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이 경 림
혜화동이라 했습니다
성당이 있는 로터리를 돌아 약간 언덕진 골목을 올라 첫 번째 전봇대에서 꺾으라 했습니다
삼간초가라 했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혜화국민학교가 있다 했습니다
열 살이라 했습니다. 엄마를 태운 꽃상여가 집을 나간 게.
그게 뭔지 몰랐다 했습니다.
마루기둥 붙잡고 폴짝거리며 무슨 노랜가 불렀다고, 어머니……
정신 맑을 때 들려주신 이야깁니다.
오랜 심장병에 지친 어머니 이른 조금 너머 정신 흐려지셨습니다.
멀쩡하다가 한 순간 정신 줄 놓으실 때 어머니
‘미안하지만 혜화동 우리 집에 좀 데려다 주세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딸에게 공손히 부탁하셨습니다.
‘혜화동에 누가 사는데요’
‘울 엄마도 오빠도 동생도……’
그 애절한 눈빛……한 번도 못 들어 준 나는, 그녀에게 모르는 사람 맞습니다.
밥벌이 가는 몇 시간 도우미에게 맡겨진 어머니, 나를 가리켜
‘쉿, 저 여자 조심 하세요. 저 여자 내 지갑을 자꾸 훔쳐가요’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뭘 잘못하셔서 어머니에게 점수를 잃으셨어요?’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는 도우미 앞에서 문득 소름 돋는 날 있었습니다.
생각하니 나 평생 그녀의 지갑 훔치며 살았습니다
그 낡은 지갑에는 더 훔칠 게 없어 종래는 혼(魂)까지 훔쳤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밥벌이 갔다 오는 내게 도우미 아주머니가 전화했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 지금 빨리 가 봐야하는데 30분 쯤 혼자 계시면 안 될까요?’
하도 사정 하길래…… 그러라고……
그 30분, 어머니는 사라지셨습니다. 영하의 추위에 잠옷 차림으로 봄나들이 가듯 날아가셨습니다.
놀라 묻는 내게. 아파트 경비가 말했습니다
‘아, 아까 그 할머니요? 못 보던 할머닌데……
집이 혜화동이라고 그러길래 길 잃은 할머닌가 해서 112에 신고했지요’
엄마― 엄마―
아이처럼 부르며 파출소로 달렸습니다.
아아, 거기 연분홍 꽃무늬 잠옷 화사하게 걸치고 잔뜩 겁에 질린 어머니
새파랗게 언 입술을 실룩이며 울음 터트렸습니다.
‘저 사람들 우리 집이 혜화동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 믿어요. 아주머니,
미안하지만 혜화동 우리 엄마한테 좀 데려다 주세요’
추위와 두려움으로 오그라져 한 줌도 안 되는 어머니를, 아니 나를,
업고 돌아오던 그 밤,
골목마다 전봇대는 수도 없는데
가도 가도 혜화동은 없었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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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초설 작성시간 09.10.21 아! 지금 우리 엄마가 치매 초기 단계이신데, 넘 가슴에 와 닿는 시...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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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래투 작성시간 09.10.22 얼마전 어머니 인공 무릎관절 수술을 하시고 아직 불편하셔서 형수님 댁으로 가셨다. 굳이 형수님 댁이라고 말 한 것은 정말 형은 없구 형수님만 있는 것 같아서다. 나이 70에 걷는 연습이라 回春 하셨다. 그 모진세월 다시 어찌 살라 말인가. 어쩌다 전화 드리면 밥 잘먹고, 감기 걸리면 병원가고.... 나이 40먹은 애비도 애기가 된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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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화지 작성시간 09.10.22 ㅠ.ㅠ..........