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은...홍두왜적(紅頭倭賊)으로도 호칭됀...티벳 왜(倭)다.

작성자궐한|작성시간13.07.19|조회수663 목록 댓글 7

 

 

 

통상 조선사가 말하는 왜(倭)는...

조선의 동남 바다의 해변과 섬에 위치한 난쟁이 족속들인데...

 

광의적 개념으론 꼭히, 그런 것만도 아닌게...

고려를 침범한 홍건적들을 이른 호칭에도...거의 유일하긴 하지만...분명 홍두왜적(紅頭倭賊)이란 용어가 붙은게 있습니다.

 

이 한구절로...동남의 왜가...급박스레 서북방의 왜로 둔갑할 순 없으나..

최소한 고려때에는...서북방으로 침범한 홍건적을...일부는 왜(倭)족으로도 비칭했단 얘기는 됍니다.

육로가 거기밖엔 없어 서북방이지...동으로 바다를 건넌단 말에 의하면...고려 정서쪽에 있던 애들입니다.

 

 

대개 서북변의 오랑케를 이를땐...

몸이 크고 미련허고..포악스럽고...어쩌고의  흉노,융적,노(魯,虜)등으로 비칭했는데...

 

유독 홍건당의 서북로 침범땐...난장이란 뜻의 왜(倭)자가...극히 일례이나 들어갔단데 의미는 있습니다.

 

 

김득배란 장수의 직책에...이런게 나온니다.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西北面紅頭倭賊防禦都指揮使).

 

사서 기록상 벼슬명칭의 서북면이라 명기했으니...완전 반대인 동남쪽을 겸직한 벼슬명도 아닌 것으로 보면...

홍건적의 난리때도 남쪽에서 해양왜들은 여전히 들끌었단 얘기가 있고...그는 그냥 왜구(倭寇)라 했으니

홍건적이 그 남쪽 전통적 해양왜는 아니란 것도 맞는데...

 

그 행태나 문화...생김새가 유사했기에...그들도 가끔은 왜(倭)로 표현한 것이라 보입니다.

 

 

통상 장기적 전쟁때의 궁핍한 상황엔...

일부 천박한 인생들이 더러 사람시체도 걷어 먹으며 생존했단 기록은...

세계 어디나...고려나,조선에서도...임란때나 홍건적 침입때의 굶주린때에도 마찬가지이긴한데...

 

아무리 잔혹했단 거란,여진,몽골군이든 어느 시대 어느나라 군대든지...

적국을 침략하면서 잔인한 살육은 있었서도...사람고기를 대대적으로 즐겨  구워먹거나...여자 가슴을 잘러 먹었단 식의

식인풍속이 아주 몸에 밴 짓거리들은 거의 없음을 보건데...

 

홍건적과...왜놈들의 행태는 아주 희귀할 정도로 유사하단 점을 미루어 보면...

왜놈들이 해양 오지로 몰리기 이전의 대륙내의 고향이 어딜까를 유추하게 만듭니다.

 

 

당대 홍건적은...하북(황하북쪽?)에 있었다는게 현 학게의 주장인데...

그건 헛소리일 수 밖엔 없는게...

현재의 기득권사학대로면...

하북은 북경성 근처고 원나라 대도인데...몇 십만의 사교집단 군대가 형성됄 수 없는 이치입니다.

 

항상 대규모의 사교집단이나 반란집단은...

주 통치지역에서 먼 곳에 대규모 반란군이 형성돼는 이치기에...말도 않 돼는... 짱께들의 무리한 설정이라 봅니다.

 

 

더군다나...주원장이는...하남의 남경에 있어...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는데...

하남엔 당대 하남왕이란 몽골의 최고 군벌인 확곽첩목아가 버티고 있던 곳인데...

주력군이 죄다 하북에 있고...고려로 들어가 전멸당하고 있는 판국에...

한줌밖엔 않돼는 하남의 남경...거기에 숨고르기 하고 ...무협지나 보면서 구양신공을 처닦고  있었단

무협지 주인공격 중달이가 뭐가 무서워 하남왕 확곽티무르가 정벌을 못 했겠습니까..?

중달이가 무협지 보고 배운 장풍이 무서웠나...?

 

 

앞전에도 떠들었듯...

주원장늠은...고려 개경에서 사람들 궈먹고...임산부 가슴을 잘라먹던...홍건적 도적떼에 참가했던...

주원수(朱元帥)란 늠일 것이고...당대엔 개나 소나 아무 계급장이고 막 달던 때로...

고려나 송나라식 벼슬명칭이...평장사 ...위평장...이런 식의 벼슬명을 지들 멋대로 사용한 것이고...이름이 아니란 겁니다.

주원장의 정식 이름은 "중달이"입니다.

고려 머슴출신으로...중국애들 말도 몰라 나중에 더듬대고 배운 애랍니다.

 

 

그럼 홍건왜적떼들의 주요 서식지는 어디였을까...?

 

원나라군에 쫒겨 동쪽의 고려로 왔다니...현재의 북경을 대로로 산정해선...그 동쪽인 요동반도가 삭방도라면...

한반도는 정 남쪽인 셈이니...동쪽으로 온게 말이 안 됍니다.

 

현 중원 하북성이란건 전혀 말도 안됀단 겁니다.

 

 

티벳...그리고 서남아시아로 봐야 합니다.

 

과거 송나라의 동남쪽 오지땅으로 봐야합니다.

원나라가 대칸 계승권의  배부른 내전으로 사분오열할 당시...

땅만 넓었지...별로 소득도 없던 이 지역에 염병까지 돌면서...원나라는 이곳의 직접통치를 피해 중북쪽만을 통치합니다.

 

서역 불교인 조르아스터교(배화교)류의...기독교와 회교 불교...특히 인도 힌두교를 짬뽕한 류의 라마교 비슷한

명교(明敎)란게 이 지역에서 당대 유행합니다.

하북성? ...무책임한 헛소립니다.

 

 

이 종교를 믿는 지역과 종족은...

현재 라마교를 믿는 티벳과 내외몽골이 거의 유일한데...

현재의 라마교가 꼭히 그 명교라고도 볼 순 없고...현재는 다분히 불교적으로 순화됀 종교가 라마교라 봅니다.

그러나 원래의 티벳라마교 얘기엔...인신공양이고 사악한 사교의식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토왜들의 그거입니다.

 

주원장이도 그러기에 문명화됀 조선초기임에도...지 마누리나 궁녀들을 사정없이 순장시킨 겁니다.

 

이들 종족의 원류는...

위그루족으로...위나라(魏)의 유민들이 다스린 오랑케들이다...여기서 왜(倭)가 위나라 유민들이란 설이 나온겁니다.

 

티벳 오지이기에...중원의 지배에서 느슨한 지역이고...

그 풍속이 너무도 괴기하고 미개해...통치 것점만 만들고 수탈만 했지...

중원왕조들이 직접 이주나 통치를 꺼리던 오지로서...

지역간의 거리가 너무 막히고 떨어져... 씨족사회내에서 근친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고...정조관념 무개념도 기인해...

열성유전자로 인한 난쟁이들이 많은 지역였다 보이고...

 

현재의 티벳과 위그루인들관 집접적인 연관도 없는 인종들로...

현 위그루는...서북 청나라족에 혼혈돼고... 서역 돌궐족에 또 혼혈되고...회회족에 혼혈돼어...

그 토왜의 흔적은 다소 작은키밖엔 남은게 없으며...

 

현 티벳인종은...

대륙조선인 중원으로 구한말에 겨 들어간 원조 티벳 토왜들의 빈 공간으로...

오히려 난을 피헤 역 이주한 대륙조선족들로 보이고...

파키나 인도 동남아인들도...

이미 아프리가나 서역인들 피가 혼혈돼어...

좀 뺀질뺀질한 생황습성 말곤...원래의 토왜들의 모냥은 많이 상실한 현실이라 보입니다.

 

현재 정확히 토왜의 형태라 할만한 종족은...거의 없으며...

꼭히 찾자면...인도네시아나 호주 원주민들이 왜들의 속민들인 해양왜들의 원형...

광동성 등지에서 아직도 태아를 삼계탕같이 처먹는 중원 남부애들...

작은키의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방글라 족들.....이들이 지배족 왜의 원형을 그래도 좀 간직하고 있다 보입니다.

 

 

 

당대 원나라는...

정통성 시비에 흔들리던 쿠빌라이계 황손들에 대한 사한국의 끈임없는 도전으로 사분오열됀 시국였는데...

아프다 하면 더 디리민다고...고려출신 기황후가 같이 대칸 계승전에 끼여들면선...

전통적 황금씨족(불지긴,알란,알탄,울란)인 징기스칸계들의 반발을 사며...

티벳오지는 커녕 중앙아나 본고향 외몽골 추스리기에도 바빳던 때로...

 

당대 최고 군벌인 확곽티무르는...대도인 천산일대 연경에서...이를 단도리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홍두왜적들은...

라마교의 미륵사상...즉 기독교의 메시아사상을 인민들에게 쇠뇌하며 착취하던 사교집단들의 연합체로...

당대 창궐하던 전염병으로...그나마 원나라 총독부대들이 막북(타클라마칸 북쪽)으로 떠난 이후...

무정부상태가 도래한 것이며...

이는 전염병이 가져다준 홍복이라 볼 것이며...

한편...상대적 동쪽인 중원 고려의 공민왕이 원나라로 부터 독립할 수 있던 원인도...

기황후란 고려 혈통이 원나라 대칸계승 내란을 더 부채질한 연유에 있기에...

큰 틀에선...기황후가 몽골족으로부터의 고려독립 일등공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염병으로 자연 무정부상태가 됀 티벳일대에...

파키스탄과 동인도...동남아에 있던 토왜들이 다시 몰려 들어오고...

뛰어난 번식력으로 인구가 불자...중원과 대륙조선의 중간 공백 경계지인 청해성으로 홍건적들이 들어오는게...

황해도 진출인 것이며...여기서 나룻배 타고 고려 서쪽 해안을 유린하는 것이고...

보병들은...그 북쪽 기련산 일대의 돈황주변 요동까지 진출했다가...

서쪽인 천산일대의  대도에 위치한 몽골군에 쫒겨...현 청해성 기련산줄기와 감숙성쪽으로 밀려오는게...

고려 삭방도 진출인 것이며...섬서성 서안이나 낙양을 치는게...고려 개경점령이라 보입니다.

몽골군의 토벌에 밀려 얼떨결에 고려 서도를 점령하긴...거란패잔병들의 고려 유입때도 똑같은 루트입니다.

 

공민왕이 도망친 경상도 유역 복주(福州)는 현 복건성을 이르겠고...

그 근처인 강소성일대가 강화도이자 강도(江都)가 돼겠습니다.

 

남경(南京)일대로 도망친 것이니...

주원장늠이 남경에서 어쩌고는 그저 동남아&티벳 토왜족인 현 짱께족들의 무협지에만 존재하는 역사라 하겠습니다.

 

현 대륙의 남경 유적은...고려나 조선의 강화도(江都)유적이란 것이져...

상황이 급박해 지면...그 주변 섬으로 피신한 거지...원래의 강화부는 거의 경기도만한 거대 지역였다 보입니다.

 

몽골군에 깨져서...기련산과 청해성을 타고 고려 서북으로 침투한 홍두왜적들은...

섬서성 등지에서 고려군과 원 동녕부 군대에 참혹하게 전멸하며...

일설엔 100만이라는 10만의 병력이 죄 전멸하여...

주원수(朱元帥)...주원장이란 지들 맘대로의 계급장을 달았던...중달이와 극소수들이...다시 기련산과 청해성을 타고...

티벳고원으로 철수한 것이라 보입니다.

 

아마도 중달이는...

고려 머슴출신이기에...

고려말을 할 줄 알아서...홍건적에 잡힌 고려 포로 행세로 죽음을 모면했다 사료됍니다.

 

홍건당의 거의 모든 괴수들이 고려에서 몰살돼니...당연 홍건당내의 지배는 주원장이 맞게 돼는데....

그나마 최대 세력인 서달이...발안첩목아의 쿠테타로...천산일대 연경의 기황후세력이 외몽골로 쫒겨난 공백을 이용해...

막북(타클라마칸 북쪽)을 치는데...

쿠쿠티무르(확곽첩목아)에게 개박살 나고...패잔병이 돼어 티벳남부로 되돌아오는 바람에...

주원장에게 독살기회를 주어 제거돼는 것이라 봅니다.

 

나머지 명교(라마교 비슷)의 괴수들을  하나 하나 다 제거한 주원장은...

명실상부한 티벳&서남아오지의 홍건적 괴수로 거듭나면서...원나라 기황후 세력을 견제하려는 고려 공민왕에게도

비공식적 이용을 당했다고도 보입니다.

 

확곽 티무르의 진짜 명나라(무굴리스탄한국?)이 제자릴 잡으면선...

다시 파키나 동인도 오지로 쫒끼고...동남아로 밀리고...연명하면서...동족인 해양돼들과 섞여 있다가...

임란때도 한 수 거들고...영국등의 양이들 주구가 돼어...인도 무굴(남명)의 패망에 기여하며...

 

언감생신 자기들이 남명의 주류라 위장하여...

양이들의 총을 메고...양이들이 진출한 동남아와 대륙조선 남부인 중원 남부로 진출합니다.

 

 

구한말기...

대륙조선의 원조 동학격인 백련교도 비슷한 홍수전의 상제교 일파가 대대적 반 정권 반만주운동에 돌입하는 기회에...

자기들도 교리는 명교(미륵교,메시아교)이니...같은 편이라 위장하여 초기엔 떡고물을 얻으려 합류하는데...

그게 짝퉁 상제교 세력인 천지회 애들입니다.

 

교리상 대륙조선 무술고수 홍희관을 도조로 삼는 홍문(洪門)이나...

마약과 매춘이 주업인 홍건적류들은...바로 짝퉁으로 전락해... 삼점회 삼합회이나...흑룡회 야쿠자가 돼며...

그래 원래는 홍건도 두루지 않았던 장발적(상제교)들을...홍건을 두른 홍건적으로 지들 맘대로 무협지를 꾸민 겁니다.

지들만 홍건(빨강터번) 두르고 돕다가 배신한 겁니다.

 

양이들의 세력에 밀려 반 자의 반 타의로...반은 현 일본열도로 진출해 메이지유신의 주력이 돼며...

반은 중원 남부를 파고 듭니다.

그게...터번두른 향군(신사)이란 늠덜이 이끈 상군,상승군 들이며...

일본에 유학하던 손문등의 신해혁명 세력이며...첨엔 같은 파였던 모택동 등의 초기 공산당애들입니다.

이땐 홍건당인걸 속이려 대륙조선 녹영군을 이르는...녹두(녹색터번)으로 위장합니다.

파랑새 노래의 녹두장수는...어쩜 얘들을 이를지도 모릅니다.

 

 

 

고로,

현 중원(대륙조선)을 지배한 신 지배세력들은...

상당수가 서남아 토왜들격인 홍건왜적들이기에...천산중심의 또다른 몽골과 한족 국가인 명나라의 역사를 ...

티벳과 동남아 중심의 홍건당 역사로 둔갑시킨 것이며...

 

자신들관 교리만 유사했지 근본도 달라...

지들이 철처히 배신하고 학살한 태평천국을...자신들의 전신이라 구라를 치고 있는 겁니다.

대한제국세력 중...친일파 상당수도...큰 틀에선 그리 자유롭진 못하다 하겠습니다.

 

 

 

 

얘기가 또 너무 길어지니...오늘은 여기 까지만 하겠습니다.

 

 

 

 

밑에...거의 유일하긴 하나...

분명, 고려 김득배장군의 보직이...

서북면도순문사겸서경윤상만호(西北面都巡問使兼西京尹上萬戶)라 명기 됐으니...

아무 근거도 없이 소설쓰지 말란 나무람은 자제들 해 주시길 바랍니다.

 

왜(倭)는 지구탄생이래 영원불멸의 천자국 중조 조선의 중심을 기준한 세계 전체의 변방 속민들의 총칭이고...

그래 몽골도 조선 서북왜놈...타타르여진도 조선 서북왜놈 금아라도 동북왜놈..

이런 짬짝놀랄 지중해 조선사학자님들의 파격보다는...

 

그래도 제가 원전엔 더 충실하다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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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배

 

[간략정보]
  • 한자
  • 분야
  • 유형
  • 시대
  • 성격
  • 성별
  • 생년
  • 몰년
  • 본관
  • 관련사건
  • 대표관직(경력)
  • 집필자
 
 
1312(충선왕 4)∼1362(공민왕 11).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호는 난계(蘭溪). 아버지는 판전의(判典醫) 녹(祿)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에 보직되었으며, 그 뒤 전객부령(典客副令)으로서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우부대언(右副代言)에 제수되었으며, 1357년(공민왕 6)에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西北面紅頭倭賊防禦都指揮使)가 되었다가, 이어 추밀원직학사(樞密院直學士)에 오르고, 서북면도순문사겸서경윤상만호(西北面都巡問使兼西京尹上萬戶)가 되었다.
1359년 정월에 첨서추밀원사(詹書樞密院事)가 되었으며, 그 해 6월에 기철(奇轍)을 숙청한 공으로 2등공신에 올랐다. 같은 해 10월에 동지추밀원사가 되었다.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홍건적의 괴수 위평장(僞平章)·모거경(毛居敬)이 4만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함락하였으며, 부사(副使) 주영세(朱永世) 및 주민 1,000여 명을 살해하였다.
이어 정주(靜州)에서는 도지휘사 김원봉(金元鳳)을 죽이고 인주(麟州)까지 함락시켰다. 이 때 그는 도지휘사가 되어 서북면도원수 이암(李嵒), 부원수 경복흥(慶復興)과 더불어 적에 대비하고,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분전하여 서경을 탈환하고 압록강 밖으로 적을 격퇴시켰다.
1360년 3월에 그 공으로 수충보절정원공신(輸忠保節定遠功臣)에 책봉되고, 정당문학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10월에 지공거가 되어 진사를 뽑고, 정몽주(鄭夢周) 등 33인을 급제시켰다.
1361년 다시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삭주 이성(泥城)으로 침입하자 서북면도병마사가 되어 상원수 안우, 도지휘사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방어했으나, 안주에서 대패,  개경까지 함락당하였다.
다음해에 안우·이방실·최영(崔瑩)·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2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총병관(摠兵官) 정세운(鄭世雲)의 지휘로 적의 괴수 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 등을 베고, 적 10여 만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고 이들을 격퇴시켰다.
이 때, 정세운과 권력을 다투던 평장사 김용(金鏞)이 거짓으로 조서를 꾸며 안우·이방실·김득배에게 정세운을 살해할 것을 명하자, 이들은 그것을 믿고 정세운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죄를 입어 안우·이방실이 살해되었으며, 그도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되어 도망하여 산양현(山陽縣)에 숨었으나 체포되어 상주에서 효수되었다.
그의 문생인 직한림(直翰林) 정몽주는 왕에게 청하여 그의 시신을 거두고 제문을 지어 그의 억울한 죽음을 개탄하였다. 1392년(공양왕 4)에 그의 누명이 벗겨지고, 그 자손도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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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8권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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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고려 김득배(金得培) 고을 아전 김조(金祚)의 딸이 만궁(萬宮)인데, 나이 일곱 살에 부모가 거란(契丹)의 군사를 피하여 백화성(白華城)으로 가다가, 군사가 쫓아오자 길 옆에 버리고 달아났다. 사흘 뒤에 수풀 밑에서 찾았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밤이면 무슨 물건이 와서 안아주고 낮이면 갔다.”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는데 곧 호랑이였다. 15세가 된 뒤에 호장(戶長) 김밀(金謐)에게로 출가하여 록(祿)을 낳았고, 록이 세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이 득배(得培)이다. 과거에 올라 예문 검열(藝文檢閱)이 되고, 전객 부령(典客副令)이 되었다. 공민왕(恭愍王)을 따라 원(元) 나라에 들어가서 숙위(宿衛)하였는데, 왕이 즉위한 뒤에 우부대언(右副代言)을 제수하고, 6년에 서북면 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西北面紅頭倭賊防禦都指揮使)가 되고, 조금 뒤에 추밀원 직학사(樞密院直學士)를 제수하고, 인하여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로 삼아, 서경윤 상만호(西京尹上萬戶)를 겸하였다. 7년에 홍두적(紅頭賊)의 위평장(僞平章) 모거경(毛居敬)의 무리가 의주(義州)를 함락시켜 부사(府使) 주영세(朱永世)와 고을 백성 천여 명을 죽이매, 득배가 안우(安祐) 이방실(李芳實)과 함께 군사를 거느려 진격하였는데, 모두 아홉 번 싸워서 개가(凱歌)를 아뢰고 돌아와서, 수충보절 정원공신 정당문학(輸忠保節定遠功臣政堂文學)을 제수하였다. 10년에 홍두적이 또 삭주(朔州)를 공격함에, 득배가 도병사(都兵使)가 되어 안우 이방실과 더불어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쳤다. 적이 서울을 함락하매 군사를 내어 머리 10여 만을 베니, 적이 드디어 평정되었다. 김용(金鏞)이 득배의 무리가 큰 공을 이루어 왕이 총애할까 두려워하여 안우(安祐)의 무리를 시켜 정세운(鄭世雲)을 죽이고, 이로써 죄를 만들어 득배를 죽이니, 듣는 자가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김선치(金先致) 득배의 아우이다. 낭장(郞將)으로 전라도 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 유탁(柳濯)을 따라 왜적(倭賊)을 쳐서 손으로 수십 명을 죽였다. 여러 번 옮기어 호부 낭중(戶部郎中)이 되었고, 공민왕(恭愍王) 때에 원수 이암(李嵒)을 따라 적을 쳐서 일등으로 녹공(錄功)되어 이부 시랑(吏部侍郞)에 뽑히었다. 홍두적이 서울을 함락하여 여러 장수를 따라 수복(收復)하였다. 여러 번 벼슬을 옮겨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나아가 계림 부윤(鷄林府尹)이 되고, 동지밀직(同知密直)에 승진하였다. 신우(辛禑) 때에 낙성군(洛城君)으로 봉하여졌다. 김득제(金得齊) 득배(得培)의 아우이다. 벼슬이 삼사 우사(三司右使)에 이르렀다. 김수자(金守雌) 과거에 합격하여 금양현위(金壤縣尉)에 조용(調用)되었다. 인종(仁宗) 때에 사관(史館)을 맡았는데 ‘이자겸(李資謙)의 난’에 궁궐이 연소되자, 수자가 금중(禁中)에서 받들다가 국사(國史)를 지고 산호정(山呼亭) 북쪽에 땅을 파고 감추어서 불타지 않았다. 한림원(翰林院)으로 옮겼는데, 어머니가 늙었으므로 고을을 나가 예주 방어사(禮州防禦使)가 되었다가 죽었다. 의종(毅宗) 때에 이부(吏部)에서 아뢰기를, “수자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국사를 옮겨 감추었는데, 현저한 포상을 받지 못하였으니 매우 아까운 일이라.” 하였다. 명령하여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증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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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절요 제27권
확대원래대로축소
 공민왕 2(恭愍王二)
신축 10년(1361), 원 지정 21년

 

중간생략...

밑으로도 홍건적에 관한 부분만 복사...

 

 


 
왜가 동래(東萊)와 울주(蔚州)를 불태우고 약탈하여 세미(稅米) 실은 배를 빼앗아 갔다. 또 양주(梁州)ㆍ김해부(金海府)ㆍ사주(泗州)ㆍ밀성군(密城郡)을 침범했다.○ 9월에 호부상서 주사충(朱思忠)을 원 나라에 보내어, 도로가 다시 통한 것을 하례하게 하였다.

 

○ 정유일에 홍두적(紅頭賊)의 위평장(僞平章) 반성(潘誠)ㆍ사유(沙劉)ㆍ관선생(關先生)ㆍ주원수(朱元帥) 등 10여 만의 무리들이 압록강을 건너서 삭주(朔州)를 침범하니, 추밀원부사 이방실(李芳實)을 서북면 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로 삼고, 동지추밀원사 이여경(李餘慶)을 보내서 절령(岊嶺)에 책(柵)을 세웠다.
주고, 궁(宮)ㆍ사(司)의 노예는 양민으로 삼든지 돈과 비단을 상주든지 그들의 소원에 따르리라." 하였다.

 

○ 을축일에 안우가 군사를 수습하여 김용 등과 함께 금교역(金郊驛)에서 둔을 친 다음, 김용이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최영을 왕께 보내어 서울 군사를 청하니, 왕이 일이 급함을 알고서 피난을 생각하여 먼저 서울에 사는 부녀들과 늙고 약한 자들을 성 밖으로 나가게 하자, 인심이 흉흉하였다. 이 날, 적의 선봉이 흥의역(興義驛 황해 우봉(牛峯))에 이르렀다.

 

○ 병인일에 왕과 공주가 태후를 모시고 장차 남쪽으로 파천하려 하는데, 날이 밝기 전에 김용ㆍ안우ㆍ이방실 등이 달려와서 모두 아뢰기를, “경성은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최영이 가장 통분하여 크게 부르짖기를, “주상께서는 조금 더 머무르셔서 장정들을 모집하여 종사를 지키소서." 하니, 재신들은 서로 돌아보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 날이 밝자, 왕의 일행은 민천사(旻天寺)로 거둥하였다. 근신들을 각각 거리로 나누어 보내서 큰 소리로 의병을 모집하게 하니, 서울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고 모집에 응한 자는 겨우 몇 사람뿐이었다. 안우 등도 어찌할 수 없어 왕에게 아뢰기를, “신등이 여기 머물러 적을 막을 것이오니, 주상께서는 출행하소서." 하였다. 이에 왕이 숭인문(崇仁門)을 나서니, 늙고 어린 자들은 땅에 넘어지고, 어미는 자식을 버리고, 짓밟히고 깔린 자가 들판에 가득하였으며, 우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왕의 일행이 통제원(通濟院)에 이르자 경성에서 오는 자가 아뢰기를, “적이 이미 가까이 왔습니다." 하니, 임진강을 건넜다. 공주는 연을 버리고 말을 탔으며, 차비(次妃) 이씨가 탄 말은 병들고 약하여 보는 자가 모두 울었다. 왕이 신하를 돌아다보며 원송수(元松壽)ㆍ이색에게 이르기를, “풍경이 이와 같으니, 경 등은 마땅히 연구(聯句)를 지을 만하다." 하였다.

 

○ 신미일에 눈이 내리는데 이천현(利川縣)에 다다르니, 왕의 옷이 젖고 얼어서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녹였다. 이날 적이 경성을 함락시켰는데, 여러 달 동안 둔병하면서 소와 말을 죽여 그 가죽을 벗겨서 성(城)을 만들고 물을 부어 얼음을 얼리니, 사람들이 올라가지 못했다. 또 사람을 잡아서 굽거나 임부(姙婦)의 젖을 구워서 먹는 등 잔학한 짓을 마음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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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19 그럼...이성계도 왜(倭)고...이성계가 세운 조선조 왜(倭)고...우리도 왜(倭)고...
    서대문 로타리도 로자 들어가니 왜놈들 사거리고...우리 노인네들도 노자 들어가니...왜노란 말이고...
    온 세상이 다 왜(倭)이고...그러니 역사연구 할 필요없고...진보꽁통들...밑도 끝도 없이 언제 어디서나...중궈 조센주만 욕하는 주문만 왜우며...살면 그만이다... 이게 결론이군여...
  • 작성자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19 그냥 골아프게 역사연구 하지 마시고...
    해무님이 젤 맘에 드시는데다가 조선 중국을 결정지으시고...
    젤 맘에 드는 종족들을 원조 조선족으로 정하십시요.
  • 답댓글 작성자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19 허기야 이미 다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주문을 외우고 기신줄로 압니다만...
  • 작성자문 무 | 작성시간 13.07.19 <태조 이성계> 가계에 대해서 <고려로 귀화한 여진계 몽고인>이란 설은, 그의 선대 고조부가 몽고의 달로화적을 지냈기 대문이며, 고조 이상의 가게에 대한 기록은 애매모호하며, 고조부로부터 지방의 호족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조모등의 혼인 인맥을 보면, 모두 고려 명문가들입니다. <虜>를 나라로 인식하고, 비하한 것은 "북위" 때 부터입니다. 중요한 것은 근대조선의 지리적 영토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풀리면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풀리게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고려 땅이 근대조선의 땅이요, 그곳은 옛 신라의 땅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 작성자문 무 | 작성시간 13.07.19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장의 뼈대가 되는 것>입니다. 뼈가 있어야 그것을 의지해 살을 붙일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들은 <기록과 유적유물>외 다른 어떤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이 한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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