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일본 도쿄 신쥬쿠에서 조선장학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남과 북, 일본의 고고학, 역사학자들이 모여 <동아시아의 새 발견>이라는 주제의 고대사 심포지움을 열었다고 조선신보가 보도했습니다.
이 심포지움에서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 고대고고학 연구실 석광준 부교수는 「고구려 고고학의 새로운 성과」라는 발표를 통해 `고구려 건국연대가 삼국사기에 기원전 37년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는 신라정통파들이 의식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며 발굴 유물과 광개토왕비 기록에 근거하여 기원전 277년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심포지움에서는 남쪽에서 동국대 한병삼 교수와 이기동 교수가 발표했으며 한병삼 교수는 백제의 능산리寺址의 가람배치의 특성에 대한 발표를 통해 백제 유물들의 높은 공예수준을 지적했으며,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발해사 연구실 실장인 채태형 교수는 발해 수도인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의 위치가 함경북도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로 새롭게 해명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조선장학회와 고대사 심포지엄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심포지움은 일본역사학협회, 조선학회, NHK, 아사히 신문사 등이 후원하였으며 남북 각 3명의 학술대표단(남측 단장 이원순 서울대 명예교수, 북측 단장 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 정철만 소장)과 일본의 고고학, 역사학자 등 600여명이 참석하였다고 조선신보는 전하고 있습니다. 1)
1) 조선신보 (조총련 기관지) - 재일교포들에 대한 민족·사상 교육 매체로서 1945년 10월 10일 〈민중신문〉으로 창간되었다가 〈해방신문〉(1946)·〈조선민보〉(1957)를 거쳐 1961년 오늘날의 제호로 바뀌면서 일간지 체제로 전환했다. 발행사는 조선신보사이며 발행부수는 약 6만 부이다. 한글전용 가로쓰기에다 평일 6면, 화요일·금요일 8면 발행을 기본으로 하고 2면에 걸쳐 일본어판 기사를 싣고 있다. 주요 기사는 사설과 고(故) 김일성 주석의 업적, 김정일 총비서의 동정과 업적, 북한 소식 및 각종 성명·담화, 조총련 활동소식, 문예물 등인데, 1999년말부터 시사생활지로서의 기능을 크게 높이는 방향으로 편집방향을 돌렸다.
● 북한 사회과학원 석광준 교수가 고구려 기원이 B.C 277년을 주장한 근거
1. 광개토왕릉비에 광개토왕이 추모(주몽)왕의 17세 손으로 서술되있다. 2) 삼국사기는 동명왕의 12세손으로 기록되있다.
2. <삼국사기> 에 서술된 고구려가 ‘진나라, 한나라 때에 중 국의 동북쪽 모서리에 있었다’는 구절이 있다. 3) 진나라의 중국통일은 기원전 221년
3. 고구려 초기 대표적 무덤이었던 돌각담무덤(적석 총)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기원전 3세기의 유물로 인정되는 질그릇 과 철제 무기 등이 다수가 출토되었고 동이탄소측정 결과 B.C 3세기 후반으로 측정되었다.
대표적인 근거가 이렇습니다.
B.C 37년 이전에 고구려가 국가로서 존재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또하나 있습니다.
고조선의 진반국(진번국, 이하 진반)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전한의 진반군은 B.C 82년에 고구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한나라의 지배를 받고있는 예속상태에서는 진반군을 내몰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즉, 고구려라는 국가적 배경이 없었다면 한나라의 식민세력인 진반군을 몰아내기란 힘든 일입니다. 진반군이 쫓겨났다는 것은 B.C 82년 이전에 고구려족이 이미 국가적 활동을 해왔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5년(670) 조 (문무왕이 고구려 왕 안승에게 준 책명문)
고구려가 800년간 있다가 나라가 파하였으니 고구려 왕으로 봉하고 한주(韓州)를 하사한다.
당나라 때 시어사인 가언충은 당 태종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고려비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900년이 되기 전에 여든살 된 대장이 나타나 멸망될것인데, 고씨가 한나라때부터 나라를 세워 지금 900년이 되었고 이적 장군의 나이가 여든살이니 이번에 고구려는 꼭 멸망할 것입니다.
고구려가 900년이 되었다는 기록 ● 북한의 손영종 교수의 주장 B.C 277년 고구려 건국 -> B.C 276년 비류국 통합 -> B.C 272년 행인국 통합 -> B.C 268년 북옥저 통합 -> B.C 258년 온조 남쪽으로 이동 -> B.C 227년 양맥국 멸망 -> B.C 219년 부여를 소국으로 삼음 -> B.C 215년 개마국 통합, 구다국 투항 -> B.C 203년 고구려기병이 한나라 편에 서서 초나라 토벌
2007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27년」
고구려의 건국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명왕편>, <구삼국사>, <위서>, <양서>, <주서>, <수서>, <북사>등에도 실려있습니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고구려 초기 연표를 정리했습니다. 4)
4) 고구려사의 재문제.북한 사회과학원 . 2000. 32~34P 참조.
● 북한 박치웅 고고학과 교수의 주장
1. 압록강 중, 상류의 적석총이 탄소연대 측정으로 B.C 3세기 말로 찍힌다는 것
2. 정밀 조사를 위해 러시아 고고학자들을 끌어들여 관실묘를 측정했더니 B.C 3세기 중반에 있다는 것
(추모성왕의 실제 묘도 발견이 가능)
3. 무덤의 흙인 토석제를 토규분쇄기로 갈아서 성분 분석해보니 B.C 5세기부터 생존 가능한 아크라마톤(acramarton) , 미세 박테리아 성분인 마에크로아메바(maaecroameva) 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4. 돌 쌓는 방식이 고대 건축으로 봤을때 성곽보다 더 정교하고 견고하다.
이런 근거들 때문에 북한에서 B.C 277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제 소견을 말씀드리는데 정식학회에 적용이 안되는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북한에서 연구한 고구려 기원설의 학회 비적용 요소
1. 고고학자들이 러시아 학자들에 편향이 되있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중국,일본,영국,프랑스 등 고고학이 발달한 나라들이 입증을 해주어야 하는데 폐쇄적인 북한 사회를 비추어 볼 때 불가능하다.
2. 사료만을 가지고 정의했다. 이것을 미흡한 고고학 분석에 꿰어 맞추려 했다는 의도적 정의가 보인다.
3. 실제 고고학적인 사진 및 증거자료가 미약하다. 확실한 내부 공개나 탄소연대를 쏜 것에 대한 기록지가 보여져야 한다. 그러나 이 포럼에서는 그것을 제출하지 않았다.
4. 북한의 상당히 뒤떨어지는 고고학 기계들이 의심이 간다. 북한이 쓸 수 있는 것은 탄소연대 뿐이고 나머지는 수작업인데 이것은 전에 제가 설명했듯이 수작업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의 요소가 크다고 설명한 바 있다. 탄소연대 뿐 아니라 고고학 방사선 측정기나 뼈의 연대를 측정하는 센소터블, 흙과 미세 먼지를 분석하는 롬미디어 분석기 등의 첨단 고고학적인 기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인것이다.
5. 검증작업을 할 때 북한 학자들만 작업에 참여했다고 발표한것이 의문이 간다. 왜냐면 검증작업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보고 검증적 판단이 필요한데. (특히 문화인류학, 인류이동학, 지리학, 지질학 교수들이 참여하여 검증절차 밟았어야 했다.) 그것은 하지 않고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만이 검증을 논하고 있다. 과학적인 분석도 전혀 없다. 이것은 언제든지 위작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 외에도 남한 학자들의 검토가 있거나 합동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
북한의 주장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필자의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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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부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9.26 고구려의 련대가 BC37년은 아닐것이 은나라에서 주나라까지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것 같기도 한데 울나라의 고전문헌 사가시문집에 추모대왕이 고구려를 건국했을때 진(秦)왕 정이 6국을 병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놀라운 기록이지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고구려, 진, 한 은 어떤식으로든 관계가 있다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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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 무 작성시간 13.09.26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간단하게 유추하는 것은, 당서에 "이적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고구려는 90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전해오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668년에 고구려가 망했으니 900년이 조금 못미친다고 하였으니, "기원전 232년 쯤으로 건국연대를 주장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동명과 주몽이 별도의 인물인가, 동일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고구려는 제곡고신씨의 호를 따라 성으로 했다는 기록에 따르면 그 이상으로 올라갈 있을 것입니다. 또 고죽국은 고구려의 선대국가라는 기록에 따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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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 무 작성시간 13.09.26 또 주나라 건국과 고구려의 건국과정에 "하백과 그의 손녀 또는 외손녀"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면,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주나라와 비슷한 시기로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고구려의 이름이 여러가지로 불려졌다는 것으로 볼 때, 분명 고구려의 건국시기는 앞당겨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데, 북한이나 우리나라의 학계 이야기는 흘려보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반도사학에 기준을 두고, 도토리 키재는 모습을 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