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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입처에서 일체법 에 대한 실참과 이해

작성자mindsati|작성시간19.10.10|조회수359 목록 댓글 12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제자들은
불보살의 타력을 믿는 마음(대신심)의 대승불교보다는
육근 감각기관과 대상 육경의 일체가 마음작용에 묶여 제법의 현상이 일어나고 소멸함의 법 체험을 중요시 한다.
즉,
들이쉬고 내쉬는 숨쉬는 몸 으로부터 감관의 느낌과,
마음 부수의 경험과
법이 일어남을 체득한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이상 숨을 쉬는 몸으로부터의 '법체'임을 어느 누구도 벗어날수 없다.
그래서 항상
숨을 쉬는 이 몸(신)과 숨결의 닿음(촉)의 일체에 묶인 가운데로부터 연기한 알음알이를
지.수.화.풍의 구성요소들로서
일어나고 소멸함을 알아차리는 "마음챙김 명상"을 닦는다.

이들 '몸'과 '닿음'의 일체가 준 감각접촉에서의 쾌락과 고통의 양 극단(표상)을 다가가지않은
가운데에서 연기하는 '법(괴로움)'의 생성 소멸함을 스스로 사유하며
감관으로부터의 마음 작용을 고요히 하며 청정한 삼매를 닦는다.

그러한 마음챙김 명상(정념)과 고요함의 적정(정정) 등 팔정도의 수행이 무르읶어
'법'의 이치를 꿰뚫어 알아차리게 된다.
'법'에서의 최고의 지혜(위빠사나)를 점차 구족하면
니르바나 열반에 이르는
고.집.멸.도의 통찰 지혜를 갖춘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마음명상(mindsati) 글( 2018. 10.10) 발췌.

ㅡㅡ아래는 <majjha의 이해와 초기불교 수행에서 majjha 구현>(김근중) ㅡ 논문과 논저류 2017. 11. 5ㅡㅡ
일체 법이란? (출처 https://m.cafe.daum.net/mindsati/Sf2i/4?svc=cafeapp&sns=dcafe )

여섯 가지 감각 기관과 감각 대상에 의지해서 알음알이와 오온 등의 정신 작용이 파생된다.
시각과 형상, 청각과 소리, 후각과 냄새, 미각과 맛, 촉각과 감촉, 마노(意)와 법(法) 등의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에서의 장(場)을 입처(入處) 혹은 일체(一切)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AN 6:61 majjhesutta에서는 여섯 명의 장로들이 부처님에게 ‘중간’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 중간은 육근과 육경에서의 두 변(邊) 가운데로부터의 알음알이를 말한다.

[감각접촉[觸]이 첫 번째 변(邊)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변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majjhe]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이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생략...]

[“지혜로운 자는 두 변을 알고서, 중간[majjhe]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
라는 [숫따니빠따] 「도피안 품」의 「학인 띳싸 멧떼이야의 질문」을 담은 Majjhesutta에서는, 6명의 장로 모두가 바느질하는 여인이 갈애라는 의견에 공통적인 일치하지만

‘두 가지의 변’ 및 ‘중간’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바의 질문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모두의 의견이 방편이 된다고 말씀하시며,
“양 변을 알고서 중간을 더럽히지 않고, 대인이라 부르며,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서는 지혜로운 자” 로서 첫 번째 장로의 감각접촉[觸]에 대한 ‘두 변과 중간’을 보이고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된다.” 라는 인용을 말씀하신다.

이처럼 두 변과 중간을 분명히 알고서 더럽히지 않으며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난 알음알이를 분명한 알아차림하는 것은 사성제등과 같은 최상의 지혜를 최상의 지혜로 알게 하고 또한 이를 철저하게 알게 될 때는 괴로움을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된다고 ‘majjha에 대한 이해’를 말씀하신 것으로 본다.

촉(觸)은 근경식[根境識] 삼사화합[三事化合]으로부터 발생한다. 감각접촉이 첫 번째 변이므로 근.경.식과 감각접촉을 갖추면 두 번째 변으로서의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있게 되고, 감각접촉에서의 소멸이 중간(majjhe)의 알음알이이며 일어난 모든 법은 반드시 소멸하는 법안(法眼)을 갖춘다.

부처님은 감각적 욕망이 준 쾌락과 자기 학대가 준 고행을 따르지 않으시고,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의 극단을 법(法)으로써 감수(感受)하셨다.

이때 대상에게로 마음이 기운채의 육근과 육경에서의 두 변을 결박(saṃyojana)이라고 한다. 마음의 개입으로부터 결박되는 두 변에서의 majjha가 발생함을 보인 S35:232 Koṭṭhikasutta에서의 시각과 형상과의 조건으로 생긴 욕탐에 묶인 결박을 majjhesutta의 6가지 안과 밖의 감각장소의 두 변으로 배대한다.

[시각이 형상을 묶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형상이 시각을 묶고 있는 것입니까? ...중략... 마노가 법을 묶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법이 마노를 묶고 있는 것입니까? 벗 꼿티타여, 시각이 형상을 묶고 있는 것도 형상이 시각을 묶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두변을 조건으로 생겨난 욕망과 탐욕이 있는데 그것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 *각묵스님,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대념처경과 그 주석서],초기불전연구원, p.136-169) 연구에서는 두 변의 결박돤 가운데로부터의 알음알이에 대한 분명한 알아차림을 sampajāna이라고 본다.]

검은 소와 흰 소가 하나의 밧줄이나 멍에 줄에 묶여 있는 Koṭṭhikasutta에서는, “검은 소가 흰 소를 묶고 있는 것도 아니고 흰 소가 검은 소를 묶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의 밧줄이나 멍에 줄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라는 묶인 가운데에서의 ‘안목’은 대상에게로 마음이 기운 욕탐에서의 육근과 육근의 두 변의 결박 가운데(majjha)으로부터 알음알이[識]와 오온 등의 존재 [일체법] 를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ㅡㅡ아래는 길따라님의 "법안에 대하여" 2010.9.30 글에서 일체법 내용을 옮김 ㅡㅡ

법을 먼저 보는 것이 유리합니다.
‘법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심의식(心意識)의 경계(visaya, 對境)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법(法, dhamma)이고 다른 하나는 명색(名色, nāma-rūpa)입니다.

심의식은 그 어떠한 경우라도 명색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것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기능적인 면에 있어서도 심의식의 본래기능은 ‘見(diṭṭhi)의 기능’ 뿐입니다.
연기에 의해서 여타의 기능을 추가적으로 갖춘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하니, 지금 육안으로 보고 있는 대상(=사실상의 名色)을
‘심의식의 경계로 삼으면’ 법을 봅니다.

예를 들어, ‘一切(일체, sabba)’인 육내외입처(=12처, 니까야에는 12처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사실상의 名色)를 심의식의 고유경계로 삼으면 ‘一切法(일체법, sabba dhamma)’이 됩니다.

일체와 일체법은 법(dhamma)이라는 글자 한자가 더 추가된 것 뿐이지만 그 내용은 ‘하늘과 땅 처럼’ 다릅니다.

일체법에 대한 설명을 알아 봅니다.

벗이여, ‘欲(chanda)에 근거하는(mūlaka, 뿌리, 조건 지워진)’ 것이 一切法이고,
‘作意(manasikāra)의 有(sambhava, 존재)’가 一切法이고,

觸集이…, 受와의 만남(samosaraṇa, 모아지는 것)이…,
三昧를 우두머리(上首)로 한 것이…,

念(sati)의 위력(adhipateyya, 增上, 탁월성)이…[念을 주인으로 하는 것이....],

최상의 般若가…, 解脫의 실체와 핵심이…,
涅槃의 감로수에 뛰어든 것이 一切法입니다.

chandamūlakā āvuso sabbe dhammā, manasikārasambhavā sabbe dhammā, phassasamudayā sabbe dhammā, vedanāsamosaraṇā sabbe dhammā, samādhipamukkā sabbe dhammā, satādhipateyyā sabbe dhammā, paññuttarā sabbe dhammā, vimuttisārā sabbe dhammā, amatogadhā sabbe dhammā, nibbānapariyosānā sabbe dhammā ti.[AN. vol.5. p.107].

ㅡㅡ아래는 봄봄님이 올린 글의 <일체 경> 2017.12.1ㅡㅡ

일체의 경 1. Sabbasuttaṃ 일체 경(S35:23)

잡아함 8권 35(大正 2. 55a, 잡222) 참조
23. Sāvatthinidānaṃ.

‘‘Sabbaṃ vo, bhikkhav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일체[諸, sabba]를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체란 무엇인가?
Kiñca, bhikkhave, sabbaṃ?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시각과 형상, 정각과 소리, 후각과 냄새, 미각과 맛, 촉각과 감촉, 정신과 사실,
Cakkhuñceva rūpā ca, sotañca [sotañceva (?) evamitarayugalesupi] saddā ca, ghānañca gandhā ca,

jivhā ca rasā ca, kāyo ca phoṭṭhabbā ca, mano ca dhammā ca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일체라고 한다.
– idaṃ vuccati, bhikkhave, sabbaṃ.
–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

수행승들이여, 누군가 '나는 이러한 일체를 부인하고 다른 일체를 알려주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단지 공허한 말일 뿐이다.
만약 질문을 받으면 그는 대답할 수 없고, 더 나아가 곤혹스러움에 쩔쩔 맬 것이다.
Yo, bhikkhave, evaṃ vadeyya – ‘ahametaṃ sabbaṃ paccakkhāya aññaṃ sabbaṃ paññāpessāmī’ti,
tassa vācāvatthukamevassa [vācāvatthurevassa (sī. pī.), vācāvatthudevassa (syā. kaṃ.)];
puṭṭho ca na sampāyeyya, uttariñca vighātaṃ āpajjeyya.
5.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만일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그의 감역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Yathā taṃ, bhikkhave, avisayasmi’’nti.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들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Paṭham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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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mindsat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0.10 일체: 육근과 육경 의 내외입처 형성ㅡ>근경식 감각접촉 ㅡ> 생.멸을 작의 ㅡ> 법의 순서가 일체법 형성과
    감역이지요.
  • 작성자mindsat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0.10 부처님께서 안의 감각기관[내육처內六處]과 밖의 감각대상[외육처外六處]을 일체라고 정의하시며, 괴로움의 법(중생심)을 다스리길 가르치시죠
    (♬
    <천수경>에서 '원아속지 일체 법,
    원아조득 지혜안,
    원아속도 일체중'을 독송하는 근거이죠^^)
  • 작성자봄봄 | 작성시간 19.10.10 본 커페처럼 [대화의 장]에서
    본인의 의견이나 주장을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은 가능하고 오히려 권할 일입니다.

    대화를 하기 싫으면 응답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먼저 대화를 제의해 놓고 응답을 하지 않는 것은?
    혹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혼자 만의 <언어>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혹은 간단한 질문, 예를 들면 yes/no, 1번/2번을 묻는 질문에
    전혀 관계가 없거나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 힘든 혼자만의 언어로 나열한다면?

    혹시라도 간단하게 답할 것이 아니면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 되는 것이고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간단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하면 되지 않나요?
  • 답댓글 작성자봄봄 | 작성시간 19.10.10 그나마..... ^^
    욕하지 않고.... 비꼬지 않고.... 성질내지 않고....

    그나마....ㅜㅜ

    한 가지 더....
    비난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비판은 할 수 있어야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싶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mindsat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0.10 봄봄 12처를 일체라고 말하지 않으니까 1번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육근과 육경의 묶임이라는 내외입처의 형성을 일체라고 합니다. 본문 글 밑에 봄봄님의 인용 문헌에도 내외입처의 쌍을 일체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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