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신(肅愼)은 조선(朝鮮)이 아니다...(앵글로)섹슨족에 더 가깝다.

작성자궐한|작성시간13.06.09|조회수989 목록 댓글 12

 

공부 안했으면 시중에 나돌던 환타지 역사글들에 나도 놀아날 뻔 했다.

 

흔한 역사매니아들의 주재가 조선이 숙신이요 주신이고 주르친(여진)이다...란 소리였는데...

역사를 조금 더듬거려보니...전혀 아니다.

 

아예, 조선과 숙신이 관계없는 문명였단 얘기가 아니라...

숙신은 조선과 관계있는 부여 고구려의 북쪽에 위치하여...때론 침범하고 때론 병합당했던 지역으로...

부여나 고구려에 내조할 땐 궂이 부여 고구려의 일원이라 해석할 수 있으나...

그를 꼭히 조선(朝鮮)의 다른 이름이 숙신(肅愼)이라할 아무런 근거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중국사나 중국사를 인용한 조선사 내내...숙신(肅愼)은 조선의 북쪽, 중국의 동북쪽 ...때론 중국의 서쪽과 서남쪽에도 존재하던...

조선강역의 맨 변방이나 그 외 지역권이였음의 기록밖엔 난 못 보았다.

 

중원사나 조선사 내내...숙신(肅愼)은...

대륙 맨 북쪽에 추운지방 사람들로...석노(石弩)와 호시가 특산이자 독화살의 명사수들인 강인한 족속으로...

그곳엔 양과 소는 없고...돼지를 사육하며 돼지가죽옷을 입고...

한자 남짓한 옷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기만 할 뿐 돼지기름을 두껍게 발라 겨울을 나는 오랑케요...

여름엔 나무위에 집을 짓고...겨울엔 토굴을 파고지내는 족속으로...집(토굴)한가운데 뒷간이 있는...

동이(東夷)중 가장 미개하고 포악한 종족이라 한결같이 기록했다.

이게 고대부터 항시 의관정제하는 군자국(君子國),예의지국이란 조선(朝鮮)이란 문명의 다른 호칭이 됄 법이나 한가...?

 

 

 민족사학자를 자칭하는 분들 주장엔...

조선(朝鮮)은 주신(珠愼)이고,숙신(肅愼)이고,예맥(濊,貊)이니...시대와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부른 것이라 하나...

이도 그저 막연한 소리같다.

 

역사를 좀 더듬거려보니...각기 다 다른 문화권이자 종족들같다.

 

중원사나 조선사 내내...

한(韓)의 북쪽에 한(漢)이 있고...한(漢)의 북쪽에 옥저나 부여...한의 동북쪽에 고구려...고구려의 동북에 동옥저나 읍루...

읍루의 남쪽에 예맥(濊,貊)...읍루의 북쪽에 숙신,말갈...

 

또는...한(漢)의 남쪽에 마한(馬漢)...동북쪽에 고구려...그 북쪽에 부여(북부여?)...그 북쪽에 숙신,말갈...

이렇게 일관돼게 나온다.

 

때론 흉노의 일족으로도 나오나...대부분은 흉노의 동쪽 돌궐의 동쪽으로...한지역에 고립됀 문명이라 나온다.

대간룡(大幹龍)..즉, 긴 산맥의 동북편에 갖혀사는 문명으로...부여의 북쪽 아주 추운곳에서 살며...자주 부여를 침범하고...

때론 부여에 복속돼고...고구려에도 그러하고...이러는게 숙신과 말갈의 일관된 기록이다.

 

 

아주 가끔은...

조선(朝鮮)은 한(중국?)의 동북쪽에 있는데...왜 숙신(肅愼)의 무리가 중국(漢?)의 서쪽과 서남쪽 천축국(天丑國)에도 존재하냐고

산해경의 주석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구절이 있고...

이를 근거로...조선은 중앙아나 서역에 있었단 주장도 나오나...이는 과대해석 같다.

 

배달국 환웅과 단군(탱그리)의 자손엔 선비족도 포함됌으로...

단군의 자손들인 선비족(서선비)들이 천축국까지 진출했을 가능성과...말갈과 부여,고구려에 밀린 돌궐과 그 동쪽 숙신의 무리가 서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를 배재한 산해경의 주석자들과 한(漢)의 자료미흡에서기인한 의문이자 ...

이를 근거한 현대의 과대해석같다.

 

선비와 돌궐과 숙신 모두는 알타이와 그 동부를 발원으로한 종족인데...뭔가에 밀려 서역으로 쫒낀 문명이고...

이를 역사는 흉노(훈)에 밀린 돌궐(투르크,터키)...흉노(훈)에 밀린 섹슨(앵글로색슨)이라 하는데...

반만 맞는 역사해석같다.

 

흉노(훈륙,훈누)에 밀린게 아니라...북부여 이후 고구려에 밀리고...숙신관 약간 다른 말갈에게 밀린 것이지...

그저 흉노(훈륙)이라 뭉퉁거리는건 서역이 동양사를 몰라 그럴 뿐으로 보인다.

허긴 중국(漢?) 역사서에도...고구려가 흉노의 대장이 돼었다란 표현이 자주 나옴을 보건데...

아예 틀린 얘기도 아니긴 하다.

 

 

숙신(肅愼),식신...아무리 봐도 섹슨족과 유사하다.

그 종족명의 음의 유사성만 따지는게 아니라...그들이 동방에서 서역으로 이동한 시기가...

부여,고구려의 전성기란 점에서 유사하며...그 풍속이 유사하다.

 

물길을 따라 다니며...해적질을 잘 하는 석궁(石弩)의 명수들...

현 영국 열도나...서역에 석궁과 활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와 일치하며...

영국인들이나 바이킹...유럽인이 고구려 이후부터 서역에서 해적질에의 대가들로 변신함도 시기가 맞는다.

 

고구려 전성기 전후...

어디선가 서역에 등장한 해적질과 석궁의 명수들이 섹슨족이며...

이후부터 유럽이 강해진단 얘기다.

 

난 이걸 북부여나 말갈...고구려에 쫒낀 숙신의 이동으로 본다.

숙신만이 서역으로 쫒겨간게 아니라...그 서쪽의 흉노(훈륙,훈누=스키타이)까지 쫒겨 들어가...

서역 원주민들의 주인이 돼어...로마와 영국등의 문명이 강성해진다.

 

이걸 박용숙 교수님등은 단군조선문명의 지중해 중심설로 해석하시나...

내가 보기엔 단군조선의 북쪽변방인 숙신(식신,섹슨)의 이동인걸 착각하신듯 하다.

오손과 돌궐의 후예인 지중해 동부 오스만 터키만을 보고... 돌궐(철륵)이 지중해에 있었으니...고구려는 동유럽과 중앙아가 중심강역였단 주장도 설득력은 있으나...

돌궐과 오손도...알타이인근에서 고구려나 말갈(무굴)에 쫒겨...서역으로 가서 투르크와 오스만이 돼는 이치를 간과한 과대해석같다.

 

 

그런데...해적질의 대가인 영국과 서역의 숙신족(섹슨족)을 또 해적질로 도륙내던 바이킹은 뭘까?

바이킹을 노르만족이라 한다.

흉노를 이름하기도 하며...료나라(거란,스키타이)를 이름한 노르만아라고 난 본다.

용(로)로 상징돼는 문명이다.

요나라의 료(遼)는 한자와 무관하게...몽골어 로(龍)을 의미한다 보인다.

이들을 바이킹이라함은...발해유민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고...요나라나 발해의 북경(北京)을 배경,바이겡,바이킹이라 발음한거라 막연한 추정도 해본다.

 

요나라나 발해의 북쪽사람들이 ..즉, 흉노나 숙신,말갈족들이...

뛰어난 항해술과 석궁(石弩)을 가지고 해적질로 북해와 그린란드등을 누비며 북유럽을 거처 대서양까지 진출했단 얘기로 보인다.

 

 

아직까지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역사해석을 하시는...존경하는 문무님 마저...

몽고(蒙古)는 달단(타타르)라 했고...달단은 달자라 했고...달자는 대비달자(大鼻達子)라 하여...서역인을 말함이니...

몽고는 서역에서 발원했다 하시나...약간의 오류라 생각한다.

 

 

달자를 몽골의 유종으로 기록한 구한말기 연행사들 시절엔...

현 몽골초원엔 몽골국이라 자칭할 민족이 없었음은 맞다....조선 함경북도에 죄다 편입됐다가 여진에 다시 편입됐기에 그렇다.

몽골의 발상지인 북원(北元)은...이미 명나라(?)나 고려장수 이성계(아미르티무르?)에 토벌당해...달단(타타르)족과 섞여 알타이지방으로 도망갔으니...대원제국 멸망후엔...몽골이란 그 서역 속지인 사한국인 러시아 깊착크한국...중앙아&동유럽 차가태한국...아랍의 일한,훌레그한국 밖엔 없었단걸 간과하신 해석의 오류같다.

 

문무님은 말씀하신다.

구한말 이전의 고기록에도 몽골인들의 눈이 회색빛였다 기록이 간혹 있다고...

물론, 서역인들 기록에도 징기스한의 눈동자가 회갈색이란 기록이 있긴 하다.

 

문무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천해의 동쪽 파내류(파미르)동부에 동서 이만리 남북 오만리 환국에...5방색의 백성들이 살았다 했다.이미 고대에도 동양엔 다색인종들이 있었단 증거다.

그래 한반도 고인돌에도 백인유골이 나오는 것이며...타클라마칸 사막에도 완벽한 백인미라가 나오는 것이다.

악라사(시베리아)인들이 눈은 녹색이나...피부는 검고 털복숭이일 수 있는 이치다.

 

역사가 말한 대비달자는 바로 이 털복숭이 검은 피부의 악라사인들이 주종인 연유이고,,.

이들을 달단(타타르)이 지배했으니...대비달자가 달단의 유종으로 해석돼는 이치며...달단은 몽골이 지배했었으니...

달단은 몽골의 유종이라 한 것이지...가장 동쪽에서 발원한 몽골의 시작조차도,,,그 지배영역의 변방 속지족과 직계로 봄은 무리가 좀 있으신듯 하다.

 

숙신과 돌궐의 발상지로 보이는  알타이인근...여기에 과연 고대에도 우리같은 완벽한 황색인종만 있었을까...?

역사기록엔...부여의 북쪽 숙신의 남쪽에 백민국(白民國)이 있어...몸도 햐얗고 하얀머리털로 뒤덥히고...동물과 사물들도 온통 하얗다 기록했는데...

이걸 우리는 백의민족이라 그렇다...광명족이라 그렇다 오바들을 하는데...

말 그대로 지금의 노랑머리백인들보다 더 완연한 백인이...환단고기의 백부인들이...

알타이 동부 북부여의 북부 숙신의 남부인 외몽골정도에 실존했단 얘기로 해석했으면 한다.

 

현재의 게르만과 앵글로 색슨족들의 또다른 별칭이 아리안이라함은...알타이와 알알해(천해)의 유종들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상당수의 백인들도 서역에만 존재하지 않았고...오히려 아리안의 조상은 알타이 동부일 수도 있단 가능성도 열어 두셨으면 한다.

 

 

 

그리고 조선(朝鮮)이란 국명...

 

문무님 이하 대륙조선사가님들은...한결같이 단군이래 유구하고 광의적인 개념의 동이(東夷)의 총칭정도로 해석하시는데...

난 조선(朝鮮)이란 국명은...이성계(티무르)이후에나 동이의 전체명칭이 돼는 것이지...

이전엔 동선비족을 이름이고 일정지역을 이름한 명칭이라고  해석한다.

 

밑의 기록류에도 그렇게 나온다...

고구려, 부여,옥저,조선을 발해가 다 통일했다 한다.

어떤 기록엔 당나라 황제가 고구려를 다 먹고 그 경계를 상징하는 갈석산에 올라 이 동쪽부턴 조선(朝鮮)의 땅이라 했음을 보건데...

고려왕을 조선왕에 봉했다 함을 보건데...

고구려가 동선비인 조선까지 다 경영했음을 맞지만...엄연히 그 특정 지역은 있었단 얘기며...

그 미 점령지(동쪽의 고구려의 남은땅 조선)를 고구려왕에게 대리통치시켜 흡수하려 시도했다 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고구려의 동남,읍루의 남쪽이란 예맥(濊,貊)의 장소로 보이는 현 감숙성과 섬서성을 이름한게 아닌가 난 추정한다.

역사 기록에 항상 예맥과 기자조선의 강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단군조선...

그건 후대의 호칭인게...엄연히 아사달(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 도읍한 배달국(바타르국,영웅국)이라 했다.

조선이란 국명이 본격화 돼는건 ...서선비족인 상나라,주나라(周),진나라(秦)개념에서...동으로 진출한 동선비족인 기자의 나라를 이름한 조선(朝鮮)의 국호이자...특정지역 지명인듯 싶다.

한(韓)과 漢은 선비족 아니다.

 

 

지중해의 터키인들도 중앙아인들도 탱그리(당굴,단군)를 하늘로 섬기는 고대유습이 있으니

단군을 모시던 조선도 서역에 있었다..아님, 조선의 강역이 서역 지중해까지다라 해석함은...

마치, 여호아를 모시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 모두가 유대인들이라 함과 유사한 과대해석일가 싶다.

 

 

숙신(肅愼)은...단군(탱그리)의 자손일 수 있고...

부여와 고구려의 북방 오랑케이자 속국도 했었음은 맞으나...선비족인 기자국(朝鮮)의 또다른 명칭은 절대 됄 수 없으며...

오히려...부여(북부여),,,흉노에 밀려 서역으로 이주한 석궁을 잘 쏘는 해적질의 명수들인 섹슨족들과 더 유사성을 많이 보인다.

 

흉노가 아니라...부여(북부여)와 고구려...말갈들에 밀려 서역으로 이주한게

숙신(肅愼)이자 ,식신이자...섹슨족이라 난 해석해 본다.

 

그 발원지는...

불암산(불한산,불칸산=火山=佛山)으로 보이는 알타이산 동부 사얀산맥(원조 장백산맥?)...남부

흡수골과 외몽골 서북 아르한가이 북단 셀렝게강 하류인 동부 바이칼(大海) 일대로 보인다.

선비산에서 동으로 뻗어나온 줄기가 남하하여 불암산(백두산)이 됐다함은...외몽골 아르한가이산맥의 화산(불칸,루르한,불한) 칼대라호수 지역을 이름할 수도 있고...

장백산이라함은 그 서북쪽 알타이로 연결됀 늘 하얀 사얀산맥이 원조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이동한 부여,숙신이나 달단 말갈족들이...서남쪽에 있는 고비알타이를 장백(음산)으로...백두산(불암산,불칸산,부르한산=부처의 산)을 현 기련산맥으로 바꿔 부른것 아닌가란 예상도 해본다.

 

불교의 시원도 이 알타이지역(불림,불칸,불함)이고...

그래 불교의 문양들이 모두 불꽃문양인 이유며...승려들을 불로 화장하지싶다.

서역의 배화교가 동으로 들어온게 불교가 아니라...숙신지역이자 부여지역의 원불교가 서역으로 가서 배화교가 돼고...

다시 들어온게 당나라의 서방정토 출신 불교라 보인다.

여기서 힌두 ,자이나교,라마교(로마교)...회교(유다교)도 나오고,,,회교(원조유다교)에서 카톨릭, 개신교가 나온다 보인다.

 

이 현재는 별볼일 없는 외몽골 북부지역이 의미가 있음은...

사백력(시베리아)에서 도통했단 환인이 남하하는건...

빙하기의 종결로 이 바이칼지역 남쪽을 막던 거대 빙하층이 제거돼는 시기...

외딴 지형에서 독특하게 진화한 신인류가 등장하여...현대인류의 문명과 종교를 전파하는 고도의 두뇌를 가진 신인종이 탄생한 것이 환인의 족속이라 본다.

 

여진이나 숙신의 언어론 대인(大人)을 이르며...

한자의 인(人)이란...홍산문명 옥피석 유물들에서 보듯...무릅이 그때 까지도 펴지지 않았던 지구원주민들...

대인(大人)이란 다리가 대(大)자로 뻗은 신인류(환인족)이렇게 구별됀다 생각해 본다.

인(人)자의 금석문도 역시 무릅이 펴지지 않은 반은 유인원 상태를 이른다.

흑피옥에 동양인과 서양인의 짬뽕같이 생긴 큰 주먹상투를 얹은 무릅이 쬑펴진 신인류가 환인의 직계족속으로 아리안(아리랑)인듯 싶다.

고대기록회의 하인(노예)들이 항시 무릅을 꿇거나 구부리고 어정쩡하게 있느건...

원래 무릅이 덜 펴져서 그런 연유며...혼혈로 무릅이 다 펴진 시대에 와서도 그 자세가 항시 하인(노예)족인 지구남방 원주민들 자세였기에 그 자세가 하인(노예)들의 전통자세로 발전했지도 싶다.

 

현 인류는 모두 이 종족들에 혼혈돼어 다리가 펴지고 문명이 급 진화한 인류며...

개중 오지 먼 섬나라지역에 고립돼어 제대로 혼혈되지 못한 족속들이 있었으니...

역사가 말한 원숭이같이 털이 많고...키가 작아 왜놈(倭奴)라 불리우던 종족이 그 한 예이다.

 

여러 혼혈 중...거인족도 나오고...개머리족도 나오고 했으나... 다 도태돼고...환인족과 가장 유사한 종족순으로 현 문명에 존재하고 있다 보인다.

 

그래 현 인류의 문명이 항시 알타이나 바이칼을 중심으로 세계로 뻗어나간 흔적이 자꾸 보이는 것이다.

 

 

북부여,돌궐(철륵),숙신,말갈..이들이 죄다 요 알타이와 그 동남으로 뻗은 대간룡(고비알타이) 동부에 고립됀 외몽골지역에서 발원했기에...중원이 완전정복하기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리라.

돌궐(철륵)은...아르한가이 철루트강 주변족으로 부여나 말갈에 밀려 알타이 서부로 갔다 보이며...

숙신(섹슨)은...철루트강이 북쪽에서 만나는 셀렝게강일대 민족으로  고구려나 말갈에 밀려 역시,서역으로 가고... 

말갈에 흡수됀건 숙신은 속말갈...강줄기들이 뒤엉킨 엄청난 습지 무릉(원조 아무르?)이 북단에서 모이는 흡수골(흑수?) 일대의  말갈은 흑수말갈...이렇게 분류되지 않나싶다.

 

아주 작은 특정지역이 고대 강국들의 최초발원지였단 얘기다.

환인족이 거기(바이칼&흡수골)서부터 남하했기에 그렇다 추정해 본다.

알타이(원조태백)와 알알해(아리수)도 그 경유지일 뿐으로 보인다.

 

 

숙신이 흩어질땐 서역으로만 간게 아니라...

현 동북삼성과 한반도...캄차카반도 일본열도의 백인비슷한 빨간머리 하이(蝦夷)가 돼는 이치고...

그 넘어 베링해를 타고...아메리카까지 이르러...말안장도 안걸고 말타는 아파치등의 원조가 되지 싶다.

 

금태조는 신라출신 고려인이 맞으나...

그가 다스린 여진족은 대부분 이들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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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언 제48권 속집

확대원래대로축소
 사방(四方) 2
남북도 풍토지(南北道風土誌)


안변(安邊)은 당(唐) 나라 때 말갈이 이미 옥저(沃沮)를 병합하여 정리(定理)와 안변 두 주(州)를 두었는데, 정리주는 후세에 연혁(沿革)이 전해지지 않고 안변주는 고려(高麗) 때 등주(登州)로 고쳤다. 기록에는,
“의주(宜州)의 남쪽에 위치하였다.”
라고 하였으니, 의주는 지금의 덕원부(德源府)이며 안변이란 이름이 가장 오래되었다. 지금은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가 되었다.

북쪽 국경 지역은 철령(鐵嶺) 이북에서 두만강(豆滿江)까지 1천 리인데 옛 옥저의 지역이다. 혹은 치구루(置溝婁)라고도 하는데 동쪽으로는 발해(渤海)의 연안이다. 읍루(挹婁)에서 남쪽으로 예맥(獩貊) 사이에 동옥저(東沃沮)가 있고 남옥저(南沃沮)는 예맥의 밖에 있으니 이것은 한(漢) 나라의 창해군(滄海郡)이다. 읍루는 숙신씨의 별명(別名)이다.

고려 초기에 여진(女眞)을 평정하고 땅을 점차로 넓혀서 철령으로 국경을 삼았다. 여진은 말갈의 혈통을 이은 종족이며 고구려의 부락이었는데, 예종 2년(1107), 윤관(尹瓘)과 오연총(吳延寵)을 보내어 여진을 격퇴시켜 쫓아 버리고 선춘령(先春嶺)에다 윤관의 업적을 기록한 비를 세워 그곳으로 국경을 삼았다. 그리고 9성을 설치하였으니, 함주(咸州)는 지금의 함흥부(咸興府)이며, 영주(英州)는 몽라골(蒙羅骨) 아래에 있고, 웅주(雄州)는 길주(吉州) 화관령(火串嶺) 아래에 있고 복주(福州)는 옛날의 독로올(禿魯兀)이며 지금의 단천군(端川郡)이다. 의주는 정주(定州) 남쪽에 있고 공험진(公嶮鎭)은 회령부(會寧府) 소하강(蘇下江) 연안에 있다.
여진이 강성해지자 예종 4년(1109)에 그 땅을 모두 되돌려 주었다. 그 뒤 유인우(柳仁雨)가 다시 화주(和州)ㆍ등주(登州)ㆍ장주(長州)ㆍ정주(定州)ㆍ예주(預州)ㆍ고주(高州)ㆍ문주(文州)ㆍ의주(宜州)의 8주를 설치하였으나 뒤에 원(元) 나라에 몰수되었다.
공양왕(恭讓王) 2년(1390)에 우리 태조(太祖)가 북쪽 변방을 평정하고 두만강에 이르기까지 공주(孔州)ㆍ경주(鏡州)ㆍ길주(吉州)ㆍ단주(端州)ㆍ청주(靑州)ㆍ홍주(洪州)ㆍ하주(河州) 등 7주를 설치하였다.

태조 7년(1398) 알목하(斡木河)는 왕업(王業)의 기반을 이룩한 곳이라 하여 여기에 경원부(慶源府)를 설치하였는데 뒤에 여진의 침략으로 부(府)를 소다로(蘇多老)로 옮겼다가 여진이 또다시 침략해 오므로 부를 부거(富居)로 옮겼으며, 석막(石幕)에다 영북진(寧北鎭)을 증설하여 요새로 삼았다.

알목하는 뒤에 동맹가첩목아(童孟哥帖木兒)의 점령지가 되었는데 올적합(兀狄哈)이 그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세종(世宗) 16년(1434) 김종서(金宗瑞)를 도절제사(都節制使)로 삼아 공주와 경주의 옛 땅을 회복하도록 하고 영북진을 백안수소(伯顔愁所)로 옮겼다. 이곳은 알목하의 서북쪽으로 적들이 왕래하는 통로의 요충지이며 알타리(斡朶里)의 유족이 사는 곳이다. 때문에 큰 진(鎭)을 설치하여 북쪽 관문을 방어하였으며 다시 경원부를 횟가[會叱家]에 설치하고 옛 공주(孔州) 고을의 성을 증축하여 두만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알목하는 오랑캐 말로 오음회(吾音會)라 하는데 바로 두만강 남쪽이며 지금의 회령부(會寧府)이다. 횟가는 지금의 경원부이고 석막과 부거는 지금의 부령(富寧) 옛 고을 이름이며, 석막은 지금의 부령부이고 용성(龍城)은 옛 경주의 북쪽 경계였으며 영북진은 지금의 경성부(鏡城府)이다. 그 축성소(築城疏)에,
“용성은 산천의 막힘이 없어 실지로는 사면으로 침략을 받는 곳이며, 부거와 석막은 모두 국경 지대가 될 만한 곳이 못 되니 적을 섬멸한 뒤에 성과 읍을 배치하여 만세의 이익을 삼으십시오.”
라고 하였다. 우천(虞川)과 삼강(三江)으로부터 서쪽으로 독로강(禿魯江)ㆍ만년(萬年)에 닿는 곳과 박평(博平)과 옛 화주(和州)로부터 북쪽으로 청하(靑河) 9백 리까지 모두 숙신씨의 땅이다.

세종 23년(1441) 무창(茂昌)ㆍ여연(閭延)ㆍ우예(虞芮)ㆍ자성(慈城) 4군(郡)을 설치하였다.

세조(世祖) 원년(1455) 4군을 파하고 그 땅을 비워서 오랑캐와 관계를 끊었다. 청하(靑河) 밖의 홀라온(忽剌溫)과 올량합(兀良哈)과 파저(婆豬)는 잡종(雜種)들이다.

숙신씨는 동쪽으로 발해(渤海)의 연안이며 서쪽으로는 구만한(寇漫汗)에 닿았다. 그 땅은 깊은 산이어서 여름이면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살고 겨울에는 굴 속에서 생활하였다. 그곳에는 소와 양이 없으며 돼지를 길러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는다.
낙상(常)이란 나무가 있는데 중국(中國)에서 성인(聖人)이 임금이 되면 그 나무가 생겨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풍속은 장정들을 귀하게 여기고 늙은이를 천(賤)하게 여기며, 걱정하고 슬퍼하지 않는 것을 서로 숭상한다.
석노(石砮)와 호시(楛矢)와 피골(皮骨)로 된 갑옷이 있다. 단목(檀木)으로 만든 활은 길이가 석 자 다섯 치였으며 호시는 한 자 여덟 치다.
주 무왕(周武王) 때에 호시와 석노를 공물로 바쳤고 주공 단(周公旦)이 성왕(成王)을 보필할 때 다시 공물로 바쳤다. 그 나라 동북 지방에서 석노가 생산되는데 그것을 채취하려는 사람은 먼저 귀신에게 기도를 하였다.

부여(扶餘)는 그 지역이 예맥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북쪽 국경 지역인 숙신의 땅이다. 그들의 풍속은 용맹스럽고 굳센 것을 좋아하며, 그들의 법은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산을 몰수하며, 도둑질한 사람은 12배로 변상하게 하고, 남녀가 음란한 행동이 있거나 아낙네가 질투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죽였다.
또 군대를 동원할 일이 있으면 소를 잡아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 발굽을 사용하여 길흉을 점쳤는데, 발굽이 벌어지면 흉하고 합하여지면 길하다고 여겼다.
《사기(史記)》 구책열전(龜策列傳)에,
“사방의 오랑캐들은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길흉을 점쳤다.”
라 한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사방의 오랑캐들은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엄격히 하였으니, 흉노(凶奴)는 사람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고, 금인(金人)은 사람들이 크게 모아 임목(林木)에 둘러서서 제사를 지내며, 마한(馬韓)은 소도(蘇塗)에 제사를 지내고 숙신씨는 석노에 비는 것 등으로 그 내용은 마찬가지이다.

《당서(唐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옥저는 낙랑(樂浪)의 동쪽 숙신씨의 땅에 있는데 그곳에는 좋은 말과 초(貂 담비의 가죽)와 놜(豽 삵의 가죽)이 생산되며 지금 태복(太僕)에서 화주(和州)와 의주(宜州) 사이에 6개소의 목축장을 설치하였다.”

말갈은 본래 속말갈(粟靺鞨)이라고 하였으며 고구려의 별종이다. 그들의 추장인 조영(祚榮)이 무사 수만 명을 데리고 와서 부여ㆍ옥저ㆍ변한ㆍ조선의 땅을 병합하였다. 당 나라 개원(開元) 중에 말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발해라고 하였으며, 숙신의 옛 땅에 상경(上京)을 설치하고 예맥의 옛 땅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옥저의 옛 땅에 남경(南京)을 두었다. 뒤에 발해가 동거란(東契丹)이 되었다.

인사(人事)와 고금(古今)이 다른 것과 치란(治亂)과 흥망의 원인은 그 변화가 무궁하지만, 전해 오는 기풍과 풍속에서 숭상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착하게 여기는 것과 좋게 여기는 것은 대체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옥저의 기질은 순박하면서도 굳세고 사나우며, 부여와 말갈은 용감하고 강하며 탐내기를 좋아하였으니, 이것은 다 북쪽 풍속의 공통점이다.

먼 지방의 정치 풍속과 그들 군신간의 일들을 왕에게 말해 주고 그곳 사람들에게 대대로 전해 오는 미담(美談)들도 들려 준다. 각 지방의 구릉(丘陵)ㆍ원습(原隰)ㆍ산택(山澤)의 명칭과 생산물 그리고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밝혀서 보고하고 진기한 물건을 바치게 한다.

재리(財利)를 유통시키며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고 원한을 맺는 일이 없게 하였다.

지방에서 공세(貢稅)와 특산물을 바칠 때 그들을 영접하고 전송하는 것을 후하게 해 주니 덕이 넓고 위엄이 넓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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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6.10 동선비를 뜻하는 조선이란 국명유래는 분명 역사서에 명기됐습니다.
    궂이 복잡하게 나누자는게 아니라...그 당대의 정확한 실정이 역사서에 보이니...정확히 구분하며 가야 그 시대별 상황별 강역과 문명의 범위와 주체가 명확해지기에 그리하는 겁니다.
    단군(탱그리)을 모시는 모든 종족... 누구를 시조로 하는 모든 종족...이게 다 조선의 신과 시조와 같다면...
    그 모든 나라와 종족들이 다 조선의 제후국이요 같은 종족였다 하는건...역사연구의 구체적 입증에 도움이 돼지 못한다 걱정됍니다.
  • 답댓글 작성자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6.10 극단적 예를 들자면...신라와 백제 고구려의 조상이 같고...모두 단군을 모셨다 하니...
    신라 백제는 곳 고구려 지방정권이요...화랑은 고구려청년들...계백은 고구려장수... 이리 해석할 순 없단 겁니다...고로,
    숙신과 말갈이 고구려에 복속됐다 해도...그 보편적 문명과 혈통...고유영역은 대부분 분리되어 있었다고 보는게 더 합리적일까 합니다.
  • 작성자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6.10 숙신은 고구려에 복속됀 연후 동양역사에 나오지도 않는다 하셨는데...제 얘기가 그겁니다.
    복속됐으니 나라로 나오진 못하고...고유 지명이나 종족으로 나오는 것이며...그 나라 사람 상당수는 서역으로간 서역역사의 섹슨족이니...당연 서역으로 이주후엔 동양에 숙신의 나라가 거론돼질 않는 것인 이치입니다.
  • 작성자문 무 | 작성시간 13.06.10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사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입니다. 숙신은 고대로부터 "조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에 포함됐거나, 일원이었다고 봅니다. 만약 숙신의 인종이 백인종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진 못하겠으나, 기록으로 보면, 이러한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전에 "북흉노, 남흉노, 동선비, 서선비"등으로 나열되어 있으나 내용을 보면 왜 그렇게 구분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북적편에 기록해 놓고는 내용은 서역의 종족이나 그곳의 나라를 설명하고......이렇게 이상하게 구분을 해 놓은 것들이 많습니다. 본래 그랬던 것인지, 후대에 그렇제 핸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작성자문 무 | 작성시간 13.06.10 시조는 같더라도, 조선에 포함되어 있더라도, 각 자의 나라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니, 시대별 국가별로 구분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님의 말씀대로 옳은 것입니다. 다만 원류와 혈통에 대해 고전에 기록된 것을 소개하는 것이며, 이는 본시 "조선"의 여러 나라들이다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부여>편에도 "부여의 백성들은 신체가 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형상을 설명하면서 신체가 크다는 것외, 특이한 형상에 대한 말이 없다는 것은 그들은 고구려나 부여나 같은 형상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뜻입니다. 周(주)나라는 고구려의 시조와 같은 혈통이며, 고죽국 역시 주(周)의 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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