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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09.26 오늘 아침 뉴스판을 보니, 경주에서 발굴된 유물중에서 "수세싯 변소의 도구"가 있었으며, 최초라는 기사가 떳다.
경주에서 발굴되는 유물유적은 왜 "신라"의 것만이 발견되는 것일까?
신라 이전(以前)의 역사는 없었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6촌의 어르신들이 모여 박혁거세를 우두머리로 세웠다고 했을 때, 그 이전의 역사도 분명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신라의 전신인 진한(辰韓)이나 진한(秦韓), 또는 6개나라가 12개 나라가 되었다고 전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유물유적은 단 한 개도 발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주가 신라의 서울(都城)이었다는 근거는 어디에서 찾는 것일까? 일천년 왕성(王城)! 모두가 의문투성이인 것을!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09.26 안녕하세요. "대부여'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백제왕조(百濟王朝)라고 봅니다.
독사방여기요에서 보듯이 당의 경사(京師)로부터 1만 5천리 떨어져 있던 곳까지도 백제의 영토였다고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백제였다고 봐야 겠지요.
조선사는 우리들의 역사상식을 뛰어넘는 상상을 초월하는 영토 개념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물속에서 자란 우리들은 전혀 보질 못하고 있죠. 우물 바깥 세상을 모르니까요.
우물 바같 세상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들을 세뇌시킨 자들은, 충격적이지만 바로 조선인의 후손들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고, 팩트입니다.
그래서 조선사의 진실 밝히기가 더욱 어렵죠.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0.01 안녕하세요. <로터스>님!
발해의 동쪽, "해동"이란 말은 많은 곳에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산해경 주석편에서, 사기 및 한서, 후한서, 북사,통전, 등등 소위 정사라고 하는 많은 고서속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애써 외면합니다. <발해는 현재의 발해요, 북해는 바이칼 호수>라고 하면서, 조선사의 중요한 획을 긋은 지명들에 대해 무던히도 외면해 버립니다. "샤먼제국"의 저자께서도 이런 주장을 하신 바 있죠. 이런 것들에 대한 고서의 고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원과 관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즐거운 추석을 행복하게 건강하게 지내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