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크벨님의 질문... <자나는 마라의 영역인가? 영역 밖인가?> 을 보니 ...
참으로 오욕락(pañca-kāmaguṇā)과 감각적 욕망(kāma)의 구분이 어렵네요...
까마를 벗어난 출리계와 삼계를 벗어난 출세간계도 헷갈리고요...
제가 아는 대로만 말씀드립니다.... (틀릴 수도 있다는 의미...^^)
1) 욕계는 까마계(kāma-dhātu)이므로 당연히 마라의 활동영역입니다.
2) 그러나 9가지 선정의 영역인 자나는 출리계이므로 마라의 활동영역이 아닙니다.
3) 그렇지만 9가지 선정의 영역에서 통찰지를 계발하여 수다원이상의 도과를 성취하지 못한다면
그냥 출리계일뿐... 아직 출세간계가 아니므로 ...
선정 상태는 10가지 색처인 오욕락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4) 결국 선정상태와 오욕락의 관계는 졸혼(卒婚) 관계~~ㅋㅋ 입니다.
동거는 하지만 집착으로 묶인관계는 아닙니다.
※ 그럼 여기서 10가지 색處, 즉 오욕락에 묶여 있는 것과 ...
까마界에서 마라에게 잡혀서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이 구분되어야 합니다.
A9:38(바라문경)에
<5. “바라문들이여,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세상은 욕계, 색계, 무색계이고... 이 삼계는 모두 마라가 쳐놓은 미끼인
오욕락(10가지 색처)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삼계를 벗어난 출세간계만, 즉 예류과 이상의 성자만 오욕락의 그물을 통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출세간계는 주변에 널려 있는 오욕락(10색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출세간계가 아닌 삼계는 모두 미끼를 가지고는 있지만...
욕계는 그 미끼를 먹을거리로 알고 즐기는 곳이라서 ...
마라의 뜻대로 돌아가는 세상이고...
색계나 무색계는 그 미끼의 위험성을 알고 미끼(오욕락)를 조심하기 때문에
마라가 뜻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고... 이런 곳이 까마를 떠나는 출리계(nekkhamma-dhātu)입니다.
(※ 출리계가 곧 오욕락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 여기서 삼계를 벗어난 출세간계와 단지 욕계만 벗어난 출리계(出離界)를 구별하셔야만 합니다.
욕계를 벗어난 출리계...즉 색계나 무색계는
아직 윤회하는 세계에 심의식이 머물고 있기 때문에 삼계를 떠난 출세간이 아닙니다.
다만 마라 빠삐만이 따라오지 못하는 출리계(nekkhamma-dhātu)라서...
욕계(kāma-dhātu)를 벗어남이지 ... 출세간 界처럼 오욕락(10가지 색처)까지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욕계(kāma-dhātu)는 당연히 오욕락이라는 그물에 안에서 마라기 제공하는 미끼(오욕락)를 서슴없이 받아서
즐길거리로 삼고 거기서 네 가지 자양분(四食)을 얻고, 意차원에서 66연기를 진행시켜 이 몸(有身)을 새로 만들면서
감각적 즐거움의 쾌락(kāma)에 젖어 삽니다. 그래서 욕계(kāma-dhātu)는 마라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마라는 중생에게 까마라는 감각적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중생을 욕계에 묶어놓는 ... 욕계의 지배자입니다.
욕계중생이 오욕락이라는 미끼를 즐길 거리로 알고 좋아서 덥석 물면...
거기에 識이 머물면서 名色과 호연연기를 하고... 이어서 노사우비고뇌를 겪지만
욕계 중생은 전혀 kāma(감각적 즐거움)의 위험함를 인지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자나의 영역은 미끼는 있지만... 마라의 지배만 벗어난 영역입니다.
색계나 무색계는 이미 kāma의 폐해를 알고 까마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출리계입니다.
그래서 9가지 선정(jhāna)의 영역은 마라의 영역이 아닙니다....만
그러나 9가지 선정에서 위빠사나를 닦아 오온에 대한 사성제를 통찰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다시 까마계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까마의 씨앗인 오욕락이라는 處를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M26 : 성스러운 구함의 경에
Pañcime bhikkhave kāmaguṇā katame pañca?
Cakkhu 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비구들이여, 다섯 겹의 감각적 욕망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눈(~몸)으로 분별되어질 색(~감촉)들이다. (그 색~감촉들, 오경들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까마를 불러일으킬 만큼 매혹적인 (것들이다)
여기서 Cakkhu viññeyyā rūpā를 보면
지금 眼識(cakkhu-viññāṇa)으로 분별한 색들이 아니고
... 눈(Cakkhu )으로 분별되어질 색들(viññeyyā rūpā)입니다.
즉 미래에 일어날 수 있음을 뜻하는 <viññeyyā >라는... 미래분사가 나옵니다...
지금 눈으로 분별한 識이 아니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
아직까지는 識이 10가지 處를 식주할 대상인 名色으로 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아직 識이 활동하지 않으면... 10處가 識에 의해 10界로 바뀌지 못했다는 말이고 ...
그러면 거기서는 삼사화합이 일어나지 못한다는 말이고 ...
그러면 거기는 아직은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까마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마라 빠삐만이 지배하는 감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크벨님... 어디가요?".... 오욕락이라는 10가지 色處가요...
그래서 오욕락(pañca-kāmaguṇā) 자체는 미래의 감각적 욕망인 kāma의 씨앗은 될 수 있지만
아직 까마를 즐기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
누누히 오욕락(처)과 까마(界)를 동일시하시면 안되고
處차원과 界차원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 까마계로 바뀌지 못한 오욕락[色處] 상태에서는... 더욱 굉장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 識이 일하지 못하므로... 그때 마노에 사띠를 확립하면
첫째, 10가지 색처가 제공하는 니밋따를 여리작의 할 수 있고...
둘째, 6문을 지킴으로써 선법이 일어날 수 있고 ...
셋째, 그러면 그의 心은 까마를 떨쳐버리고, 불선법으로부터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초선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
색계초선과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오욕락이라고 부른 10가지 색처입니다.
이것이 오욕락(10가지 색처)과 까마를 다르게 ... 구분해야 이유입니다.
心에 반야나 앎과 봄이 있으면 10가지 색처(=오욕락)를 단지 法으로 꿰뚫어 봄으로써 ...
오욕락으로 인한 까마계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 오욕락으로 인해서 색계 초선을 만듭니다.
[바라문 경(A9:38)]
7. “바라문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바라문들이여, 이를 일러 ‘이 비구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여 세상의 끝에 머문다.’라고 한다.
이를 두고 다른 자들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세상의 범위 내에 포함되어 있다.
이 사람은 세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한다.
바라문들이여, 나도 역시 ‘이 사람은 세상의 범위 내에 포함되어 있다.
이 사람은 세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5. “바라문들이여,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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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3.08 해맑은 또 사마타에 의한 심해탈과 위빠사나에 의한 혜해탈에서...
외도 사마타와 불교 사마타의 차이... ^^
외도의 삼매는 작은 구멍으로 보면서 한 끝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불교의 삼매(선정)는 열린 마음으로 한 끝에 집중하는 것...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전체 상황을 알면서 적절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보니
시장통 삼매 ...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위한 삼매가 분명해졌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3.07 해맑은 또 학생(學生)과 학습자(學習者)... ^^ 감동입니다...
그냥 학생노릇은 쉬운데... 학습자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이번 생의 보람은 <학습자>가 될 때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3.07 해맑은 또 정말로 동감합니다...
//경험하지도 못한 무색계에 대해서.. 스스로 알고 보지도 못한 연기와 중도에 대해서
완전히 알려고 하는 것은 장님이 자기 그림자 모양을 그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 현실... 까마계(慾界)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
하여간 무위님의 속시원한 말씀에 힘 받아서..
즐겁게 노력하는 학습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무위님... 고맙습니다..._()_ -
작성자이크벨 작성시간 20.03.07 무위님 말씀은 장엄한 수행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사두~~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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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3.08 ‘호수[=마음의 비유]의 수면이 잔잔할 때’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잘 비칩니다.
흔히들 <내 마음의 호수에 파도가 칠 때>라고 하시지요.
그것을 불교전문용어로는 ‘까마(kāma)’라고 부릅니다.
<수면이 잔잔할 때>가 바로 ‘평정(upekhā)’입니다.
아위자님 말씀 ... http://cafe.daum.net/pali-study/DnnI/26 ... 입니다.
요즘... <까마>라는 말만 보면 ... 저절로 마나시카라가 일어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