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명사로서 격변화를 하지만 동사역할도 하는 것들
(1) 현재분사
(2) 과거분사
(3) 미래분사
: 미래분사도 격변화를 하는 명사입니다. 하지만 동사로도 사용됩니다.
1) 미래분사형 만들기
: 동사어근 또는 어간에 tabba, anīya, ya 를 붙입니다.
만드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빠알리 단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빠알리 단어의 구성”에서 다루겠습니다. 한국말과 비교하면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2) 격변화
: 모두 a로 끝나니 a 또는 ā로 끝나는 명사의 격변화를 따르겠네요.
- 남성/중성 : a로 끝나는 남성/중성명사와 똑같이 격변화 합니다.
- 여성 : a를 ā로 바꾸고 ā로 끝나는 여성명사와 똑같이 격변화합니다.
3) 번역하는 방법 : 명사 또는 동사로 번역
: 명사 - 행위의 대상(수동태), 그 행위의 당연성(둘 중 맥락 따라 선택)
동사 - 수동태, 정해지지 않은 시제
●미래분사는 수동의 의미를 지니면서 주로 “∼는 ∼되어야(수동) 한다(의역하면 ∼를 ∼해야 한다”라고 번역하기 때문에 의무분사, 미래수동분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때 ‘의무’라는 것은 ‘강제성’의 의미보다는 ‘당연함, 적절함’의 의미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맞고 당연하며 적절’하므로 “∼해야 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지, 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인 의무를 지우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므로’ “∼된다”라는 단순 수동의 모양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알려져야 한다(알아야 한다)”라는 말은 강제로 알아야 한다거나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아는 것이 맞고, 적절하고, 당연하므로’ 미래분사는 “알아야 한다, 알게 된다, 안다”라는 표현으로 번역됩니다. 다른 예로 “수행되어야 한다(→수행해야 한다)”는 ‘그렇게 수행하는 것이 맞고 적절하고 당연하므로’ “수행해야 한다, 수행한다, 수행된다” 등으로 번역됩니다.
예) pariññeyya : pari + √ñā(알다) + ya(미래분사 접미사)
- 행위 대상 → 충분히 알려져야 할 것(의역하면 ‘알아야 할 것’이 되네요)
- 행위의 당연성 → 충분히 알려져야 함
- 동사 → 충분히 알려져야 한다(충분히 알아야 한다), 충분히 알게 된다
idaṃ dukkhaṃ pariññeyyaṃ
→ 명사: 이 고(苦)는 ‘충분히 알려져야(알아야) 하는 것’이다.
→ 동사: 이 고(苦)는 충분히 알려져야 한다(알아야 한다).
ayaṃ dukkhasamudayo pahātabbo
→ 명사: 이 고집(苦集)은 ‘제거되어야(없애야) 하는 것’이다.
→ 동사: 이 고집(苦集)은 제거되어야 한다(제거해야 한다).
ayaṃ dukkhanirodho sacchikātabbo
→ 명사: 이 고멸(苦滅)은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다.
→ 동사: 이 고멸(苦滅)은 소멸되어야 한다(소멸해야 한다).
ayaṃ dukkhanirodhagāminipaṭipadā bhāvetabbā
→ 명사: 이 고멸도(苦滅道)는 ‘닦여야 하는 것’이다.
→ 동사: 이 고멸도(苦滅道)는 닦여야 한다(닦아야 한다).
(Saṃyutta Nikāya, 5권, 424쪽)
예) viññeyya = vi + √ñā + ya(미래분사 접미사)
Santi bhikkhave(비구들이여, 호격) cakkhuviññeyyā rūpā …
있다(복수, 3인칭 복수) cakkhu + viññeyyā 색色(중성/주격/복수)
눈(眼) 의식되는 것
→ 비구들이여, 눈으로써(에 의해) 의식되는(분별되는, 알려지는) 색들이 있다.
→ cakkhuviññeyyā와 rūpā는 둘 다 주격/복수로 끝나고, ‘눈으로써 분별되는 것’과 ‘색들’은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기의 cakkhuviññeyyā는 명사로 번역된 경우에 해당하지요.
Santi sotaviññeyyā saddā… → 귀로써 의식되는 소리들이 있다.
Santi ghānaviññeyyā gandhā… → 코로써 의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Santi jivhāviññeyyā rasā… → 혀로써 의식되는 맛들이 있다.
Santi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 몸으로써 의식되는 촉감들이 있다.
Santi manoviññeyyā dhammā… → 의(意)로써 의식되는 법들이 있다.
(Saṃyutta Nikāya, 4권, 159쪽 참조)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길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2.03 예를 들어 '밥을 먹고 있던 그는 나를 보았다' 의 예에서는 현재분사(밥을 먹고 있던)가 주격인 '그'와 일치해야 하므로 주격으로 나오고, '그는 삼매에 든 나를 보았다'의 예에서는 과거분사(삼매에 든)가 목적격인 '나'와 일치해야 하므로 목적격을 지니고, '그는 수행해야 할 덕목을 갖추었다'의 예에서는 미래분사(수행해야 할)가 '덕목'과 일치하기 위해 수단격을 지닙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어떤 빠알리 문법가들은 분사를 또다른 품사로 보지 않고 명사로 취급하면서 다만 중심어를 서술하는 모양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저도 이 의견을 따릅니다.
-
작성자길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2.03 이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 카페에 명사를 설명하는 부분 중 '한 문장에 여러 개의 명사가 있을 때 번역하는 방법'을 설명하시는 곳을 참고하시면 좋을듯...
빠알리 문법의 이해 (4) - 빠알리 문장 번역의 기본 순서”, "(6)- 일반명사1(격변화)", (14)같은 격, 다른 격을 지닌 명사의 번역 부분 -
작성자길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2.03 근데 이 질문을 하신게 맞나요? 제가 한국어 문법용어에 대한 실력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빠알리 문법을 설명하다보니 한국어 문법에서 보았을때 적절하지 않은 용어를 쓸 수도 있고 그래서 혼돈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루빠난다 작성시간 15.02.07 네에..감사합니다..
'분사가 동사로 쓰인다'라고 하셨기에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분사가 동사로 쓰이는 경우는 주격일 때만인가요' 라는~~^^; -
한국어의 형용사는 문장내에서 관형어나 서술어로 쓰이기에, 동사라고 설명하신 본문의 문장을 서술어라고 고쳐서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한국어의 형용사와 영어의 형용사는 조금 다릅니다..
라고 쓰고 보니, 영어 형용사 설명에 한정적 용법, 서술적 용법을 사용하여 설명하면 같은게 되는거 같기도 합니다...^^;;;
국어문법과 영어문법을 섞어서 설명하면 이상해지는게 있습니다..저도 양쪽의 문법 잘 모르지만요...^^;;; -
답댓글 작성자루빠난다 작성시간 15.02.07 수식하는 단어의 격을 따르는 건 이해하는데, 분사가 주격이외의 다른 격에서도 서술형용사-동사로 번역될 수 있는가? 하는게 제 질문의 요지입니다~~-절대구 말구요~~^
with mettaa..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