吾水·因杅·雲中·定襄·武泉·霍人·白土·雁門·武州·馬邑·平城·白登·硰石·代·大谷·種·鹵·飛狐·廣昌·無終·無窮·參合·橫谷·當城·上谷·沮陽·渾都·上蘭·造陽·漁陽·右北平·遼西·肥如·文城·遼東·襄平·遼東·遼陽〉등이다.
즉(卽) 〈장액(張掖)·혼사(渾邪)·금성(金城)·영거(令居)·주천(酒泉)·옥문(玉門)·돈황(燉煌)·악와(渥洼)·기련(祁連)·천산(天山)·회도(會涂)·언지산(焉支山)·거연(居延)·도야(都野)·휴도(休圖)·합려(合黎)·약수(弱水)·장성(長城)·천수(天水)·롱촉(隴蜀)·임조(臨洮)·북지(北地)·소관(蕭關)·조나(朝那)·추연(秋淵)·회중(回中)·팽양(彭陽)·수여(須如)·량여(凉如)·명택(鳴澤)·욱질(郁郅)·상군(上郡)·정관(挺關)·고양(固陽)·유중(楡中)·고노(高奴)·구원(九原)·오원(五原)·새(塞)·직도(直道)·양주(陽周)·자연(紫淵)·재령(梓領)·원도(原都)·삭방(朔方)·음산(陰山)·양산(楊山)·고궐(高闕)·북가(北假)·여오수(余吾水)·인우(因杅)·운중(雲中)·정양(定襄)·무천(武泉)·곽인(霍人)·백토(白土)·안문(雁門)·무주(武州)·마읍(馬邑)·평성(平城)·백등(白登)·사석(硰石)·대(代)·대곡(大谷)·종(種)·로(鹵)·비호(飛狐)·광창(廣昌)·무종(無終)·무궁(無窮)·삼합(參合)·횡곡(橫谷)·당성(當城)·상곡(上谷)·저양(沮陽)·혼도(渾都)·상란(上蘭)·조양(造陽)·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비여(肥如)·문성(文城)·요동(遼東)·양평(襄平)·요동(遼東)·요양(遼陽)〉등이다.
위에서 열거(列擧)한 지명(地名)들은, 사기(史記)에 기록(記錄)된 『서북방(西北方) 변경(邊境)의 지명(地名)”들이다.』라는 것이다.
…史記地名考 總目 卷二十八 西北邊地名(1)
… 史記地名考 總目 卷二十八 西北邊地名(2)
… 사기지명고(史記地名考) 총목(總目)
○ 『서북변(西北邊)』을 『서(西)쪽 변(邊)과 북(北)쪽 변(邊)』으로 한다거나, 또는 『서북(西北) 변(邊)』으로 나눈다고 해도, 결과(結果)는 마찬가지다.
【북(北)쪽의 지명(地名)은, 또 “제 29 / 흉노북호지명(匈奴北胡地名)”이라 하여 별도(別途)로 취급(取扱)하고 있다.】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21세기(世紀)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역사적(歷史的)으로 중요(重要)했던 지명(地名)들인 『漁陽·右北平·遼西·肥如·文城·遼東·襄平·遼東·遼陽』등은, 서변(西邊)도 아니요, 서북(西北) 변(邊)도 아니요, 북변(北邊)도 아닌, 동북(東北) 변(邊)에 있었다.』고 침을 튀기며 말하고 있다.
○ 위의 지명(地名)들을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역사해설(歷史解說)’에 따라 열거(列擧)해보면 : 중원(中原) 즉(卽) 중국(中國)이란 한정(限定)된 땅에서, 방위(方位)나 방향(方向)등을 바라보면, “서변(西邊), 서북변(西北邊), 북변(北邊), 동북변(東北邊)”등에 있었다고 말하는 지명(地名)들이 함께 혼재(混在)되어 있다.
그렇다면 위의 사기지명고(史記地名考) 총목(總目) 卷28 “서북변(西北邊) 지명(地名)”이라고 별도(別途)로 구분(區分)해 놓은 것은 뭐냐는 거다.
► 이런 것들이 바로 역사왜곡(歷史歪曲)과 조작(造作)이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으로 세뇌(洗腦)되어 사고(思考)할 수 없는, 비활성화(非活性化)된 뇌(腦)세포(細胞)를 활성화(活性化)시키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요동요서(遼東遼西)”는 동북방(東北方)이 아닌 서북방(西北方) 변방(邊方)에 있었다는 것이고,
➊ 「요동요서(遼東遼西)의 동(東)쪽은, 동방(東方)으로 동이(東夷)니, 구이(九夷)니 하는 동국(東國) 또는 동한(東韓)이라고도 호칭(呼稱)했던 조선(朝鮮)의 땅」이었고,
➋ 「요동요서(遼東遼西)의 서(西)쪽은, 서방(西方)으로 서이(西夷)니 서융(西戎)이니 하는 되, 곧 오랑캐들의 땅이었다.」는 이야기다.
… 대륙(大陸) 중원(中原)에서 바라보는 서북변(西北邊)은 어디일까? 동북변(東北邊)과는 반대(反對)의 방위(方位)다.
역사서(歷史書)는 말한다. ‘해동(海東)’이란 ‘발해(渤海)의 동(東)쪽’을 말하는 것이고, 해동제국(海東諸國)이란 발해(渤海)의 동(東)쪽의 여러 나라들을 일컫는 것이 되며,
동방(東方)【동역(東域)=동토(東土)=동이(東夷)=진역(震域)=진역(辰域)=동국(東國)】과 서방(西方)【서역(西域)=서토(西土)=서이(西夷)=서융(西戎)】이란 기준(基準)하는 곳으로부터 동(東)쪽 땅과 서(西)쪽 땅을 말하는 것이다.
【그 기준(基準)이 되는 곳이 ‘총령(葱嶺)=곤륜산(崑崙山)’이 되었든, 또는 ‘엘브루스산 (Elbrus Mt)’[리해(裏海)와 흑해(黑海)사이에 있는 山]이 되었든 결과(結果)는 같다. ‘과벽(戈壁)’의 이동(移動)과도 무관(無關)치 않아 보인다.】
21세기(世紀)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은, 이를 교묘(巧妙)하게 악용(惡用)하여, “해동(海東)은, 발해(渤海)의 동(東)쪽 반도(半島) 땅이요, 동방(東方)은, 동토(東土)는, 동역(東域)은, 진역(震域)은, 반도(半島) 땅이라고 만들어 놓았다.”
○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말대로라면, “오늘날의 중원(中原) 땅”은, 「서토(西土)요, 서역(西域)이요, 서이(西夷)요, 서호(西胡)요, 서융(西戎)이니, 교화(敎化)되지 않은, 미개인(未開人), 야만족(野蠻族)들이 사는 곳이었다.」는 말일까?
2021년 03월 02일 [글쓴이 : 문무(文武)]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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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탐구자 작성시간 21.03.05 오랜만에 글을 쓰셔서 몸이 편찮은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전에 전목이 쓴 국사대강을 잠시 보았을 때
연나라를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로 보신 분입니다.
무경총요에 북변지리편에 연경12주를 써서 상기목차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이 분도 당나라의 지명이동은 눈치를 챈 것 같은데
상기 북변지리는 명나라의 지명이동 전 상황이며
대만에서 진실을 쓸 수 없었다고 봅니다.
명나라가 이동시킨 상기 연경12주 위치는 자료를 모으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되네요.
안타까운 점은 당나라가 이동시킨 지명에 대해 고증하려 해도
명나라가 사서들을 수보라는 이름으로 중간중간
명나라 초,가정, 만력 연간에 바꿔치기를 하여 진본 문헌과 비교가 어렵네요.
지금 우리가 보는 사서들 대부분이 바꿔치기를 당한 간행본입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확인가능합니다.
일명 송나라 간행본에 원 명초 명중기 말기 수보본인 삼조본이 있습니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3.05 안녕하세요. "탐구자"님!
몸은 좋은데, 맘이 아픕니다.
뻔하게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도 한글해설서는 부정하기 있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광법위하게......진실을 외면하고, 식민사학을 정도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탐구자"님게서 말씀하시는 고전의 왜곡 특히 지명에 관한 것들은 서북편과 북변과 서변의 것들이 하북성으로부터 요녕성과 길림성 흑룡강성등지로 이동되었다고 보아집니다.
지명에 대해서는 정사라고 하는 25사보다는 기행문과 개인문집(대륙과 조선 모두 포함)등을 보면, 많은 지명들의 본시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지명의 지형지세와 맞아 떨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과벽(현 고비사막)과 한해등의 위치는 야율초재의 서유록(13세기)에서는 신강성 서북변과 알타이산과 그 북방지대를 일컫고 있으니, 아마도 이것이 본시의 과벽과 한해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런 것들 일일히 찾아 고증하다보면, 시간이 많이 소모됩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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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3.05 연경 12주 즉 옛 병주와 유주에 대해서는
같은 고전이라도 돈황에서 발견된 문서에서는 연나라의 북방지대를 일컫는다고 한 것도 있습니다.
또 제나라는 오늘날의 산동성 지방이 아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옛 제나라의 지명(한자)이 중원북방지대에서도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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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탐구자 작성시간 21.03.05 당나라시기에 있던 말중 동해즉진동이란 말과 진동이 고려라는 말을 합치면
태행산맥 우측까지는 적어도 우리의 땅인데 사서의 지명이 짬뽕이 되어 찾기가 어렵습니다.
주석을 걷어내고 보아도 산과 하천 이름도 변경시켜 도무지 앞뒤가 안맞는 것이 수두룩합니다.
말씀하신 연나라 북방지역이 유주와 병주일거라 저도 보고 있습니다.
무경총요에 연경12주는 총설해서 중원의 옛땅이라 했습니다.
지금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이 정답일 것 입니다.
이색의 가정집 부여회고 첫문장....
靑丘孕秀應黃河
청구는 황하에 응하여 태어나고 꽃피었네. -
작성자푸른 하늘 작성시간 21.03.19 문무님 !!!
다시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혹시나 하고 진심으로걱정했었는데...그러면서 이제사 님의 글을 찾아뵙네요...죄송합니다
건강이상이 아니라고 하시니 정말 다행이고요...
항상 문무님을 응원합니다...정말 선생님의 책 발간을 학수고대합니다!!!
(저 같이 일천한 국민들에겐 정리된 역사서 한권이 정말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