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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장

작성자푸른 돌(靑石)|작성시간23.04.23|조회수20 목록 댓글 7

(..10여년 전 K동과 공수특전사령부 전경, 지금은 상전벽해로 변해간다..)

 

 

 

푸른 산장



남한 산성 입구에 있는 
생고기집 식당이다

 

동네 친목회 모임과 회식을

그 식당에서 많이들 한다

산을 조금 올라서 좋고

야외 분위기 살려줘서 좋다


행정 구역은 하남이지만
서울 송파구 끝이라
멀리서 오는 단체 등산객이 
전철역에서 내려 산을 오른다 

휴일 오전 8시 쯤 보면  
전국서 오는 수많은 등산객이

온 동네가 시끌벅적거리며

삼삼오오 줄지어 산을 오른다

 

이전 등산 다니던 모임이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

이리 저리 뿔뿔이 흩어져

이제 카톡으로나

소식 전하고 있으니

무심한 세월이 무상하구나

 

2023년 4월 23일

'하늘이 맑고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푸른 돌(靑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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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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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3 3.지금도 옆 건물엔 이전 제비집이 그대로 있다. 그 건물 1층에 뜻밖에 오토바이 가게가 들어왔다. 이런 곳에 웬 오토바이 가게가? 했더니 최근 몇 달 동안 주인이 가게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다. 다른 데 가서 일하고 여기는 창고처럼 쓰는 것 같다. 별 관련 없는 분이라 명함만 한 번 주고 받았지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온 동네가 조용하다. 부동산 경기도 좋은 시기가 아니고 경제 사정도 녹녹치 않다. 잘 나가던 수출도 내리막이다. 이렇게 장기간 수출이 역진한 적이 없다니 경제가 위기로 달리는 것 같다. 우선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야 모든 경제가 선순환의 활기로 넘칠 것이다. 그런데 정 반대로 달리니 불황이 깊어지며 오래 갈 것 같다니 모두 걱정이다.
    그동안 동네서 형 동생하며 친했던 부동산 사장이 업계를 떠났다. 3년 여 전에 동네 친목회 회장을 하던 아우가 갑자기 넘어져 골반을 크게 다친 후유증으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또 한 아우는 부인이 병원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가게를 정리하고 이 업계를 떠났다. 그 아우네 가계를 인수한 젊은 사장이 개업 했다며 인사하러 다녔다. 드디어 아우가 완전히 우리 업계를 떠났구나 하고 쓸쓸한 감회에 젖었다...=>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3 4.벌써 낮 기온이 초여름 날씨를 향해 달린다. 금년 봄은 더운 날씨가 평년보다 늦게 오는 것 같다. 이전에 4월 중순이 넘어 가면 벌써 초여름 날씨로 달렸다. 그런데 금년은 아직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가지도 않고 여름이 금방 올 것 같지 않다. 상일이는 더위보다 추위를 더 잘 탄다. 그래서 더운 여름이 추운 겨울 보다 낫다. 원래 좀 약한 체질이라 겨울이 더 힘들다. 더우기 무릎 신경통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새파란 총각이 무릎이 시리다 하면 고향 형수나 아주머니들이 막 놀렸다. 아이를 낳은 아주머니들이 대개 산 후 조리를 잘못해서 얻는 병이 무릎 신경통인데 "총각이 뭔 일이 다냐?"며 놀렸던 것이다. 언젠가 한 해 겨울에 구들장이 내려앉아 전혀 연탄 불을 피우지 못한 냉방에서 겨울을 나고서 얻은 병이다. 그러나 증상은 겨울에만 무릎에서 찬 바람이 분다. 그러니 참을만한 정도라 무슨 병이라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증상은 은근히 평생을 괴롭혔다. 책상에 앉으면 무릎이 시려서 항상 손으로 무릎을 만지거나 비볐다. 병 같지도 않은 병이 피곤하고 힘들게 했다. 학창 시절에 고향을 가면 보약도 해주고 침도 맞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3 5.며칠 전에 고향의 한 동네 친구가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동창인 그 친구는 오랜 객지 생활을 접고 귀향을 했다. 아마 친구가 귀향을 한지 벌써 20여 년이 다 돼 가는 것 같다. 그 친구는 시골에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고향 집과 전답이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동네 안에 있는 선산을 20여년 전에 납골묘로 조성했다. 중학교 교장으로 계셨던 분이 퇴직하고 집안 종친회를 만들어 스스로 회장을 맡았다. 벌써 20여년 전이니 앞 날을 내다 보시고 산소는 점점 없어질 것이니 납골묘를 조성하자니 집안 어르신들이 처음엔 모두 반대했다. 그 당시만 해도 화장 문화가 태동하기 전이라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화장 문화가 전국을 휩쓸었다. 우선 산소를 쓸 곳이 없어졌다. 그리고 산소 관리가 가장 힘든 일이었다. 해마다 성묘철이면 벌초 하느라 자손들이 가장 힘들어 했다. 추석 전에 더운 날씨에 높은 산의 산소를 다니며 벌초를 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작성자▒ 飛龍 ▒ | 작성시간 23.04.24 덕분에 좋은글 고맙습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5 밤이 깊어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진
    새 봄이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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