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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과 벙어리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시간23.05.20| 조회수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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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5.20 1.이전에 여름 장마철에 비가 좀 많이 오면 성내천이 넘쳐 주택가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한강 개발과 맞물려 서울 시내 많은 지천이나 개천이 정비되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하천인 청계과 중량천이 해마다 홍수로 피해가 많았다. 한강 개발에 이어 지천과 하천의 복원과 주변이 개발되며 많이 좋아졌다.
    성내천을 처음 몇 년 자전거 타고 다녔다. 헬멧 쓰고 시원히 달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한 번 나가면 성수대교나 팔당대교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 떼지어 씽씽 달리는 젊은 자전거 매니아들에게 몇 번 부딛혔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런 후부터는 자전거 타고 한강 가는 것이 겁이 났다. 걸어서 가 보니 멀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바쁜 일이 일이 있어 속도를 내도 두 시간이 더 걸렸다.
    사무실을 남한산성 입구 K동으로 옮기고 동네 동업자 모임에 정회원으로 가입을 했다. 지금도 동업자 간에 정회원 제도가 있으나 거래까지는 막지 않는다. 동업자 간의 갈등과 분쟁이 심해 소송까지 가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법적으로 담합 행위를 막았다. 가락 시장에서 10여년 하던 전기 온돌 난방 사업을 IMF가 터지면서 불경기로 경쟁이 치열해져 그 사업을 접었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5.20 2.J생보사 서초동 본사에서 신입 사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후 2년 만에 결혼해 신혼 초에 이문동에서 3~4년을 살았다. 서울 시청 전산실에 근무하는 아가씨를 결혼 미팅에서 만나 거의 2년을 사귀다 결혼했다. 국내 유수의 기업 여직원들과 2번,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하자 해서 긴 머리 아가씨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문동 외대 앞에 방 둘인 작은 단독 주택을 전세로 신혼 살림을 차렸다.
    입사 동기생이 50명이라 모임을 만들었다. 본사에 2/3 정도 발령이 나고 나머지는 거의 서을 시내 점포로 발령이 났다. 나머지 서너 명은 본인이 원해서 연고지인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동기생 모임이 회장을 연장자 순인 윤번 제로 4~5년 동안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상일이가 세 번째 연장자였으나 첫째 둘째는 중간에 일찍 퇴사를 하는 바람에 입사 동기생 두 번째 회장을 맡아 기반을 튼튼히 놓았다. 동기생이 점포장으로 발령이 나면 축하 화환을 보내 축하 해주고 같이 식사도 했다. 한동안 동기생이 점포장으로 계속 발령이 나는 바람에 축하 화환 보내느라 바빴다. 회사 내에서도 우리 동기생 모임이 모범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모두 부러워 하였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5.20 3.오늘은 작심하고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잘못된 것이 주로 남이나 주변 탓으로 돌렸다. 나이 들어 참담한 심정으로 반성해보니 모두 자신의 잘못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운명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지만 전적으로 자기 하기 나름이다. 너무 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오는 운명 막을 수 없으니.. 그러나 모든 걸 운명으로 돌리는 것은 위선이고 자기 합리화일 것이다. 그동안 과연 매사에 최선을 다 하고 살았는지 뒤돌아 보면 후회막급이다. 이제 와서 그 때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고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인가. 다 잊어버리고 살기엔 현실이 엄중하고 무겁다.
    오래 전인데 어느 날 고향 친구가 서초동 J생보사 본사에 근무할 때 찾아 왔다. 말만 고향 친구지 이웃 동네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사이다. 더구나 중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중 고등학교를 그 친구는 고향서 나왔고 상일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로 왔던 것이다. 더구나 사회 생활을 하며 고향도 자주 못 가니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뜻밖에 사무실로 고향 친구라며 찾아 왔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5.20 4.친구가 명동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대표라며 명함을 줬다. 우리 회사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니 여직원 유니폼 단체 복 주문을 받기 위해 영업 활동 차 왔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자주 회사에 들렀고 간혹 식사도 하며 가깝게 지냈다. 단체 복 주무과가 총무과라 과장과 직원들도 소개해줬다. 단체 복 주문 받으러 다니며 영업을 하는 은행이나 회사들이 거의 고향 사람들이 임원으로 있는 곳을 다니는 것 같았다. 상일이는 몰랐는데 당시 J생보사 법무 담당 고문 변호사가 고향 분이었다. 영업을 하는 곳이 국책 은행 세 군데와 대 기업체도 여러 군데를 다닌다며 자랑을 하길래 대단한 인맥을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아무튼 그 친구로 인해 훗날 후회하게 될 일이 생길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그런 친구를 쉽게 믿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고향만 한 동네지 이웃 마을이라 오랫동안 못 만나 서로를 잘 몰랐던 것이다. 그저 고향 친구라고 쉽게 믿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그 마을 선후배들한테 그 친구에 관해 들리는 얘기가 좋게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동향이라고 그런 친구 믿고 보증 서준 것이 잘못이라니 오로지 유구무언일 뿐이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5.20 5.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그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10여년 전에 한 번 찾아 갔더니 그 때도 맨 주먹으로 천하를 잡을 듯이 허풍을 치고 있었다. 그 당시 고향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집안 종친회 고문이라 자주 만난다며 금방 뭐가 될 듯이 자랑을 하길래,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구나 싶어 미련 없이 와버렸다. 그 후로는 다시 찾지 않고 연락도 안 했다. 아무튼 한 친구 때문에 오랫동안 후회하게 될 줄 몰랐다. 그 후유증으로 많이 시달리고 고통을 받았다. 그러니 성경에도 보증은 서지 마라 하지 않는가?
    이제 남은 꿈은 수필로 등단하는 것이다. 수필이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만한 것이 수필이다. 다른 분야는 능력 밖이지 싶다. 최근에 어느 월간 문학지에 두 번 시도를 해봤다. 처음에 뭘 모르고 원고지에 써서 보냈더니 A4 용지로 써서 보내라고 알려 줬다. 두 번 시도를 했는데 아직 응답이 없다. 한두 번의 시도에 등단이 된다면 온 세상에 수필가가 넘칠지 모른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소양도 갖춰야 한다. 그리고 많이 읽고 쓰고 고뇌 하며 더 깊이 성찰 하여야 할 것이다..^*^
  • 작성자 ▒ 飛龍 ▒ 작성시간23.05.20 깊어가는 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5.21 오늘은 흐리고 날씨는 많이 서늘해졌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진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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