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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19.05.15| 조회수93|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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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5.15 24시간 오픈된것이 '촉' 아닌가
    눈을 떠도 촉
    눈 감아도 촉
    죽은 순간에도 아.. 저기 저 세상 ...촉! 하면서 깨고당.
    촉 하면서 모태 속에 쏘옥 들어가서 계속 촉 촉 촉 그러고 촉 하고 세상 밖을 나와 으앙!
    계속 촉촉촉 ,
    잠을 자면서도 촉촉촉
    한평생 촉촉촉
    다람쥐 체바퀴 돌듯 ...
    촉!하고 죽고
    촉! 하고 태어나고
    촉을 끊는게 행을 끊는것 같네...
  • 작성시간19.05.15 안지혜명광의 법안 등이 구족되고
    밝게 빛나는 식이라는 언급은 청정한 상태일 때 감지 될 수 있는 자내증적인 요소로 이해 합니다... 따라서 심적 내부의 펼쳐지는 상이 산냐로 이해 하구요. 이 산냐도 법이라는 점에서 위빠사나로 살펴야할 대상이지 않을까 합니다...
    삼매의 깊이에 따른 희열, 행복의 탐이 떨어져 내것이 아님을 아는것이 아닐까요....?
  •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5.15 위빠사나 없는 사마타는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5.15 위빠사나 없이 삼매에 든자 결코 자만 하지 마시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마타 촉으로 망한자가 한둘이냐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5.15 사람의 몸 위에 9구멍이 있고
    사람의 마음에 9구멍이 있으니
    얼굴 위 7구멍은 현저하나
    아래 두 구멍은 가리여 있는 고로
    마음속 두 구멍도 이 확실히 밝지 못함이라.
    - 성훈기 智편-
  • 작성시간19.05.15 삼매로만 한다면... 상수멸에 도달해야만 촉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위빠사나로는... 상수멸 전의 삼매에서도 촉이 없어질 수있으며... 해탈할 수있다고 여겨집니다........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 작성시간19.05.15 사마디와 사마타와 자나가 같은 계열이긴 하지만
    그 의미에서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위빳사나가 반야 계열이기는 하지만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배타적이거나 충돌하거나 상호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서로 상승하여 도와주는 관계이지 싶습니다.
    불교에서 道는 무조건 8정도로 나타납니다.
    즉 (정견=반야의 도움을 받은) 바른 三昧(색계 禪)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아직 불교의 道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 작성시간19.05.15 세존께서 보살시절 이런 저런 길을 가셨지만 모두 실패하시고
    이것이 깨달음의 길이 아닐까-라는 기억에 의한 알음알이가
    부친의 농경제때 경험하신 초禪(바른 삼매)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 작성시간19.05.15 그러나 정견(범주가 아주 넓습니다. 10선업도의 정견도 정견이고, 4食의 支集滅道도 정견이고,
    緣起의 支集滅道도 정견이고, 4성제의 苦集滅道도 정견으로 나타나지 싶습니다.)의 도움을 받지 못한
    까시나 수행(혹은 8해탈?)에 의한 일시적 사마타,
    이것을 삼매의 전형으로 소개하는 종파의 주장에 동조하여 사마타의 위험을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 不死의 界를 身으로 接하면서 머물 가능성이 높은 禪을 닦는 수행자를 모함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5.15 저 위에 댓글들이 삼매의 전형으로 소개하는 종파의 주장에 동조하여
    사마타의 위험을 강조 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오바를 해도 한참 하는것 같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마타 위빠사나 를 조화롭게 해야 위험 하지 않다는 뜻으로 말한것입니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까시나 수행 자체를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말 하면 남방불교인들이
    저를 남방불교 모함한다고 달려들까 염려되는군요. ㅎㅎㅎㅎㅎ
  • 답댓글 작성시간19.05.16 지송^^ 오버했음.

    S12:68
    그는 그 우물을 들여다보고 ‘저기에 물이 있구나.’라고 알지만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뒤 그것을 마셔서] 몸으로 직접 체득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와 같이 나는 ‘존재의 소멸이 열반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았지만 나는 번뇌 다한 아라한이 아닙니다.”
    Tassa ‘udaka’nti hi kho ñāṇaṃ assa, na ca kāyena phusitvā vihareyya.
    Evameva kho, āvuso, ‘bhavanirodho nibbāna’nti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aṃ,
    na camhi arahaṃ khīṇāsavo’’ti.
  • 답댓글 작성시간19.05.16 그는 그 우물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 뿐
    그것을 몸에 대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벗이여, 이와 같이 나는 '존재의 소멸이 열반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알고 또한 봅니다.
    그러나 나는 번뇌를 끊은 거룩한 님이 아닙니다."

    우물에 물이 있다는 것은 앎. 그러나
    身으로 接하면서 살지는 못함. - 아라한이 아님.

    해탈은 결국 사마타라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바른 견해-지혜(앎)-위빳사나의 도움을 받은 사마타.
  •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5.15 선사님들이 '자신을 바로 보자, 이뭣꼬' 이런 말씀은 왜 하셨겠습니까.
    이건 바로 사마타 위빠사나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 위빠사나 입니다.
    팔정도가 이안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꼭 용어를 써야 중생들은 알아먹기에 초기불교가 중생들에게 먹히는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초기불교를 공부하다 보이 선사님들의 말씀을 아주 쬐곰 아주 쬐금 이해가 될려고 합니다.
    몸 마음 평온해서 과를 이루십시요.
  • 답댓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5.15 그렇다고 제가 선사님들 말씀에 목메달아 있는 사람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ㅎㅎㅎㅎ
    오해는 싫습니다. ㅎㅎㅎㅎㅎㅎ
  • 작성시간19.05.16 불교의 삼사화합의 촉이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감각인식 작용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논의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 작성시간19.05.17 촉은 유전문이고 촉의 멸은 환멸문. 즉 심사화합 촉은 오염된 것이니 번뇌가 없는 사람의 감각인식에 촉이라는 명칭을 붙이면 모순이 발생합니다.
  • 작성시간19.05.17 번뇌가 없는 사람의 감각인식도 '촉'이기는 하지만
    그 촉을 조건으로 受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촉의 멸..,
    識이 멋대로 분별하지 않는다면, 촉을 해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환멸문

    아라한도 감각인식이 일어납니다. 그 감각인식은 촉을 조건으로
    이럴 때 明燭이란 단어가 필요할 것 같지만 니까야에는 나오지 않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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