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朴氏)와 석씨(昔氏)는 본디 마한 본토인(馬韓 本土人)이었는데 어쩌다가 진한인(辰韓人)으로 바꿔진 사람들이지요.
박씨(朴氏)는 본디 "거서간"이라는 호칭이 있었는데, 서쪽에서 오는 칸이라는 의미이라고 합니다.
진한 혹 신라는 동쪽이었기 때문에 서쪽에 있는 나라는 마한(馬韓) 밖에 없습니다.
삼국지 위서의 기록에서 진한(신라)는 스스로 왕을 세우지 못하여, 항상 마한 왕이 진한왕(거서간)을 임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박씨(朴氏)는 마한 본토인이기 때문에 마한왕의 신임을 얻고 "거서간"으로 임용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학자에 따르면, 석씨(昔氏)는 백제(마한을 이어받은 국가) 멸망이후, 김씨(金氏) 권력가들에 의하여 학살당했다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희귀 성씨가 되어 몰락했던 이유이라고 합니다.
박씨(朴氏)와 석씨(昔氏)는 마한(馬韓)과 관련되는 성씨으로 진짜배기 한국인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
진나라(秦) 유민이 유랑하다가 마한에 들어오자, 마한이 동쪽을 떼어서 살게해주었더니 진한(秦韓)이 되었다는 역사를 기억하신지요?
신라로 말하면, 그 선조는 본래 진한의 종족이었다. 진한(辰韓)은 또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중국과 만리의 거리에 있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진나라 시대에 부역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마한으로 오자, 마한이 역시 동쪽 경계를 떼어 주며 거주하게 하였는데, 그들이 진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에 진한이라고 이름 붙였다.
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辰韓亦曰秦韓 相去萬里 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馬韓 馬韓亦割其東界居之 以秦人故 名之曰秦韓
▲ 양서(梁書) 권54 제이열전(諸夷列傳) 동이(東夷)
《동경속지(東京續志)》에 “진(秦)나라에서 도망친 사람이 계림(鷄林)으로 많이 와서 비로소 천황(天荒)을 개간(開墾)하여서, 상앙(商鞅)이 마련한 천맥(阡陌) 제도를 준용(準用)하였으므로 계림 전지는 모두 정방(正方)으로서 법이 있었다. 이러므로 진한(辰韓)을 진한(秦韓)이라 하기도 한다.” 하였다.
▲ 지관 수제(地官修制) 전제고(田制考) 6
김씨의 조상은 소호금천씨인데, 진나라 왕도 소호금천씨로 같은 계통입니다.
진나라(秦) 본기(本記)에도 나와 있듯이 그 유명한 진나라 진시황의 조상은 "소호(少昊)금천씨(金天氏)"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편에 김부식의 평론에 의하면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어서 성(姓)을 김씨로 하였다(新羅人自以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귀화 이민족인 셈이지요. 참고로 김(金)을 고대 방언의 발음으로 하면 진(秦)의 '진'과 같습니다.
그러니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秦)도 결국 신라(新羅) 계통의 역사에 해당되는 셈이고, 중국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원나라는 몽고의 역사이라고 하듯이, 진나라도 신라의 역사이라고 해야 옳지않겠습니까?
현재 감숙성(甘肅省) 서남부 지역은 본디 섬서(陝西) 지방으로서 진나라(秦)의 영역이었습니다.
진나라(秦)가 멸망하면서 천수(天水 : 漢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유랑하다가, 한중(漢中) 지역이었던 곳에 흐르는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마한(馬韓) 지역에 다다르게 됩니다.
마한이 동쪽을 떼어서 살게해주었더니 비로소 정착하게 된 곳은 현재 안휘성(安徽省) 남부의 황산(黃山) 지역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안휘성(安徽省) 남부에는 소호(少昊)금천씨(金天氏)의 고향 청양(青陽)과 가라(加羅 : 가야) 지명들 - 귀지(貴地), 허촌(許村), 묘수(廟首), 구지산(九支山) 등이 존재합니다.
양자강 이남에서 일으켜서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대만)을 세운 자들의 공통점은 지나(차이나)이지요. 그것은 진(秦)을 따온 것인데, 그들이 시작한 곳도 역시 대륙 신라의 영역에서 영향을 받았던 지역들이기도 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문 무 작성시간 19.11.27 한반도 동남모퉁이 경상도 땅에 옛 천년의 신라왕조가 있었다는 말은,
한 마디로 <"倭(왜)"가 열도(列島)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증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민사학의 대표적 조작품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오늘날의 한반도 땅 모퉁이 경상도 땅에 일천년 신라왕조가 존재해 있었다면, 현 경상남북도 땅은 신라의 박물관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경상남북도 땅에 건설공사가 온갖 곳을 헤집고 있어도 옛 신라를 증거, 증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것들은 단 하나도 발견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추정 또는 추측"하는 것이죠.
'반도사학과 식민사학'은 "혼이 없는 민족"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들을 타파하지 않고는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
작성자문 무 작성시간 19.11.27 신라, 최초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으나,
좋은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
작성자푸른 하늘 작성시간 19.12.03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 글 속에 "현재 감숙성(甘肅省) 서남부 지역은 본디 섬서(陝西) 지방으로서 진나라(秦)의 영역이었습니다"라고 하셨는데요...
감숙성 서남부가 아니라 동남부 아닌가요? 현무님 글 중에 감숙성 관련 부분 중 섬서성 부근 지역을 다 이렇게 감숙성 서남부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감숙성 서남부는 지금의 티벳고원 지역인데....
참고 부탁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玄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12.05 http://cafe.daum.net/munmoo-chosunsa/3pCY/139
파총산(嶓冢山).. 글을 참고 하세요.
그리고 유림(楡林)은 섬서(陝西) 지명으로 속하여 있는데, 승주(勝州)의 유림(楡林) - 유중(楡中)은 실제로 현재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
작성자지천태 작성시간 24.01.15 진한(辰韓)은 진(秦)나라가 망하고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용비어천가에도 나옵니다.
【惟는 思也라 於天子엔 言陛下요 皇太子諸王엔 言殿下라 陛者는 升堂之陛니 王者必有執兵하야 陳於階陛之側하니 群臣與至尊言에 不敢指斥일새 故呼在陛下者而告之니 因卑以達尊之意也라 若今稱殿下閣下節下足下侍者執事는 皆此類也라 班은 還也라 三韓은 馬韓辰韓卞韓也니 馬韓은 自朝鮮王隼이 浮海至韓地開國으로 歷四郡二府之時하야 至百濟始祖溫祚王二十六年하야 遂幷之요 辰韓은 秦之亡人이 來適韓國이어늘 馬韓이 割東界地以與之하고 名爲辰韓하니 新羅始祖赫居世 起於其地라 卞韓은 未知始祖니 新唐書云 弁韓苗裔 在樂浪之地라하니 疑則人有出於樂浪之地者 立國於卞韓이니 在溫祚之前爾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