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과 명색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체요약’하면요...........
<식과 명색의 ‘호연연기’>인 ‘10지연기[=齊識緣起, =苦의 集]’가 성립하는 因과 緣은
識의 대상(ārammaṇa)인 명색에 대하여 ‘앎과 봄(ñāṇa-dassana, 智見)’이 없는
因과 緣 때문이라는 것. 그와 같이 <‘앎과 봄(ñāṇa-dassana, 智見)’이 없는 상태>를 <無明>이라고 부른다는 것. ‘팔사도’는 그 <무명> 때문에 걷는 막가라는 것.
<識>을 이용하여 ‘六觸入處’에서 <識의 고유한 對境이 ‘dhamma’>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연기를 보는 것[☜지금은 ‘10지연기(=齊識緣起, =苦의 集)’이야기 중임]이 ‘dhamma’를 보는 것>이므로 .......... 연기를 올바로 作意하면서 보시면, <‘苦의 集’이라는 ‘dhamma’>를 보시게 되시는데.......... 그 때, ‘연기’의 원리상 ‘苦의 集’만 달랑 보게 되는 그러한 ‘개 같은 경우’는 없다는 것.
그래서, <①苦라는 ‘dhamma’와 ②苦라는 ‘dhamma’에 대한 ‘앎과 봄(ñāṇa-dassana, 智見)’>,
즉 法眼을 지니고서 ‘dhamma’의
<集과 滅>을 <쌍차(雙遮)와 쌍조(雙照)>하시게 되시면, 그것이 ‘정견’이라는 ‘見’이라는 것.
그러하기에 ‘정견’은 <智集滅道>라는 <쌍차(雙遮)와 쌍조(雙照)>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그 ‘정견’이 中道인데요. <(심의)식과 명색의 상호관계>의 ‘中’에 위치한 <무명>이나 <明>에 관련된 道(막가, =팔사도와 팔정도)라고 해서 <중도>인 것입니다.
어렵나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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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04 <식과 명색의 상호관계>는 <쌍차(雙遮)와 쌍조(雙照)>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관계인데.........
'김성부'는 ............ <識>쪽을 비추어야할 <識食>에서 ..... <앎과 봄이 없는 상태>에서 명색을 대하므로 <識食>인 것임을 지적하지는 못한 것임. 중요한 것인데.............. 쩝~~~
그렇게 빠져야만 <10지연기>가 <12연기>로 나아가는 것이데......... 제기랄~~ 제목에만 '12연기'라는 말을 달아 놓구는.........쩝~~~~~~~~~~ 그래도 <근래의 수작>! -
작성자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04 '팔정도'는 心路이기 때문에 <발견해야 하는 길>입니다.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앎과 봄'이 유일한 방법! 그 '앎과 봄'은 <경전[=明]>을 무조건 많이 읽는 것. -
답댓글 작성자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04 시마타는 방법이 다릅니다. 신지념에서 보듯이 '체험'이 중요.
요즈음의 <대부분의 명상센터>는 사실상 사마타를 가르치는 것이지 <위빠사나>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말로만 <위빠사나>고요....... '엉터리 미얀마 위빠사나'가 다 그런 것 같더라구요. 사마타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