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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을 다녀와서

신의 땅, 인간의 길(7)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엔 에베레스트가 없다

작성자나마스테|작성시간15.01.29|조회수305 목록 댓글 5

     

     몇 천년을 흘러온 그리운

     바람만이 안다는 구름의 망명지

     천 리를 말을 타고 갈 수도 있다

     거기에서도 몇 천 리를 더 뻗어 있는

     노을이 조용히 그의 몸을 눕히는 곳

     구름의 족보를 들추면 거기엔

     죽은 자들의 이름뿐이거나

     울음 끝에 호명되는 이름들이

     다문다문 몽고반점처럼 박혀있는 돌무덤

     여전히 바람의 배경으로 나부끼는 깃발이

     촘촘하게 바람을 빗질하고 있는 그곳

     양들의 순한 피가 뿌려지던

     바람의 신전 앞에 쓰여진

     구름의 비문을 점자처럼 더듬는다 ...................................신현락의 詩 <구름의 유목> 부분

 

 

고락셉을 향하여 출발

로부체에서 길고도 불편한 밤을 지새웠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코를 풀면 검붉은 핏덩이가 나오고, 가슴에 찬바람이 들어서 마른 기침이 연거푸 나온다

코를 몇번을 풀어도 멈추지 않는 핏덩이를 보면서 내 몸을 왜 이렇게 학대하고 있는지,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다 

특히 밤에 화장실에 다녀와서 침낭 속에 몸을 구겨넣고 침낭의 쟈크를 끌어올리는데도 숨이 차서 몇번을 쉬어야 했다 

그래도 아침이 되니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서 고락셉을 향하여 힘찬 걸음으로 출발하였다

신의 입김이 너무 가까운 곳이라 인간은 숨쉬기조차 힘든 곳...그동안 잊고 있었던 공기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히말라야를 ‘설산도량’ 이라 부르는 것은 이런 야생의 삶을 통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배가 고파봐야 음식의 귀함을 알게 되고, 불편한 잠자리를 견뎌봐야 내 집의 안락함을 그리워할 줄 알게 된다.

 

 

로부체 패스(Lobuche Pass, 5110m)

내 몸에 남아있는 모든 힘을 이끌어 내어서 황무지와 같은 로부체 패스를 넘는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이 고개는 검은 바윗돌과 암갈색 자갈, 그리고 먼지 뿐이다

이곳은 마치 중산리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막바지 깔딱고개 같아서 여간 힘들지 않았다

산의 무게가 마치 온몸을 짓누르는 듯 느껴지고,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어서 몇 번을 쉬어갔다.

히말라야에 들어와서도 담배를 줄기차게 피워대던 박을식씨가 헉헉거리며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푸모리봉 앞에 서다

푸모리(Pumo Ri, 7,165m)는 '에베레스트의 딸’ 이라는 별칭을 가진 봉우리다

에베레스트의 서북서 방향 10km 지점, 네팔과 티벳의 국경에 있다.

에베레스트와 눕체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경관과 웅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푸모‘ 는 ‘소녀’... ‘리’ 는 ‘봉우리’ 를 의미하는데...봉우리의 이미지가 소녀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푸모리는 ‘산이 있어 거기 오른다’ 는 명언을 남긴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G.L.Mallory)가 붙인 이름이다

앞쪽으로 보이는 푸모리에서 뻗어 내린 검은 돌산이 칼라파타르인데 내일 새벽에 올라갈 곳이다. 

 

 

고락셉(Gorak Shep, 5,140m)

드디어 오늘밤 묵을 숙소가 있는 고락셉에 도착하였다

‘죽은 까마귀’ 란 뜻의 고락셉... 까마귀가 죽을 정도로 혹독한 곳일까? 이름에서 음산한 분위기가 풍긴다

살아있는 까마귀떼가 날아올랐다가 내려 앉으면서 우리를 환영하는 걸로 보아 까마귀가 죽을 곳은 아닌가 보다

이곳에서 전화가 터지길래 전주의 가족과 지인들들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사흘 만이다

수제비에 밥을 말아서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올라갈 채비를 하였다

 

 

고원지대에 서식하는 새

5천 미터가 넘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겁없는 새들이 있다

처음엔 네팔의 국조인 단페인줄 알았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새로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지 이름으로 '콩마'라는 새였다

정식 이름은 티베트 설계(Tibetian Snowcock)인데 해발 3,700~5,800m 사이의 고지대에 서식한다고 한다

모이를 쪼는 새들의 머리 위로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구름도 다 못 가리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보였다.

 

 

고도계를 보다

5천 미터를 훌쩍 넘어버린 고도계를 보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5,364m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겪어야할 숨가쁨과 고통을 떠올려 보았다

산행은 높이 올라 모험하고 탐험하는 것만이 즐거움이 아니다.

그저 설산의 언저리를 돌며 순례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것 또한 산이 주는 행복이라면 행복일 것이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히말라야 설산 사이를 천천히 떠돌다 보면 어느덧 마음을 닦는 수도자가 된다.

 

 

     히말라야 오르는 길

     외딴 산마을 밖

     비어 있는 마을 어귀 비어 있는 길 가운데

     새끼나귀 한 마리 혼자 서 있었다

     고삐 매이지 않은 채로 마냥 서 있었다

     올라갈 때도 서 있더니

     내려올 때 보아도 그냥 서 있었다

     마알간 눈빛으로 무작정 서 있었다

     한참 더 내려와 돌아다보니

     도포자락 휘날리는 흰 구름이 타고 있었다

     神을 기다린 줄은 상상도 못했다.........................................유안진의 詩 <신을 기다렸다> 전문

 

 

히말라야는 생명체다

눕체가 올려다 보이는 양지쪽에 Raymond Jacob(1964~1992)의 추모탑이 있었다

어느나라의 어떤 청년인지는 몰라도 28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명복을 빌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수천 미터에 육박하는 장엄한 봉우리를 보자 가슴이 콱 막혀왔다.

찬란한 제국,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을 얼음, 당당하고 백색으로 화려하게 구름 위로 솟아오른 수직의 세계...

히말라야는 무정(無情)한 사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히말라야는 실존의 땅

저 거대한 설산 앞에서 인간이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집착과 욕심이 아닐까?

몸이 무겁고 힘들수록 마음속의 짐과 욕심은 바닥에 내려놓게 된다.

부처님은 일찌기 '고통은 업을 쓸어내리는 커다란 빗자루' 라고 말씀하셨다

관대함과 인내, 용서와 겸손 모두가 산이 주는 은혜이며, 고행의 발걸음을 통해 산에서 배운 것들이다.

지금 이 순간 동행자가 있어도 저절로 침묵하게 되고, 침묵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만 들린다.

히말라야는 함께 걷고 있지만 철저히 혼자 걷는 실존의 땅이다

 

 

신의 영역에 들어서다

너덜지역, 바위, 빙하, 눈 그리고 하늘, 태고의 자태 그대로다.

단 세 가지의 색... 하늘의 푸른색, 눈과 얼음의 흰색, 돌과 바위의 다갈색 외에 다른 색깔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토록 혹독한 시련의 대지 위로 펼쳐진 황무지의 단순한 황량함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한 줌의 풀은 커녕 녹색의 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이 고독한 불모 지역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빙퇴석지대

우리가 걷는 길은 언뜻 평평한 평지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특이한 무늬와 굴곡이 있는 빙퇴석이었다.

그것은 빙하가 지나가며 바닥에 만들어 놓은 천연의 작품이었다.

지금까지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지나온 것 같았는데 이곳은 인간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같아 보였다.

태고적부터 그대로였을 푸르스름한 빙하가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를 주시하는 모습이 신비롭고 외경스럽기까지 하였다

 

 

에델바이스

이곳의 고도는 식물이 자라기에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다.

이런 혹독한 고도에서 에델바이스는 스스로 일어나 하늘과 마주하고 있다.

신에 대한 순종과 헌신, 거룩함에 대한 혜안을 품기 위해 하얀 능선을 배경으로 정적 위에 앉아 있다.

비록 시들어서 하얀 솜털같은 모습이지만 비로소 생명체의 흔적을 만날 수 있어서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5,364m

한겨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무(無)의 지대’ 였다.

빙하, 돌무더기, 그리고 검은 벽, 차디찬 바람…. 그뿐이었다.

얼기설기 엉겨있는 오색의 타르쵸만이 인간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는 삭막하고 쓸쓸한 땅이었다

정작 E.B.C에서는 에베레스트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에베레스트는 내일 새벽 칼라타파르에 올라가서 알현하기로 하고 서둘러서 하산하였다

 

 

E.B.C에서 우리의 깃발을 펼치다

모든 사람들이 내려갔지만 우리의 동지들은 두 명의 세르파와 함께 자랑스런 깃발을 펼쳐 들었다

신의 땅, 인간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우리들의 가슴 안에 히말라야가 거대한 묵음의 언어로 들어옴을 느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히말라야의 눈부신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꿈은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이의 몫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겐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그곳이 바로 정상이기 때문이다

 

 

E.B.C.를 떠나면서

태양빛이 이글대는 고원의 풍경은 황량하면서도 몽환적이었다.

잿빛과 흰색과 다갈색으로만 이루어진 무채색 세상은 생명이 완전히 박제된 땅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채워지지 않는 낯선 길에 대한 갈증과, 오르지 못 한 산에 대한 동경...

바로 그것이 우리들을 이곳까지 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절망과 환희,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저 높은 곳에서 만세를 부르거나 죽어간 젊은이들의 포효가 들려오는듯 하였다

 

 

쿰부 빙하

이곳은 생명체라고는 구경할 수 가 없는 빙퇴석 지대이다. 마치 화성이나 금성에 착륙한 느낌이다

빙하는 눈에 보이는 것만 20m 가량으로 그 밑의 두께는 눈으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두껍다고 한다

그 속살은 엷은 파란색을 띠고 있었는데 지구 온난화로 빙하의 양은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내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억년 전의 지구가 만들어질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이제 지친다. 지쳐

히말라야의 신성한 숨결이 얼굴에 와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고, 말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거친 숨소리만 곁을 따른다.

하루 해가 허락하는 동안 롯지에 닿지 못하면 어둠이 찾아오기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정이다 

그러나 지칠대로 지친 우리의 발걸음은 자꾸 무디어지고 쉬어가는 시간이 길어지기만 한다

배낭에 남아있는 비상식을 나누어 먹고, 심호흡을 해보지만 기력이 쇠진한 우리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였다

 

 

하산하는 길

해가 일찍 져버린 고원엔 어스름한 어둠이 찾아오고, 안개가 밀려오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다 

돌들이 마구 떨어지는 거친 길목, 바닥을 알 수 없는 계곡, 언제 쏟아져 내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눈 언덕...

갈 길은 바쁜데 지쳐버린 몸둥이가 말을 듣지 앟는다

발 앞에 야크똥이 널부러져 있어도 피해갈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야크똥을 밟아서 옷에 묻었을지라도 그걸 털어낼 기력이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동료들을 뒤돌아볼 여력이 없어서 고개를 숙인채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고락셉롯지에 도착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롯지의 식당에 당도하니 따뜻한 난로와 동료들의 박수가 반겨주었다

손끝이 얼어서 감각이 없는데 마음씨 착한 박미란씨가 핫백을 손에 쥐어주어서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조리팀들이 따라주는 뜨거운 찌아차를 한 잔 마셨더니 온몸에 금방 열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식욕이 떨어져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이게 바로 고소증인가 보다

저녁식사에 된장국이 나왔는데 국물만 조금 마시고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가서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칼라파타르에 올라가야 하는데.. 히말라야의 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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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松竹 (김형식 시몬) | 작성시간 15.01.30 고군분투 막바지 최종 트레킹 종점을 향해 고생고생 하시는 모습들이 사진 한장 한장속에 고스란이 베어있군요~~~
  • 작성자돌쩌귀(임승도루카) | 작성시간 15.01.30 제가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듭니다
  • 작성자나마스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1.31 장엄한 설산 앞에 서니 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지더군요
    내자신의 모습과 지금까지 아둥바둥 살아왔던 저의 삶이 너무너무 초라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문명의 땅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위대한 설산은 하얀 블랙홀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가치관이나 욕망이나 생각들을 한꺼번에 빨아들여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오르기 위해서 죽어간 젊은이들의 위대한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 작성자행복가득 | 작성시간 15.02.01 순간이 영원을 지배하는(Make Mament Memorable)시간들의 연속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일의 나를 결정하듯 순간순간의 시간의 소중함을 한 껏 더 새기게 하는 글입니다. 장하십니다.
  • 작성자물안개 | 작성시간 15.02.04 오우~~ 절정의 모습. 멋집니다..
    생생하게 온 몸으로 느껴지는 군요
    더불어.. 히말을 가슴에 품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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