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회주의 신자를 가리켜 가나안 성도라 불러도 되는가?’에 대해 나의 견해는 일단 아니라고 선을 긋고 싶다. 가나안 성도 모두가 무교회 정신으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진정한 무교회주의 신도인가? 라고 자문해볼 때 일단은 그렇다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려본다. 그렇다고 1년에 두 번에 걸쳐 열리는 (주로 道高溫泉에서 개최) 전국 무교회 집회에 단 한번이라도 참석한 적도 없다. 지체장애의 소유자이므로 함께 숙박을 해가며 참석한 분들께 폐를 끼치면서까지 임석(臨席) 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닐뿐더러 이동수단 조차 변변찮기 때문에 체념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십자가복음”誌가 발행 되고 구독하였을때는 光明을 찾아 발행하시는 분과 가끔 조우(遭遇)도 하고 믿음의 조언도 경청하곤 하였지만 어느날 발행이 중단되고 갑자기 종무소식이 되면서 이 또한 아쉬운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이 민족의 리더를 2005年度에 내가 전도를 하고 당시 그와 함께 얼마간 잠실(蠶室)로 교회(合同側)를 다니기도 했었지만 심혈관중재 시술과 함께 교회 출석을 마감을 하고 그와 더불어 2人 가정예배를 드려온지 어은 14년째가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있어 이제 교회(禮拜堂)의 출입은 그야말로 낯설 뿐만 아니라 어색함 그 자체라고 말 해야겠다. 나의 가정예배의 주 된 목적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것 만큼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자라가는데 목적을 두고 공부를 해왔다. 그럼에 여러 가지 주석과 주해서와 더불어 매월 나의 손에 쥐어지는 “성서신애”誌가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부족한 사람에게 貴한 “성서신애” 誌를 누락됨이 없이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 그 外 필요한 자료 특히 “日韓友和靑年回報”를 때 마다 보내주시는 손현섭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성산 장기려(張起呂)박사께서 복음병원(지금의 高神醫療院)을 설립하시고 순수 신앙으로 한평생 사셨던 부산. 그곳의 지근거리 기장(機張)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성서모임을 매주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무한 감사이자 14년 동안 단 둘이서만 예배를 드려오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그 옛날 복음병원에서 내려다 보는 송도 앞바다의 물결은 마치 프란츠 슈베르트의 즉흥곡 D. 899 Op.90 No. 4. A ♭장조의 첫 소절을 뜨 올리게 할 만큼 금빛 찬란한 물결이었다. 부산도 그렇지만 기장 또한 나에게는 전혀 낯설지만은 않은 곳이다. 1972년도에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대항교회에서 나의 이모부가 목회를 하셨고 기장읍 대라리는 나의 둘 째 형수의 친정이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53년 전 그 때 기억을 떠 올리자면 멸치잡이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던 대변항(大邊港)은 그야말로 깨끗한 바다로 내 마음에 새겨진 한 폭의 수채화였었는데 2003년 그곳에 갈 일이 있어 한 번 가 보았더니 폐수로 시커멓게 오염되어버린 바다가 나를 맞아주는 게 아닌가?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은 바다로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장은 푸른 동해안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강화 앞바다의 서해(西海)와는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 아뭏던 기장에서 송정을 거쳐 해운대 부전역까지 동해남부선 열차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동해 바다는 정동진(正東津) 앞 바다와 비견되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올 들어 유난히 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몇 시간씩 집중을 요하는 창작활동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대신 틈나는 대로 독서를 하고 있는데 김교신 전집과 송두용 선생 전집. 노평구 선생 전집에 손을 대고 있다. 특히 김교신 선생과 송두용 선생은 (물론 그 당시 시대상황이 그러했겠지만) 기성교회의 사경회에 때때로 초청을 받아 곧 잘 강연을 하신 것으로 안다. 오늘날 참다운 신앙이 아닌 종교가 편만한 교회에서 과연 어느 목사가 어느 교회가 명함도 없는 무명의 성도. 무교회 신자를 초청 강단에 세우겠는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혼자 살아온 지 어느듯 20년째가 되었다. 그 사이 나도 초로(初老)의 몸이 되어버렸고 딸 아이가 출가한지도 벌써 2년 째로 접어 들었다. 16년간 함께 생활해온 딸 아이가 출가하고 나서 왠일인지 나의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이러다 보니 나도 나지만 딸 아이의 걱정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런 나를 두고 언제 부턴가 딸 아이가 나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내로부터 듣는 잔소리가 아닌 딸 아이로부터 잔소리를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이 참으로 적잖은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 잔소리란건 다름 아닌 ‘아빠 이제 나이도 있고 혼자 산지도 오래됐는데 위의 아저씨하고 예배드리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교회라도 나가서 교인(사람)들 하고 교제도 좀 하고 사귀면서 살면 안돼?’라는 요지다.
물론 종교적인 아니 인간적인 생각이라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언젠가 누가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교회 다니다보
면 혼자 사는 권사나 집사들도 드러 있으니 그런 분을 만나 연을 맺고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면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나는 그 말에 대해 일축(一蹴) 해버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젠 딸 아이가 나에게 보채고 있으니 이게 왠 말인가? 비록 보챔
성격 은 다르지만 말이다.
얼마전 83歲로 돌아가신 박정희 대통령의 큰 따님 박재옥 여사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 남긴 수기(手記)가 화재가 되었다. “자식으로서 후회스러운 일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아버지의 재혼을 서두르지 못한 것이 자식으로서 자책이 되어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를 그렇게 외롭게 내 버려두지는 말았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버지가 재혼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어야 했다. 효자(孝子)가 악처(惡妻)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때늦은 후회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라고 술회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옛날 세대와는 다른 딸 아이의 채근은 이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그러나 아뭏던 매번 반복되는 잔소리에 못이겨 교회 출입을 한 번 고려해보게 되었다. (사무엘이 그랬고 엘리 제사장이 그랬듯이 부모의 신앙사상과 노선을 자식이 고스란히 이어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선왕(先王)의 참된 길을 온전히 걸어간 왕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길을 걸어갔을 뿐이다) 내가 무교회주의 삶을 살 때 나의 딸은 통합측 교회에 적을 두고 다녔고 그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신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사상과 노선은 나와 다를 지언정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느니만큼 더 이상의 논평은 생략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교회 문화와 풍습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 자식으로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삶이 때때로 답답하리라.
개독교라고 폄하되는 오늘날 사방에 늘려있는게 교회다. 예를 들어 상가 같은 경우 건물 하나마다 십자가가 다 세워져있다. 그 많은 교회중에 과연 주님을 가르치고 천국을 말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세상을 말하는 교회는 많지만 홰개를 강조하고 천국을 말하는 교회는 결코 흔하지 않을 터. 그런 교회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그때 마침 집 부근 3층 상가 건물에 들어있는 교회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교회일까? 하고 검색을 해보았더니 개혁주의 교회로서 보기드물게 웨스트민스트 고백과 하이델. 벨직 교리문답을 공부하는 교회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다. 대개 내가 아는 교회에서는 이런 것을 잘 다루지를 않는데 일순(一瞬) 궁금증이 동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일이다. 신반포중앙교회를 시무한 K00 목사란 분이 있었다.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겸 교수로 활동하다가 이 교회로 부임을 하게 되었는데 이 분 설교의 특징은 제목 설교가 아닌 일명 말씀일기 형식의 강해 설교였고 웨스트민스트 대 · 소요리문답의 교안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형식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순간 그 분이 생각이 나서 혹시 그 분과 이 교회와 무슨 연관이 있나 하고 전화를 해봤더니 역시나였다. 관련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K00 목사의 제자라고 했다. 한 번 들리겠다고 말을 하고는 해당 주일날 낮 예배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14년여 만에 참석해보는 교회 예배. 나에게는 낯설음 그 자체였다. 주보에 기재된 순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배진행. 한 마디로 그것은 율법 의식의 예배였다. 대략의 순서는 이러했다.
1. 예배의 부름(Call to Worship) …… 다같이
2. 찬송(Psalm Sung) - 시편에 곡을 붙인 시편찬송 271장 …… 다같이
3. 신앙고백(Confession of Faith – 사도신경) …… 다같이
4. 찬송(Psalm Sung) - 시편에 곡을 붙인 시편찬송 310장 … 다같이
5. 십계명 낭독(Ten commandments – 출 20:1-17 개정개역 성경) …… 인도자
6. 죄의 고백(Confession of Sin) …… 다같이
7. 찬송(Psalm Sung) - 시편에 곡을 붙인 시편찬송 138장 …… 다같이
8. 목회기도(Pastoral Prayer) …… 00목사
9. 성경봉독(Scripture Reading) … ( ) … 인도자
10. 강설(說敎 Cermon) … ( ) … 00 목사
11. 송영(Dexology) - 시편에 곡을 붙인 시편찬송 329장 …… 다같이
12. 강복선언(祝禱 Benedictiom) …… 00 목사
1시간 남짓의 예배는 이런 순으로 이어졌다. 열 명 남짓한 교인 그기에 새로운 사람이 왔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나오려는데 茶라도 한 잔 하고 가라는 젊은 목사의 말에 순간 내가 실언(失言)을 하고 말았다. 한 번 들리겠다고 말을 하고 나온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수변로(水邊路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던중 낯선 전화 한통이 울렸다. 원래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게 나의 철칙인데 그 주(週)에 주민센터에서 보험사등 여러 군데서 오는 전화 탓에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받았던 것인데 하필 그 목사일 줄이야!. 순간 당황스러웠다. ‘한 번 들리겠다고 했는데 전화를 다 주셨냐고?’ 알고 보았더니 내가 걸었던 발신전화의 번호를 보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치. 아마 생각의 폭이 좁은 요즘 사람 같으면 목사에게 한 마디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이해를 하고 주중(週中)에 방문을 하겠다며 약속 일자와 시간을 정했다. 목사를 만나 과연 무슨 소재를 가지고 화두를 삼을까? 예민한 나의 성격이 나를 신산(辛酸)스럽게 했다.
방문하기로 한 일자에 드디어 목사를 만났다. 과분하리만큼 간식을 차려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특히 머나먼 남아프리카에서 왔다는 茶 한잔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옛날 김교신 선생과 송두용 선생께서 기성교회 사경회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강연을 자주 하신 것으로 안다고 서두에 언급을 했었다. 그러나 세월은 이미 80여 년의 세월도 더 흘렀다. 지금은 그런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다. 각 교단마다 내 놓으라 하는 부흥사가 판을 치는 세상이고 기본이 외국 유학을 갔다오고 석사이상의 학위 소지를 지닌 목사가 발에 밟힐 정도로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게 당금이다. 내가 만난 그 목사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개혁주의를 신봉하며 웨스트민스트. 하이델. 벨직 선언문을 신앙의 신조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목사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반해 이 분은 남아프리카로 가서 꽤 오랜기간 유학을 하고 왔다고 했다. 굳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한 목사가 아니었나 나름 짐작을 하였다. 대화 내내 서로의 논조가 격이 맞지 않음만 확인하였다. 예를 들어 만인제사장 하나를 두고도 반드시 집례자(牧師)가 인도해야만이 예배이다. 순서(格)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율법의 예배 복음의 예배. 그 외 무천년설. 전천년설. 후천년설. 공중재림. 휴거와 지상에서의 천년왕국 등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도권을 목사가 쥔듯한 분위기. 목사의 설명(講論)이 계속 이어지자 대화 내내 김교신 선생. 송두용 선생. 노평구 선생님이 생각이 남은 어찜일까? 나의 빈약함 탓인가? 아니면 대화할 가치를 못 느껴서인가? 교회에는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주 안에서의 형제. 자매가 가장 무난하고 성경적일텐데 평신도부터 시작된 직함은 게나 고동이나 다 부르는 집사(서리) 그리고 안수집사(이것도 원래는 장립집사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안수집사로 바뀐것 같다). 권사. 장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 담임목사(OWNER & CEO)로 이루어져 있다. 큰 교회는 여기에 한 술 더 뜨서 수석집사. 수석권사. 수석장로가 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프로테스탄트인가? 아니면 천주교의 변형인가? 사도신경에 보면 “거룩한 공회”란 대목이 있다. 내가 이해하는 공회란 원래 유대인들이 모여 예배드리던 곳 즉 회당을 공회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이제 사조신조로 바뀌면서 공회가 된 것 같은데 영어로 보면 홀리 캐톨릭(The Holy Catholic;)으로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목사와 대화중에 이 부분에 대해 물었더니 자기는 캐톨릭을 보편적 캐톨릭으로 해석한다며 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보편적이란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보편적”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다. “보편적 가치” 그렇다 정치적 용어다.
내가 목사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느낀 것은 나는 더 이상 기성교회와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의 상(象)은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어질찌 모르겠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이 민족의 리더와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그것 마져도 여의치 않다면 나 혼자 예배의 삶을 살 것이라 다짐을 하면서 목사와의 만남을 그렇게 맺었다. 아합 시대에 엘리야外 숨겨진 칠천명이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런 숨겨진 자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 중에 나도 포함 되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소울 메이트(Soulmate) 영혼의 반려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이상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또 어디 있을까 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랴. 삶 자체이가 예배이자 우주 전체가 예배 처소인데 그 중에 한 곳 내가 거주하고 있는 이곳을 예배의 처소로 삼게 하시고 성경을 공부하며 예배 드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하고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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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손현섭 작성시간 22.07.05 감사합니다. 단숨에 읽었습니다. 귀한 신앙을 이어가시는 청송님의 순수한 마음, 하나님께서 많이 많이 사랑하실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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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메나리 작성시간 22.07.07 청송님, 혹시 그분은 김홍전 박사의 제자 김*수 목사 아니신가요? 제 친구에게서 너무나 많이 들은 이야기 그대로여서 놀랐습니다. 친구가 다니는 안양의 개혁교회에서 이분을 따르던 분들이 떨어져 나와 따로 모임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혁교회에서 나왔기 때문에 좀더 자유로운 모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니 그것도 놀랍습니다. 제 친구는 본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이야기할 때마다 참 답답합니다. 교회제도 자체가 신앙을 얽매고 있는데 그걸 놓지 못하거든요. 청송님에게 그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아무튼 깜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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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7.12 개혁교회도 여러 노선이 있는 듯 합니다. 제가 갔던 교회 목사의 성함은 박ㅂㅕㅇ협 목사이고 그의 동기가 신반포중앙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그 분의 스승되는 목사님은 개혁주의에서도 저명한 김ㅅㅓㅇ봉 목사입니다. 유튜브에 김*봉 이름 석자를 치면 나오는데 이 분이 안양대학교 신대원 원장을 역임하셨고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등 스크틀랜드의 정통 고백서를 교수 출신답게 교안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 분의 부친은 김ㅅ ㅓㄱ준 목사란 분으로 내세복음주의를 추종하는 분이셨습니다. 과거 부산에 백파라는 총공회 출신 목사인데 대구에서 오랜동안 목회를 하다가 서울에와서 목회를 하게 되었고 이 분의 장남되는 김*봉 목사가 독일에서 신학교 유학을 필하고 귀국 안양대학교 신대원에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개혁주의에 기치를 내 건 것입니다. 제가 김*봉 목사가 집례하는 예배에 참석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그의 제자라는 박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 위의 예배 진행에 놀란 것입니다. 혹시 바이블 빌리브를 추구하는 교회가 아닐까? 그러나 실망 자체!! 교단을 초월 제도교회란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순수한 예배가 제도교회안엔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