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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06.09 '조선'이란 <고조선으로 부터 시작되어, 기자조선, 위만조선, 삼한, 삼국, 고려, 조선>등의 옛 왕조들을 하나로 묶어 표현할 때 쓰는 것이며, 하.은.주등의 세 나라 역시 혈통적으로 보면, 모두 같은 "희성"으로, 고구려의 직계선조인 "제곡고신"씨 입니다. 이 분의 네 분 왕비가 출생한 분들이 하.은.주를 건국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 모두를 광역의 의미로 "조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마천의 "사기"가 수천년 후의 역사왜곡을 염두에 두고 편찬했을리 없습니다. 전해 오는, 기록에 남아있는 여러가지 사실들을 확인하여 올바른 것이라 판단하여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 주무대는 서토 땅이 될 수 없으며, 바로 우리의 선대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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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06.09 숙신은 고구려 때 복속되어 고구려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 여중은 후대에 읍루가 되고 물길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엔 단군의 통치를 받았으니 조선의 일원입니다. 숙신은 북방과 서북방에서 시원하며, 항상 고구려와 함께했으며, 만주원류고에서는 이곳 숙신의 땅은 부여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숙신은 조선의 주류와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벽안도 아니요, 붉은 머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대동소이한 인종이었다는 뜻이지요. 특별한 인종은 무리중에서도 확연하게 구분이 되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런 것들을 구분해 기록했씁니다. 조선사란 인간의 역사이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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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06.09 '동선비'니 '서선비'하는 식으로 이리 가르고, 저리 가르다보면 온통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립니다. 선비의 주체였던 오환과 모용씨는 모두 고구려에 복속되어 일원이 되었고, 탁발씨는 고구려를 반도로 이식케 하기 위한 제후의 역사를 황제국의 역사로, 곧 고구려의 것을 빼앗은 것입니다. 선비는 이미 역사서에서 사라집니다. 고구려에 복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후대 소수의 선비계열 인물들이 나타나지만 그건 혈통이 선비였다는 것일 뿐입니다. <궐한님>께서는 조선사를 너무 복잡한 구도로 가지고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너무 복잡하게 갈라쳐 생각하시는 것이 아닐까 해서 드린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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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6.10 동선비를 뜻하는 조선이란 국명유래는 분명 역사서에 명기됐습니다.
궂이 복잡하게 나누자는게 아니라...그 당대의 정확한 실정이 역사서에 보이니...정확히 구분하며 가야 그 시대별 상황별 강역과 문명의 범위와 주체가 명확해지기에 그리하는 겁니다.
단군(탱그리)을 모시는 모든 종족... 누구를 시조로 하는 모든 종족...이게 다 조선의 신과 시조와 같다면...
그 모든 나라와 종족들이 다 조선의 제후국이요 같은 종족였다 하는건...역사연구의 구체적 입증에 도움이 돼지 못한다 걱정됍니다. -
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06.10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사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입니다. 숙신은 고대로부터 "조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에 포함됐거나, 일원이었다고 봅니다. 만약 숙신의 인종이 백인종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진 못하겠으나, 기록으로 보면, 이러한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전에 "북흉노, 남흉노, 동선비, 서선비"등으로 나열되어 있으나 내용을 보면 왜 그렇게 구분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북적편에 기록해 놓고는 내용은 서역의 종족이나 그곳의 나라를 설명하고......이렇게 이상하게 구분을 해 놓은 것들이 많습니다. 본래 그랬던 것인지, 후대에 그렇제 핸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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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06.10 시조는 같더라도, 조선에 포함되어 있더라도, 각 자의 나라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니, 시대별 국가별로 구분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님의 말씀대로 옳은 것입니다. 다만 원류와 혈통에 대해 고전에 기록된 것을 소개하는 것이며, 이는 본시 "조선"의 여러 나라들이다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부여>편에도 "부여의 백성들은 신체가 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형상을 설명하면서 신체가 크다는 것외, 특이한 형상에 대한 말이 없다는 것은 그들은 고구려나 부여나 같은 형상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뜻입니다. 周(주)나라는 고구려의 시조와 같은 혈통이며, 고죽국 역시 주(周)의 나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