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육법’에 대한 간략한 소개]
(1)
六六法이라는 명명의 유래는, 고익진 박사가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에서
*고익진,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0)
“이 한 무리의 법은 잡다한 양상과 내용을 갖고 있어 도대체 그들은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이들은 종래 불교학의 주의를 받지 못했던 관계로 5온․12처․18계․12연기 등과 같이 통용되는 이름조차 없다.”*라고 언급하고서는 한역 아함에 ‘六六法’이라는 용어가 언급되는 것을 근거로 그 계열의 법들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고익진, 앞의 책, 50쪽.
**연기설에 관련된 용어로서 ‘12연기라는 용어’는 니까야에 근거한 용어가 아니다. 니까야에서는 그러한 용어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12연기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일련의 방대한 연기체계를 간단하게 지칭하고 있다.
***니까야에서는 단순히 六六(chachakka)이라고 언급되고 ‘육육법’이라는 복합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박사의 노력에 의해서, 한국불교학계에서는 육육법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다른 나라의 불교계에서는 ‘六六(chachakka)이라는 용어가 니까야에 언급된다’라는 정도만 이해되고 있다.
박사는 논저에서 “육육법은 5온설과 12연기설에 인도하는 교량적인 법문으로서 그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라는 언급을 하였는데, 그러한 언급 이후에 “…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고찰해 갈 것이다”라고 말을 맺었다. 그러나 ‘육육법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논문’은 더 이상 그 누구에 의해서도 발표되지 않았다.
결국 ‘육육법과 12연기의 제법들이 어떠한 상호관계 하에서 설해지는 것인가’는 불교학계에 아직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셈이다.(학자들의 연구가 진행 중임)
(2)
‘六六(chachakka)’이라는 용어가 언급되는 니까야의 경문은 다음과 같다.
Majjhima-Nikāya의 Chachakka-sutta(六六經, MN. vol.3, p.280*)은 ‘有身(sakkāya)의 集에 관련된 身들’을 거론하면서 ‘六六(cha-cha)’이라고 부른다.
…, yadidaṃ cha chakkāni.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ṃ bhante 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 avoca: Cha ajjhattikāni āyatanāni veditabbāni, cha bāhirāni āyatanāni vedinabbāni, cha viññāṇakāyā veditabbā, cha phassakāyā veditabbā, cha vedanākāyā veditabbā, cha taṇhākāyā veditabbā. …(pe)… Ayaṃ kho pana bhikkhave, sakkāya-samudayagāminī paṭipadā: Cakkhuṃ: Etaṃ mama, eso'ham asmi, eso me attā ti samanupassati. Rūpe: Etaṃ mama, …… Cakkhuviññāṇaṃ: Etaṃ mama, …… Cakkhusamphassaṃ: Etaṃ mama, …… Vedanaṃ: Etaṃ mama, …… Taṇhaṃ: Etaṃ mama, eso'ham asmi, eso me attā ti samanupassati. …(pe)… Ayaṃ kho pana bhikkhave, sakkāya-nirodhagāminī paṭipadā: Cakkhuṃ N'etaṃ mama, n'eso ham asmi, na me so attā ti samanupassati. Rūpe: N'etaṃ mama, ……. [MN. vol.3, p.280.]
…, 즉 ‘여섯의 여섯에 대한(cha chakkāni, 六六)’ 것이다. 잘 듣고 作意하라 내가 설명하리라. 비구들은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六內入處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六外入處에 …, 六識身에 …, 六觸身에 …, 六受身에 …, 六愛身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중략)… 그런데 비구들이여, 이것이 ‘有身의 集으로 向하는 방도(sakkāya-samudayagāminī paṭipadā)’다. 眼(~意)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我다’라고 여긴다. 色(~法)을 …. 眼識(~意識)을 …. 眼觸(~意觸)을 …. 受를 …. 愛를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我다’라고 여긴다. …(중략)… 그런데 비구들이여, 이것이 ‘有身의 滅로 向하는 방도(sakkāya-nirodhagāminī paṭipadā)’다. 眼(~意)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我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色(~法)을 …….
有身(sakkāya)이란, 五取蘊(pañca-upādānakkhandhā)인 ‘色取蘊 ․ 受取蘊(六受身) ․ 想取蘊(六想身) ․ 行取蘊(六思身) ․ 識取蘊(六識身**)’을 의미한다.*** 그러한 有身(=오취온)이 集(samudaya)하는 이유를 ‘육육을 所有化(나의 것이고) ․ 同一化(나이고) ․ 自我化(나의 我다)하기 때문’이라고 설해진다.
*한역 아함에는 다음과 같은 경문이 있다. “… 如內六入處 如是外六入處 六識身 六觸身 六受身 六想身 六思身 六愛身 六界身 五陰 亦如上說.” 『大正藏』2, 224c.
**五取蘊 중 後四取蘊은 각각 六受身 ․ 六想身 ․ 六思身 ․ 六識身으로 설해진다.(SN. vol.3. pp.63~64.)
***MN. vol.1. p.299.
(3)
우리가 육육법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①오온설에서, ‘受蘊 ․ 想蘊 ․ 行蘊 ․ 識蘊’은 각각 그 내용이 ‘六受身 ․ 六想身 ․ 六思身 ․ 六識身’으로 설해진다. 이는 ‘오온의 각 요소를 이해하려면 육육(chachakka)이라는 연기를 이해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②12연기설에서, ‘識 ․ 육입 ․ 觸 ․ 受 ․ 愛’은 각각 그 내용이 ‘六識身 ․ 육처 ․ 六觸身 ․ 六受身 ․ 六愛身’으로(SN. vil.2. pp.3~4.) 설명된다. 이는 ‘12연기설이 육육(chachakka)이라는 연기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위 ‘①과 ②’의 이유에서 고익진 박사는 “육육법은 5온설과 12연기설에 인도하는 교량적인 법문”이라 하였던 것임. 고익진 박사의 지적 이외에 본인이 찾아 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점이 육육법과 관련되어 있음.
③사념처설에 설해지는 ‘身隨觀(~法隨觀)이 육육(chachakka)과 육육법(=일체법)을 대상(=대경)으로 수관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④수관(隨觀, anupassna)이 설해지는 대상으로는 오직 ‘육육(chachakka)과 12연기 뿐’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무상수관 ․ 고수관 ․ 무아수관의 경우’는 유독 육육(chachakka)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설해지는 점이 주목된다.
⑤心(citta)과 육육법(=일체법)과의 관계를 설하는 경문은 ‘그 구조’가 ‘身受心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⑥『대념처경』에 육육법이 (PTS판에는) 4페이지에 걸쳐서 언급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초선과 관련이 깊은 ‘vitakka(위딱카, 覺, 尋)와 vicāra(위짜라, 觀, 伺)’가 ‘『대념처경』에 설해지는 육육법’에 언급된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⑦육육(chachakka)연기와 관련하여, 오온인 ‘色수상행식’이 ‘觸수상행식’으로 설해지는 점이 흥미롭다. ‘觸수상思(행)심(식)’이 사선의 요소로서 설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육육연기를 이해하는 것이 사선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육육법은 주목되어야 한다’고 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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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니까야 작성시간 14.05.21 훌륭하심니다............감사합니다........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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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우 작성시간 14.07.13 길따라님의 이런 통찰 때문에 아위자님이 그날 길게 설명한 거군요.
'⑤心(citta)과 육육법(=일체법)과의 관계를 설하는 경문은 ‘그 구조’가 ‘身受心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는 점에는 그날도 그랬지만 지금도 구조적으론 맞지 않다고 보네요.
경에도 나와 있지만 法이란 것이 '오온을 법으로 본다'는 것이면 몰라도 말이죠...
그날 아위자님에도 말했지만
身受心法의 구조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제가 그날은 신념처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단호히 표현하지 못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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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혜정 작성시간 15.10.22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