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서가(書架)

Re: Re: 천년의 향香, 빛을 깨우다 (수정)

작성자속리산여우|작성시간26.06.05|조회수28 목록 댓글 3

                                                              천년의 향(), 빛을 깨우다

 

    칠흑의 공간이다. 벽 틈새로 옅은 빛이 새어 나올 뿐이다.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한발 한발 방 가운데를 향해 다가간다. 범접할 수 없는 천년 세월의 기운에 숨이 멎는다. 어두움이 가득한 방 한가운데 금빛 찬란한 백제금동대향로가 홀로 놓여 있다. 박제된 백제인의 혼이 해체되면서 온몸으로 스며든다. 천정에서 가느다란 빛이 향로를 향해 쏟아진다. 바닥에서 용틀임하며 하늘로 솟구치려는 용을 겹겹의 산이 누른다. 산봉우리마다 생명이 어우러져 하나의 세계가 된다. 향로를 밟고 있는 봉황이 금방이라도 빛을 좇아 날아오를 듯 날개를 폈다.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관은 산기슭 어둑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귀하다 하여서 앞으로 나서지 않고 건물의 뒤편 작은 공간에서 천년의 빛을 내니 겸손하다. 향로에서 피어나오는 듯한 침향의 은은한 향취에 정신은 천년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산봉우리마다 아로새겨진 다섯 악사의 감미로운 화음이 천상의 세계로 이끈다. 고요히 침묵을 지키며 아득한 세월을 적시던 화음에 멎었던 숨을 몰아쉰다. 마치 천 년을 넘게 향을 피워 왔던 것 같아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경건하다. 처음 향을 피우던 사람을 만난 듯 속으로 조용히 예를 다한다.

  숨소리조차 숨겨가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빈틈없이 다양한 생명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었다. 밤낮으로 쇠를 녹이고 모양을 잡아 나갔던 장인의 혼이 함께 한다. 겹겹이 새겨진 산봉우리마다 악사와 동물 그리고 상상의 존재들이 어우러져 백제인이 꿈꾸었을 작은 우주를 이룬다. 좁은 공간에 자연과 인간의 상상을 새긴 백제인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의 우리처럼 죽음 너머를 생각하고 영원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향로를 마주하며 한 시대의 정신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백제인의 사유가 지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혼이 이어진 듯 중력처럼 그 신비함에 끌려 굳은 마음이 풀린다.

  향로에는 백제인이 염원하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받침에는 물속에서 솟구치는 용이 연꽃을 받치고 연꽃잎마다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뚜껑을 이루는 산봉우리에는 사냥하는 사람과 악사, 악귀를 쫓는 괴수가 어우러져 있고 꼭대기에는 구슬을 괴고 세상을 바라보는 봉황이 있다. 세상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한 구성은 예술가의 호기였을까, 아니면 백제인이 꿈꾸던 이상세계였을까. 용과 연꽃 산과 봉황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마치 물속에서 물 위를 거쳐 땅으로 그리고 하늘로 이어지는 하나의 세상을 향로에 담은 듯하다. 어둑한 공간에서 천 년 전 사람들이 그리던 세상 앞에 서니 한없이 작아진다. 불과 쇠로 빚어낸 그들의 꿈이 경이롭다.

  한 조형물이 주는 백제의 아름다움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게 스며든다. 상상과 염원을 담아 잔잔한 우아함으로 빚어내 지금의 우리에게 고요한 울림을 준다. 누구라도 향로와 마주하면 어두웠던 마음에 새로운 생명이 움틀 것이다. 천년의 시간을 지나 이곳에서 만난 향로의 행적이야말로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마터면 영원히 어두운 땅속에 묻힐뻔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다. 사비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다급하게 향로를 땅속에 묻어야만 했던 이는 후일을 기약하며 눈물을 머금었을 것이다. 언젠가 향을 피워 올리는 새 세상이 오리라 믿으며 차디찬 진흙 속에 깊이 묻었으리라. 눈앞에서 불타오르던 왕실이 쓰러지고 백제도 멸망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하여 시작된 향로의 천년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향로를 묻어야만 했던 이의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백제의 혼이었을 것이다. 우연한 발견이었지만 어두운 땅속에 묻혀 있다가 그들의 바람인 듯 향로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때의 사람은 천년이 넘는 시간을 상상이나 했으려나. 천상의 세계를 꿈꾸던 그때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렇게라도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여러 생각 속에 각도를 달리하여 유심히 바라본다. 유기적인 조화에 산봉우리 새들이 일제히 날아들고 연꽃잎의 물고기가 튀어 오를 것 같다. 커다란 동물들이 와락 달려들 것 같아 무심결에 몸을 비튼다. 이렇듯 한 조형물을 오래도록 본 적이 없다. 천년의 시간을 느끼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받아 빛나는 고고한 자태에 백제의 혼이 와 닿는 듯 온몸이 가늘게 떨린다.

  칠흑의 공간에서 천 년의 향으로 빛나는 향로에 수없이 반문하고 의문을 던져본다. 비단 나 뿐일까. 벽 틈새로 새어 나오는 옅은 빛이 감동의 향기를 더해준다. 봉황의 가슴에서 소롯이 피어올랐을 향연이 뚜껑의 산봉우리를 안개처럼 휘감는지 눈앞이 흐려진다. 염원을 담아 뜨거운 쇳물로 향로를 완성하고 그 안에서 처음 향이 피어오를 때 숨을 고르던 장인의 미세한 떨림이 천년의 빛을 깨웠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地平 | 작성시간 26.06.06 완성되어가는 창작 여정의 노력이 보입니다.
    다만, 문맥이 좀 더 유려하게 읽히도록 사소한 부분에서 손 보아야 할 것도 보입니다.
  • 작성자이운우 | 작성시간 26.06.19 천년의 빛을 깨웠다. 끝맺음이 좋아요.
  • 작성자월령 | 작성시간 26.06.19 대단한 성찰력이십니다. 저도 천마도를 보고 쓴 글이 있느데 내보이기가 부끄럽네요.

    디테일한 관찰과 문장 표현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소리내어 자꾸 읽어보시면 문장이 매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