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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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mindsat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10.10 양극단이 동일한 범주 속성에 묶임(내외입처 결박)을 알아 다가가지 않는 가운데 드러난 무상 법안의 지혜로 부터
법이 생성 소멸한다는 것을 안목합니다.
// [中을 반연하여 일어난 緣起(法)의 集滅].....로 읽히는데
혹시 잘못 이해한 것인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위의 봄봄님 댓글에 나름 이해를 드리고자 2019 가을논문발표회 에서 실참 일부를 발췌해옮겨 둡니다.
두 극단 가운데(majjha)... 안목과 지혜 와 적정 등의 중도에 대한 경험이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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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mindsat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10.10 mindsati 고통과 쾌락의 양극단이 감각접촉에서의 법안에 묶인 표상임을 알기 때문에 ‘양극단에 다가가지 않음’을 말한 뒤에 양극단을 어떻게 닦아야 할까의 지혜를 말하는데, ‘가운데에서의 닦음[majjhimā paṭipadā]’이라고 중도를 밝혔다. 감각접촉에 묶이는 양극단이 무상 법안의 지혜에 드러난 것이다. 즉, 감각접촉과 ‘감각접촉의 일어남’의 양극단이 결박된 가운데에 일어난 ‘감각접촉의 소멸’로 밝힌 감각접촉에서의 법안을 닦아 중도 위상에 갖춘 것이다. 이하 댓글 내용는<초기불교 명상 수행에서 실천적 중도 위상의 구현(김근중), 불교학연구회 2019 가을논문발표회 자료집> 에서 (안목, 지혜, 적정 등) 중도 위상을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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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mindsat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10.10 mindsati 쾌락과 고통 양극단의 표상이 감각접촉에서의 법안에 묶인다. 양극단이 감각접촉에서의 법안에 묶인 안목을 알아 “양극단에 다가가지 않는 가운데에서의 닦음[중도]을 여래에 의해 완전하게 깨달았나니[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라고 중도를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쾌락과 고통 양극단이 감각접촉에 묶인 안목을 갖춘 바에 의해 그러면 양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어떻게 닦는가의 지혜를 감각접촉에서의 무상 법안에 갖추고, 법안을 작의하는 가운데 적정의 중도 위상이 드러난 것이다. 즉, 감각접촉과 ‘감각접촉의 일어남’의 양변이 묶인 가운데 연기한 ‘감각접촉의 소멸’을 작의하는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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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봄봄 작성시간19.10.10 본 커페처럼 [대화의 장]에서
본인의 의견이나 주장을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은 가능하고 오히려 권할 일입니다.
대화를 하기 싫으면 응답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먼저 대화를 제의해 놓고 응답을 하지 않는 것은?
혹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혼자 만의 <언어>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혹은 간단한 질문, 예를 들면 yes/no, 1번/2번을 묻는 질문에
전혀 관계가 없거나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 힘든 혼자만의 언어로 나열한다면?
혹시라도 간단하게 답할 것이 아니면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 되는 것이고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간단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하면 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