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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조선(朝鮮)의 칠조룡(七爪龍)!

작성자문 무|작성시간16.07.24|조회수1,483 목록 댓글 7

                     

                            조선(朝鮮) 칠조룡(七爪龍)!

                                

우리나라 서울에 있는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궁궐(宮闕)인 경복궁(景福宮)의 근정전(勤政殿), () 발톱이 7개로 그려진 칠조룡(七爪龍)의 문양(文樣)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 중국(中國)천자(天子)=황제(皇帝)’의 나라였으므로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이 있다.그런데,

 

    「조선(朝鮮)은 네 개의 발톱을 가진 사조룡(四爪龍)의 국가(國家) 곧 제후국(諸侯國)이었으나, 세종대왕(世宗大王), 중국(中國)에 요청(要請)하여, 오조룡(五爪龍)을 사용(使用)해 왔다고 아는 척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국(中國)은 누구를 말하며, 어떤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 세종대왕(世宗大王)때라면 명()나라는 있었지만, 중국(中國)이란 나라는 없었다. 도대체 중국(中國)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학계(學界), 모두가 다 이 모양이다.

 

    ➠ ()나라면 명()나라지, 중국(中國)이란 뭔가? 지들 스스로도 대명(大明)이라 했잖은가!

 

    ➠ ()나라면 청()나라지, 중국(中國)이란 뭔가? 지들 스스로도 대청(大淸)이라 했잖은가!

 

오조룡(五爪龍), 천자(天子)나 황제(皇帝)를 지칭(指稱)한다고 했을 때, 세종대왕(世宗大王)이 누군지도 모르는 중국(中國)측에게 요청(要請)하여,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을 사용(使用)해도 된다는 허락(許諾)을 받았다면, 당시(當時) 세종대왕(世宗大王)은 천자(天子) 또는 황제(皇帝)였다는 뜻이 된다.

 

            과연(果然) 칠조룡(七爪龍)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력(西曆) 1,395년에 지은 근정전(勤政殿),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불타고, 현재(現在)의 것은 조선(朝鮮) () 서력(西曆) 1,867(고종 4) 11월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36년 만에 중건(重建)한 것이다.라고 설명(說明)한다.

 

    그런데 이곳의 천정에는 일곱 개의 발톱을 가진 칠조룡(七爪龍)의 문양(文樣)이 선명(鮮明)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종(高宗)이 원구단(圜丘壇) 옆에 축조(築造)했던 황궁우 천장에도 칠조룡(七爪龍)의 문양(文樣)이 있다고 하며, 서울의 동국대학교 캠퍼스 안에 보존(保存)돼 있는 정각원(구 경희궁 숭정전) 천장에도 칠조룡(七爪龍)의 문양(文樣)이 설치(設置)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흑룡(黑龍)이라고 한다. 7개 발톱을 가진 흑룡(黑龍)이란 점이다.

 

뉴스 사설에서는 : ()에 대해 오래도록 연구해온 전문가(專門家)들조차 우리나라에 칠조룡(七爪龍)이 있다는 사실(事實)을 대부분(大部分) 모르고 있었다고 하며, 경복궁(景福宮) 측도 칠조룡(七爪龍)이 있다는 사실(事實)은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원(起源)과 연유(緣由)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把握)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朝鮮)말 경복궁(景福宮)을 재건(再建)했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관련(關聯)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推定)하는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➊ 조선(朝鮮) 개국(開國) 1,395년에 축조(築造)된 본래(本來)의 근정전(勤政殿) 천정 문양(文樣)에 사조룡(四爪龍)이 있었는지, 또는 오조룡(五爪龍)이 있었는지, 칠조룡(七爪龍)이 있었는지가 우선적(優先的)으로 밝혀져야 하고,

 

    ➋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서력(西曆) 1,867년 고종(高宗) 4년에 중건(重建)하였다고 전하는데, 이곳에 본래(本來)의 근정전(勤政殿) 천정에 있었던 칠조룡(七爪龍)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아니면 오조룡(五爪龍)을 칠조룡(七爪龍)으로 바꾼 것인지는 본래(本來)의 근정전(勤政殿) 천정 문양(文樣)을 모르고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다.

 

    ○ 이러한 형편(形便)임에도

 

    ➌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 중국(中國)천자(天子)=황제(皇帝)’의 나라였으므로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이 있고, 조선(朝鮮)은 네 개의 발톱을 가진 사조룡(四爪龍)의 국가(國家) 곧 제후국(諸侯國)이었으나, 세종대왕(世宗大王), 중국(中國)에 요청(要請)하여, 오조룡(五爪龍)을 사용(使用)해 왔다고 말한다.

 

    ➍ 그렇다면 중국(中國)은 누구를 말하며, 어떤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 세종대왕(世宗大王)때라면 명()나라는 있었지만, 중국(中國)이란 나라는 없었다. 도대체 중국(中國)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학계(學界)는 모두가 다 이 모양이다.

 

    ➠ ()나라면 명()나라지, 중국(中國)이란 뭔가? 지들 스스로도 대명(大明)이라 했잖은가!

 

    ➠ ()나라면 청()나라지, 중국(中國)이란 뭔가? 지들 스스로도 대청(大淸)이라 했잖은가!

 

오조룡(五爪龍)은 천자(天子)나 황제(皇帝)를 지칭(指稱)한다고 했을 때, 세종대왕(世宗大王)이 누군지도 모르는 중국(中國)측에게 요청(要請)하여,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을 사용(使用)해도 된다는 허락(許諾)을 받았다면, 당시(當時) 세종대왕(世宗大王)은 천자(天子) 또는 황제(皇帝)였다는 뜻이 된다.

 

    ➠ 이러한 이야기를 정사(正史)로 바꿔보면 : 세종대왕(世宗大王), 중국(中國)의 천자(天子)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조선(朝鮮)의 천자(天子)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중국(中國)은 조선(朝鮮)이며, 중국(中國)의 천자(天子)는 곧 조선(朝鮮)의 천자(天子)였다는 뜻이 된다.

 

대한민국(大韓民國), 스스로 자신(自身)들을 비하(卑下)하고,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조상(祖上)들을 욕보이며, 자신(自身)들 스스로 인접국(隣接國)에 사대(事大)했다고 하면서, 약소국(弱小國)으로 전락(轉落)시키는 엽기적(獵奇的) 행동(行動)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이것은 모두가 공교육이란 미명하(美名下)에 벌어지는 비정상적(非正常的) 교육(敎育)으로 인한 폐단(弊端)이며, 이는 곧 식민사학(植民史學)과 직결(直結)된다.

  


근정전 내부 문양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의 정전으로, 조선 후기의 전각. 국보 제223. 정면 5,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중층건물. () 그림 중에서 다리가 일곱 개로 되어 있어 이를 칠조룡(七爪龍)이라고 부른다.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 <참고>

 

경복궁(景福宮)의 중심이 되는 정전이며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건축물. 국보 제223/ 19850108일 지정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 1395(태조 4)에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지어진 건물이며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이 거행되었고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1395년에 지은 것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것은 조선 말기인 1867(고종 4) 11월에 흥선대원군이 136년 만에 중건(重建)한 것이다. 다포양식(多包樣式)의 건물로,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이중의 월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전각을 세웠다. 정면과 후면, 좌우 측면에 계단 설치되었으며 상, 하 월대에는 하엽동자를 받친 돌난간을 둘렀다. 각 계단과 월대 모서리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하였고 정면 계단에는 석수를 조각하였고 답도에는 봉황을 새겨 넣었다. 다포양식의 전각은 정면 5(30m), 측면 5(21m)의 중층 팔작지붕의 큰 직사각형 건물이다. 기단의 4면은 석란(石欄)으로 둘려지고, 월대가 있는 마당에는 박석을 깔았고, 월대 정면 계단 아래에서 근정문 방향으로 좌우에는 정1품에서 종9품까지 품계석(品階石)을 세웠다.

 

    건물 내부에는 12개의 높은 기둥을 정면으로 4, 측면으로 4개씩을 세워 천장을 받들게 함과 동시에 궁전 안을 중앙부의 내진(內陣)과 주위를 도는 외진(外陣)으로 구분하는 역할을 겸하게 했다. 중앙간 북쪽 후면에 방형(方形)의 보좌(寶座)를 두고, 그 단상에 어좌(御座)와 그 뒤에 일월오악(日月五嶽, 일월곤륜도)을 그린 병장(屛障)을 세우고, 그 위에 화려한 보개(寶蓋)를 달았다. 두공(枓栱 )은 상·하층이 외삼출목(外三出目), 내사출목(內四出目)이며 내출목에서는 수설(垂舌)이나 앙설(仰舌)이 구름무늬처럼 새겨진 운궁(雲宮)으로 되었고, 살미[山彌] 표면의 초화각무늬[草花刻文]나 단청(丹靑금색쌍룡(金色雙龍)과 조화되어 화려한 장식적 효과를 낸다. 전체적으로 장식적 의장(意匠)을 마음껏 담고 있어, 다소 과식(過飾)의 감이 있기는 하나 조선 말기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고, 당시 건축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표본적 건물이다. 198518일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출처(出處) / [네이버 지식백과] 경복궁 근정전 [Gyeongbokgung Geunjeongjeon, 景福宮 勤政殿] (두산백과)

 

    ※ 근정전(勤政殿) :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근정: 勤政)을 가진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 과거시험, 사신 접대 등 수 많은 의식과 행사가 열렸던 조선 왕실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칠조룡(七爪龍)에 대한 이야기는

 

    식민사학(植民史學)이나 일반인(一般人)들은 :본래(本來) 조선(朝鮮)에서는 용()의 발톱은 네 개였으나, 중국(中國)은 다섯 개오조룡(五爪龍)였다. 조선(朝鮮)의 왕()이 중국(中國) ()을 능가하기 위해 일곱 개칠조룡(七爪龍)로 만들었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또 현() 중국(中國) 아이들 역시(亦是)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또 하나는 고종(高宗)이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宣布)하고. 황제(皇帝)가 되었으니, 독립국(獨立國)으로 그리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종(高宗) 이전(以前)의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대국(大國)에 예속(隸屬)된 제후국(諸侯國)이었다는 이야기다. 지들 스스로 제후국(諸侯國)으로 비하(卑下)하는, 참 웃기는, 엽기적(獵奇的)인 대한민국(大韓民國) 사회(社會)!

 

    ➠ 그러나 여지 것, 이에 대한 학계(學界)의 주장(主張)이나 자료(資料)등이 없어, 누구도 칠조룡(七鳥龍)에 대한 설명(說明)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흔한 이야기에서 : ‘흔히 궁궐품계(宮闕品階)를 결정하는 데는, 전각(殿閣)의 칸수를 보면 알 수 있다 했는데궁궐 칸수가 1,000칸을 넘거나, 발톱 수가 다섯 개의 오조룡(五爪龍) 이상이면 황격(皇格)이고, 그 이하면 왕격(王格)이고하는데, 그저 역사통설(歷史通說)에서 말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1,897년 양력 1012일 고종(高宗)은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고치고원구단(圜丘壇)을 지금의 조선호텔 인근에 조영을 하고, 그 곳에서 황제(皇帝)로 즉위(卽位)하였다고 전()한다.

 

대륙사(大陸史)에서는, 수십(數十)년 내지 일백(一百)년 미만(未滿)의 왕조(王朝)들이 수두룩하며, 이들의 궁궐(宮闕)은 보잘 것 없는 경우(境遇)도 많았는데, 이들을 모두 황제(皇帝)라고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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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때는, 한 달에 여섯 번을 조회(朝會)하는데, 문반(文班)710, 무반(武班)540명이며, 여섯 번 절하고, 춤을 춘 다음 물러가면, 임금이 몸을 구부려서 답례한다. 일을 여쭐 경우에는,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분부를 듣고는 다시 무릎걸음으로 물러 나오다가, 계단에 이르러서야 걸어 나온다.고 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18/ 예지(禮志) 1 / 조례(朝禮) 이상 모두 계림유사(鷄林類事)>

 

() 대덕(大德) 4(1300, 충렬왕26)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이 아뢰기를, 고려(高麗)국왕(國王)이 큰 모임을 열 때, 왕은 곡개(曲蓋)와 용병(龍屛)을 치고 경필(警蹕)을 하며, 여러 신하들은 무도(舞蹈)하면서 만세(萬歲)’ 부르기를 한 결같이, 중국(中國) 조정(朝廷)에서 하는 의식(儀式)과 같이 하니, 참람(僭濫)스러움이 아주 심합니다.하였다고 한다.

 

    ① 곡개(曲蓋) : 천자(天子)가 쓰는 수레 위에 받치던 대가 굽은 양산을 말한다. 거개(車蓋)라고도 한다. 한겨레음악대사전 : 고려(高麗) 때 햇빛을 가리는 덮개의 일종. 일명 곡직화개(曲直花蓋). 12자의 장대 위에 달린 6모의 가리개에 유소(流蘇)를 달고 붉은 강라(絳羅)로 만든 곡개는 명주와 금은으로 장식됐다.

 

    ② 용병(龍屛) : ()이 그려진 병풍(屛風)

 

    ③ 경필(警蹕) : 임금이 거동(擧動)할 때 임금을 경호(警護)하기 위해 사람들의 통행을 막는 일

 

       ※ 위와 같은 일로 보면 : ()은 조선(朝鮮) 천자(天子)의 것(상징)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고려(高麗), 천자(天子)=황제(皇帝) 나라()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으로, 제후왕(諸侯王), 그저 천세(千歲)를 받을 뿐이며, 만세(萬歲)를 받을 수 있는 인물(人物)은 오직 한 사람, 스스로를 짐()이라 일컫는 사람이다. 고려(高麗) 왕은 스스로를 짐()이라고 일컬었다는 뜻이다. 곧 그는 천자(天子)=황제(皇帝)’였다는 말이다.

 

    ➠ 조선왕조(朝鮮王朝)는 이러한 고려(高麗)를 역성(易姓)혁명(革命)으로, 그대로 이어받은 나라()이다. 따라서 조선왕조(朝鮮王朝), 오조룡(五爪龍)이든, 칠조룡(七爪龍)이든 당연(當然)히 왕권(王權)을 상징(象徵)하는 문양(文樣)으로 사용(使用)할 수 있었으며, 유일(有一)하게 조선왕조(朝鮮王朝)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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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世宗大王)이 중국(中國)에 요청(要請), 네 개의 다리를 다섯 개의 다리로

대원군(大院君)이 자신을 칠조룡(七爪龍)으로, 아들인 고종(高宗)을 오조룡(五爪龍)으로

고종(高宗)이 독립(獨立)하여 대내외적(對內外的)으로 알리기 위해 칠조룡(七爪龍)

중국(中國)은 오조룡(五爪龍)이므로, 이를 능가하기 위해 칠조룡(七爪龍)으로이런 이야기는 희극(戲劇)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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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半島)에 있었다는 조선왕조朝鮮王朝 : 상고(上古)에서 근대(近代)까지는 언제나 대륙왕조(大陸王朝)의 제후(諸侯)격으로, 대륙왕조(大陸王朝)의 주군(主君)을 천자(天子), 황제(皇帝)로 모셨으며, 즉위(卽位), 세자(世子)책정 등의 주요한 사안(事案)에 대해서는 언제나 황제(皇帝)의 승인(承認)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대륙왕조(大陸王朝)의 비상(非常)시엔 군대(軍隊)를 파견(派遣)키도 하고, 반도왕조(半島王朝)의 유사시엔 군대(軍隊)를 파견(派遣), 나라를 구해 주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반도왕조(半島王朝)”제후국(諸侯國)” 위치(位置)에 있었으므로, 제후국(諸侯國) ()의 이름이 천조(天朝)와 같은 자()가 있을 때엔 이름마저도 바꿨을 정도이다.

 

    따라서 천자(天子) 또는 황제(皇帝)가 받는 여섯 번 절하며, 일을 여쭐 경우에는, 무릎걸음으로 왕 앞으로 나아가고, 일을 마치면, 다시 무릎걸음으로 물러나오다가, 계단에 이르러야 서서 걸어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고려(高麗)를 포함(包含)한 이전(以前) 왕조(王朝)의 신하(臣下)들이 임금 앞에서, 만만세(萬萬歲)를 외쳤다는 것이다.만만세(萬萬歲)”를 외쳤다는 것은 황제국(皇帝國)임을 밝히는 것이다.” 제후(諸侯)천세(千歲)”라는 인사를 받을 수 있을 뿐이며, 제후(諸侯)전하(殿下)”일 뿐이며, 태자(太子)는 그저 세자(世子)일 뿐이다. 어디 감히 황제 폐하(陛下) 만만세(萬萬歲)”를 외칠 수 있으며, “태자(太子)마마를 외칠 수 있었겠는가!

 

    왕()은 섬돌 위, 높은 곳에 있고, 계단(階段) 아래 좌우(左右)1,250 명이 서 있다가 왕()이 도착하면, 만만세(萬萬歲)를 외치고, 여섯 번이나 절을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우리 한 번 이러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이러한 이야기는 : 고려사(高麗史)43卷 恭愍王6 (1372) : 乙丑陳理明昇等男婦共二十七人入京.理昇詣闕.王出御報平廳.理昇拜于階上王坐受之.禮訖坐於使臣之下.昇年十八,理年二十二. : 을축(乙丑). 진리(陳理), 명승(明昇) 등 남자와 여자 27()이 서울로 들어왔다. 진리(陳理)와 명승(明昇)이 입궐하자, 왕이 보평청(報平廳)에 나오니, 진리(陳理)와 명승(明昇)이 계단에 올라 절을 올리니 왕은 앉은 채로 절을 받았다. 인사를 올린 두 사람은 사신 아래 자리에 않았는데, 당시 명승(明昇)의 나이는 18세였고, 진리(陳理)의 나이는 22세였다.고 하였다. 이게 황제(皇帝)와 제후(諸侯)의 차이다.

 

    ※ 명사(明史) 본기(本紀) : 洪武四年.秋七月辛亥,徐達練兵山西.辛酉,傅友德下成都,四川平.乙丑,明昇至京師,封歸義侯.中略.五年春正月.乙丑,徙陳理,明昇於高麗.

    ※ 진리(陳理): 한나라 황제를 칭했고, / 명승(明昇): 하나라 황제를 칭했으나, 주원장(朱元璋)의 군대(軍隊)에게 패, 모두 항복(降服)하고, ()에 봉()해진 자()들이다.

 

    위에서 말하는 고려(高麗) 국관(國官)이란, 중앙(中央)조정(朝廷) 곧 당시 황성(皇城)에 근무하고 있는 관리(官吏)들을 말하는 것이며, 지방관리(地方官吏)는 제외(除外)되어 있을 것이다. <한 달에 여섯 번>이란 말은 지방관리(地方官吏)는 참석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작금(昨今), 황제국(皇帝國)이면 무엇을 할 것이며, 제후국(諸侯國)이면 뭘 어쩌겠는가? 하고 반문(反問)하는 분도 계실 것이나, 지금 현실(現實)을 보라.

 

    대륙(大陸)의 백성들은 반도(半島)국민(國民)들을 떠 올릴 때, 우선 깔보는 입장이 기본적으로 내재(內在)되어 있으며, 일본(日本)인들은 반도(半島)인들을 2등 국민(國民) 정도로 생각한다.이것은 모두가 19세기 말()경부터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역사왜곡(歷史歪曲)”으로 시작(始作)되어, 소위(所謂) 공교육(公敎育)이라는 교육과정(敎育課程)”을 통해 주입(注入)시킨 결과(結果)물이다.

 

    그들은 하늘이 준 기회(機會)를 놓치지 않고, 수천(數千)년 억눌려 왔던 제후국(諸侯國)의 처절(凄切)한 몸부림을 끝내기 위해, 조선(朝鮮)을 해체하고, 그 해체(解體)조선(朝鮮)”을 이용하여, 그들은 황제국(皇帝國)”이라는 최상(最上)층의 역사(歷史)로 둔갑(遁甲)시켜, 자국민(自國民)들에게 세뇌(洗腦)과정을 통해 주입(注入)하였다.

 

    그 결과(結果) 그들은 온 국민(國民)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자식(子息)천손(天孫)이란 높은 자존심(自尊心)과 자긍(自矜)심을 갖도록 하여, 국민(國民)들로 하여금 스스로 결집(結集)토록 하여, 대동단결(大同團結)을 이루고, 한 때는 서남(西南)아시아까지 판도(版圖)를 넓힌 적도 있으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經濟大國)으로 발돋움까지 하였다.>

 

    <한족(漢族)이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분별(分別)할 수 없었던 종족(種族)의 이름을 앞세워, 수천(數千)년 왕조를 이어온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왕조(王朝)라는 거창(巨創)란 구호(口號)아래, 주변(周邊)국들을 군대(軍隊)를 앞세워 정복(征服)하고 난 후, 자신들만이 ()과 화하(華夏)의 정통(正統)성을 갖고 있다는 논리(論理)를 앞세우며, 온 백성(百姓)들을 결집(結集)시켜, 오늘날 제일(第一)의 대국(大國)을 꿈꾸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共通點), 반도인(半島人)들은 자신(自身)들보다 늘 아래에 있었다.는 고정적(固定的) 관념(觀念)이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은 순전히 교육(敎育)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자신(自身)들의 목적(目的)을 위해 주입(注入)한 결과이다. 곧 세뇌(洗腦)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도인(半島人)”들도 이러한 것을 깊이 인식(認識)하여, 그들보다 우월(優越)한 체제(體制)를 구축(構築)하여, 교육(敎育)시키면 될 것이 아닌가? 반문(反問)알 것이나, 반도(半島)는 영 그게 통하지 않는다.

 

    《 반도인(半島人), 스스로 ‘2등 국민(國民)’이기를 바라고, ‘제후국(諸侯國) 백성(百姓)’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반도인(半島人)의 선조(先祖)들이 기록(記錄)하여 놓은 역사서(歷史書)”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일제(日帝)들이 자신(自身)들의 목적(目的)을 위해 만들어 놓은, 조작(造作)된 역사(歷史) 이야기를 더 선호(選好)하기 때문이다.

 

    인접(隣接)국에 정벌征伐 : 합병(合倂)이든, 매국(賣國)이든 결과는 같다.당해, 속국(屬國)처지가 되어, 지배자(支配者)들이, 속국(屬國)의 백성(百姓)들을 회유(懷柔)하고, 안무(按撫)하고, 총과 칼로 위협(威脅)하며 통치(統治)했던, 그 시절(時節)에 그들의 목적(目的)달성(達成)을 위해 만든, 그런 이야기책을 성경(聖經)”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존재(存在)하는 한, 반도(半島)의 자립(自立)은 그만큼 어려워 질 것이다. 국론통일(國論統一)이 어려워지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정치(政治)지도자(指導者)를 비롯한 반도(半島)의 엘리트층들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전혀 관심(關心)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大統領) 역시 예외(例外)일 수 없다.

 

    “네이슨 밀러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의 미국(美國) 최악(最惡)의 대통령(大統領) 10인을 보면 : 옮긴이김형곤 교수의 말 중에서훌륭한 지도자(指導者):

 

    ① 지도자(leader)란 국가가 미래에 대한 비전과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고,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 가를 알고, 실천하기 위해 국민과 더불어 끊임없이 배운다는 의미의 learn.

 

    ② 지도자(指導者)가 제시한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지도자의 올바른 의지에 국민들이 따르도록 교육한다는 의미의 educate

 

    ③ 지도자와 추종자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복돋아주며, 상호간에 믿음과 신뢰를 통해 성취할 목표를 지도자 독단(獨斷)으로가 아니라, 국민들과 협조(協調) 속에서 이루어간다는 의미의 assist

 

    ④ 목표를 향해 나아감에 있어 지도자로써의 솔선수범하여 이끈다는 의미의 direct

 

    ⑤ 발전과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한다는 의미의 reform

 

    이러한 것들을 두루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지도자가 추종자와 더불어 성취해야 할 목표를 향해, 배우고 교육하고 상호 신뢰하고 협조하여 솔선수범하고 혁신해 가는 지도자야말로 위대한 지도자(指導者)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現實)은 어떤가?

 

    국가(國家)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책임(責任)진다는 교육부(敎育部)의 고급(高級)관리(官吏)조차 말하고 있잖은가! 1% 99%의 개. 돼지들이라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미래(未來)는 어떤 모습일까? 99%의 개·돼지들이, 1%를 견제(牽制)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미래(未來)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確實)하다.

 

                                    20160724<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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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7.25 무더운 여름철!
    안녕하세요. 최남석님!
    훌륭하신 생각이라고 봅니다. 조선사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것이 쪼그라드는 한반도입니다. 너도 나도 앞장서서 반도조선을 주장하고, 문화유적을 복원하고, 발굴한다고 해대니, 그동안에 보이지 않던 문화유적이 갑자기 태어나기도 하고, 존재감이 없었던 유울유적도 눈에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러면 이럴수록 반도조선왕조는 초라해 질 뿐인데......너도 나도 말만 앞세우고, 중국황제, 중국황제.....하면서 우린 제후왕일 뿐이다라고 떠들어대는 한반도 국민들과 식민사학자들! 무엇하나 제대로 된 설명도 없으면서, 권력까지 장악한 채 반도조선을 외쳐대니.....이대로 없어지는 것일까?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7.25 일만년 조선왕조의 영겁의 세월속에서 일백이나 이백년이란 눈깜짝할 시간!
    무서운 것은, <반도 대한민국이 열도나 미국 또는 제삼의 나라에게 병합되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잃어버린, 빼앗긴 조선사는 영원히 잃고,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황당한 생각이라고 하겠으나, 조선왕조가 도이(島夷)였을 뿐인 왜(倭)에게 나라를 빼앗길 줄을 누가 알기나 했을까? 서남아세아의 만이(蠻夷)들이 "중국인"이라고......누가 생각인들 했을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현실이 되었잖은가! 반도 국민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될 것이겠지만, 아쉬운 것들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 작성자Chosen People | 작성시간 16.07.26 동의합니다
    현재 삼국이나 고려 정도까지만 대륙으로 생각하고 조선은 사대주의에.. 한반도 정부라 생각하는 식의 글이 다음 카페 곳곳에 가득합니다

    특히 회원수와 방문수가 꽤 되는 몇몇 카페에서 조선을 증오하며 자신을 고려 권문세족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글이 많습니다

    그러한 글들에 대해 댓글로라도 강단사학보다도 왜곡된 관점을 비판하고 있긴하나 좀 더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함께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7.27 그렇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카페나 블로그, 또는 뉴스기사등이 있는데, 이곳에서 한국사라고 하는 조선사에 대한 올바른 해설은 찾아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우리나라 사정입니다. 특히 각 지방의 향토사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 기막힙니다. 지세와 방향, 특이 토산물등의 몇 가지만이라도 수고를 한다면 알 수 있는 것들임에도 막무가내로 자신들 향토사학으로 만들어 버리는 무슨 공장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 블로그나 카페등에서도 이런 현상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니면 말고.....입니다.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죠. 조선사의 진실한 단면 하나 하나를 찾는 길외엔 없다고 봅니다.
  • 작성자ilseemi | 작성시간 16.08.21 통감이나 맹자 그리고 세종실록그리고 고문진보에 있는소동파의왕자 불치이적론을 보면 중국이 자기나라를 중국이라고 하는 것을 알수 있을 텐데 역사 학자라는 사람들이 중국을 이렇게 해석하니 답답합니다 조선시대 의 인쇄물에는 띄어스기나 귀절칠 (주)자도 표기한곳이 없습니다 하물며 동그라미로 띄어스기를 표기한 것은 더욱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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