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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감상실

두보나 이백같이/백석

작성자시소리|작성시간05.02.28|조회수483 목록 댓글 1
- 두보(杜甫)나 이백(二白)같이



오늘은 정월(正月)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련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얹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 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아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든 본대로 원소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正月)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뻘뻘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杜甫)이백(二白)같은 사
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백석 시집<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와시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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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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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加乙川 | 작성시간 05.03.02 백석시인이 뱉아내는 쓸쓸함이란 단어를 되뇌어 보니 아, 어찌 할 수 없는 쓸쓸함에 팔에 소름이 돋는 걸 봅니다 , ...왜 이 시를 읽고 있는 데 천상병의 싯구가 떠 오르는 걸까요? .아, 인생이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얼마나 깊은 것이기에 이리도 쓸쓸한 시간앞에 있는 것인지 , 백석의 시밭에 풍덩 눈물 흩뿌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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