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건강 비결 하나는 커피입니다.
다른 하나는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건강에 관한 견해를 전문가나 남의 이야기를 다 귀담아들을 순 없다.
각자 체질이나 현재 상황에 따라 판이할 수 있기에...
글쓴이는 엄청 행운아로 부모님께 건강한 몸을 물려받아 아직 크게 아픈 적이 없고, 병원에 가본 적도 별로 없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다들 하는 고래 잡는 수술 말고는 몸에 칼자국도 없고, 아파서 입원해 본 기억도 없다.
그런데 캄보디아 오기 전, 그러니까 육칠 년 전 오십 대 초반 나이에 발기부전이 왔었다.
나이 들면 다들 그런 거려니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비타민 C를 접하게 되어 호전되었다.
올 초 그런 상황이 또 왔다.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이성 보기를 돌처럼 보게 되었다.
원인을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게 스트레스였던 거 같다.
지금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기다 아랫글의 커피가 도움되었을까?
그 이야기를 하려고 서두가 길어졌다. ^^
1969년 유럽 최초로 이 교수에게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남자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
여든일곱 살의 건강 비결, 커피와 일
'차붐'이 축구선수로 돌풍을 일으키기 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은 '종수 리'였다.
이종수 독일 본 의과대학 종신교수는 1969년 유럽 최초로 간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간 보존액도 개발해 세계 최초로 간을 헬기로 공수해 이식 수술을 했다.
그 공로로 1975년 본 의과대학 종신교수가 됐다.
당시 서독 수도 본의 의과대학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다.
독일 의대에서 동양인이 종신교수가 된 건 그가 처음이다.
독일 의대에서 종신교수는 'King'에 비유된다.
각 과에서 한 명만 배출되며, 형법을 어기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정부가 지위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해당 과의 인사와 재정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1959년 이 교수가 30세 나이로 독일에 유학 갔을 때 독일인 누구도 그가 'King'이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독일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아시아에서 온 '작은 놈(Kleine Kerl)'으로 통했다.
이 교수는 차별과 멸시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학문으로 라인강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겠다."
일본 학술대회 참석하는 길에 잠시 방한한 그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노벨의학상을 아직 못 받았으니 내 꿈의 한 편만 이뤄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올해 87세인데도 매년 유럽과 아시아로 수차례 해외 출장을 다닌다.
―지금도 매일 출근하신다고요.
"본 대학 간질환연구소 소장으로 있습니다. 거의 매일 일하는데, 오전 7시 30분쯤 출근해서 오후 9시에 퇴근합니다."
―건강 비결이 뭔가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커피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진한 커피 두 잔을 꼭 마십니다. 속이 쓰릴 땐 우유를 타고요. 커피는 간 보호와 당뇨병 예방, 치매 예방도 해줍니다. 다른 하나는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저는 아침에 아무리 피곤해도 정시에 출근하려 합니다. 늙어서 일손을 놔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고령이니 아플 때도 있을 텐데요.
"아파도 아픈 티를 안 냈습니다. 독일 사회는 배타적인 면이 강해요. 제가 아프다고 소문이 나면 빨리 내보내려고 할 겁니다. 저는 제가 소속된 본 의대에서 한 번도 진찰을 받은 적이 없지요."
―노벨 의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도 있지요.
"어릴 적 꿈은 이제 묻어야 할 것 같네요."
―그래도 성공한 인생 아닌가요.
"글쎄요. 간 이식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간 기증자가 나오는 겁니다. 주로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환자지요. 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죽기를 바랐던 건 아닌가, 내 공명심 때문은 아니었나 자문한 적이 많습니다."
―딸과 두 아들 모두 독일과 한국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지요. 손자도 의사고요.
"형제 집안까지 합치면 의사가 30명 정도 되지요. 지금 와서 아쉬운 것은 아들 딸이 크는 걸 제대로 못 봤어요. 요새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가장을 보면 부럽더군요. 저는 다시 태어난다면 교수 대신 개업의를 하고 싶습니다."
이 교수는 지금 '독일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쓰고 있다고 한다.
Radioactivity(방사능), Kraftwerk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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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감사 작성시간 16.10.16 저는 45년생 해방둥이. 지금 8천평 밭농사를 인건비 하나 안 들이고 혼자서 합니다.
식사 후엔 꼭 커피 한잔 합니다. 끊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독거노인인데 120세까지 사는 비결에 대하여 책을 썻습니다.(www.pm120.kr)
저는 기상 즉시 왜 나는 이리 행복하지? 라고 중얼거립니다.혹독한 농사 일을 하면서도 계속 중얼거립니다.왜
나는 이리 행복하지?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감사의 충만함 때문입니다.저는 새마을 운동 경력도 있고 27년전 부터 상생협동촌의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농정책이 있는 캄보디아로 갈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농사짓는 분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분을 만났으니 꿈만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조운엽(부에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10.16 안녕하세요.
대단하십니다.
적지 않은 농사를 혼자 하신다니...
저도 매일 새벽 출근하면서 늘 살아 있음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저는 농사를 모릅니다.
프놈펜에서 공장에 재봉사 대주는 일을 합니다.
여기 농사도 만만치 않을 텐데... -
답댓글 작성자감사 작성시간 16.10.18 조운엽(부에노) 저는 농사만큼은 어느정도 자신이 있습니다. 모 농장장으로 있으면서 교육생들한테 농업개론을 강의한 적도 있으니까요.그러나 그곳은 너무나 다릅니다.
아는체는 금물. 마음속으로 백번 천번 다짐합ㄴ다. -
답댓글 작성자조운엽(부에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10.19 감사 경험이 많으시니 잘 하실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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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Zapata 작성시간 17.02.27 해방등이가 노인이라니요?
노인은 공원에 장기나 뜨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지요..
70 넘어 지금 다시 학교 가는 사람도 있는 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