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령주(靈州)에 속하는 지명인 웅주(雄州), 경주(警州), 회주(會州)등을 설명하기로 합니다..
雄州,在靈州西南百八十里。
웅주,재령주서남백팔십리。
▲ 신당서(新唐書) 037권..
▶ 웅주(雄州)는 령주(靈州) 서남쪽 180 리(里)에 위치한다..
▷ 웅주(雄州)는 요나라(遼)와 송나라(宋)의 교역장이기도 했고,
본시 길주(吉州)의 옛 이름이며,
후에 중기 고려(高麗) 때에 와서 윤관(尹瓘)이 직접 친 여진(女眞) 땅이기도 했던 지명입니다..
警州,本定遠城,在靈州東北二百里,先天二年,朔方大總管郭元振置。
경주,본정원성,재령주동북이백리,선천이년,삭방대총관곽원진치。
▲ 신당서(新唐書) 037권..
▶ 경주(警州)는 본디 정원성(定遠城)이며, 령주(靈州) 동북쪽 200 리(里)에 위치한다,
선천 2년에 삭방대총관(朔方大總管) 곽원진이 두었다..
▷ 그런데, 원숭환(袁崇煥)은 명나라요동도독사(大明遼東都督師)으로서, 여진(女眞)의 요아합적(奴兒哈赤 : 누르하치)를 목베면서까지 수비하던 곳은 정원성(定遠城)이라고 합니다..
▷ 요동(遼東)의 경계가 되는 곳인 정원성(定遠城)은 령주(靈州)의 동북쪽 200 리(里)에 위치했다는 것입니다..
會州會寧郡,上。本西會州,武德二年以平涼郡之會寧鎮置。
회주회녕군,상。본서회주。무덕이년이평량군지회녕진직。
▲ 신당서(新唐書) 037권..
▶ 회주(會州) 회녕군(會寧郡),이상.. 본디 서회주(西會州)이다..
무덕 2년에 평량군(平涼郡)의 회녕진(會寧鎮)을 두었다..
▷ 회주(會州)는 평량(平涼)의 회녕진(會寧鎮)으로 두는 곳이므로, 그 평량(平涼)은 현 녕하성(寧夏省) 남변에 실존하는 지명인데..
명사(明史)에 의하면, 평량(平涼)은 요하(遼河)가 출원하여 흐르는 요해(遼海) 영역에 위치하는 지명입니다..
※ 요해(遼海)는 현재 통념에 따르는 바다를 가리킬 수 없고..
고대 기록 대로 요하(遼河)가 출원하여 흐르는 상류 유역 지대가 바로 요해(遼海)이라고 합니다..
▽ 그렇다면, 회주(會州)의 실체를 찾아보기 위해서, 금사(金史) 지리지의 상경로(上京路) 기록을 인용하기로 합니다..
經臨潢、金山,跨慶、桓、撫、昌、淨州之北,
경임황、금산,과경、환、무、창、정주지북,
出天山外,包東勝,接西夏,逾黃河,複西曆葭州及米脂寨,
출천산외,포동승,접서하,유황하,복서력가주급미지채,
出臨洮府,會州、積石之外,與生羌地相錯。
출임조부,회주、적석지외,여생강지상착。
▲ 금사(金史) 024권..
▶ 임황(臨潢)과 금산(金山)을 지나고, 경주(慶州)와 환주(桓州)와 무주(撫州)와 창주(昌州)와 정주(淨州)의 북쪽을 넘어간다,
천산(天山)의 밖에서 나와, 동승(東勝)을 포함하고, 서하(西夏)와 접하여, 황하(黄河)를 넘고, 다시 서쪽으로 가주(葭州)부터 지나 미지채(米脂寨)까지 미친다,
임조부(臨洮府)에서 나와 회주(會州)와 적석산(積石山)의 바깥이니, 생강(生羗) 지역과 서로 접하게 된다..
▷ 금산(金山)은 현 신강성(新疆省)의 아이태산(阿爾泰山)이나, 제 견해로서 현 감숙성(甘肅省) 서북부의 아이금산(阿爾金山)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보여집니다..
▷ 천산(天山)은 본디 흉노어로 직역하면 기련산(祈連山)이라고 했으므로, 그 곳은 현 감숙성(甘肅省) 서북부의 기련산맥(祈連山脈)을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 동승(東勝)과 서하(西夏)는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의 황하(黃河) 유역 지대에 위치하는 지명입니다..
▷ 임조(臨洮)와 회주(會州), 적석산(積石山) 등은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에 실존하는 지명입니다..
※ 따라서, 금나라(金)의 상경로(上京路)에 속하는 회주(會州)의 회녕(會寧)은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 주위 및 현 녕하성(寧夏省) 남변에 위치하는 지명임을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威州郡闕。中。本安樂州。
위주군관。중。본안락주。
初,吐谷渾部落自涼州徙於鄯州,不安其居,又徙於靈州之境。
초,토곡혼부락자량주사어선주,불안기거,우사어령주지경。
鹹亨三年以靈州之故鳴沙縣地置州以居之。
함형삼년이령주지고명사현지직주이거지。
▲ 신당서(新唐書) 037권..
▶ 위주(威州) 군관(郡闕).. 가운데, 본디 안락주(安樂州)이다..
초기, 토곡혼(吐谷渾) 부락은 량주(涼州 : 현 감숙성 서북부)에서 선주(鄯州 : 현 청해성 동부)로 옮겼다가, 불안하게 기거하였고, 또 령주(靈州) 지경으로 옮겼다..
함형 3년(鹹亨 三年 : 672년)에 령주(靈州)의 옛 오사현(鳴沙縣)을 주(州)로 두었으니, 사는 곳이다..
▷ 위주(威州)는 본디 안락주(安樂州)였고, 현 녕하성(寧夏省) 중부의 령주(靈州)에 두었는데..
명사(明史)에 의하면, 안락주(安樂州)는 당나라(唐) 당시의 토곡혼(吐谷渾) 땅으로서 이후 타안(朵顔), 복여(福余), 태녕(泰寧) 등의 삼만위(三萬衛)를 두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 즉, 근세 조선(朝鮮)의 서북변에 위치하는 삼만위(三萬衛)가 원래 현 녕하성(寧夏省) 중부의 령주(靈州 : 安樂州)에 두었던 곳이야말로 진실인 셈입니다..
# 따라서, 근세 조선(朝鮮) 시기에도 현 한반도(韓半島) 북부에 위치할 수 없는 지형적 모순이 있거니와..
현 녕하성(寧夏省) 중심 지대가 근세 조선(朝鮮)과 명나라(明)의 분쟁 지역이라야 비로소 본래 기록대로 들어맞습니다..
▽ 그렇다면, 당나라(唐) 당시, 근세 조선(朝鮮)의 고대 국가인 고려(高麗 : 高句麗) 관련 지명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합니다..
靈州大都督府,隋靈武郡。
령주대도독부,수령무군。
武德元年,改為靈州總管府,領回樂、弘靜、懷遠、靈武、鳴沙五縣。
무덕원년,개위령주총관부,령회락、홍정、회원、령무、명사오현。
二年,以鳴沙縣屬西會州。
이년,이명사현속서회주。
貞觀四年,於回樂縣置回、環二州,並屬靈武都督府。
정관사년,어회락현직회、환이주,병속령무도독부。
十三年,廢回、環二州,靈州都督入靈、填二州。
십삼년,폐회、환이주,령주도독입령、전이주。
二十年,鐵勒歸附,於州界置皋蘭、高麗、祁連三州,並屬靈州都督府。
이십년,철륵귀부,어주계직고란、고려、기련삼주,병속령주도독부。
▲ 구당서(舊唐書) 038권..
▶ 령주대도독부(靈州大都督府)는 수나라(隋) 당시의 령무군(靈武郡)이다..
무덕 원년(武德 元年 : 618년), 령주도독부(靈州總管府)로 고쳤고, 령(領)은 회락(回樂) · 홍정(弘靜) · 회원(懷遠) · 령무(靈武) · 오사(鳴沙)등의 다섯 현(縣)이다..
2년, 오사현(鳴沙縣)을 서회주(西會州)에 속하였다..
정관 4년(貞觀 四年 : 630년), 회락현(回樂縣)을 회주(回州) · 환주(環州) 등의 두 주(州)로 두었다가, 나란히 령무도독부(靈武都督府)에 속하였다..
13년, 회주(回州) · 환주(環州) 등의 2주를 폐하고, 령주도독부(靈州都督府)에 령주(靈州) · 진주(填州) 등의 두 주(州)가 들어갔다..
20년, 철륵(鐵勒)이 귀부하자, 주(州) 경계를 고란(皋蘭) · 고려(高麗) · 기련(祁連) 등의 3주에 두었고, 나란히 령주도독부(靈州都督府)에 속하였다..
▷ 고란(蘭州)은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의 란주(蘭州)에 속하는 주(州)이고,
기련(祁連)은 현 감숙성(甘肅省) 서북부의 기련산맥(祁連山脈)에 속하는 주(州)이기 때문에..
고려(高麗)는 현 녕하성(寧夏省) 중부의 령주(靈州에 속하는 곳이요, 우리 고대 국가인 고려(高麗 : 高句麗)와 철륵(鐵勒)이 함께 당나라(唐)와의 경계로 두었던 주(州)였던 셈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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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 무 작성시간 13.08.09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여기로부터 출발하는 조선사의 실체는 이제 중반전을 치르는 것처럼 가까이에 다가서는 느낌입니다.
좀 더 서쪽과 서북쪽으로 영역의 확장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 같구요. 왕조에 따라, 시기적으로 확장과 축소가 거듭 진행됐을 것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또 독사방여기요와 명사, 청사의 지리지, 열전속에 기록된 것들을 찾아보면, 서쪽으로 서진해야 될 필요성이 생깁니다. 찌는 듯한 잠못이루는 날씨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럼에도 좋은 내용을 올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