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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조선(朝鮮)의 북막(北幕), 이민족(異民族)을 초무(招撫)하다. [6-2편]

작성자문 무|작성시간26.06.22|조회수83 목록 댓글 2

                조선(朝鮮)의 북막(北幕), 이민족(異民族)을 초무(招撫)하다. [6-2]

                                 관북남(關北南), 눈은 깊고(深眼), 구레나룻가 무성하다(多髯鬚)

                                        관북녀(關北女), 체구가 크고(碩大), 살갗이 희다(白晢)

                                                              2026년 06월 22일

 

오늘의 글은, 조선(朝鮮)의 사막지대(沙漠地帶)와 그 서지적(書誌的) 증거(證據)에 100% 부합(附合)되는 글이라서 : 「2018년 05월 05일」의 게재(揭載) 글에 「보완(補完)하고 보충(補充)하여 재구성(再構成)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조선(朝鮮)의 북막(北幕)

 

이곳은 ‘함경도(咸鏡道)’ 땅을 말하는 것이고, 북방영(北方營)이 설치(設置)되어 있었던 경성(鏡城)과 그 이북(以北)을 말한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막(幕)이란 막(漠)과 같은 의미(意味)로 사용(使用)되었는데, 특히 “막(幕)”은, 사막(沙漠)을, 혹은 돌궐(突厥) 가운데의 적(磧)사적(沙磧)=사막(沙漠)을 말한다. 이능가(李陵歌)에서 이르기를, ‘지름길로 만리(萬里) 사막을 건너야 한다(徑萬里兮渡沙幕)’라고 하였다.〉

 

     전한서(前漢書) 무제기(武帝紀) 본문(本文) 주석(注釋)에 : 《應 劭 曰 : 「幕, 沙 幕, 匈 奴 之 南 界 也.」 臣 瓚 曰 : 「沙 土 曰 幕。 直 度 曰 絕。」 師 古 曰 : 「應 、 瓚 二 說 皆 是 也, 而 說 者 或 云 是 塞 外 地 名, 非 矣 。 幕 者, 即 今 之 突 厥 中 磧 耳。 李 陵 歌 曰 『徑 萬 里 兮 渡 沙 幕』。」》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 의한 북막(北幕)은 : 함경도(咸鏡道) 경성(鏡城)에 설치(設置)한 북병영(北兵營)의 별칭이며, 評事(평사). 6품의 관직(官職)으로 병마평사(兵馬評事)의 약칭이다.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막하(幕下)에서, 군사(軍事) 조치(措置)에 참여하며, 문부(文簿)를 관장하고, 군자(軍資)와 고과(考課) 및 개시(開市) 등에 관한 사무(事務)를 담당(擔當)한다.」라고 설명(說明)한다.

 

     「‘북방영(北方營)’이 설치(設置)되어 있던 ‘함경도(咸鏡道) 경성(鏡城)과 그 이북(以北)’ 땅을 “북막(北幕)”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의 북방지대(北方地帶)는, “부령(富寧회령(會寧종성(種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등(等)의 ‘6진(鎭)’이 있었던 곳을 말하는데, 바로 두만강(豆滿江) 이남(以南)이고, 때로는 두만강(豆滿江) 건너까지 출정(出征)하여, 오랑캐(胡)들을 토벌(討伐) 또는 초무(招撫)했다고 역사(歷史)는 말한다.」

 

     그렇다면 「북막(北幕)의 북방지대(北方地帶)인 육진(六鎭)부령(富寧회령(會寧종성(種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지역과 그 이북(以北)이 아래와 같은 사막지대(沙漠地帶)였다고 한다면…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엔 이와 같은 지형지세(地形地勢)를 가진 곳은 없다. 단연코…말이다.」

     ➤ 이미지, 出處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韓國學)? 알 수 없는 기관(機關)이다

 

     그렇다면 ‘북막(北幕)의 북방지대(北方地帶)’인 육진(六鎭)부령(富寧회령(會寧종성(種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지역과 그 이북(以北)이 아래와 같은 사막지대(沙漠地帶)였다라고 한다면…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를 밀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함에도, 불구(不拘)하고 「군주(君主)의 명(命)으로 임명(任命)되어 임지(任地)에서 수년(數年)씩 근무(勤務)했던 관리(官吏)들이 틈틈이 기록(記錄)해 놓은, 많은 기록(記錄物)에서 사막지대(沙漠地帶), 대막지대(大漠地帶), 삭막지대(朔漠地帶)”니 하는 구절(句節)은 무엇을 의미(意味)하는 것일까? 이게 문제(問題)다.

 

     중화사상(中華思想)을 흠모(欽慕)하며, 사대주의(事大主義)에 환장(換腸)한 조선(朝鮮)의 사대부(士大夫)들이 제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지껄인 것을 문집(文集)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것들이야 차용(借用) 또는 인용(引用)할 수도 있으려니, 그러나 자연환경(自然環境) 요소(要素)에서, 지형지세(地形地勢)나 기후(氣候), 사지(四至)동서남북(東西南北) 접경(接境)을 뜻한다의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 나라(國) 등에 대해서는 차용(借用), 인용(引用)하여 말할 수 없는 일이다.

     ➤ 오늘날의 과벽사막(戈壁沙漠) : [寫眞(이미지) 출처(出處) / 중어 위키백과] 옛 과벽(戈壁)은 이곳으로부터 ‘5’ 천리(千里) (西)쪽에 있으며, 또 한해(瀚海)가 있는 곳이다. 21세기의 과벽(戈壁)20세기(世紀) 이전(以前)의 과벽(戈壁)은 전혀 다른 땅을 말하고 있다. 더불어 한해(瀚海), 준갈이분지(準噶爾盆地)를 포함(包含)한 그 북()쪽에 있는 벨루하산 金山, 알타이(Altai)(周邊) 일대(一帶)를 말한다라고 원전(原典)()나라 초(), 야율초재의 서유록(西遊錄)에서는 말하고 있다. 이때가 13세기(世紀) ().

 

     ➤ 사막(沙漠)과 초원(草原)이 어우러져 있는 사막지대(沙漠地帶) 풍경(風景)

 

     ➤ 사막(沙漠), 초원(草原)이 공존(共存)하는 땅중화사상(中華思想)에 빠지고, 흠모(欽慕)하며 사대주의(事大主義)에 환장(換腸)한 선비()라고 하더라도 : 한반도(韓半島) 땅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막지대(沙漠地帶), 사적지대(沙磧地帶) 또는 삭막(朔漠)의 땅이 있다라는 헛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 「사막지대(沙漠地帶)」란 아주 특이(特異)한 지세(地勢)를 말하는 것으로 특수(特殊)한 자연환경(自然環境)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수만(數萬) 년(年) 이상(以上) 전(前)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특히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사막지대(沙漠地帶)」는, 「하서(河西) 땅으로부터 돈황(燉煌)으로 다시 ‘알타이산맥(Altai, 山脈)’을 넘어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로 이어지기 때문에」 : 《조선왕조(朝鮮王朝) 또는 동국(東國)의 사서(史書), 지리지(地理志) 또는 연행록(燕行錄), 사대부(士大夫)들의 개인(個人) 문집(文集) 등에 기록(記錄)된 많은 분량(分量)사막(沙漠)”과 관계(關係)되는 것들은 모두 이 지역(地域)하서(河西) 땅으로부터 돈황(燉煌)으로 다시 알타이산맥(Altai, 山脈)을 넘어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까지에 이른다에서 찾아야만 가능(可能)하다.

 

     「통전(通典) : 고구려(高句驪)는 수(隋) 때에 동서(東西) “6” 천리(千里) 나라였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 : 강토(疆土)가 넓어 수만리(數萬里)에 이르렀다.」

     「왕조실록(王朝實錄) : 몇 만리(萬里), 일만(一萬) 리(里)의 나라였다」

     「개인(個人) 문집(文集) : 수만리(數萬里), 일만(一萬) 리(里)에 달했다.」라는 등(等)의 기록(記錄)이 셀 수 없을 만큼 등장(登場)하는 그 원인(原因)과 이유(理由)가 뭐냐? 《한 번쯤 생각해 본 적도 없으신가?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 여러분!”

 

위의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 지도(地圖)”출처(出處)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학연구원이면 연구원이지 중앙연구원이란 또 뭔가?를 보면서, 「함경도(咸鏡道) 경성(鏡城)의 북방영(北方營)을 포함(包含)한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육진(六鎭)을 포함(包含)한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사막지대(沙漠地帶)가 펼쳐져 있는가?」

 

     만약(萬若), 「이곳 땅에 특이지세(特異地勢)땅의 생긴 모양이 특이(特異)한 지형(地形)사막지대(沙漠地帶)가 펼쳐져 있다」라고 한다면 :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정신(精神)을 의심(疑心)하지 않을 수 없다.

 

     ➥ 왜냐하면 반도(半島) 땅의 함경도(咸鏡道) 또는 그 북방지대(北方地帶)는 산악(山岳), 산림(山林), 초원(草原), 평야(平野)가 함께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조선(朝鮮)의 북방영(北方營) : 북막(北幕)

 

(1) 일치(一痴) 이계선(李繼先)【朝鮮 中期, ? ∼1,628年】자작시(自作詩) 4수 : 「奉別 李評事 赴北幕 : 북막(北幕)으로 가는 이(李) 평사(評事)를 전송하며」

 

     《關路迢迢走北庭, 問君何日到邊城 : 관로(關路)는 멀고 멀어 북정(北庭)으로 내 닫는데, 그대에게 묻노니 어느 날에 변성(邊城)에 닿을까? 山藏太始年前雪, 海自桑田變後靑 : 산(山)은 만물(萬物)의 시작을 감춘 때라 앞쪽에 눈이 내리니, 저절로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한 후(後)라 고요하네. 중략(中略).  憶昔行行出塞封, 碧油幢裏事元戎 : 옛일을 생각하며 맡겨진 변방으로 점차 나가는데, 군막 속 사령관(元戎)을 섬기네. 沙場三月無芳草, 旅館中宵聽斷鴻 : 모래벌판(沙場)3월이라 방초(芳草)는 없고, 여관(旅館)의 밤에 길 잃은 기러기 소리를 듣네. 중략(中略) / 庚申暮春初吉繼先拜稿 : 경신년(庚申年, 1,620) 3월 1일 계선(繼先)이 삼가 적는다.》하였다.

 

     ➥ 위의 글을 보면 느낄 수 있는 것은 : 북방영(北方營)의 평사(評事)로 가는 임지(任地)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을 말해주고 있다. 위의 글을 잘 새기며, 아래의 글을 보기로 하자.

 

(2) 東溟集東溟, 鄭斗卿, 1,597~1,6737권, 五言古詩 40수 / 記行述懷贈北評事朴德一 吉應 : 행적을 기록하고 회포를 서술하여 북평사로 있는 박덕일 ‘길응’ 에게 주다출처(出處) : 한국고전번역원 DB

 

     《➊ 昔余赴北幕, 八月辭京都 : 내가 전에 북막(北幕)으로 부임했을 때, 8월달에 경도(京都)를 하직하였지. 中略. 咸興一都會, 樓觀何渠渠 : 함흥(咸興) 고을 하나의 큰 도회지거니, 누관(樓觀) 모습 어쩜 그리 크고 컸던가. 下有萬歲橋, 十里頗有餘 : 아래에는 만세교란 다리 있는데, 그 길이가 십 리도 넘는다고 하였지. 中略. ➋ 着鞭越咸關, 羊腸甚崎嶇 : 채찍 치며 함관(咸關)의 고개 넘자니, 꼬불꼬불(羊腸) 몹시 험난하였지. 靑海侍中臺, 蒼松森萬株 : 청해(靑海)에는 시중대(侍中臺)란 누대 있는데, 푸른 솔이 만 그루나 우거졌었지. 中略. 白頭半胡地, 峩峩天一隅 : 절반 정도 오랑캐에 속한 백두산, 아득 멀리, 하늘 한쪽 솟아 있었지. 折爲長白山, 東來勢若趍 : 그 산 꺾여 장백산이 되었거니와, 동쪽 향해 뻗은 형세 내닫듯 했지. 中略. ➌ 東南受滄海, 西北邊匈奴 : ()쪽 남()쪽 푸른 바다 잇닿아 있고, (西)쪽 북()쪽 흉노(匈奴)들과 접해 있었지. 風雲萬古黑, 北氣如穹廬 : 바람 구름 만고토록 검은빛이고, 북녘 기운 궁려(穹廬)인 양 뭉쳐 있었지. 大荒莾空濶, 蒼蒼山色殊 : 대황 땅은 크고 커서 공활한 데다, 푸르고도 푸른 산빛 이상도 했지. 中略. ➍ 九月到鏡城, 凉秋塞草枯 : 9월달에 경성(鏡城)에 도착(到着)하자, 찬 가을에 변방 풀 다 시들었었지.邊沙浩茫茫, 兩邊夾黃榆 : 변방(邊方) 사막(沙漠) 넓고 넓어 아득도 한데, 양쪽 가엔 누런 느릅나무 자라났었지. 中略. 胡姫美如玉, 挾瑟當酒壚 : 오랑캐 땅 미녀 옥과 같이 고운데, 술집 안에 비파 끌어안고 있었지. 壯士躍紫騮, 平原獵兔狐 : 장사들은 자류마를 타고 달리며, 들판에서 토끼 여우 사냥을 했지. 明春度茂山, 路險壯馬瘏 : 다음 봄에 무산으로 넘어갈 적에, 길 험하여 건장한 말 몹시 지쳤지. ➏ 沙礫擊人面, 北風刮肌膚 : 모래 자갈(沙礫) 날려 사람 얼굴을 치고, 북녘 바람 뼛골 속을 파고들었지. 行營控六鎭, 犬牙相枝梧 : 행영(行營) 이에 육진(六鎭)을 다 틀어쥐었고, 육진(六鎭) 서로 맞물려서 엉켜 있었지. 嚴城夜擊拆, 畫角鳴嗚嗚 : 성(城)은 방비 엄해 밤에 딱따기치고, 뿔피리는 애절하게 흐느꼈었지. 中略. ➐ 居人盡皮服, 深眼多髯鬚 : 주민들은 모두 가죽옷 입었으며, 눈은 깊고 구레나룻 많이 났었지. 中略. ➑ 何患東擒胡, 一擧斬郅支 : 동쪽 되놈 잡는 거야 뭘 걱정하리, 한번 나가서 질지(郅支) 머리 참수할 건데.》라고 하였다.

 

     ☛ 위 ‘40수’ 구절(句節)을 보면 : 「경도(京都)로부터 출발(出發)하여, 북막(北幕)의 경성(鏡城)에 다다를 때까지의 그 여정(旅程)의 자연환경(自然環境)과 특이(特異)한 지형지세(地形地勢)를 가감(加減) 없이 그려낸 시(詩)」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重要)한 것은,

 

     「저자(著者)가 길을 가며, 설명(說明)하고 있는, 주변의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설명(說明)하고 있는 곳이 어디냐?」하는 것인데, 위의 시()에서 말해주고 있는 지형지세(地形地勢)는 한반도(韓半島) 함경도(咸鏡道) 및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우선(于先), 《“한국고전번역원 DB, 해제(解題)”에 따르면 “동명(東溟)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 1,597~1,673은, AD 1,632年仁祖 10에 북평사(北評事)에 임명(任命)되었다”라고 하였고, “북막(北幕)은 북평사(北評事)가 있었던 곳”을 말하는 것이니, 「그가 임지(任地)로 가는 길에서 보고들은, 도착(到着) 후(後), 임지(任地)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을 보고 들은 그 생생(生生)한 모습이 그대로 묘사(描寫)되어 있다」 이보다 더 신뢰(信賴)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➊+➍’ :《昔余赴北幕, 八月辭京都 : 내가 전에 북막(北幕)으로 부임했을 때, 8월달에 경도(京都)를 하직하였지. 九月到鏡城, 凉秋塞草枯 : 9월달에 경성(鏡城)에 도착(到着)하자, 찬 가을에 변방 풀 다 시들었었지》라고 하였으니,

 

     경도(京都)로부터 출발(出發)하여 경성(鏡城)까지 약 “1”달 이상(以上) 걸렸다는 것을 말해주고, 북방지대(北方地帶)여서 음력(陰曆) 9월이니 벌써 추위가 닥쳐 ‘변방(邊方)의 풀들이 시든 것을 보았다.’라는 말해주고 있다. 당연(當然)한 것이고 백번 이해(異解)되는 얘기다.

 

     ➋ 《着鞭越咸關, 羊腸甚崎嶇 : 채찍 치며 함관(咸關)의 고개 넘자니, 꼬불꼬불(羊腸) 몹시 험난하였지.》라고 하였으니,

 

     「함관(咸關)을 넘는 길이 양(羊)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고 아주 험난(險難)했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함관(咸關)을 경계(境界)로 그 북()쪽을 관북(關北), 그 남()쪽을 관남(關南)이라 칭하며, 여기에서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아주 특별(特別)한 관용구(慣用句)가 탄생(誕生)되었다.

 

     ➌ 《東南受滄海, 西北邊匈奴 : 동(東)쪽 남(南)쪽 푸른 바다 잇닿아 있고, 서(西)쪽 북(北)쪽 흉노(匈奴)들과 접해 있었지.》라고 하였는데… …,

 

     당시(當時)의 함경도(咸鏡道) 함관(咸關)의 북(北)쪽에서 형세(形勢)를 말해주고 있다. 즉(卽), 「㈠ 동(東)쪽, 남(南)쪽은 바다(海) 또는 큰 내륙해(內陸海)가 있다는 것이고, ㈡ 북(北)쪽과 서(西)쪽은 흉노(匈奴)들과 접(接)해 있었다」라고 말한다.

 

     ㈠ 「동(東)쪽, 남(南)쪽은 바다(海)또는 내륙해(內陸海)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함관령(咸關嶺)」은, 함경남도(咸鏡南道) 함주군 덕산면과 홍원군 운학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높이 450m. 웅봉(熊峰, 722m), 봉화산(烽火山, 814m) 사이의 안부(鞍部)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데, 화강암 절벽이 많아 산세가 험하다. 고개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영상리에는 고려 공민왕 때 이성계(李成桂)가 원나라 군대를 물리친 전공을 기념하는 달단동승전기적비(韃靼洞勝戰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함관령 [咸關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라고 하였으니,

 

     맞다. 곧 동(東)쪽과 남(南)쪽은 동해(東海)의 큰 바다에 접(接)하고 있기 때문이다.

 

     ㈡ 「서(西)쪽 북(北)쪽 흉노(匈奴)들과 접해 있었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오늘날의 반도(半島) 함흥(咸興) 땅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100% 확률(確率)이다.

 

     왜냐하면 그 북(北)쪽은 두만강(豆萬江)이며, 그곳에는 오랑캐(女眞族)가 있고, 그 서(西)쪽 또한 오늘날의 길림성(吉林省) 땅으로 오랑캐(女眞族)가 살았다고 하였으나, 그 어디에도 “흉노(匈奴)”는 없었다. 흉노(匈奴)는 최소한(最小限) 함흥(咸興)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서(西)쪽으로 5 천리(千里) 이상(以上) 떨어진 서북방(西北方)에서 3세기(世紀) 이전(以前) 활동(活動)했던 유목종족(遊牧種族)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책부원귀(冊府元龜) : 匈奴其先夏后氏之苖裔,曰淳維。〈匈奴始祖名,殷時始奔北邊。〉唐虞以上,有山戎、獫狁、薫鬻,〈皆匈奴别號,獫音險,鬻音弋六切。〉居於北邊。其後周文王伐畎夷,〈畎音土犬切,又曰昆,或作混緄二字,並工本切。混緄、畎聲相近耳。《山海經》云:「黄帝生苗龍,苖龍生融吾,融吾生弄明,弄明生白犬,白犬有二牝牡,是為畎戎。」〉

 

     《匈奴(上古漢語:*qʰroŋ.nˤa): 是亞洲大陸北部的游牧民族在漠北建立的游牧帝國,存在年代約在前4世紀年至 48,其後分裂為西遷的北匈奴(48年∼93年)和依附漢朝的南匈奴(48年∼216年)。統治領域約略在現今蒙古國、西伯利亞南部、中亞與中國大陸北部地區。公元4至5世紀又陸續在中原和西域建立漢趙北涼高昌北涼等政權》등으로 정의(定義)를 하는 것을 보면 :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또는 요녕성(遼寧省)이나 길림성(吉林省) 등지(等地)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것이다.

 

     ➍ 위에서 언급(言及)한 것으로 생략(省略).

 

     ➎ 《邊沙浩茫茫, 兩邊夾黃榆 : 변방(邊方) 사막(沙漠) 넓고 넓어 아득도 한데, 양쪽 가엔 누런 느릅나무 자라났었지.》 : 대표적(代表的)인 사막지대(沙漠地帶)의 도로(道路)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卽), 사막지대(沙漠地帶)에서 풍사(風沙)가 날리기 시작(始作)하면 없었던 구릉(丘陵)이 생기고, 길에는 모래가 쌓여 보이지 않아 동서남북(東西南北)을 구분(區分)할 수 없는 지경(地境)에 이르기 때문에 길(道) 양(兩)옆에 버드나무(楡)를 심어 이정표(里程標)로 삼는 것은 고대(古代)로부터 시작(始作)된 것이다.

 

     이런 사막지대(沙漠地帶)가 조선(朝鮮)의 북막(北幕)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 왕조(王朝)가 아니었다」라는 것이며,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중원대륙(中原大陸) 요충지(要衝地)에 자리 잡고 있었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 역시(亦是) 이런 내용(內容)을 모를 일 없다. 알면서도 무시(無視)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을 배신(背信)하면서 : 누굴 위해 일하는 분들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찾아보려면 : 「최소한(最小限) 하서회랑(河西回廊) 북방지대(北方地帶)+항애산(杭愛山) 서(西)쪽」의 “서북방(西北方)”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 필자(筆者)는 여기서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 여러분들에게 아래의 한 구절(句節)에 대한 소감(所感)을 묻고 싶다. 즉(卽),

 

     ➥ 이계집(耳溪集) 제10권 / 서문(序)〔帶方世稿序〕

 

     《吾東人才之盛。必稱二南。盖其地靈亭毒。殊異於他路也。: 우리 동국(東國)에서 인재가 많이 나기로 꼭 이남(二南)【湖南, 嶺南】을 일컫는다. 그 땅이 신령스러운 땅의 화육(化育)정독(亭毒), 아이를 보살펴서 자라게 하는 것, 화육(化育)이,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余嘗遵湖而南登瑞石月出之山涉鳩林之野放于耽羅之津: 나는 일찍이 호수(湖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서 서석산(瑞石山)과 월출산(月出山)에 오르고 구림(鳩林)의 들판을 지나고 탐라(耽羅)의 나루까지 이르렀었다. 觀其峰巒秀拔。地氣明麗。宜乎出瓌偉奇俊之士也。: 산봉우리의 수려함과 지기(地氣)의 맑고 밝음을 살펴보니 빼어나고 걸출한 선비가 나오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 「한반도(韓半島) 땅이 아님을 명명백백(明明白白) 밝혀주는 “사이다”같은 말이다.」 도성(都城)이 됐든 간에 : 이남(二南)의 땅을 가는데 호수(湖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라고 말하고 있다. 20세기(世紀) 이전(以前)의 한반도(韓半島) 남부(南部) 땅에 “큰 호수(湖水), 또는 여러 개의 호수(湖水)가 있어, 그 호수(湖水)를 따라 내려갔다” 할 정도(程度)라면 : 직설적(直說的)으로 중원대륙(中原大陸)의 남()쪽 땅 역시(亦是) 동국(東國)의 강토(疆土)였다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실(史實)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韓半島) 땅에는 호수(湖水)라고 할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형지세(地形地勢)와 자연환경(自然環境)은 왜곡(歪曲), 조작(造作)할 수 없다. 한반도(韓半島) 땅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실(如實)히 증명(證明)해주는 기록(記錄)이다.

 

     이계집(耳溪集)은, 이계(耳溪) 홍양호(1724~1802)의 개인문집(個人文集)이다.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의 인사(人士)가 있을까? 나와 보시라!

 

     또, 임하필기(林下筆記) 제11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 탐라(耽羅) 편을 보면 : 《冊府元龜云。林邑南邊海小國。: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임읍(林邑) 남쪽 해변의 소국(小國)이라 하였다. 魏書稱涉羅。隋書。聃牟羅。又儋羅乇羅。: ‘위서(魏書)’에는 섭라(涉羅)라 칭하였으며, ‘수서(隋書)’에는 담모라(聃牟羅) 또는 담라(儋羅), 탁라(乇羅)라 하였다. 俗朴陋。衣犬豕皮。夏居草屋。冬居窟室。: 풍속이 질박하고 촌스러워 개와 돼지가죽 옷을 입었다. 여름에는 풀집[草屋]에서 살고 겨울에는 굴집[窟室]에서 살았다. 地生五穀。耕不知用牛。以鐵齒杷土。: 땅에는 오곡이 자라는데 밭갈이에 소를 사용할 줄 몰라서 철치(鐵齒 쇠스랑)로 땅을 고르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 「옛 탐라(耽羅) 또한 한반도(韓半島)에 부속(附屬)된 땅이 아니었다. 탐라(耽羅) 임읍(林邑) ()쪽에 있는 소국(小國)이었다」라는 것이다. 【冊府元龜[北宋 / 王欽若、楊億 等] : 林邑國 : 林邑國本漢時象林縣。後漢末,縣功曹姓區,有子曰連殺。令自立為王,子孫相承其後。王無嗣,外孫范熊代立。】

 

     【林邑 /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林邑(Lâm Ấp)是占族人於今越南中部地區建立的古國。根據中國古代史書的記載,林邑是占婆第一王朝到第四王朝的國號

 

     ➏ 《沙礫擊人面, 北風刮肌膚 : 모래 자갈(沙礫) 날려 사람 얼굴을 치고, 북녘 바람 뼛골 속을 파고들었지.》라고 하였는데,

 

     한반도(韓半島) 땅 : 「화려(華麗)한 금수강산(錦繡江山) 3 천리(千里) 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현상(自然現象)이다.」 이런 자연환경(自然環境) 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화려(華麗)한 금수강산(錦繡江山) 3 천리(千里)”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이러한 자연현상(自然現象)이 발생(發生)하는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서북방지대(西北方地帶)다. “한반도(韓半島) 땅에는 이러한 자연현상(自然現象)은 없다.” 멀리서 오는 풍사(風沙) 때문에 시야(視野)가 흐려지고, 하늘에 안개가 낀 듯, 미세(微細)한 풍진(風塵)이 날려올 뿐이다. “모래 자갈 날려 얼굴을 치고… …하는 곳은 서북방(西北方) ‘5∼7’ 천리(千里)쯤 가야 하는 곳에서 발생(發生)하는 자연현상(自然現象)이다.

 

     ➐ 《居人盡皮服, 深眼多髯鬚 : 주민들은 모두 가죽옷 입었으며, 눈은 깊고 구레나룻 많이 났었지.》라고 하였으니,

 

     즉(卽), 《居 人 盡 皮 服, 深 眼 多 髯 鬚 : 백성(居人)들은 모두 가죽옷 입었고, 눈은 깊고(深眼) 구레나룻 수염(염수:髥鬚)이 많이 났다.》라고 하였다. 전형적(典型的)인 유목(遊牧) 이민족(異民族)의 색목인(色目人)을 말해주고 있다.

 

     이민족(異民族)은 ‘겨레’가 아니다. ‘겨레’란, 혈통이 같은 민족(民族)을 말하는 것이고, 민족(民族)이란 말과 같이 쓰이는 말이다. 「이민족(異民族)이란, 혈통(血統)이나 언어(言語), 풍속(風俗)이 다른 민족(民族)을 뜻한다.」

 

     위의 내용(內容)은, 당시(當時)의 조선(朝鮮) 관리(官吏)다 임지(任地)에서 보고 들은 내용(內容)을 기록(記錄)한 것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朝鮮) 함경도(咸鏡道) 변방지대(邊方地帶)의 이야기다.」

 

     「, 한반도(韓半島) 함경도(咸鏡道)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서북(西北)과 북(北)쪽에 있었던 변경(邊境)의 이야기다.

 

     「이는 당시(當時)조선왕조(朝鮮王朝)”한반도(韓半島) 땅에 없었다라는 명백(明白)한 서지적(書誌的) 증거(證據)

 

     그곳에 「“달단동(韃靼洞) 곧 달단성(韃靼城)”이 있었다」라는 것, 「또한 “옛 조선(朝鮮)은 한반도(韓半島) 땅에 없었다는 서지적(書誌的) 증거(證據)다”」

 

     「달단(韃靼)」은, 옛 몽고(蒙古)의 한 부족(部族)이자, 색목인(色目人) 종족(種族)으로 『본래(本來) 우랄산맥(Ural, 山脈) 서(西)쪽에서 있는 부족(部族)이다. 이러한 곳에 있었던 “달단성(韃靼城)”이 ‘1’ 만리(萬里)도 훌쩍 넘는 극동(極東)의 땅에 있다라는 각색(脚色)이 진자 웃기는 이야기다」

 

     ➑ 《何患東擒胡, 一擧斬郅支 : 동쪽 되놈 잡는 거야 뭘 걱정하리, 한번 나가서 질지(郅支) 머리 참수할 건데.》

 

     ➥ 「함경도(咸鏡道) 땅에서, 또는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동(東)쪽은 : 동해(東海)가 있을 뿐인데, “무슨 얼어 죽을 동(東)쪽 되놈을 잡는다는 말인가?”」

 

     일관(一貫)되게 주장(主張)하는 것이지만 : 「옛 조선(朝鮮)은 “반도(半島)” 땅에 있을 수 없다.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동(東)쪽에도 접경(接境)하는 무리들이 있고, 그들을 오랑캐(胡)라고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반도(韓半島) 땅에 “옛 조선왕조(朝鮮王朝) 반만년(半萬年)을 이어왔다”라고 침을 질질 흘리며 외쳐대는 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은, 이제라도 제정신(精神)을 좀 차려야 한다. - [6-2편], 끝 -

                                                                           2,026년 06월 22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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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2 * 날이 정말 덥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여름이 빨리 온다"는 것인데.... ...점점 더워지나 봅니다.
    * "조선왕조는 중원대륙에 있었음을 증거하는 서지적 증거"를 씨리즈로 계속 게재하다보니 옛 글과 그 내용이 비슷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 점은 독자분들이시나 회원분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루하다 생각이 들어 : 다음 회 분은 : 동국지리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편을 보면서 : 과연 "동국(東國)"의 "경도(京都)" 곧 서울은 어디에 있었을까? 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반도조선'이 맞다면 : 오늘날의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그 지형지세가 동국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고,
    '대륙조선'이 맞다면 : 동국의 지리지는 반도의 것이 아닌, 중원대륙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 사실 이렇게 "지리지"를 놓고 이곳이다, 저곳이다 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짓입니다" 아무리 무지무식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지형지세도 몰라서 맞다, 틀리다 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거리인지...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2 * 더더구나 5,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이 땅안에서 일어났던 사건, 지명, 산 이름, 하천 이름, 鄕, 邑, 郡, 州등의 이름도 몰라서 "맞다, 틀리다, 추정, 추측, 비정"이라는 등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 비참한 생각마저 듭니다.
    도시와 도시의 거리, 동서남북이라는 방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거리나 면적, 그 땅에서 생산되는 토산물, 자연환경적 요소들, 그리고 지형지세의 특징등등... ...뭐 하나 제대로 설명해 주는 학자들도 없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같은 사회?
    얼마나 못난 선조들인가?
    얼마나 무지무식한 선조들인가?
    그러고도 반만년에 빛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뭐뭐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참 웃기는 이야기다.
    * 동국(東國)이 옛 조선(朝鮮)인가?
    조선(朝鮮)이 동국(東國)인가?
    누구하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사람들이 없다.
    동국지리지라고 했으니, 동국은 곧 조선을 말하는 것이고, 동국(東國)이란 동방(東方)과도 같은 말이다.
    동국지리지는 동방지리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다.
    * 동국지리지의 내용을 하나 하나 자세하게 풀어보자.
    그 땅이 어디를 말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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