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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일기

가마솥과 호롱불의 추억

작성자이냐시오|작성시간22.01.05|조회수33 목록 댓글 1

나의 시골 고향집에는 가마솥이 2개 있었다.

몸채의 부엌에 있는 것은 매일 밥을 지었고, 그 옆의 양은솥은 국을 끓였다.

밥 지을 때는 쌀을 씻어서 뜨물은 부엌 앞 넓은 단지에 쏟아부어 쇠죽을 끓일 때 썼다.

무쇠솥에 밥물은 손등에 물이 잘방잘방 할 정도로 하면 되었다.

산에서 긁어온 소나무 깔비(잎)가 불땀이 좋아서 불쏘시개로는 최고다.

그 위에 잔가지, 굵은 가지를 차례로 얹어서 불을 때면 불멍의 시간이 금방 흐른다.

처음 불을 지필 때 자꾸 꺼트리는데 엄마가 여자하고 불은 자꾸 건드리면 안된다고 하였다.

이윽고 솥에서 김이 푹푹 나고 옆구리에 눈물이 흐르면 더 이상 불을 안때고 남은 열기로 뜸을 들인다.

어릴 적 가장 괴로운 것은 밥의 양을 늘리려고 무우를 썰어넣어 지은 무우밥 먹는 것이었다.

하여간 밥지을 때 감자나 고구마 등을 얹어서 같이 삶으면 간식꺼리로도 아주 좋았다.

밥을 다 푸고 나면 누룽지를 긁어먹고 물을 부어놓으면 구수한 숭늉이 된다.

어느 집이든 부엌의 무쇠솥 상태를 보면 안방마님의 살림살이 솜씨를 가늠할 수 있다.

밥을 다 하고 나면 굵은 장작개비를 넉넉하게 아궁이 깊숙히 밀어넣어 놓으면

새벽까지 구들장이 뜨끈뜨끈하다.

그렇게 허리를 지지며 자고 나면 얼마나 개운한지 모르는데, 지금도 그 맛이 가장 그립다.

 

사랑채의 가마솥은 주로 쇠죽을 끓인다.

해거름 무렵에 작두로 썰은 볏짚과 콩깍지, 등겨와 물을 넣고 한참 불을 때야 한다.

구들이 직선으로 놓여서인지 바람이 불면 불길과 연기가 역류해서 눈물이 나고 머리카락을 태우기도 한다.

김이 나고 물이 끓으면 ㄱ자 도구로 쇠죽을 뒤집고 잘 섞은 후 뜸을 들이면 된다.

그 외에도 한겨울에는 이 솥에 물을 많이 붓고 덮혀서 목욕을 하였다.

바닥이 뜨거우니 나무판자를 깔고서 대충 때를 밀고 헹구면 끝이다.

그러다보니 손은 늘 터서 피가 나곤 했지.

해가 바뀌면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와 청국장을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사각틀은 꼬맹이인 내 발 크기가 맞아서 내가 다 밟아서 메주를 만들었다. ㅎ

그리고 잔치나 초상을 치를 때 돼지를 잡으면 또 물을 끓여서 털도 뽑고 선지도 만들곤 했다.

제일 맛난 것은 맷돌로 콩을 갈아서 만든 순두부와 두부였다.

학교 입학 전에는 저 시커먼 부뚜막에 형님이 부지깽이로

ㄱㄴㄷㄹ... ㅏㅑㅓㅕ...를 써서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동지 섣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비혀 내어
춘풍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깡촌의 겨울은 전기도 없이 글자 그대로 칠흑같은 밤이 길기만 하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많은 식구가 두리판에 둘러 앉아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면,

엄마는 찢어진 바지를 꿰매고 나는 숙제도 하고 이도 잡고...

윷놀이도 하고 새끼도 꼬고...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날엔 깊숙히 두었던 촛대를 꺼내 불을 밝히면 얼마나 눈부시게 밝았던지 모른다.

주전부리로 생 고구마, 군 고구마, 곶감, 강정, 강냉이 튀밥, 저장 무우를 꺼내 먹었다.

늦가을 마당에 우수수 떨어진 구슬만한 고욤을 단지에 저장해 두면 달디단 곶감(?)이 되는데

작은 씨앗이 많아서 그거 뱉어내다보면 배가 꺼졌다. 

민통선 텃밭농사도 방학에 들어가니 기나긴 겨울밤에 옛날 생각이 나서

주저리주저리 읊어보았다.

그나저나 올해는 3평짜리 온돌방을 짓거나 빌리거나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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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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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냐시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1.05 면사무소에 전화해보니 농막은 무조건 컨테이너만 된다고 한다.
    농막의 용도가 농기구를 보관하거나 일하다 잠시 쉬는 곳이지
    숙박용이 아니라면서...
    3평짜리 온돌방 하나도 안되냐고 물으니 그러려면 정식 건축절차를
    다 밟아야만 한다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것다. 플랜 B로....
    폐가 찾아 삼만리....는 안되고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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