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꿈길

작성자강신구|작성시간26.06.05|조회수63 목록 댓글 4

꿈길

 

간밤 꿈에 곧 떠날 것이라 일러준다. 잠을 깨고 나서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거의 사라지는데 또렷이 남아 있다. 며칠 지나면 그마저 흐려지면서 가뭇없어진다. 이건 잊히지 않고 더 새록새록 떠오른다. 잠들면 다시 나타나는 온갖 것으로 뒤숭숭하다. 자주 깼다가 쉬하고 난 뒤 또 잠든다.

그때마다 새로운 것이 막 나타난다. 어디서 그 많은 것이 숨어있다 쏟아져 나오는지 놀랍다. 서너 번 깼다 잤다 하면 그만 말똥말똥해진다. 이른 새벽으로 문을 열고 맑은 바람을 쐬며 앞바다를 내려다본다. 무얼 하는가 웬 부지런한 배들이 어련히 불 밝혀서 지난다. 밤새 어디로 저리 쏘다닐까.

깨서 뒤척일 땐 잠깐 남았다가 털고 일어나면 한꺼번에 지워진다. 돌아가신 부모와 형제들이 나타나 살아있을 때와 같이 지나는 게 보인다. 다들 말없이 그냥 스친다는데 그렇잖다. 정답게 부대끼며 한참 무얼 하다가 깨어난다. 다시 잠자리에서 만났으면 해도 이어지지 않고 딴 것이 어른거린다. 무슨 얘기가 느닷없이 술술 거리낌 없이 쏟아질까. 밤새 꿈길에 시달려 찌뿌듯한 게 잔 것 같지 않고 뻑적지근하다.

사라져야지 쌓이면 뒤범벅으로 어지러워진다. 그냥 꿀잠을 자야 하는데 밤새 헤매니 왜 이럴까. 그런데 이것만 그대로다. 누가 말했는지는 흐릿하다. 곧 일어난다는 말이 못내 꺼림칙하다. 왜 그것만 남아 들쑤셔 속 시끄러울까. 그렇게 될까. 머릴 흔들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 되살아나곤 한다. 정말 아내가 그리되면 난 어쩌나.

지지고 볶아치면서 살아온 지난날이 얼마인가. 더 오래 함께 살아야지 이제 한 몸이 되어 떨어져선 살 수 없어라. 여러 번 깨는 중에 부스스 일어나 부엌으로 나오는 아낼 맞닥뜨렸다. 찬찬히 뜯어본다. 얼마 뒤 저 먼 곳으로 간다니 그게 말이 되나. 거꾸로라는데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헛된 것이라 해도 기차 타는 게 보이면 떠나간다는 섬찟한 프로이트의 말이다.

어울리기나 하나. 오래 살 것 같이 온통 수선을 부리며 지나는 데 가기는 무슨.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밤낮 보시랑 댄다. 무어라도 하며 꿈틀거려야 풀리는 마음이다. 가만 있질 못한다. 자다가도 일어나 한밤중에 딸그락거린다. 그냥 하릴없으면 견딜 수 없는가 보다. 빗자루와 걸레질에 빨래, 설거지, 옷 깁기 등 자질구레한 것을 오지랖에 싸고돈다. 돌아가며 쓸고 밀며 문질러댄 뒤 드르륵 바느질한다. 거기다 흙 만지기를 좋아해서 텃밭일까지 이것저것 먹거리 만드느라 쉴 틈이 없다.

밭을 보라 바닷가 쉬는 땅을 갈아엎어 풀뿌리 돌자갈을 걷어내고 온갖 것을 심었다. 배추와 무, 상추, 쑥갓, 쪽파, 대파, 청경채, 강낭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 가지, 토마토 등 없는 게 없다. 거기다 돌나물과 참나물, 취나물이 뙈기마다 가득하다. 바닥엔 나물, 둑엔 화단을 만들어 꽃밭이다. 채송화와 봉숭아, 꽈리, 분꽃, 접시꽃, 수선화, 산국, 목화, 샤프란, 아주까리, 장미, 란타나가 흐드러졌다. 호박을 올려 하룻밤 사이에 한발씩 기어가며 맷돌 청등이 주렁주렁 맺힌다. 여러 과일나무를 심어 주먹 크기의 대추가 열리는가 하면 매실, 감, 살구, 자두도 달린다.

산딸기나무를 둑에다 꽂았더니 번져서 가득하다. 쇠뜨기와 뚱딴지처럼 몇 해 사이 확 퍼졌다. 오뉴월 이른 새벽에 눈 비비고 나서 잔잔한 것을 딴다고 야단이다. 하루 건너면 물러터져 날마다 가야 한다. 작달막한 게 달달 볶아댄다. 가게에 내니 짭짤한 보탬이다. 아침마다 일깨워 누룽지나 빵으로 때운 뒤 우- 나가는 일이 즐거운가. 어깨춤을 추며 흥겨워한다.

보시랑 대야지 내내 가만 있을 때가 없다. 먹고 돌아서면 끼니때이다. 자잘한 집안일에다 산딸기 따내고 김매는 즐거움으로 왔다 갔다 바쁘게 산다. 금방 눈앞에 얼찐댔는데 어느새 간 곳이 없다. 걸어가는 게 아니라 펄펄 날아다니는 새다. 풀이 있을 수 없다. 다니며 보이는 대로 뽑고 낫으로 베버린다.

갔다 하면 때 넘겨 집에 갈 줄 모른다. 마냥 여기저기 토닥거리며 가꾸고 뜯는 재미에 빠져든다. 다 지렁이 나오는 흙을 싫어하는데 남다르다. 한참 피리 불다가도 길쭉해서 안 보이면 앞 도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나 싶어 찾아 나서야 한다. 뒤뚱거리다 보면 자칫 잘못으로 헛디뎌 풍덩 물속으로 들어가 버둥대며 멱을 감을 수 있다.

잘 걷는 나도 몇 번 들어갔다가 홀라당 젖어 나왔다. 밭에 가자는 말을 노래처럼 한다. 꽃밭인데다 높은 사시와 뽕나무 그늘이 한여름에도 시원해 그저 그만이다. 찰랑찰랑 기수 물이 흘러가고 수없이 떨어지는 달짝지근한 오디를 주워 먹는 게 좋다. 지저분해 어설펐던 곳에다 군데군데 돌의자를 놓고 그럴싸하게 만들어놨다. 못다 한 일 없이 다 해 놓고 어서 떠나려는 것같이 서둘러 대는 건 아닐까.

희수이지만 내일모레면 산수에 다다르는 나이다. 갈 때가 됐지만 몸과 마음은 펄펄하다. 늙음을 잊고 산다. 뒤치다꺼리를 혼자서 한다.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다. 열손 놓고 있다. 철 따라 내는 숱한 옷가지와 신발, 쓰개도 아내 아니면 뭣이 있는지 모른다. 세끼 먹거리도 맛깔나게 골고루 만들어 올린다. 다 저절로 되는 게 어딨나. 그리 뒷바라지해대도 으레 그런 줄 알고 맹하게 살았다.

훌쩍 떠나면 어쩌나. 감감하기만 하다. 이 빚을 어찌 갚을거나. 받기만 했지 해 줄 줄 모른다. 부랴부랴 사서 두르고 걸며 안겨야 한다. 볼만한 곳 나라 안팎으로 나다녀야 하잖나. 시내 곳곳 맛집을 찾아 입맛을 다시게 하고 손수 밥 짓는 일이라도 줄여야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오후 찬양 예배와 마을 시니어 여기저기 모임에 나가 노래한다. ‘잘한다. 좋구나.’ 맞장구쳐 북돋웠다.

가꾼 것과 이곳 바닷가 먹거리를 싸서 자녀들에게 바리바리 보내는 일이 보람이다. 교회와 이웃에 퍼 나르는 것을 즐기는 게 타고난 마음이다. 일 벌이고 늘리기를 좋아해서 ‘이제 그만...’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꾹 참고 삽과 괭이를 들고 앞장선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가지 말아요. 여기가 낙원이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박호 | 작성시간 26.06.05 사모님과 행복한 꿈 여전히 꾸시는 모습입니다
    언젠가 는 가야 하는 생 여기 천국에서 잘 살아야 겠지요
    참 행복한 노년 입니다 성공한 인생 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강신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6 부지런해서 따라가지 못합니다.
    건강한 복이지만 너무 힘들게 해 걱정입니다.
    말려도 듣지 않습니다.
    어디서 힘이 그리 솟는지 펄펄합니다.
  • 작성자성a도mom | 작성시간 26.06.05 어린 소년 같으신 쌤...ㅋ 원래 꿈은 반대 라잖아요. 백년해로 하실 것 같으십니다. 어릴때 꾸던 전쟁 꿈이나 상여나가는 꿈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던적이 많은데, 깨어나서도 한참 동안 심장이 쿵쿵 뛰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을 겪어보지도 못했는데 왜 항상 전쟁 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올해는 또 얼마나 덥고 지루한 여름일지....두분 건강 잃지 마시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지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강신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6 성도님 반가워요.
    아내가 부지런합니다.
    꿈은 헛것일 수 있는데 그리 믿다가도 정작 가면 어쩌나.
    갈 나이여서 걱정이 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