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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물 묘사의 잔상

작성자신나|작성시간17.04.02|조회수113 목록 댓글 15

지난 목요일! (음력 3.3. )남원한우물 충장공할아버지 묘사에 다녀왔다.올해는 어머니만 모시고 갔다왔다. 매년 느끼는거지만 어른들만 아직까지 많이 참석하시고 있어 전통이 끊어질까 염려하지 않을수 없다.또한 진종손들이 주로 참석해서 제대로 후손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되고있어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해서 지금부터는 젊은 종손들을 잘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참석하고 모든 종중행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수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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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4.09 【임실=뉴시스】

    임진왜란 당시 임실군 운암면 전투에서 천명의 의병을 이끌고 만여명의 왜군을 섬멸한 충장공 양대박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전북 임실군이 복원한 승전비 모습.(사진=임실군제공)/박영민 기자 ymp@newsis.com<관련기사 있음>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천산 | 작성시간 17.04.12 임란 초기에 선조는 도성을 비우고 도망갔고 호남을 제외한 지역의 관군은 무너졌기 때문에 선조는 호남의 관군을 징발하여 왜적을 추격하여 자신을 지켜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호남 민심은 완전히 이반하였고 관군은 곧 반군이 되었습니다.
    반군이 된 관군은 흩어지기도 하였지만 무리지어서 도적떼가 되었고 왜군을 가장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충장공께서 위대하셨던 것은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흩어진 관군이 의병으로 모이게 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충장공께서 흩어진 관군을 다시 의병으로 규합하지 못 했다만
    호남이 무너지고 조선도 무너졌겠지요.
  • 답댓글 작성자천산 | 작성시간 17.04.12 또한 무리를 지어다니며 왜적을 가정했던 도적떼들을
    해산시키지 않았다면 백성들은 몇 배나
    더 힘들었겠지요.

    운암전투가
    왜적을 격파한 것이던
    아니면 왜적을 가장한 반란군을 소탕한 것이던

    충장공이 진정으로 위대하셨던 것은
    반란군의 된 관군조차 의병으로 돌리셨다는 것이겠지요.

    운암전투에서
    적들은 왜적으로 가장을 했고
    충장공의 아드님께서는 그래서 왜적으로 기록을 하였지만

    충장공께서 규합하신 의병들의 상당수가
    반란군의 되었던 관군이었고
    운암지역에 출몰한 왜적은
    반군이 된 관군의 무리들이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임란 초기에는 왜적이 호남 깊숙히 침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천산 | 작성시간 17.04.12 천산 그리하여
    나라를 버린 임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고
    반군으로 돌아섰지만
    충장공께서는
    몸소 의리로서 움직여 모두를 감동시켰고
    드디어
    의명으로 호남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짜릿한 드라마인지.
  • 답댓글 작성자신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4.12 천산 예 그렇군요 다시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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