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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날 리 기

연의 유래와 역사/과학/놀이

작성자서우 송명규|작성시간08.12.02|조회수1,410 목록 댓글 2

방패연의 과학

 

!

도시에서 자랐어도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 봤을 연.

우리나라의 연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체계적인 문서가 존재하지 않고,

몇 토막의 문장과 구전만이 전통연의 유래를 말해줄 뿐이다.

가장 근 시대에 알려진 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때 아군의 신호용으로 사용된, ‘신호연‘이라고 한다.

신호연은 특이한 여러 문양이 특징을 이루며 그 특징은 비교적 상세하게 전해오고 있으며, 각 문양마다의 신호체계가

지정되어 있다.이 신호라 함은 적의 동태를 원거리의 아군에게 알리는 수단이나, 적을 공격시의 명령하달 등의

당시로서는 뛰어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얼마전 종영된 주몽이라는 드라마에서는 고조선시대에 이용되었다던 연을 이용한 공격 방법도 있다. 이는 고증된 바 없어 논외로 두겠다.

 

우리의 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오리연과 방패연이 그것으로, 가오리연의 특징과 방패연의 특징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서두에는 연에 대해 전해오는 시대별 이야기와 놀이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방패연의 사전적 의미(네이버 검색)

참연이라고도 한다. 직사각형(장방형)의 연면(鳶面)에 붙이는 색지(色紙)의 색과 모양에 따라, 또는 그림에 따라 각각 명칭이 다르다. 가운데 방구멍이 뚫린 방패연은 특히, 견고함과 유연성 면에서 세계에서 유례(類例)를 찾기 힘든 뛰어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얼레로 줄을 풀고 감아 높이를 조정할 수 있고, 조종하는 사람이 이동하면서 좌우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등 공중에서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어 연싸움에 많이 사용된다.

질기고 질 좋은 창호지와 마디의 간격이 긴 댓살 5, 그리고 질긴 실로 만든다. 가로 세로의 비례는 2 3으로 하고, 방구멍의 지름은 연 가로길이의 3분의 1보다 약간 길어야 한다. 또 연살은 두꺼우며 탄력이 좋은 대나무를 사용하되, 가운데를 굵게 하고 양끝은 얇게 다듬는다. 이 때 연살과 종이가 휘지 않을 정도로 연의 몸체를 15도 정도로 젖히는 것이 좋다. 이처럼 방패연은 공중에서 잘 날아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솜씨가 요구된다.

가운데의 방구멍은 연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을 쉽게 해 주고, 센바람을 흡수하여 연을 잘 뜨게 할 뿐만 아니라 조종을 자유롭게 한다. 허릿살은 공중에서 연이 놀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싸움을 할 때는 줄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연줄에 유리 가루나 사금파리를 섞은 아교풀을 묻히기도 한다. 이렇듯 역학적으로 구조가 완벽하기 때문에 연싸움이 가능한 연으로는 이 방패연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군사 작전용으로 띄운 전술신호연(戰術信號鳶)은 전투신호를 위한 암호 전달에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일종의 통신위성의 역할을 한 이 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방패연이다.

방패연은 몸체에 여러 가지 무늬·그림·글씨나 붙인 색지의 문양(·반원·사각형 등)과 그 색(빨강·파랑·노랑·흰색·검정 등)에 따라 꼭지연·반달연·치마연·동이연·박이연·초연·발연 등 다양한 종류로 나누어진다.

 

연놀이의 종류와 방법(*이하 전북문화광장 펌글)

높이 띄우기
연을 얼마만큼 멀리 높이 띄을 수 있는 가를 겨루는 놀이로, 연을 500m이상 띄우면 연의 무늬가 보이지 않고, 연을약 1km가량 높이 띄우면 눈에 보일락 말락하고 그 이상이 넘으면 보이지 않는다. 연은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을 세차게 받기 때문에 연이 파손되거나 연실이 끊어질 우려가 있다.

재주부리기

글자 뜻 그대로 연의 재주를 보이는 놀이다.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서 연은 왼쪽, 오른쪽으로 또는 급전(急轉), 급강하(急降下), 급상승(急上昇) 등 다양한 궁중곡예(空中曲藝)를 부린다. 이는 연날리는 솜씨에도 달려있지만 그 보다도 우리 나라 연만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특징이 다양한 기동성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끊어먹기(연싸움
)
대표적인 연놀이로 2개 혹은 그 이상의 연이 서로 교차하여 서로 연실을 비벼서 끊어먹기를 겨룬다. 끊어먹기 연놀이에서는 연실의 질기고 약함이 다소 승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의 조건들이 갖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첫째, 정확한 구조로 연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연실에 사기를 고르게 먹여야 한다. 세째, 연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끊어먹기의 요령은 다음과 같다
.

-
바람의 흐름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
-
연과 얼레의 각도는 항상 45°를 넘지 않도록 한다
.
-
상대편의 연이 바람을 잘 타고 떠 있을 때는 될 수 있는 한 상대편의 연에 접근하지 않는다
.
-
상대편의 연이 접근하여 공격할 때는 바람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이편의 연을 재빨리 상대편의 연실에 거는 것이 유리하다
.
-
이 때 상대편 연이 머리를 돌려서 물러갈 때 거는 것은 이편에게 불리하다
.
-
연이 서로 얽혀서 약500m이상 풀어 주었다고 생각되면 될 수 있는 한 연실이 땅에 닿지 않도록 조금씩 풀어서 조종한다
.
연줄 끊어먹기 놀이에서 우리 조상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엿볼 수 있다. 이긴 쪽이 진 쪽을 위해 한 턱 내는 것이 그것이다, 진 편의 연이 이긴 편을 위하여 먼 하늘로 길보를 전하러 갔다고 여겨 진편에게 한 턱 내는 아름다운 미덕의 풍습인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진 편에서 이긴 편을 위해 한 턱 낸다는 것인데 이는 진 편(연줄이 끊어져 날아간 연)은 이긴 편(끊은 연)이 자기를 위해 연을 끊어 주어 자기의 액땜을 대신 해 주었다고 해서 한 턱 낸다고 한다. 여하튼 우리 조상은 옛부터 모든 것을 양보하고 남을 생각하며 빼앗고 침범하기 보다는 남을 대접하고 도와 주기를 좋아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이하 속초문화원 펌글

 

 연 鳶 kite (이하 속초문화원 펌글)
연을 가지고 놀 때 한국인은 의젓하였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보는 자는 노예의 조건을 거부한다.” - 《한국찬가》 (* C.V.게오르규著) 예로부터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설날이 되면 동네 꼬마들은 모두,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연에 그들의 소원을 실어 하늘 높이 날려보냈다. 어느 정도 연배에 이른 어른들에겐 연날리기 뿐 아니라 연싸움에 대한 기억들도 새로울 것이다. 마을의 모든 연들을 물리치고 마지막 남은 연이 땅에 내려지면, 수많은 군중들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챔피언을 맞이하듯 박수 갈채를 보내곤 했다. 우리 민족이 단합할 수 있는 공간과 소재라면 언제 어디서든 지나친 관심을 보여주었던 일제에 의해 한때 연날리기나 연싸움은 물론, 연의 제조마저 금지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 시절 마디마디 응어리졌던 가슴을 잠시나마 푸른 하늘에 맘껏 풀어놓게 했던 우리의 방패연, 가오리연들은 아직도 이 산천 위를 날고 있다.

연의 유래

우리나라의 연은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것으로 역사적인 기록으로는삼국사기에 신라 진덕여왕 원년(서기647)에 김유신 장군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연을 사용하였으며, “동국세시기에서는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서기1351) 탐라(현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던 몽고인들의 반란을 정벌할 때 연을 사용하여 성안을 정찰하고 갈대 씨를 뿌린 후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후 불을 질러 섬을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충무공전술비연을 제작하여 섬과 섬, 섬과 육지 등을 서로 연락하는 통신수단 및 작전을 지시하는 전술신호와 암호수단으로 사용한 예를 볼 때 우리는 더 한층 우리 겨레의 지혜와 슬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후, 영조대왕 때(1724)에는 궁안에서 청·홍으로 편을 나누어 연을 날렸으며 동네마다 백성들의 화합을 위해 연날리기를 적극 장려한 바, 농한기 때인 음력 12월부터 연 날리기를 시작하여, 그 절정인 정월 대보름날에액막이연을 날려보냄으로써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연 날리기를 끝으로 농사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 고유의 연 날리기는, 조선시대 말 일본의 우리 민속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금지하였으며, 또한 6.25동란 등으로 인해 연날리기는 우리 민속놀이로서의 명맥이 거의 사라져 갔으나, 자유당 시절 민족정신을 계승하자는 정부의 정책으로 연날리기를 적극 장려하고, 연 관련 기능 보유자들을 수소문하여 광복후(1954) 처음으로 연날리기 대회를 열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연이야기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연을 날리는 사람을 왜백정이라 하였을까?

이 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1724년 영조대왕 당시만 해도 연은 궁 안에서만의 놀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삼정승 육판서들이 모두 모여 친목도모를 위한 연 끊어먹기 시합을 하다가 한 정승의 연이 밭에 떨어졌고 그 연을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하게 되었다. 연이란 것은 궁안의 정승들이 날리는 것이였기에 돌려주려고 궁으로 찾아가니, 정승은이 연은 나에게 필요치 않으니 자네가 가지고 가서 날리도록 하게나!” 하였다. 그 이유는 연에 오물이 묻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농부는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온 즉시, 연에 묻은 오물을 깨끗이 닦고 하늘에 띄어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농부는 친구들과 함께 똑같은 연을 만들어 날려보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 날리기는 정말 신나고 즐거운 놀이여서 모두가 좋아하게 되었고, 마을사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연 날리는 재미에 취하게 되어 농사는 점점 엉망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승이! 큰일일세. 백성들이 농사일은 게을리 하고 연만 날리니 이 일을 어찌할꼬!” 하고 한숨을 내쉬며 걱정하던 끝에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게 되었고, 이에 왕은 정승들과 판서들을 불러모아 이 사실에 대해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회의 중 한 정승이정월 대보름이 지나서 연을 띄우는 자는백정이라 칭한다고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말하니, 왕은참 좋은 생각이구나!” 하고 기뻐하시며 다음날 바로 방을 붙이도록 이르셨다.

그때 당시만 해도백정이라는 호칭이 붙은 사람은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고 있는 터라 그 방을 붙인 후로는 정월 대보름 이후 연 날리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연 날리기는 겨울철에 하는 놀이가 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연에 대한 옛이야기가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소망연(액막이연)

연날리기는 옛날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철 민속놀이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현대놀이 문화의 발달과 컴퓨터 전자오락문화 등으로 쇠퇴해 왔습니다. 옛날에 가장 많이 날리는 때가 바로 설날에서부터 정월대보름까지인데 특히, 보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자기의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써서 하늘 높이 날린 후에 연줄을 끊어 하늘 끝까지 한없이 날아가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 해에 자기에게 다가올 액운을 연과 함께 날려버려, 아무 탈없이 무병하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는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으로서 이것을 송액 또는 액막이연이라고 불려졌습니다.

연날리기가 일반인들에게 민속놀이로써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 영조임금의 때로, 정월대보름이 되면 전국에서 연날리는 사람들이 한양의 수표교에 모여 전국적인 행사를 하였다 합니다. 이러한 우리 민속놀이가 일제시대 때에 와서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 및 6·25 동란을 겪으면서 점점 쇠퇴의 길을 걸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 충무공 전술비연

이 충무공 전술비연은 오늘날과 같이 무전기나 무선통신 등이 없었던 400년 전인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통신 및 암호 수단으로 사용했던 일종의 신호 연입니다.

이 충무공 전술비연은 잘 조화된 색상과 수십가지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각각 연마다 훌륭한 이름을 붙여서 사용되었다고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 당시 사용했던 연들은 연에 그려진 문양에 따라 뜻을 달리하여 사용되었는데 삼봉산 문양의 연(일명, 삼봉산연)을 띄워 날리면 삼봉산에 모이라는 뜻이고, 삼각형을 2층으로 크게 그려넣은 연(기바리연)을 띄우면 왜적과 백병전으로 맞붙어 싸우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청색바탕에 붉은 문양이 그려진 연(청홍외당가리연)이 떠오르면동쪽과 남쪽에서 동시 공격하라는 뜻이고, 고리가 아래로 길게 늘어진 연(긴고리연)이 떠오르면태풍이 불때 군선의 줄을 길게 매라는 뜻이며, 또한 동그란 달 모양을 그려넣은 연(된방구쟁이연)이 뜨면달이 뜰 때 공격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전통 방패연은 가운데에 방구멍이 있어서 바람이 약하거나 강할 때도 날릴 수 있으며, 하늘을 전후좌우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연으로, 이러한 옛 선조들의 과학적인 연 제작의 발상과 이 충무공의 과학적인 연의 이용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지혜를 다시한번 엿볼 수있게 합니다.

옛 문헌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에 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고증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방패연에 여러가지 문양을 그려 넣어 전투명령 전달의 통신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현재 총 55종의 문양과 그 뜻이 전해오고 있는 전술비연은 각각 문양마다 다른 암호를 넣어 작전명령 전달을 위해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400년 전 통신수단으로 이용된 연에 어떠한 뜻이 담겨져 있는지 연의 문양이 나타내는 명령과 각각의 연의 명칭에 대하여 알아보자.

우리나라 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초기에는 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반란을 평정하기 위하여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나 최영 장군이 연을 이용하여 성을 함락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나타나 있다.

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기록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연을 통신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 하면 거북선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거북선의 과학적 구조와 견고함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북선을 제외하고 임진왜란 때 통신수단으로서 큰 공헌을 한 연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과는 달리 무전기가 없었던 그 옛날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은 연을 직접 제작하여 섬과 섬 사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수단으로, 또는 작전지시의 방편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이 충무공이 작전신호 및 암호용으로 사용했다는 이 충무공 전술 신호연은 수십가지에 달하는 연의 문양과 각기 다른 문양으로써 잘 조화된 색상, 그리고 연에 그려진 문양마다 다른 연의 명칭과 대나무로 교묘하게 잘 다듬어진 연의 살대, 연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과학적인 제작방법을 택하고 있다.

군사작전 신호용으로 사용된 이 연은 연에 그려진 문양과 색깔에 따라 명령 내용을 달리하여 사용되었는데 전투 중에 사전의 상황을 알려 지휘관 또는 병사들에게 전투준비를 갖추라는 예지신호이자 작전명령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이 신호연은 일종의 통신위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적군이 알지 못하도록 문양에 각기 다른 암호를 넣어 전투명령 전달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또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함께 우리 조상들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가 되는 이 연은 당시 국가의 극비였기 때문에 남은 기록이 거의 없어 연의 문양이 지닌 의미를 밝히는 데 상당히 힘든 고증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6~7년만에 31가지의 군사작전 신호연을 재현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연의 문양에 따라 명령이 달랐는데 삼봉산 문양이 있는삼봉산연을 띄우면 흩어져 있는 군선과 군사들은 삼봉산 앞 바다로 집결하라는 뜻이 된다. 또 삼각형 모양을 2층으로 크게 그려넣은기바리연이 올라가면 백병전으로 왜적과 싸우라는 뜻이며, ‘돌쪽바지기연을 올리면 병참이나 병기의 보급을 알리는 뜻이 된다.

충무전술비연 중 28가지 연에 대한 각각의 명칭과 연에 그려진 문양이 나타내는 숨은 뜻, 명령의 내용, 그리고 연에 담긴 명령을 언제 수행할 것인지에 대하여 현재 밝혀진 바로는 다음과 같다.(별첨 사진 참조) 55종의 문양이 남아있는 이 충무공 전술 신호연은 특이하게도 후퇴라는 명령의 신호가 없었다고 한다.

연의 문양에 넣은 색 또한 우리 민족의 오행사상의 기본색인 빨강(), 파랑(), 노랑()의 유채색과 까망() 흰색()의 무채색을 사용하였다. 이 색은 각각 오행사상의 오방위를 상징하는데 황은 중앙, 청은 동쪽, 흑은 북쪽, 백은 서쪽, 홍은 남쪽을 뜻한다고 한다. 또 하나는 하늘에 연을 띄웠을 때 붉은 색, 흰색이 검은색이 눈에 가장 잘 띄기 때문이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연의 크기는 가로가 90~120㎝로, 하늘에 높이 띄워도 연에 그려진 문양이 아군들에게 뚜렷하게 보이도록 대형 연을 제작했다고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통신수단으로서 연의 기능을 볼 때 매우 과학적인 제작방법이 요구된다. 그 중 연의 움직임과 견고함을 결정하는 대살은 그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연을 안정적이고 높게 띄우기 위해서는 기둥살을 윗부분은 둔탁하게, 그리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연하게 만들어야 하며, 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허리살(가늠살)은 사람의 허리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굵어야 힘이 있어 움직임이 용이하고, 너무 가늘면 연이 올라가면서 균형을 잃게 된다.

전략상 통신 및 암호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이 충무공 전술 신호연은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400년 전 전쟁무기로서 수천 수만의 생명을 좌우하는 작전용 명령신호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운데 방구멍이 있어 바람이 약하거나 강하게 불 때도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으며,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급상승과 급하강, 전진과 후퇴 등이 가능한 과학적 구조를 가진 방패연의 제작과 이 충무공의 과학적인 연의 이용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과학적 지혜를 다시한번 엿볼 수 있게 한다.

방패연

방패연의 구조와 특성

방패연의 구조

우리 방패연은 보통 직사각형의 한지 대나무 살 5개를 가로질러 붙이고, 가운데에 세계 각국의 연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연만 있는 방구멍이라는 바람구멍을 뚫어 놓은 연으로, 연 위에 그리는 그림 문양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고, 그곳에 과학적으로 벌이 줄을 매어 하늘을 날게 한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방패연의 특징

, 물고기, 용 등의 그림이나 모양으로 그저 높이 띄우는 데만 관심을 갖는 외국연에 비해, 우리 방패연은 방구멍으로 바람이 약할 때에는 바람의 힘을 모아주고, 강할 때에는 바람을 구멍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여, 어느정도 강한 바람에도 연이 잘 상하지 않으므로 바람이 약할 때나 강할 때 모두 잘 날릴 수 있습니다.

머릿살의 양끈과 연의 가운데, 아랫부분(꽁숫구멍)의 연줄을 같이 모아 과학적으로 매었으므로, 연 실을 조종하는 얼레 및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연을 하강, 좌우로 빙빙 돌기, 급상승과 급강하 및 전진후퇴 등의 공중묘기를 부릴 수 있습니다. 또한, 얼마든지 높이 날리고, 빠르게도 날릴 수 있는 우리 방패연은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 위에 장식하는 그림 무늬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꼭지연, 반달연, 치마연…) 그 중에서도 이 충무공이 만든충무전술비연은 수십가지의 문양으로써 통신과 전술의 신호로 이용해 온 것은 우리 방패연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방패연 만드는 순서와 각 부분 명칭

재료 : 머릿살, 허릿살, 장살(2, 제일 긴 것) 중살,한지,

준비물 : 자 컴퍼스, 연필, 가위, 튼튼한 실 * 연을 만들기 전에 설명을 잘 읽어본 뒤에 순서대로 한다. * 연 살이 구부러진 것은 양손으로 곧게 잘 편다. * 연 종이를 세로로 반을 접고, 연의 윗부분 머리살 붙이는 곳(2)은 가로로 접는다. 머릿살, 장살, 중살, 허릿살 붙일 부분에 연필로 줄을 긋고, 방구멍은 규격에 맞게 컴퍼스로 그린 다음 오려낸다.

1. 연의 머릿살을 붙인다.
대나무에는 겉대와 속대가 있는데 마디가 튀어나오고 반질반질한 부분이 겉대이므로 반대쪽인 속대(노란)부분에 풀칠한다.

2. 두 개의 장살을 대각선으로 붙이되, 아래 부분을 먼저 붙이고 위를 붙인다.

3. 다음에 중살과 허릿살을 붙이는데 대각선 장살 밑으로 넣어 붙인다.

4. 머릿살 윗부분 종이에 풀을 칠하여 잘 접어 붙여 마무리 한다.

5. 연이 완성되면 양 귀를 당겨 활벌잇줄을 매고, 양 귀에 모두 줄을 맨 다음, 중살의 아래부분에 그림과 같이 연필로 두 개의 구멍을 뚫어(꽁수구멍) 줄을 매고, 연의 중심이 되는 댓살 교차 부분에도 줄을 매어 네 개의 줄을 합한다.
줄의 길이는, 양 귀의 두줄(벌잇줄)은 꽁수구멍 뚫은 곳까지로, 꽁숫줄의 길이는 양 귀 지점까지로 정하고, 가운데 줄은 약간 느슨하게 하여 4개의 줄을 합하여 매듭을 진다.

방패연 댓살 붙이기 순서 및 명칭

방패연 규격 및 명칭 (가로 : 세로=2 : 3)

연날리기의 요령

연은 어떻게 해서 올라가나? 연을 만들어서 날리기 전에연은 어떻게 올라가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연이 올라가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바람이 있어야 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피부에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바람의 흐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바람은 낮에는 차가운 바다에서 육지로 향해서 불기 때문에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바라보고 날려야 잘 날고[그림①], 반대로 저녁에는 찬 육지에서 따뜻한 바다쪽으로 불기 때문에 바다를 바라보고 올려야 잘 뜬다[그림②].

그러면 지면 가까이의 바람은 약해도 어느 정도까지 오르면 하늘에서 기류를 타 안정된 연오르기가 된다[그림③]. 다시 말하면 연은 언제나 바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맞바람을 이용하여 비스듬히 날리면 올라간다. 이것은 바람 방향으로 미는 힘(저항력, 항력)과 연이 올라가려고 하는 힘(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이 바람과 수직垂直으로 되면 양력이 작동하지 않아 뜨지 않는다. 적당한 양력과 저항력을 받도록 벌이줄과 활벌이줄을 조정해야 한다. * 25시》로 유명한 루마이나 태생, 프랑스 국적의 소설가. 1974년 직접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도 있었던 그는 우리 민족과 문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속초문화원에서도 가장 전통있는 행사로서 경연의 형식을 빌려 펼쳐지는 매년 정월 대보름의연날리기는 가장 주목을 받는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앞으로 지면이 허락된다면 연재물로 한번 다루어 볼 생각이다.- 편집부

 

 

***블로그 펌글

방패연



 

오십 년대 중반, 높은 하늘에 드문드문 새털구름이 일고 바람결이 제법 서늘하게 이마에 와 닿는 12월 초순 즈음이면, 들판을 뛰어 놀던 농촌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놀이마당이 펼쳐졌다이때는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고 보리밭을 밟아주는 때라 누구 한사람 나무라는 이도 없었기 때문에 무한정으로 뛰어 놀기에 좋은 자유지대로 변했던 것이다.

 

그런 들녘에서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연날리기를 많이 했다. 입는 입성은 비록 턱없이 허술하고  연실 또한 무명실이어서 그리 튼튼하지는  못했지만, 연만큼은 아주 큼직 막한  방패연을 만들었다. 이런 연을 들고 나가 서편의 하늬바람을 등지고 서서 얼레 실을 풀어 날리노라면  연은 하늘높이 떠올라 주었던  것이다. 그런 연은  마치 한 마리의 학과도 같이 우아하게 날았다이 광경은  목격한  친구들은 어느새 몰려나와  합류를 하였다.  

 

연을 날리는 요령은 나는 상태를 보아 적당히 당겨줌과 풀어줌을 반복하는 데에 있다.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좋은 연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띄울 수가 없다. 당겨주어야 할 때 당기지 않으면 그대로 스르르 내려앉고, 풀어주어야 할 때 풀어주지 않으면 뱅글뱅글 돌다 종래는 땅바닥에 처박히기 때문이다나는 연을 다루는 법을 비교적 빨리 터득하여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잘 날렸던 것이다.

 

 다른 공작솜씨는 별로 신통치 않은데 연만큼은 잘 만들었다. 아니 그 밖에도 하나를 더 든다면 팽이를  깎는 기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연을 만들 때처럼 요령이 필요한데, 무작정 깎아서는 아니 되고, 요령을 알아야 한다. , 옹이나 매듭을 이용하여 그것이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깎아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이유는 무게중심이 아래로 향하게 해야만 균형을 잘 잡고 넘어지지 않게 때문이다. 그런 팽이에다 나는 꽁무니에는 꼭 구술을 박았다그렇게 해두면 쳐놓고 집안을 두 바퀴를 돌아도 끄떡없이 버티어 주는 것이었다.

하나, 팽이는 쇠 구슬 덕분이지만 방패연은 그렇지 않다. 전반적인 조화를 맞추는 게 비법인데, 그것이 노하우인 것이다. 연이 잘 날기 위해서는 방구멍의 크기와 활 굽기의 정도, 연줄의 각도를 잘 맞추어야 하고 연 실도 튼튼한 것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처음부터 방패연만을 만든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여느 아이들처럼 나도 가오리연을 만들어 날렸다. 종이는 비료포대 속지를 뜯어내어 만들다가 차차로 한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그런 연을 만드느라 한지 서적을 뜯어내는 바람에 아버지로부터 호된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방패연을 만들어 볼 생각을 한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였다. 어느 날 이웃마을에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인데, 머리 위에서 웬 실오라기가 떠서 너울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유심히 보았더니 그것은 커다란 방패연에 연결된 실오라기였다. 그렇게 큰 방패연이 대책 없이 갈팡질팡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연은 누군가가 날리다가 놓쳐 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그 연을 보는 순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연을 따라 내닫기 시작했다. 한데, 그 연은 안타깝게도 잡히지 않고 흐르는 개울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쉬웠다.

 

그러나 나는 비록 못쓰게 된 연일 망정 그것을 보고 얻은 소득이 있었다. 형태와 구조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만들어 보고 싶어도 어떻게 만드는지를 몰라 시도를 못했는데 실물을 보니 터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를 이를 바탕으로 곧바로 방패연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 연의 크기대로 창호지를 반 절지로 자른 다음 활에는 소리가 나도록 풍지를 붙이고, 꽁무니에는 커다란 수술을 매달았다. 그리고 연 실도 여느 때 보다 두 겹으로 튼튼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만든 연은 성공적이었다. 균형도 잘 잡히고 조종하는데 따라서 높이도 높게 떠올랐던 것이다. 점잖은 품이 예전에 촐삭대던 가오리연에 비교 될 바가 아니었다

한데, 그런 연이어느 날 그만 돌발사고가 나고 말았다. 갑자기 불어오는 돌개바람에 그만 마을 앞 당산나무에 걸리고 만 것이다. 연은 얼마나 심하게 곤두박질 쳐 박혔는지 아무리 잡아 당겨도 옴짝달삭 하지 아니했다. 해서 하는 수 없이 포기하는 심정으로 실이나 수습하려고 힘껏 잡아당기니 이번에는 그 실마저도 중간에서 뚝 끊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허망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걸린 연은 근 3,4년 동안을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나무에 걸린 채  매달려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 당산나무에 걸려 옴짝 달삭을 못하고 있던 연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면서 그때는 비교적 상황에 따라 풀어줌과 당기는 지혜를 응용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살아오면서 실제는 그런 지혜를 활용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다. 주로 처세문제나 경제적인 대처방법에서였다. 늑줄을 주어야 할 때 그렇지를 못하고 오히려 당기거나, 당겨야 할 때 늑줄을 주는 어리석음을 많이 범한 것이다연을 생각하면 그런 후회도 함께 인다.2005)

 

 

 

방패연에 있는 구멍의 정체는?

공기보다 무거운 연을 날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필요한데 바람으로 연을 날리게 되면 연은 바람에 밀려 위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하여 연은 양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모든 연은 바람, 공기의 저항을 그 원동력으로 하지만 바람이 너무 셀 때는 문제가 된다. 바람이 너무 세면 연이 그 저항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센 바람에도 끄떡없이 날 수 있는 연을 고안해 냈으니 바로 방패연이다. 방패연 중앙에 뚫린 구멍을 방구멍이라고 하는데, 이 방구멍이 바람 조절 역할을 한다. 바람이 약할 때는 연 표면에 모인 공기가 이 방구멍을 통과하면서 상승하는 에너지를 발생시켜 연이 위로 올라가게 하고, 바람이 강할 때는 이 방구멍으로 남는 바람을 내보내 바람에 대한 저항을 줄여서 연줄이 끊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방패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의 표면이 되는 화선지와 그 토대를 이루는 대나무 살이 필요하다. 대나무 살은 총 5개로, 윗부분의 머릿살, 중간의 허리 살, 위아래로 가르는 중살, 그리고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장살 2개 등이다. 맨 아래에는 대나무 살을 대지 않는데, 아래쪽에 살을 둘 경우에 아래쪽이 저항을 많이 받아 연의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

연줄을 묶을 때는 머릿살의 양끝을 실을 이용해 뒤로 당겨 타원형을 만드는데, 이는 바람을 많이 받아도 그 저항을 부드럽게 상쇄해 상승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꽁수라고 불리는 곳과 양 머릿살 부분을 삼각뿔 형태로 묶어 바람을 아래로 흘리지 않도록 하고 평형력을 키워 연이 뒤집히는 것을 방지한다. 양 머릿살과 꽁수와 연결된 연줄은 전체 연길이의 1/3지점에서 삼각뿔 형태로 묶어야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연이 상승과 하강, 좌우로 빙빙 돌기, 급상승과 급강하, 전진과 후퇴 등이 가능하게 된다. , 방패연의 방향조절은 방구멍과 방패연의 독특한 구조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

이에 반해 가오리연은 방구멍이 없고 대신 꼬리를 길게 붙여 바람이 꼬리를 타고 흐르게 하여 쉽게 띄울 수 있고, 만드는 방법도 비교적 쉽다. ,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꼬리를 통해 균형을 잡는 방식을 취한다. 방패연이 대나무 살을 5개 사용하는 것에 비해, 가오리연은 2개만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벼워 공중으로 올라가는 시간이 굉장히 빠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가오리연이 대부분인 이유는 연을 높이 날려 액운을 쫓고 행운을 기원한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연 놀이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연 날리기는 이러한 주술적인 목적 외에 연 싸움이라는 목적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연 싸움은 연줄에 유리가루를 묻혀 상대의 연줄을 먼저 끊는 쪽이 이기는 경기를 말한다. 만약 가오리연이나 방향전환이 불가능한 기타 다른 연이라면 이렇게 방향전환이 필요한 연 싸움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주술적 목적일 때는 가오리연을, 방향전환 등 보다 다양한 놀이를 할 때는 방패연을 선택적으로 사용해 왔다
.
연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발상의 전환이며, 이 발상의 전환속에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과 선구자적 정신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_이상 퍼온글 편집자 시흥갯골 연날리는 마을 카페지기 카이엔터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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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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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미관 | 작성시간 08.12.02 지난 토요일에 낙상한 연들 줏어온것들 한번 날려보려고 강가 뚝방으로 나가 봤는데.. 쉽지 않더군요.. 더군다나 강바람이 좋을줄 알았는데.. 뚝위에 올라가니 바람이 뚝에 부딧혔다가 치솟아 올라서 다시 내려 꽃히는 바람에 연올리느라 성질 다버리는줄 았았어요..ㅎㅎㅎ 잘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즐겁고 반가운 날이었습니다. 일요일에도 있었어야 되는데.. 밤늦은시간까지 회의 하느라 정신없었네요.. 안부전화도 못하고 말이예요..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고 앞으로 많은 날들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서우 송명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02 네..저 또한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계신것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같이 할 수 있는, 같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참! 그리고 싸움연은 정말 전문가 아니면 올리기 힘듭니다...꽁수줄을 약간 조정해 줘야 합니다...다음에 알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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