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이 아니다?

작성자최남석|작성시간14.01.25|조회수1,173 목록 댓글 2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北京)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원나라의 대도(大都)가 지금의 북경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중국에서는 원나라의 중도(中都)가 북경이 아닌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700리쯤 떨어져 있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며, 지금 “원 중도유지(元 中都遺址)”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언뜻 보기에는 별의미가 없는 듯 하지만 알고보면 매우 심각한 역사적 의문이 그 "원 중도유지" 속에 내포되어 있다.  

  금나라를 이어 일어난 몽골 즉 원나라는 쿠빌라이 칸이 5대 황제에 오른 후 연경(燕京)에 도읍하고 중도(中都)라 했다가 후일 그곳을 대도(大都)로  이름을 바꾸며 원래 자신의 봉토였던 개평부에는 상도(上都)를 설치한다.

  이 말은 곧 연경이 원나라의 중도이고, 중도가 곧 원나라의 대도라는 말이 된다.

  우리는 지금 원나라의 대도가 북경으로서, 원나라 때의 궁궐터가 자금성 자리일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나 사실 지금 중국에서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 서북쪽 만두영(饅頭營)부근에서 원나라 때의 중도유지(元 中都遺址)를 발굴해 놓고 있으니 지금의 북경이 연경이요, 원나라의 중도요, 대도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인 것이다.


  연경(燕京)이란 옛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도읍을 이르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는 선비족으로서 지금의 산서성과 하북성 서쪽 일부에 걸쳐 있던 나라였다. 즉 지금의 북경 서쪽에 위치했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그 동쪽 난하를 중심으로 위치했던 우리 역사에 서쪽으로 선비(鮮卑), 연(燕), 위(魏)와의 접촉기록이 많은 것이다. 


☆ 많은 학자들이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가 북경 부근으로부터 지금의 요하까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주장이고, 북경부근으로부터 요하까지는 고조선으로부터, 삼한, 삼국, 고려의 중심 강역이었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도읍이었을 연경(燕京)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원래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나 옛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가 산서성과 하북성 서부를 중심으로 존속했으니 그 도읍 연경 역시 산서성 쯤에 위치했었을 것인데, 발해를 멸망시키고 일어난 거란은 산서성 대동의 북쪽인 지금의 내몽골 오란찰포(烏蘭察布)를 중심으로 일어나 그 남쪽에 위치한 연운 16주를 후진으로부터 할양받은 후 대제국이 되어 국호를 요(遼)라 하고 이 오란찰포에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를 설치하고 연경이라고 불렀고, 중경대정부, 동경요양부, 서경대동부, 남경석진부를 설치하게 된다.

  또한 요나라를 이어 일어난 금(金)나라는 지금의 내몽골 만주리 부근의 여진 땅 회령에서 일어나 남쪽으로 송나라의 도읍 개봉을 공격하여 빼앗은 후 대제국이 되어 회령에 상경회령부(上京會寧府)를 설치하게 되고, 옛 요나라의 상경임황부(연경)에는 북경대정부(北京大定府)를 설치하게 되며, 중도대흥부, 동경요양부, 서경대동부를 설치하고, 송나라의 옛 도읍 개봉에 남경개봉부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금나라를 이어 일어난 원나라는 연경(燕京)에 도읍하고 중도(中都)라 했다가 후일 대도(大都)로 이름을 고치게 된다.  


☆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 부근은 기원전 82년에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긴 옛 현토군의 치소가 있던 곳으로 비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중국이 주장하는 원나라의 중도유지는 요나라의 상경임황부였으며, 요나라 때 연경으로 불리웠던 오란찰포(집녕)가 아니라 그 동쪽 방향에 위치한다.

  원 중도유지(원 중도가 후일 원 대도로 바뀌었으니 원 대도유지라 해야 옳을 것이다)로 밝혀진 곳은 지금의 북경 서북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안고리뇨(安固里?), 황개뇨수고(黃盖?水庫)가 가까이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강보(康保), 정양백기(正?白旗), 서북쪽으로는 상도(商都), 화덕(化德), 동북쪽으로는 태복사기(太僕寺旗), 고원(沽源), 정남기(正藍旗), 다륜(多倫), 동남쪽으로 적성(赤城), 숭례(崇禮), 남쪽으로는 회안(懷安), 만전(萬全), 장가구(張家口), 서남쪽으로는 상의(尙義), 흥화(興和)가 위치한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의 연경과 요나라 때의 연경 그리고 원나라 때의 연경은 그 위치가 동일한 곳이 아닌 것이다. 

  원 중도유지(대도유지)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 만두영 부근임이 확실하다면 요나라 때의 연경 즉 상경임황부(오란찰포)로부터 동쪽으로 500리쯤 떨어진 곳에 원나라가 새로이 도읍 대도를 건설하고 연경이라 불렀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또 원(元)나라가 멸망한 후 명(明)나라는 처음에 남경에서 건국되었다가 지금의 북경으로 도읍을 옮기고, 북경순천부라 하였고, 이것이 다시 청(淸)나라로 이어졌는데, 청나라 역시 북경이라 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또 지금의 북경을 연경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전해지게 되어 사람들은 지금의 북경이 곧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도읍 연경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연경에 대한 기록들을 지금의 북경을 중심으로 해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에 따라 연경의 위치가 달라졌으니 연경에 대한 사서의 기록들도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해야 마땅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지금의 북경에 연경을 고정시켜 놓고 모든 역사를 해석하려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조를 보면, “옛날 대요(요나라)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을 적에 요의 임금이 연경(燕京)에 있었는데, 우리(고려)의 입조 사신들이 동경(요동경요양부)을 통과하고 요수를 건너서 하루 이틀 사이에 의주에 당도하여 연경 계주로 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이 기록은 하북성 난하 부근에 위치했던 고려의 사신들이 요나라의 연경(상경임황부)인 지금의 내몽골 오란찰포로 가는 여정을 기록했던 것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고려의 사신들이 한반도에서 북경으로 가는 기록이라 이해했다. 그러니 역사적 사실과는 아주 다른 해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북경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도읍 연경이 아니고, 요나라 때의 연경도 아니며, 금나라 때의 연경도 아니고, 원나라 때의 연경(대도)이 아니다. 지금의 북경은 명나라 때부터 연경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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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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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남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1.25 이 글을 잘 검토해 보시기를 권 합니다 최남석은 연경을 알마티로 추측하고 있는데''''"""?? 내공이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작성자문 무 | 작성시간 14.01.25 원나라의 대도는 현재의 북경이 아니다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입니다. 또한 원의 대도가 본시 장가구의 장북 부근에 그 유적지가 있다는 말도 또한 거짓일 것입니다. 연경이란 하북성주위에 존재해 있을 수 없는 지리적인 조건들이 있습니다. 더하여 주위에 있는 어양군(계주), 우북평군,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은 대륙의 동쪽지방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북평이란 말 그대로 서쪽(右)의 북평이란 뜻인데, 그런데 좌북평은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연경은 "최남석"님의 추측대로 신강성의 서쪽지역인 "중아"지방에 존재할 확률이 매우 높으며, 실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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