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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명(明)과 달단(韃靼), 그들은 누군가?

작성자문 무|작성시간20.06.11|조회수1,369 목록 댓글 4

 

                                         ()과 달단(韃靼), 그들은 누군가?

                                                        20200611

  

조선사(朝鮮史)에서, 21세기 세계사(世界史)”에서 공통(共通)된 내용(內容)중의 한 가지는, 여진(女眞)과 달단(韃靼)”, 전혀 다른 이민족(異民族)이다.라고 한 것이다.

 

   조선사(朝鮮史)에서도, “여진(女眞)과 달단(韃靼)”은 전혀 다른 이민족(異民族)이다.

 

   ㊀ 여진(女眞), “얼굴은 황인(黃人)계지만, 체형(體形)은 크고, 특히 목이 아주 두텁다.”고 말하고 있어 오늘날의 전형적(典型的)인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인들을 떠올리게 하며, 그 선대(先代)는 숙신(肅愼)이며, 상탕(商湯) 때도 생존(生存)해 있었던 아주 오래된 나라(), 종족(種族)으로 조선(朝鮮)의 서북방(西北方) 변두리에서 살아가던 부족(部族)들이었다.

 

   ㊁ 달단(韃靼)”은 색목인(色目人)이며, 오대사(五代史)부터 등장(登場)하는데, 달달(達達달노(㺚奴달적(㺚賊)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몽고(蒙古族)의 한 부족(部族)이다.

 

   이러한 달단(韃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 太宗實錄) 17419(을해) : 敎曰 : 咸吉平安豐海道各官散接生鴈干酥油干名目推考,其中韃靼仍舊定體,平民竝屬軍役 : 하교하기를, “함길·평안·풍해도 각 고을의 산접간·생안간·수유간의 명목을 추고하되, 그 중에서 달단(韃靼)은 그전대로 정체하고, 평민은 모조리 군역에 붙이도록 하라.” 하였다.고 하였다.

 

   ● 이러한 달단(韃靼)에 대해서 : 구라파歐羅巴:유럽:Europe역사(歷史)속에서는, 여진(女眞)”달단(韃靼)=타타르(Tatar)”를 구분(區分)하지 않고, 달단(韃靼)이니, 타타르(Tatar), 또는 타타리아(Tataria)로 두리 뭉실 표현(表現)하고 있는데, 이는 몽고(蒙古)의 침공(侵攻)과 관련이 있으며, 또한 지도(地圖)에도 그렇게 그려 넣고 있는데, 이는 당시(當時)의 구라파(歐羅巴)인들의 역사인식(歷史認識)이 아주 무지(無知)했다는 증거(證據).

 

   이런 무지(無智)한 역사인식(歷史認識)을 갖고 있던 구라파(歐羅巴)아이들의 역사(歷史)이야기를 신봉(信奉)하는 자()들은 또 뭐냐? 하는 거다. 그리고는 오늘날의 동()아세아(亞細亞)가 모두 이들의 땅이었다는 지도(地圖)를 보고는, “조선(朝鮮)의 땅이었다.”는 식()으로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역사해설(歷史解說)을 하는데, 이 모두가 조선(朝鮮)의 땅이었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곳이 조선(朝鮮)”이지, 달단(韃靼)이나 타타르(Tatar)가 아니었다.”는 거다.

 

   조선사(朝鮮史)속의 달단(韃靼)이니, 타타르(Tatar), 타타리아(Tataria)니 하는 것들은, 조선(朝鮮)많은 종족(種族)과 부족(部族)’중의 하나였을 뿐이며, “조선사(朝鮮史)를 담거나 품을 수 없는 소규모(小規模) 종족집단(種族集團)이었을 뿐이다.”


   이런 것을 조선(朝鮮)의 전부(全部)”인 냥 한다면 : 이는 어처구니없는 오류(誤謬), 무지(無知)의 탓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사(朝鮮史)를 판타지(fantasy)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달단(韃靼)이니, 타타르(Tatar)니 하는 말들은, 모두가 몽고(蒙古) 이후(以後)의 일이다. 몽고(蒙古)달단(韃靼)=타타르(Tatar)’로 인식(認識)하고, 특히 우랄산맥(Ural, 山脈) (西)쪽에서는, 이들에 대한 공포(恐怖)는 극()에 달했었다고 전하는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쪽에 사는 이민족(異民族)들은 모두 달단(韃靼)=타타르(Tatar)’라고 불렀다는 것만 보아도, 당시(當時) 이들의 공포(恐怖)를 미뤄 짐작(斟酌)할 수 있다.

 

   ● 오늘날 이를 보고 역사(歷史)에 관심(關心)있는 자()들이, 구라파(歐羅巴)인들이 제작(製作)한 옛 지도(地圖)를 보고, 또는 신부(神父), 목사(牧師), 상인(商人), 관리(官吏)등이 조선(朝鮮)의 여행기(旅行記), 삽화(揷畫)등을 번역(飜譯)한 것을 보고, 달단(韃靼)… …타타르(Tatar)… …타타리아(Tataria)… …하는 주장(主張)들을 많이 하는데,

 

   이건 한마디로 오류(誤謬)”를 확대(擴大), 재생산(再生産)하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당시(當時)의 구라파(歐羅巴)인들의 역사인식(歷史認識)이 그만큼 무식(無識)하고, 무지(無知)했다는 것을 증거(證據)해 준다.

 

   ► 몽고(蒙古), 공격(攻擊)하여 쳐들어간 곳의 성()을 파괴(破壞)하고, 부녀자(婦女子)와 어린 사내아이는 사로잡아 노예(奴隸)를 삼고, 남자(男子)들은 나이를 불문(不問)하고 모조리 살해(殺害)했다고 전해진다. 수천(數千)이든, 수만(數萬)이든 말이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도록 초토화(焦土化) 작전(作戰)’을 펼쳤는데, 이를 보거나, 참상(慘狀)을 전해 듣는 이들의 공포(恐怖), 상상(像想)을 초월(超越)했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우랄산맥(Ural, 山脈) (西)쪽 및 동구라파(東歐羅巴)에서는, 동방(東方)세계(世界)에는, 몽고(蒙古) 즉 달단(韃靼)구라파(歐羅巴)에서는 당시(當時)의 몽고(蒙古)를 달단(韃靼)이라고 칭했다.이 유일(唯一)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Russia) 극동(極東)달단(韃靼)해협(海峽)”이란 이름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건 당시(當時)의 구라파(歐羅巴)인들의 역사(歷史)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걸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인 냥 하는 오늘날의 학자(學者)들은 또 뭐냐?

 

   또 달단(韃靼=타타르:Tatar)부족(部族)들이 조선(朝鮮)의 변경(邊境)을 노략질하자, 조선(朝鮮) 태왕(太王)이 출정군(出征軍)을 보내어, 사막(沙漠)과 막북(漠北)을 토벌(討伐)하니, 이들이 대거(大擧) (西)쪽으로 도주(逃走)한 것인데, 구라파(歐羅巴)인들은, 이를 침공(侵攻)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달단(韃靼), “우랄산맥(Ural, 山脈) (西)쪽과 흑해(黑海), 카스피해(裏海)사이,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부(北部)에 살던 이민족(異民族)”이다.이를 과대(誇大)포장(包裝)할 필요(必要)도 없고, 과소평가(過小評價)할 필요(必要)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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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단(韃靼)=달달리(韃韃裏)

 

   海國圖志 / 022 北印度各國 : 俄羅斯與印度構兵記曰:中略.嘉慶以來,俄羅斯由黃海攻服黑海各部,又沿裏海南侵:英夷亦並溫都斯坦,溯恒河北上. : 가경(嘉慶)이래(以來), 아라사(娥羅斯)는 황해(黃海)를 통하여 흑해(黑海)의 여러 부()를 공격(攻擊)하여 복속시고, 또 리해(裏海)를 따라 남()쪽을 침략하였다. : 영이(英夷) 또한 온도사탄(溫都斯坦)을 병합(倂合)하고, 항하(恒河)를 거슬러 올라가 북상(北上)하였다.於是蔥嶺西除布哈爾,愛烏罕諸大國外,凡裏海遊牧回部號韃韃裏者,皆並於俄羅斯.夾恒河及南洋之城郭回國半屬於英吉利 : 이때 총령(葱嶺)의 서(西)쪽을 제외하고, 애오한(愛烏罕)여러 대국(大國)의 밖, 무릇 리해(裏海) 유목회부(遊牧回部)를 달달리(韃韃裏)라고 불렀는데, 모두 아라사(俄羅斯)가 병합하였다. 항하(恒河) 좌우와 남양(南洋)의 성곽(城廓), 회국(回國)국의 절반(折半)은 영길리(英吉利)에 속했다. [裏海,即加士比唵海,近於鹹海,亦名北高海.明史謂遊牧之蒙古曰韃靼,西洋人謂遊牧之回部曰韃韃,皆音近. : 리해(裏海), 곧 가토비암해(加土比唵海)인데, 가까이에 함해(鹹海)가 있다. 또 이름이 북고해(北高海)라고 한다. 명사(明史)에서는 유목(遊牧)몽고(蒙古)를 달단(韃靼)이라고 불렀고, 서양인(西洋人)들은 유목(遊牧)회부(回部)를 달달(韃韃)이라고 불렀는데, 모두 음()이 가깝다.]라고 기록(記錄)하였다.

 

   ► 가경(嘉慶)’이란 : () 인종(仁宗)의 연호(年號) : “17961820이다.

 

   ➊ 달달리(韃韃裏)란 곧 달단(韃靼)”을 칭()하는 말로, 명사(明史)에서는, “달단(韃靼)” 즉 몽고(蒙古)의 유목족(遊牧族)을 말하는 것이고, 서양(西洋)인들은, 달달리(韃韃裏)라고 하여, 회부(回部)의 유목족(遊牧族)을 지칭한다.明史謂遊牧之蒙古曰韃靼,西洋人謂遊牧之回部曰韃韃,皆音近.고 하였다.

 

   그들이 있었던 지리적(地理的) 위치는 : 북쪽은 악라사(鄂羅斯)경계(境界)까지, 남쪽은 인도(印度) 경계(境界)까지, 동쪽은 총령(蔥嶺)에 이르며, (西)쪽으로는 리해(裏海)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지도(地圖)를 보면 :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 바로 그 땅이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란동북(東北파키스탄동북(東北)지대 등이다. 이곳을 놓고 러시아악라사(鄂羅斯)=아라사(峨羅斯), 달단(韃靼)병을 앞세우고, 영국영길리(英吉利), 인도(印度)병을 앞 세워, 땅 뺏기를 했다는 이야기다.

 

   ➋ 위 본문(本文)의 주석(注釋) :裏海,即加士比唵海,近於鹹海,亦名北高海. : 리해(裏海), 곧 가토비암해(加土比唵海)인데, 가까이 함해(鹹海)가 있다. 또한 북고해(北高海)라고도 한다. 라고 한 구절(句節)에서… …

 

   이들의 지리적위치(地理的位置): 리해(裏海)와 함해(鹹海)가 있는 곳을 말하고 있는데, “리해(裏海), 뇌저해(雷翥海등길사해(騰吉思海가토비암(加土比唵격등리해(格騰裏海북고해(北高海) 즉 오늘날의 카스피 해(Caspi, )를 말하는 것이고, 함해(鹹海), 달리강아박(達裏岡阿泊) () 오늘날의 아랄 해(Aral, )”를 말하는 것이다.

 

   명사(明史)에서, ()의 잔당(殘黨)이 도주(逃走)하여 북원(北元)을 세웠다하였고, 신원사(新元史) 본기(本紀)에서는, 철목진(鐵木眞)의 선대(先代)들이 카스피 해(Caspi, )를 건넜다고 하였으니,

 

   “흑해(黑海리해(裏海함해(鹹海)사이의 땅, 남안(南岸)과 북안(北岸)지대(地帶)”철목진(鐵木眞)의 고향(故鄕)이며, 몽고(蒙古)의 본거지(本據地)였다.”는 사실(事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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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海國圖志/022 北印度各國 (本文)

 

   《英吉利及俄羅斯二境中,所隔數國,則愛烏罕為大,或稱阿付顏尼,或曰甲布爾. : 영길리(英吉利)와 아라사(峨羅斯) 두 나라의 지경가운데에, 몇 개의 나라가 그 사이에 있어, 애오한(愛烏罕)이 큰데, 혹은 갑포이(甲布爾)라고 불렀다. 道光十九年,愛烏罕與沙蘇野相攻,沙蘇野酋請救於英夷.英吉利遂起印度各部落之兵,並力攻破愛烏罕. : 도광(道光) 19, 애오한(愛烏罕)과 사소야(沙蘇野)가 서로 공격하여, 사소야(沙蘇野) 우두머리가 영이(英夷)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영길리(英吉利)는 인도(印度) 각 부락의 병사들을 파견, 힘을 합쳐 애오한(愛烏罕)을 공격 깨뜨렸다. 愛烏罕之酋亦走於俄羅斯,俄羅斯複起駐防韃韃之兵,南攻巴社,機窪,取木哈臘,恢複愛烏罕故地,以直攻印度. : 애오한(愛烏罕)의 우두머리 역시 달아나 아라사에게 하소연 하니, 아라사는 방비(防備)차 주둔해 있던 달단(韃靼)병을 파견, 남쪽의 파사(巴社)를 공격하여, 기와(機漥)를 취하고, 목합랍(木哈臘)를 취해, 애오한(愛烏罕)의 옛 땅을 이전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恢復), 곧바로 인도를 공격하려하였다.고 하였다.

 

   ● 당시(當時)의 달단(韃靼)이 어디에 있었는가? 위에서 설명(說明)하고 있는 곳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우랄산맥(山脈)의 남()쪽 이야기인데, 정확 말하면, 흑해(黑海) - 카스피 해() - 아랄 해() - 발하슈 호()”를 연결(連結)하는 동서(東西) ()선상(線上)에서, 그 남북(南北) 양쪽 지대(地帶)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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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시절(時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시대(時代).

 

   ➊ 太宗實錄 11, 6424甲申 [1,406년 명 영락(永樂) 4] :申韃靼禾尺宰殺牛馬之禁. : 달단(韃靼) 화척(禾尺)에게 소와 말을 잡는 것을 금하도록 거듭 밝혔다.

 

   ➋ 太宗實錄 18, 9823壬戌 [1409년 명 영락(永樂) 7] : 謝恩使通事崔雲,回自京師.雲啓:沂國公丘勝,將兵二十萬北征. : 사은사(謝恩使) 통사(通事) 최운(崔雲)이 경사(京師)에서 돌아왔다. 최운이 아뢰기를, 기국공(沂國公) 구승(丘勝)이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북정(北征)에 나섰습니다하였다. 上曰 : 今上國兵興,其韃靼部落在東者避難,必奔於我,雖深居朔北者,勢窮則亦將來奔矣. :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상국(上國)에 군사가 일어났으니, 달단(韃靼) 부락(部落)의 동쪽에 있는 자들이 피난(避難)하여 반드시 우리에게 달려올 것이며, 비록 삭북(朔北)에 심거(深居)해 있는 자라 하더라도 형세가 궁하면 또한 장차 달려올 것이다. 若北軍勝,則南人亦將如之,譬如大水,支流皆滿矣.遂遣上護軍李愉,馳告東西二面,以備不虞. : 만일 북쪽 군사가 이기면 남쪽 사람이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 비유하면, 큰 물(大水)이 내려갈 때에 지류(支流)가 모두 차(滿)는 것과 같다하면서, 드디어 상호군(上護軍) 이유(李愉)를 보내어 동서(東西) 2(二面)에 치고(馳告)하게 하여, 불우(不虞)에 대비하였다.고 하였다.

 

   위의 「➊+➋」의 이야기는, 조선왕조(朝鮮王朝) 태종대왕(太宗大王)때의 이야기다. ()이 달단(韃靼)을 치면, 분명(分明) 그 동()쪽에 있는 무리들이 피난(避難)하여, 조선(朝鮮)의 영토(領土)로 몰려와 의탁(依託)하고자 할 것이요, 이는 또한 서(西)쪽에서도 마찬가지 경우(境遇)가 될 수 있으니, 이에 미리 대비(對備)하라.는 이야기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의 이야기는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 땅에 있어야 하는데,

 

   명()나라의 20만 대군(大軍)이 달단(韃靼)을 공격(攻擊)하면, (西)쪽에 있는 무리들은 더 서(西)쪽으로 도주(逃走)할 것이고, ()쪽에 있는 무리들은 더 북()쪽으로 도주(逃走)할 것이며, ()쪽에 있는 무리들은, 더 동()쪽으로 도주(逃走)할 것이다라고 미뤄 짐작(斟酌)하여, 이에 대비(對備)해야 한다고 했을 때,

 

   ➌ 해국도지(海國圖志)에 의한 달단(韃靼), 오늘날의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우랄산맥(Ural, 山脈) ()쪽 지방에 있었다.고 하였다.

 

   세부적(細部的)으로 보면 : 달단(韃靼)은 오늘날의 흑해(黑海리해(裏海:카스피해함해(鹹海:아랄해)의 남안(南岸북안(北岸)지대(地帶)에 있었는데, 이곳을 명()20만 대군(大軍)이 공격(攻擊)한다.,

 

   「(西)쪽에 있는 달단(韃靼)들은, 더 서(西)쪽으로 도주(逃走)할 것이고, ()쪽에 있는 달단(韃靼)들은 동()쪽으로 도주(逃走)해 조선(朝鮮) 땅에 들어와 살려 달라할 것이니, 이에 미리 대비(對備)하는 어명(御命)을 내렸다.는 것으로 이해(理解)해도 무리(無理)없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當時)()나라는 어디에 위치(位置)해 있었을까?” 바로 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땅이다.

 

   ➍ 로마제국(羅馬帝國)을 중국(中國)”이라 했고, “이곳 인민(人民)들을 중토인(中土人) 또는 중국인(中國人)이라고 했다.” , 썩 잘 어울리는 말()이요, 표현(表現)이며, ()나라는 곧 당시(當時)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일 수 있다는 '가설(假說)' 이다.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의 멸망(滅亡), 1,453529일 대포(大砲)를 이용(利用), 성벽(城壁)을 부술 때까지 난공불락(難攻不落)을 자랑했으나, 이때 성벽(城壁), 무너지고 역사(歷史)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 ()의 멸망(滅亡)? 달단(韃靼) 야선(也先)’1,454년 북경(北京)을 공략(攻略)한 것이 명()의 멸망(滅亡)으로 이어진 것일까? 투르크의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의 공격(攻擊)과 야선(也先)의 북경(北京) 공략(攻略), 1년의 시차(時差)가 보이지만, 이는 600년 전()의 이야기로 무시(無視)해도 관계(關係)없는 일이다.

 

   이는, 1,453년의 동로마제국(東羅馬帝國)의 멸망(滅亡)도 확실(確實)하게 증거(證據)되지 않은 주장(主張)으로, 여러 이견(異見)이 있으나, 1,453년에 성()이 함락(陷落)당했다는 의견(意見)이 우세할 뿐이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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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진(女眞=珠申)이 달단(韃靼)인가?

 

   이건당시(當時)의 구라파(歐羅巴) 역사가(歷史家)들의 무지(無知)에서 나온 말이다. 구라파(歐羅巴)하면, 우리보다 휠 씬 발전(發展)했다는 선입감(先入感)이 작용(作用)되는데, 이는 19세기(世紀) 이후(以後)의 이야기일 뿐이다.

 

   혹자(或者)들은, 이태리(Italy) 북부(北部) 트렌토(Trento) 출신(出身)마르티노 마르티니(Martino Martini, 1614-1661)’ 신부(神父)가 선교사(宣敎師)로 파견(派遣)되어, 인도(印度)를 거쳐 서력(西曆) 1,643년에 중국(中國)에 도착(到着)했다고 전하면서,

 

   그의 작품(作品)으로 보이는, “‘달단전쟁사의 라틴어판과 네덜란드어 번역판(飜譯判)1,654년 동시에 출판(出版)되었다고 하면서, 여기에

 

   〈조선왕(朝鮮王)12천의 병사(兵士)들을 보내어 명군(明軍)과 함께 1, 6194월 초순 달단국(後金)으로 쳐들어갔다.고 하는데, 서력(西曆) 1,619년이면, 마르티노 마르티니(Martino Martini, 1614-1661) 신부(神父)가 태어난 지 겨우 “5년 후() 여섯 살때의 일이며,

 

   〈후금(後金)은 있어도, 달단(韃靼)은 없었다.

 

   또 정묘호란丁卯胡亂 : 1627(仁祖 5) 후금(後金:)의 침입(侵入)으로 일어난 조선(朝鮮)과 후금(後金)과의 전쟁(戰爭)이야기 역시(亦是), 똑같은 이야기다. 그가 중국(中國)에 도착(到着)하기 수십(數十)년 전()의 일이며, 또는 십여(十餘)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는 사실(事實)이다.

 

   특히 중요(重要)한 것은, 역설적(逆說的)이지만 : 종족(種族)의 이름이나 부족(部族)의 이름, 나라()의 이름조차 몰라 달단(韃靼)”이라고 했다는 말은, 그가 오늘날의 중국(中國) 땅을 방문(訪問)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證明)한다.

 

   그 신부(神父)가 진실(眞實)로 중국(中國)을 방문(訪問)했다면, 그곳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곳에 달단(韃靼)”이 있었으니 말이다.

 

   ● 반도(半島) 조선(朝鮮)’중국(中國) 땅의 황조(皇朝)’, 그리고 반도(半島)북방(北方)의 여진(女眞)’의 관계(關係)… …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에 있었던 달단(韃靼)”이란 종족(種族)“2만 리(萬里) 이동(移動)”시켜, 오늘날의 반도(半島)북방(北方)’에 있었던 것처럼 만든 것은, 조선사(朝鮮史)를 왜곡하기 위해 만든 후대(後代)인들의 가필(加筆)일 가능성이 많다.

 

   ‘여진(女眞)은 숙신(肅愼)’으로, 이들은 상탕(商湯)때도 존재(存在)했던 자들이다. 이러한 종족(種族), 부족(部族), 나라()의 이름도 몰라, 오대(五代)이후에나 등장(登場)하는 달단(韃靼)”이라고 명했다는 말은, 역사(歷史)무지(無知)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평가절하(平價切下)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기록(記錄), 신뢰(信賴)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가 선교사(宣敎師)로 포교(布敎)를 목적(目的)으로 회부(回部)에 왔다는 말은 사실(事實)일 수 있으나, 그가 오늘날의 중국(中國) 땅에 왔었다는 말은, 신뢰(信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200611[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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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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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11 여진(女眞),글란(契丹), 그리고 달단!
    당(唐)과 명(明)등의 옛 봉건왕조에 대한 그 지리적 위치 또는 實存(실존) 여부는,
    대륙조선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이들을 해부(해체)하지 않고는 조선사(한국사)는 반도에 찌그러질 수밖에 없다. 명(明)은 조선(朝鮮)의 다른 이름인가?
    아니면 실존(實存)했는가?
    중국(中國)은 어디에 있었는가?
    과거 중국(中國)이라고 했던 여러 나라들이 실제로는 서남아세아의 제국(諸國:여러나라)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상충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믿는다면, 명(明)나라는 오늘날의 중국 땅에 존재할 수 없다. 그걸 고증할 수 있는 고전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11 혹자들은 "달단'이 마치 옛 조선왕조의 다른 이름인 냥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조선(朝鮮)"이란 왕조 아래 많은 종족과 부족과 제후국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많은 제후국과 종족과 부족들을 담을 수 있으나, 달단은 일개 종족으로 조선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달단이나 타타르니, 달달리니, 타타리아니 하는 것들은 모두 "달단"족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일 뿐이다.
    달단족은 조선왕조내에 속해 있었던 한 종족으로 이들은 천인(賤人)으로 대접받았던 무리들이다. 이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어찌될까? 사대부니 양반이니 하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천인들이었던 달단이나 타타르, 타타리아인들을 주인으로 모셨을까? 이걸 생각하면 금방 이들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다.
    "誤謬(오류)는, 오류(誤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 문제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11 옛 지도 소위 고지도를 보면, 우랄산맥 동쪽은 모두다 타타리아 또는 타타르 또는 달단으로 표시된 것들, 또 오늘날의 홋카이도 북방지대에 "달단해협"이란 이름이 적혀있는 지도도 있다.
    이러한 고지도라는 것들은 근세에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걸 무슨 증거인 냥 하지만, 이는 조선사를 반도 땅에 넣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넒은 시야도 좋지만, 옥석을 가리는 것도 또한 중요한 것이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11 해국도지를 보면,
    당시에 '아라사와 영국이 중앙아세아 땅을 2등분해 속국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달단족은 아라사의 선봉대로써의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몽고족은 본시 색목인들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징기스칸의 선대들이 색목인이었다면, 징기스칸 역시 색목인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아버지는 색목인이고,
    아들은 황인계였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이름뿐이고, 실제 혈통 아버지는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징기스칸 아버지가 색목인이었다면, 징기스칸 역시 색목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건 몽고족들의 비사(秘史)를 기록했다는 몽고비사, 정사라고 하는 원사, 원사를 다시 편찬했다는 신원사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걸 믿고 믿지 않고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믿든 믿지 않든 중요한 것은, 옛 몽고 땅은, 본시 중앙아세아와 그 서쪽 이란 이야기고, 오늘날의 몽골 땅은, 엣 조선왕조가 통치했던 땅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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