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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 캐는 날

작성자푸른 돌(靑石)| 작성시간23.07.12| 조회수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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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7.12 1.금년 여름도 심상치 않다. 지구촌 곳곳이 사상 유례 없는 더위와 폭우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어제 오늘의 화두(話頭)는 아니지만 해가 갈 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인간의 인내력 한계를 뛰어 넘고 있다. 체질적으로 추위에 약하고 더위엔 강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겨울은 점점 따뜻해지고 여름은 계속 더워지니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 더구나 겨울철 3개월이 앞뒤로 깎아 먹어 채 3개월도 안된다. 반대로 여름은 앞 뒤에서 보름 정도 씩 보태 거의 5개월 정도가 여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 근 해에서 잡히던 열대성 어류가 동해안 강릉 근처에서도 잡힌다 한다. 자연의 변화를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느끼는 동물의 본능과 변화에 인간이 따라 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과 주산 지가 주로 대구나 경북 지역이었는데 점점 북상해 충청도나 강원도로 재배 지역이 확장되고 있다. 사과는 어느 과일 보다 맛도 좋고 영양과 비타민이 풍부해 누구나 좋아한다. 수출도 많이 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일이 되었다. 냉장고에 항상 사과가 떨어지지 않고 자주 먹는다. 요즘 과일 가게에 가 보면 어디나 여름 과일이 얼마나 풍성 한지 모른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7.12 2.어릴 때 이웃 집에 사는 당숙이 장난 끼가 심했다. 나이는 네 살 차이지만 촌 수가 높아 삼촌 뻘이다. 바다 낚시도 그 당숙 따라 다니며 배웠고 닭 서리 수박 서리 하는 것도 그 삼촌 곁에서 훔쳐봤다. 겁이 많아 한 번도 현장에 따라 가지는 않고 얻어 만 먹은 얌체였다. 그 당숙은 자손이 귀한 집안에 막내였으니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했다. 두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 딸만 아홉에 아들이 끝으로 둘 이니 동네서 자식이 가장 많은 집이었다. 새로 들어온 작은 어머니가 딸 둘에 아들까지 끝으로 둘을 낳았으니 자연히 집안의 모든 경제권과 실권이 작은 어머니한테 넘어갔다.
    그런데 그 작은 어머님이 큰 부인의 딸 자식들도 똑 같이 대하고 잘 키웠다. 그러니 집안이 모두 화목하고 우애가 깊은 자식으로 자랐다. 아마 작은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고 흐트러졌다면 집안은 배 다른 형제 간에 싸움이 잦았을지 모른다. 그러니 자식들이 결혼 후에도 형제 간에 서로 돕고 돈독한 우애를 유지하며 잘 살았다. 그 큰 어머니는 아들 못 낳은 죄로 평생을 묵묵히 길쌈만 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사시는 모습이 지금 생각해봐도 심지가 깊고 넓어 통이 큰 어머니셨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7.12 3.언젠가 당숙이 사냥 개 세 마리를 끌고 아이들 한 떼를 동원해 높은 산으로 올랐다. 고라니 한 마리를 쫓아 마을까지 내려 왔는데 온 동네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고라니가 큰 숫컷이라 긴 뿔을 가진 늠늠한 넘이었다. 아이들이 고함을 지르며 고라니를 쫓아 동뫼산까지 내려 왔다. 그러나 고라니는 동네 앞 들판을 가로 질러 유유히 다른 산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상일이 유년 시절은 그 당숙을 따라 다니며 많은 추억을 만들고 배웠다. 언젠가 당숙이 중학교 시절 토요일에 읍내서 만화책을 한 보따리 가져 왔다. 상일이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일 땐 데 그 많은 만화책을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다 읽었다. 비록 만화책이지만 그 삼촌 덕분에 책 읽는 습관을 일찍 배운 것 같다. 낚시하는 법과 좋은 낚시 터도 그 당숙을 따라 다니며 배웠다. 당숙이 결혼 후 부산에서 살았는데 오래 전에 소식이 끊어졌다. 한 동네 아가씨와 연애 결혼을 해 아들 둘을 뒀다. 피 차 환경이 잘 따라 주지 않으니 그랬겠지만 서로 찾지 않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유년 시절의 꿈과 동심은 이 삼촌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된다. 그만큼 그 당숙의 존재는 상일이 유년 시절의 꿈과 로망이었던 것이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7.12 4.여름이 되면 아이들이 거의 전부 선창 가에 내려가 산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책 보따리를 마루에 내던지고 바로 바닷가로 달려간다. 동네서 선창까지 갈려면 거의 4~500미터는 될 것이다. 경사가 꽤 있는 동네라 내려갈 때는 좋아도 올라 올 땐 땀이 난다. 싫컷 선창 가에서 시원히 멱감았지만 집으로 올라 오면서 금방 땀을 흘린다. 섬이지만 어느 동네나 태풍의 위험 때문에 대개 바다에서 좀 떨어진 곳에 터를 잡는다.
    같은 학구인 동네 하나가 바닷가 낮은 지대에 터를 잡았다. 언젠가 큰 태풍이 왔는데 그 동네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다른 곳으로 옮길 엄두를 못 내고 지금도 바닷가에 그대로 살고 있다. 다만 큰 태풍만 불지 마라며 온 동민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그 동네에 이모님 한 분이 살아서 어릴 때 어머님이랑 몇 번 간 적이 있다. 그 이모 님도 조카가 가면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 이제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얼굴마저 기억에서 가물거린다. 이모 님이 세 분인데 한 이모 님은 꽤 먼 곳이라 읍내서 차를 갈아타고 가야 했다. 당시 군 내에서 가장 큰 저수지가 있는 동네지만 멀어서 그 이모 집은 꼭 한 번 갔다..=>
  •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7.12 5.바로 옆 동네의 둘째 이모님 집에는 단감 나무 한 그루가 담장에 서 있었다. 키는 크지 않으나 튼실한 가지가 쭉쭉 뻗어 감이 많이 열렸다. 한 여름이 지나면 바로 따는데 씨도 없는 단감이라 그렇게 달고 맛이 좋았다. 단감이 익을 때 쯤이면 어머님이 상일이를 데리고 그 이모님 집을 갔다. 으례 단감 얻으러 왔으려니 하고 한 보따리 따 주셨다. 감나무가 키가 작아 사다리 없이 감을 땄다. 제대로 익으면 살짝 노르스름한 감이 그렇게 달고 맛이 좋았다. 지금까지 둘째 이모님 집에 있는 그 단감보다 맛 있는 단감을 먹어보지 못했다. 요즘 과일 가게에 가면 풍성한 여름 과일이 넘친다. 과일은 제 철에 찾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한다.
    고향 집에 있는 장도감이 가을이 되면 붉그스름하게 익는다. 너무 많이 익으면 홍시가 되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따야 한다. 홍시 용 감은 큰 장독에 쌀 겨를 담아 그 속에 묻어 서늘한 곳에 둔다. 꽂감은 껍질을 벗겨 대나무에 꽂아 그늘에서 말린다. 해마다 설날에 나오는 홍시나 조청은 일미다. 손님에게 떡과 함께 나오는 홍시는 가장 큰 대접이다. 지금도 설날에 먹었던 그 조청과 홍시의 달콤한 향기가 입안에서 맴돈다..^*^
  • 작성자 성마당발. 작성시간23.07.13 ♬일주일의 반! 오늘은 목요일입니다.♬
    *┏━┓ ┏━┓*
    ~//// ▽ ////~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쳐갈 때입니다.
    하지만, 달콤한 주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크게 기지개 한번켜고 힘내셔서 남은 한주 시간들도 보람차게 보내요!!
  • 답댓글 작성자 푸른 돌(靑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7.13 오늘도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비조심 물조심 차 조심하시고
    늘 건강히 멋진 날들이 되세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 ▒ 飛龍 ▒ 작성시간23.07.14 깊어가는 밤
    덕분에 고맙습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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