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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칼럼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롬8:22-27)-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님이 우리를 어떻게 탄식하시며 도우시는지 나눕니다.

작성자peter|작성시간22.06.06|조회수621 목록 댓글 0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롬8:22-27)

 

 

갈등

1. 오늘은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 후에, 오순절에 성령께서 크게 임하신 날입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또 셋입니다. 고대교회사를 보면(교회 탄생부터 주후 600년까지), 삼위일체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어요. 처음에는 하나님을 1위 성부, 2위 성자, 3위 성령으로 이해했습니다. 군주론적 신론이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신론-요즘 말로 하면 이단입니다. 성부의 신성과 완전함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견이 없었어요. 성자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해서는 300-400년 동안 사람들이 의심했어요.

 

그러다가 323년 니케아 공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였습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에서는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였고요. 451년 칼케돈 공회에서 비로소 삼위일체 논쟁이 일단락되었어요.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또 사람이시라는 진리가(그리스도의 양성론) 통과되었습니다. 삼위일체론이 형성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세상 어디 가도 없는 신비로운 진리이기에 이것을 이해하고 믿는데 세월이 그만큼 걸린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합니다. 어려운 신학 용어를 거론하지 않고도요.

 

2. 1,000페이지 가까운 신학책을 읽지 않고도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어지는 분들이 복이 있습니다. 실제 이런 책이 있어요.(고대교회 교리사-삼위일체론 형성사) 우리가 여러 가지로 좋은 시대에 살고 있어요. 아직 잘 이해되지 않거나 믿어지지 않는 분들도 차차 이해되고 믿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은 성부 성자와 더불어 지식과 지혜, 인격과 능력에 있어서 완전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드러내줍니다. 26,“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함을 언제나 아시고 도우십니다. 지식으로 우리가 연약함을 아시기만 한다면, 소용이 없어요.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인격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성령님은 인격에서도 완전하십니다. 더불어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는 능력에서도 완전하십니다. 26절에 참 놀라운 말씀이 소개됩니다.“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왜 여기에서 성령의 탄식하심을 말하고 있을까요? 또 성령께서는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고 계십니까?

 

갈등 심화

3. 오늘 본문에는 탄식이라는 말이 몇 차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어-키워드입니다. 성령님이 탄식하신다는 말씀을 보았고요. 22절에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고 있다고 말해요. 피조물은 사람들을 제외한 자연과 우주, 짐승, 식물 등 일체를 말해요. 사도 바울은 피조물들이 다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 안다고 말해요. 오늘 저와 여러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오늘날은 당시보다 피조물들이 훨씬 더 큰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고통이 더할 것입니다. 날씨와 이상 기온이 더하고요.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탄식하고, 당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바라고 말합니다. 탄식하는 정도가 그만큼 컸다는 증거에요. 23절에는 피조물과 더불어 우리(사람들)까지도 탄식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탄식이 얼마나 심한지, 24절에 소망 이야기를 꺼내고 있어요.“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해요.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잖아요. 창15:6부터 시작해서 예언서의 합2:4, 신약성경에서는 복음서와 서신서 두루 셀 수 없이 반복해서 선포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하나님의 선물로(엡2:8) 받습니다.

 

4.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여기서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탄식이 심한 상태를 전하는 메시지에요. 깊은 탄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세상은 온통 탄식뿐입니다. 피조물도, 사람들도 모두가 탄식 가운데 있습니다. 앞을 보아도 탄식, 뒤를 보아도 탄식,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탄식뿐입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탄식이 왜 그치지 않고 있을까요? 탄식하는 환경과 상황을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탄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까?

 

실마리

5. 사도 바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세상은 깊은 탄식 가운데 있습니다. 탄식이란 말은,“근심이나 원망 따위로 한탄하여 숨을 내쉼. 또는 그러한 숨.”(sigh, lamentation) 탄식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20-21절에 말씀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릇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은 만물이 썩어져 허무한 데로 돌아가고 있어요. 역사를 보면, 언제부터 피조물의 환경과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까? 인간이 타락하면서부터입니다. 창세기가 잘 말씀해주고 있어요.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피조물이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타락하자(불순종),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시조들을(아담과 하와) 에덴에서 추방시켰습니다. 에덴에서의 추방은, 에덴이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에요.

 

에덴에서는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풍성함을 누리며 영생할 수 있었습니다.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에는 상황과 환경이 비교할 수 없이 악화되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겼어요.(창3:18-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하나) 피조물의 첫 번째 탄식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사람이 짓고 탄식은 피조물도 함께 겪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이후 누구나 죽음에 이르고, 사는 동안에 노병-늙고 병이 드는 경험을 겪으며 탄식합니다. 이런 비극을 당하고도 사람들은 여전히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가인이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 이어서 또 죄를 범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동생 아벨을 죽였어요. 인류의 첫 형제살해가 시작되었어요. 가인의 죄 후에, 피조물은 더욱 탄식하였습니다.

 

6. 가인의 죄 후에 하나님께서,“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고 선포하셨어요.(창4:10-11) 하나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영원히 재판장의 선언과 똑같은 효력이 발휘됩니다. 이렇게 죄와 심판으로 얼룩진 역사 가운데 피조물이나 사람들이 모두 탄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었어요. 사도 바울은 22절,“우리가 아느니라.”말씀하였어요. 피조물과 사람들은 이 절망의 늪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까?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답을 하는지 봅니다.

 

먼저 23절, 사람들은 탄식하며“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탄식하며 살고 있지만, 속량-구원을 기다린다고 했어요. 그런데 영혼의 속량이 아니라 몸의 속량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양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바울은 겸손하게 양자라는 표현을 썼어요. 구원은 영혼만이 아니라 몸까지 받아야 하는데, 바울은 이 몸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탄식하는 몸의 속량은 종말과 부활 이후에 이뤄집니다. 영혼 구원과 더불어 몸까지 이뤄지는 온전한 구원은 종말론적인 차원이에요. 사도 바울은 이때까지 탄식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7. 24-25,“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고,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며, 인내 가운데 기다리라.” 믿음은 구원으로 이뤄지지만, 영혼과 몸의 구원이 완전히 이뤄지는 종말이 오기까지 우리가 승리하려면 소망이 절대 필요합니다. 존 번연의『천로역정』에서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에니메이션 영화를 한 번 꼭 보세요. 소망이가 결정적으로 주인공 크리스천을 천국으로 가게 돕는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표현해 주었어요. 믿음, 소망, 교만 등을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시켜서 연출을 잘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성령님의 탄식을 언급합니다. 성령님의 탄식은 26,“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기”때문입니다. 참 기가 막힌 상황이에요.

 

탄식 가운데 절망하면서도, 사람들이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납니다. 지금 깨어서 기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어요. 바울이 이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당시 로마 교회 상황이 큰 위협을 당하며 어려웠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개입하십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탄식이에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는데 27,“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우리는 기도할 바를 모르는데,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성령님의 사랑입니다.

 

복음

8. 인류 시조의 타락과 에덴에서의 추방 후 사람들과 피조물의 상황은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과 같이“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는”상황이었습니다. 소망이 없는 삶의 연속이었어요.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것을 보고 계시기만 하지 않습니다. 인류를 위한 속량-구원 계획을 세우셨어요. 인류만이 아니라 피조물도 허무하고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는 날을 계획하셨어요. 모두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셨던 세계를 회복해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에덴동산의 회복-복낙원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몸의 속량이 이뤄지는 때라고 말해요.

 

참 멋지고 적절한 표현이에요. 탄식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소망이 되는 복음 메시지입니다. 어떤 종교철학에서도 말하지 못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몸은 영혼과 동일하게 존귀합니다. 영혼은 귀하고 몸은 천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영혼과 몸 모두 존귀하게 지으셨어요. 사람들의 죄로 인해서 몸이 죽고 말았습니다. 종말이 오면 우리 몸은 다시 살아나고(부활), 온전한 몸으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며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이 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완전한 권능으로 이루실 일입니다. 인류와 피조물의 탄식은 끝이 나고, 최고의 소망이 이뤄지는 때입니다.

 

기대

9. 오늘 성령강림 주일에 귀한 말씀을 나눕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께서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듯이 성령께서도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님의 여러 사역 가운데도 으뜸가는 것을 전해줘요. 연약한 우리를 돕는 사역이에요.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결단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마음을 활짝 열고 성령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환영하는 자에게 임하세요.

 

성령님도 인격이시라 환영하지 않는 자에게 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설립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이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모든 예배 시간에,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며 간구하시는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오늘 성령강림절에 말씀을 나누는 성령님을 만나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의 실제를 누릴 것입니다. 이제 다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성령님을 환영하고 함께 하심을 기도합니다.(오늘 찬양은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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